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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국내)

최치원, 崔致遠 . 1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6두품의 천재 신라 6두품 출신으로 당으로 건너가 18세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합격한, 신라 최고의 천재 최치원. 868년 어느 날, 당나라로 떠나는 열두 살의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말했다.“10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아라. 나 역시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열심히 하거라.” 먼 곳으로 어린 아들을 보내는 아버지의 당부로는 지나치리만큼 매서운 이 말 속에는 대대로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을 얻었던 최씨 집안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6두품으로서 느끼는 한과 비애가 숨어 있었다. “네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해 열 살 때 사서삼경을 읽었다.”라는 기록이 전할 만큼 총명한 아들이었지만 신라에서는 그 재능을 다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 더보기
최치원(崔致遠, 최치원[崔致遠] 신라의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이다. 이미지 크게보기채용신, 〈최치원초상〉, 1924년, 비단에 채색, 123×73㎝, 무성서원. 통일신라시대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의 초상화이다. 복식은 중국 당나라 형식으로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붉은색 단령을 입고 있으며 가부좌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손에 불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나 의자 아래 신발이 놓여 있는 모습은 불교의 승려 초상화 형식을 따른 것이다.이칭별칭자 고운, 孤雲, 해운, 海雲유형인물시대고대/남북국/통일신라출생 - 사망857년 ~ 미상성격학자성별남본관경주(慶州)저서(작품)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대표관직(경력)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 부성군 태수, 아찬 최치원 [崔致遠].. 더보기
지수신 , 遲受信. 지수신 , 遲受信. 생몰년 미상. 백제의 부흥운동가.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뒤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일으켜 처음에는 고구려·왜국의 후원을 받음으로써 그 세력이 강하여졌다.얼마 가지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의 내분이 생기고, 또 663년(문무왕 3) 9월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두릉이성(豆陵伊城)·주류성(周留城) 등 여러 성이 함락당하자, 백제왕 부여풍(扶餘豊)은 고구려로 달아나고, 왕자 부여 충승(扶餘忠勝)·부여 충지(扶餘忠志) 등은 그 무리를 이끌고 왜인과 함께 항복하였지만, 그만은 북부의 거점인 임존성(任存城)에 웅거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신라군의 침공을 잘 막아 11월 4일 스스로 물러가게 하였다. 대부분의 성이 주류성의 함락과 동시에 항복하고 말았으므.. 더보기
선화공주, 善花公主. 선화공주, 善花公主. 《삼국유사》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의 공주이며,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의 비(妃). 진평왕의 셋째 딸로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이를 연모(戀慕)한 서동(薯童), 즉 후일의 백제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서동요(薯童謠)》를 지어 선화공주가 밤마다 남몰래 서동을 만난다는 소문을 신라의 서울인 금성(金城)에 퍼뜨렸다. 서동설화(薯童說話)의 여주인공. 생몰년 미상으로 일명 선화공주(善花公主).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로 절세의 미인이었다고 에 전한다. 그가 미모의 공주라는 소문을 들은 백제의 서동은 신라의 수도로 몰래 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어 환심을 사는 한편 선화공주가 자신과 더불어 은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의 모략적인 동요를 지어서.. 더보기
의자왕 , 義慈王. 의자왕 , 義慈王.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諱]은 의자(義慈)이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이다. 왕권을 튼튼히 하고 신라를 공격해 영토를 넓혔지만,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잃었다. 백제의 제30대 무왕(武王, 재위 600∼641)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생모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왕비에 관한 기록도 전해지지 않지만, 《삼국사기》에는 657년(의자왕 17)에 왕의 서자(庶子) 41명을 좌평(佐平)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식읍(食邑)을 지급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자녀가 무척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자왕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효심과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해동이란 바다 건너 동쪽에 있는 나라(백제)를 뜻하고, 증자는 남달리 효심이 뛰어났던 공자의 제자 이름이다. 의자왕은.. 더보기
아랑전설 , 阿娘傳說. 아랑전설 , 阿娘傳說. 경상남도 밀양(密陽) 영남루(嶺南樓)에 얽힌 전설. 아랑각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설화. 경남 밀양에 전승된다. 설화가 담긴 아랑각. 경남 밀양시 내일동. "아랑전설의 아랑 맞군요~ 예전에 드라마 방영도~ "밀양 영남루에 있는 아랑각​​​ "그림으로 보셔도 대략적인 내용이.. .. +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영정아랑의 본명은 윤동옥(尹東玉)으로서 경상도 밀양부사의 딸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란 미모의 처녀로, 음흉한 유모와 통인(通引:지방 관아의 심부름꾼) 주기(朱旗)가 흉계를 꾸며 어느 날 밤 달 구경 나온 아랑을 욕보이려 하였다. 아랑은 통인에게 결사코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숲에 버.. 더보기
우리나라 가 성장 의 계기 ... 우리나라 가 성장 의 계기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 께서 돌아 가신 뒤 일어난 일이다. 그는 수선한 바지를 입은 해진 혁대,(허리띠) 고물 세이코 시계,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있었다. 서민의 품속에서 서민의 모습으로 죽고싶다던 그의 소망은 성취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께서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 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 이 호화판 으로 살았으므로 북한동포 들은 굶주린 것이다. **참비교 안 되죠???현명 한 선택 을하셨던 것 같읍니다.... ^^ 성불하시길 ^^ 더보기
살수대첩 , 薩水大捷. 살수대첩 , 薩水大捷. 612년(영양왕 23) 중국 수나라의 군대를 고구려가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크게 격파한 싸움. 612년(영양왕 23) 중국 수(隋)나라의 군대를 고구려가 살수(薩水 : 지금의 청천강)에서 크게 격파한 싸움. 유형사건시대고대/삼국성격전투발생·시작 일시612년(영양왕 23)종결 일시612년(영양왕 23)관련장소살수(薩水: 지금의 청천강)관련인물·단체을지문덕, 우중문, 우문술, 신세웅, 별동대 살수대첩을 비롯한 고구려와 수나라의 일련의 충돌은 4세기 이래로 분열을 거듭하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함에 따른, 동아시아 세력권의 재편성과정에서 나타난 충돌의 하나였다.중국의 남북조와 북아시아 유목민세계의 돌궐,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 등을 축으로 편성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589년(평원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