≪홍길동전≫
조선 연산군 때 활동한 도적으로 ≪홍길동전≫의 모델이 된 인물.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도적떼의 우두머리이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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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허균이 지었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허균의 혁명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이 소설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허균(許筠)이 지은 ≪홍길동전(洪吉童傳)≫의 모델이 되었으며, 명종(明宗) 때 임꺽정(林巨叱正 또는 林巨正), 숙종(肅宗) 때 장길산(張吉山)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도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허균(許筠)의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판서(洪判書)의 서자로 태어나 학대를 받으면서도 병서(兵書)ㆍ검술(劍術)ㆍ천문(天文)ㆍ지리 등을 배운 뒤 도적을 모아 활빈당(活貧黨)을 조직하고 그 두목이 되어 8도의 방백(方伯)ㆍ수령들이 착취해들인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도술(道術)로 관가를 괴롭혀 주다가 조정의 회유에 응하여 병조 판서가 되었다.
후에 율도국(律島國)에서 이상적 왕국(理想的王國)을 건설했다.
조선 신분제도의 사회적 모순과 그것에 저항하는 허균의 이상주의(理想主義)를 구현한 인물이다.
조선의 세종 대왕이 즉위한 지 15년째 되는 해에, 판서 벼슬을 하는 양반 홍문과 노비 출신의 첩 춘섬 사이에서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비범함이 남달라 영웅호걸이 될 만한 아이였으나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다.
어느덧 여덟 살이 된 길동은 모두에게 칭찬 받는 아이였으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처지였다.
친척들과 종들마저 길동을 보고 종의 몸에서 난 천한 아이라고 하니 길동은 그것이 너무나도 원통할 뿐이었다.
길동은 사내로 태어나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명확히 인식하고, 어차피 병조 판서 벼슬을 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집을 나가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명예나 수치를 잊고 살 결심을 한다.
그러던 차에 길동 모자를 향한 홍 판서의 사랑이 날이 갈수록 커지자, 홍 판서의 첫 번째 첩 초낭이 그것을 시기하여 길동 모자를 없앨 궁리를 한다.
초낭은 무녀와 계략을 짜고 관상녀를 불러 홍 판서에게 길동을 모함하는 소리를 전하게 한다. 그리고 초낭은 본부인 유씨 부인과 맏아들 길현을 꼬드겨 길동을 없앨 마음을 갖게 만든다.
결국 초낭은 자객을 사서 길동을 죽이기로 한다. 이때 길동의 나이 열한 살이었는데, 체격이 크고 용감했으며 유교 경전은 물론 천문과 지리, 주역에도 통달해 바람과 구름을 부리고, 둔갑술까지 익히고 있었다. 자객을 잡아 일의 시작과 끝이 어찌된 것인지 알게 된 길동은 그길로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떠난다.
길동은 하염없이 걷다가 산속에서 도적 떼의 소굴을 발견한다. 마침 길동이 도착한 날이 두목을 뽑는 날이었고, 시험에 통과하여 도적 떼의 우두머리가 된다. 며칠 후 길동은 지혜와 술법을 써서 도적 떼를 이끌고 합천 해인사의 재물을 훔친다.
산채에서 사흘 간 잔치를 벌인 뒤 부하들에게, 앞으로는 조선 팔도를 다니며 못된 벼슬아치들이 힘 없는 백성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훔쳐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이고, 선량한 백성의 재물에는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되며 우리 무리를 가난한 백성을 돕는다는 뜻의 '활빈당'이라 하겠다 말했다.
길동은 자신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허수아비 일곱 개를 만들고는 주문을 외워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홍길동이 전국 팔도에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다. 가짜 길동들은 팔도를 누비며 못된 벼슬아치나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흉년에는 관아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을 살렸다. 홍길동이 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소동을 피워도 잡을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나라에서는 길동의 형인 길현을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하여 길동을 잡아 오라고 명한다. 전국 팔도에서 여덟 명의 홍길동이 잡혀 한양으로 올라간다. 임금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나라의 현실을 고한 다음 길동은 사라지고 만다. 다시 한 번 길동을 잡아들이라는 임금의 명령이 길동의 형 길현에게 떨어졌다.
길동은 순순히 형 길현에게 잡힌다. 한편, 나라에서는 길동이 탄 수레가 남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길동을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길동은 술법을 써서 도망을 쳤다. 그 후 길동을 잡을 길이 없자 결국 임금은 길동의 요구대로 길동을 병조 판서에 임명한다.
길동은 궁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큰절을 올리고 병조 판서의 벼슬을 받은 후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사라진다. 그 후 나라 안에서 다시는 길동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임금은 길동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거두었다.
길동은 조선을 떠나 30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성도라고 하는 섬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요괴에게서 세 여인을 구하고 세 사람을 모두 부인으로 맞았다. 세월이 흘러 길동은 아버지 홍 대감이 돌아가실 것을 알고 조선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길현과 유씨 부인과 어머니를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의 유해를 성도에 모시고 돌아온 길동은 삼년상을 정성껏 치른다. 성도 근처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새 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하고 율도국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한 다음 왕의 자리에 올라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길동의 나이 72세가 되었을 때 왕위를 왕자에게 물려주고 왕비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 지내다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비범한 재주와 능력을 지닌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적서차별(嫡庶差別)의 문제점이라든가 관리들의 치부행위 등 지배층의 무능을 비판한 사회소설이다. 또한 일반 독자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홍길동에게 도술적인 능력을 부여하고 마침내는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영웅이 되는 영웅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연산군 때 활약한 실존 도둑이었다가,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 허균(許筠)에 의해 소설로 재탄생되어 현재까지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 홍길동. 홍길동이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어필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설 『홍길동전』의 파급효과 때문일 것이다.
