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Food, 飮食]
음식 의 중요성".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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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동아시아 동부에 돌출한 반도로서 뚜렷한 사계절의 구분과 기후의 지역적 차이가 있어 각 지방마다 식품자원이 다양하게 생산된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 음식들이 고루 잘 발달되어 있다.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볼 때 궁중음식을 근간으로 하는 궁중 반가음식과 일반 백성들의 서민음식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따른 향토음식도 특색있게 발달하였다.
음식이 발달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는데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과학성과 필연성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5첩반상의 경우를 보더라도 밥·국·김치·장·조치와 함께 나물·구이·저냐·자반·장아찌 등 5가지 찬물로 되어 있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조리를 함에 있어서는 좋은 식품재료, 부엌세간, 화력, 양념의 네 요소가 잘 조화될 때에 비로소 좋은 음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음식에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정성과 사랑 그리고 봉사의 마음으로 즐겁게 만든 음식은 가족은 물론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정성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드는 우리 음식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조리과정을 통해 자기 수련도 되고 바른 태도와 바른 맛을 만들어내는 요령이 스스로 터득되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음식문화가 정립되고 존속되어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변천선사시대의 음식문화
선사시대라 하더라도 구석기시대에 대하여는 식생활사에서 다룰만한 자료가 거의 없다. 다만 고고학의 도움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타제석기로 자연물을 채취하여 음식을 만들었으리라는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이다.
구석기시대에 이어 석기를 곱게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흙을 빚어 구운 토기(土器)의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신석기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시대의 초기 식생활은 수렵과 어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특히 어업에 의존하였던 듯 우리나라의 남해안이나 서해안 중부, 함경도의 북부 해안지방들에서는 많은 조개무지가 발견되고 있다.
한편 신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면 우리 음식문화 형성의 발단기라고 할 수 있는 곡물생산이 시작되고 있다.
황해도 지탑리유적(智塔里遺蹟)에서 돌가래·돌낫 등과 함께 탄화된 기장(피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으로 보이는 곡립(穀粒)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라든지, 평안남도 궁산리유적(弓山里遺蹟)에서 원시적인 농경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순록(馴鹿)의 뿔로 된 괭이와 동물의 치아로 된 낫 등이 발견되고 있음은 그 증거이다.
선사인들의 유적지인 조개무지에서 총 31종의 조개류가 발견되고 있고, 도미·삼치·상어 등의 물고기뼈와 고래·바다표범·물개 등과 같은 바다짐승의 뼈가 발견되고 있어, 이들이 모두 식품으로 이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육지의 야생동물도 식품으로 이용되었으니, 부산 동삼동(東三洞)이나 함경북도 농포동(農圃洞) 조개무지에서는 사슴·멧돼지·노루·고라니·야생개·산토끼 등의 뼈가 발견되고 있다.
이밖에 도토리·밤·마[薯]·칡뿌리 등과 같은 야생식물의 열매와 뿌리도 발견되고 있어 이들도 식품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농경이라는 새로운 생산적 생활양식이 도입되면서는 곡물이 식품으로 쓰였다. 곡물의 종류로는 황해도 지탑리, 평양 남경리(南京里) 유적 등에서 탄화된 피·기장·조 등의 곡립이 발견되고 있어 대략 그 종류를 알려주고 있다.
조리
먼저 날 것을 먹는 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날 것을 먹는 방식은 그 유적의 도구들로 미루어 통채로 먹기보다는 썰거나 절단해서 또는 가루로 부수어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조리법은 불을 이용했으리라는 것이다.
구석시시대의 주거지(상원읍이나 포전리 점말동굴)에서 난방장치가 발견되고 있어 구석기시대에 이미 불을 식생활에 이용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나, 그 방식은 잘 알 수가 없다.
신석시시대의 집터에서 어김없이 화덕이 발견되고 있고, 화덕 주변에는 곡물과 함께 취사도구가 있어 굽거나 찌는 조리법을 가능케 하고 있다.
곡물을 가는 갈돌이 발견되고 있어 곡물을 갈아 불에 익히는 조리법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곡물을 갈아 약간의 수분을 첨가하여 불에 익혔다면 이는 죽요리를 의미한다. 결국 죽은 우리나라 곡물음식의 최초가 되는 셈이다.
저장
선사인의 식품저장은 계획적인 것은 못되었으나 그 나름대로 생활의 지혜를 발휘한 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었다고 보아진다. 먼저 띄워 저장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야생열매를 그릇에 오래 담아두면 자연히 발효가 되기 마련이므로 이는 인류가 배운 가장 최초의 저장법인 셈이다. 이것이 후에 술을 담가 마시는 양조의 방법으로 발전하였다.
저장법으로는 말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패류나 나무열매, 짐승의 고기를 말렸다가 추운 겨울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했을 것이다.