『홍길동전』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크며 당시의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주목이 되는 소설이다.
『홍길동전』이 반영하는 사회상은 서얼차별이 점차 심화되는 현실의 세계이다. 홍길동은 바로 이러한 서얼의 대변자이다.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칼을 잡고 월하에 춤을 추며 장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더니, 이때 승상이 명월을 사랑하여 창을 열고 기대어 있는데 길동의 거동을 보시고 놀라 말하기를,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무슨 즐거움이 있어 이러하느냐?" 길동이 칼을 던지고 크게 엎드려 말하였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타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사오니 이만한 즐거움이 없사오되, 평생 서러워하기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여 상하 노복이 다 천히 보고, 친척과 고구(故舊)도 손으로 가리켜 아무의 천생(賤生)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사오리까?" 이어 대성통곡하니, 대감이 마음에 가엾게 여기시나 만일 그 마음을 위로하면 이것 때문에 방자할까 하여 꾸짖어 말하기를 "재상의 천비 소생이 너뿐 아니다. 자못 방자한 마음을 두지 말라. 일후에 다시 그런 말을 번거로이 한다면 눈앞에 용납치 못하리라."
1500년(연산군 6)을 전후하여 서울 근처에서 활약하던 농민무장대의 지도자. 양반지주층을 중심으로 토지소유가 확대되면서, 토지를 잃고 지배층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도망쳤다.
이들은 산속으로 피해 무장대의 기본성원이 되어 양반지주나 관청을 습격했는데, 지배층들은 이들을 「도적」이라 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연산군 통치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이러한 농민무장대가 일어났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홍길동이 이끄는 무장대였다.
홍길동은 양반관리의 복장을 하고 스스로 「첨지」라 하면서 무장한 많은 농민을 지휘해 여러 고을의 관청들을 습격했다. 결국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취조당한 기록이 남아 있다.
뒤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홍길동전>으로 소설화되기도 한다.
서자의 울분이 내포 되었을수도 있음이라, 분명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대감'이라 불러야 하는 서얼의 신세. 그 하소연에도 아버지는 "모두가 그러한데 왜 너만 원통하다 하느냐"면서 냉정하게 길동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홍길동전』에서 갈등이 가장 증폭되는 부분이자, 길동이 명문 재상의 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이 점차 심화되는 16세기 후반 이후 조선사회의 모순을 기본적인 모티브로 설정하여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모티브로 하여 탐관오리의 부패상과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백성들의 욕망 등을 함께 펼치고 있다.
『홍길동전』은 영웅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소설 곳곳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장치들이 설정되어 있다. 홍길동은 판서(判書)인 아버지와 시비(侍婢) 출신인 어머니 춘섬 사이에서 출생한다. 주인공에 대한 이러한 환경 설정은 홍길동이 필연적으로 신분문제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조선시대 서얼의 존재는 양반의 취첩(取妾) - 양반이 원래의 부인 이외의 다른 여성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것 - 을 허용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필연적인 산물이었다. 서얼(庶孼)은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그다지 큰 차별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조선사회에 명분과 신분차별을 옹호하는 성리학 이념이 강하게 정착되면서 반상의 구분, 적자와 서얼의 차이가 보다 분명해졌다. 과거제도에서 서얼을 배제한 것은 적서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시대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인 과거제도의 응시자격 박탈은 한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없애는 가혹한 조처였다. 이러한 흐름은 성리학의 이념이 보다 확고히 자리를 잡으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홍길동전』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있으되 아버지라고 제대로 불러보지도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의 유행과 더불어 조선 후기까지도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00년 음력 10월 22일의 기록에 홍길동에 관한 내용이 처음 등장한다. 실록에는 이날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이극균(李克均)이 “듣건대, 강도 홍길동(洪吉同)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참에 그 무리들을 다 잡아들이도록 하소서”라고 왕에게 건의하여 그대로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음력 10월 28일에는 의금부(義禁府)에서 홍길동에게 접대를 받고 그에게 집까지 주선해 준 엄귀손(嚴貴孫)의 처벌을 건의해 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반역이나 강상(綱常)의 죄를 저지른 중죄인을 왕명에 따라 조사ㆍ처벌하는 의금부에서 홍길동 사건을 담당했으며, 홍길동이 무반(武班)인 엄귀손과 결탁하여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홍길동의 이름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길동(吉同)’으로, ≪홍길동전≫에서는 ‘길동(吉童)’으로 한자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홍길동전≫에 대해서도, 그것을 허균이 지었다는 기록을 남긴 이식(李植)의 ≪택당집(澤堂集)≫에는 ‘홍길동전(洪吉同傳)’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본에 따라 ‘길동(吉同)’과 ‘길동(吉童)’의 표기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길동(吉同)’과 ‘길동(吉童)’은 홍길동의 이름을 소리에 따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다른 글자를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 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인 일본 오키나와의 율도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역사상 홍길동은
조선 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다.
좌절과 울분 속에서 출가하여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소외된 민중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어 남해로 유배되었으나 탈출하여 무리를 이끌고 오키나와로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에서처럼 민중을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홍길동전』은 작자 허균의 체험이 다분히 형상화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주인공 홍길동이 서얼로 설정된 것은 작자의 체험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허균은 아버지 허엽이 판서직을 역임하고 형, 누나 모두 학문과 문장으로 명망을 떨친 명문가의 기대주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신분적 특권을 스스로 박차버렸다. 오히려 그는 스승인 이달이 서얼이라는 점 때문에 차별 받고, 서양갑·심우영 등 명문가의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좌절 당하는 현실을 결코 좌시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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