이밖에 신석시시대의 움집속에는 저장혈(貯藏穴)이 있어 나무열매나 곡물을 땅속에 묻어 저장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겨울철에는 어패류를 어름에 묻어 저장하는 냉동 저장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음식문화
선사시대를 거쳐 서기전 2,400년경에 고조선이라 총칭되는 국가단체가 이룩되었다. 이로부터 기자조선·위만조선을 거쳐 서기전 107년경에는 고구려·예맥·부여·옥저·낙랑 등을 국명으로 하는 독립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되었고, 한강 이남지역에서는 마한·진한·변한 등으로 불리우는 삼한(三韓)이 성립되어 꽤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식생활은 철제농구가 어느정도 보급된 상태여서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성했으므로 식생활의 다원화, 조리법의 발달, 국가간의 식품교류등 식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대에는 소형용기(小形容器)가 나타나고 있어 공동식기시대에서 개인식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다가, 각종 곡류가 주식의 자리에 대치될 수 있었으므로 주부식분리(主副食分離)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식재료
1. 곡류
이 시대의 각종 제천의식(祭天儀式)들이 말해주듯이 농경은 원삼국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당위였다. 이때 생산되었던 곡물의 종류는 이 시대의 유적지에서 나온 탄화미라든가 무문토기에 나타나 있는 곡물자국 등을 종합해 볼 때 대략 피·기장·수수·조·보리·벼·콩·팥 등으로 정리된다.
2. 과채류
농경이 어느정도 발달된 상태였고 또 일찍부터 야생식물을 식용해 왔던 만큼 과채류도 재배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채류는 쉽게 부패해 그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고 기록 또한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만 ≪삼국유사≫<고조선조>에 쑥과 마늘이 나오고 있고, 또 같은 책 <박혁거세조>에 박 정도가 나오고 있을 뿐이다.
3. 수산물류
내륙지방에서는 농경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던 시대였지만 해안지방에서는 여전히 어로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 종류를 보면 조개류로는 해진안댐조개·새꼬막·긴고둥·전복·홍합·국자가리비·피뿔고둥·두드럭고둥·살고둥·다슬기·우렁이 등이 있었고, 생선으로는 도미·삼치·상어·조기·모래무지·농어·복어·가자미 등이 있었다.
4. 육류
전적으로 사냥에 의해 얻어지던 육류가 원삼국시대에 이르러 사육에 의해 얻어졌다. 사육은 특히 북부지방에서 발달한듯 ≪삼국지≫<위지동이전 魏志東夷傳>에는 “부여인들이 짐승을 기르는데 능숙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육된 동물은 말·소·돼지·개·닭 등이었다.
조립법.
1.물의 조리
이 시대의 유물에서 시루가 발견되고 있고 시루의 밑바닥에는 검은 응집물이 있어 불을 때서 솥으로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따라서 이때의 곡물 조리법은 곡물을 가루내어 죽을 쑤는 외에 시루에 찌는 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곡물을 가루내어 시루에 쪘다면 그것은 떡을 의미한다. 만들어진 떡은 당시 국가들이 가졌던 각종 제천의식에 쓰였고, 이러한 전통이 훗날 떡이 제향음식의 주요 품목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육류의 조리
최남선(崔南善)의 ≪고사통 古事通≫에 따르면 이때에 한대(漢代)로부터 갱저(檟鵄)와 맥적(貊炙)이라는 숙육법(熟肉法)이 들어와 연향(宴饗)의 내용을 성대하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어 저(煮)란 고기찜, 적(炙)이란 고기구이를 말하는 것이며, 갱(檟)은 서북의 유목민족, 맥(貊)은 동북의 부여계 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맥적은 부여식 고기구이를 말하고 맥적을 중심으로 한 식탁을 맥반(貊盤)이라 칭한다 하였다.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 시대에 고기찜과 구이의 조리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장법
이때의 식품 저장은 조리의 방법인 띄우는 방식, 곧 발효법에 의해 이루어졌으니, 술과 장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 시대에 보이는 호형토기(壺型土器)는 술이나 장의 가공 저장용으로 쓰였던 그릇이다.
조리법에 의한 저방법으로는 또 굽는 방식이 있었다.
고분이나 유적에서 발견되는 탄화미(炭化米)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시대로 오면서 조리법과 저장법이 상보관계에 있게 되며 이러한 형태는 오랜 기간 지속되게 된다.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음식문화
왕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지 못했던 원삼국시대를 거쳐 4세기경에 이르러 고구려·백제·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는 삼국시대가 이어졌다.
7세기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 시대에는 벼농사의 정착이 어느 정도 음식문화에 안정을 가져다 주었고, 국가의 형성과 함께 계층화 된 신분제도가 식생활 자체를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분리시키는 계층화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농경 중심의 제천의식과 이에서 비롯한 명절 등의 행사가 식생활의 폭을 다양화 시켰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삼국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식생활의 계층적 형태를 완성해 갔다.
이때는 또 농경의 발달과 쌀의 생산 및 외국과의 교류가 성행됨에 따라 한국음식의 체제가 정착된 시대였다.
이렇게 정착된 음식문화는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식재료
1. 곡물
삼국 이전부터 있어왔던 쌀·피·기장·수수·조·보리·콩·팥 외에 부여의 백제 군창지에서 밀과 녹두가 출토되고 있어 이러한 곡물도 식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들 곡류에서 쌀은 주로 귀족들의 주식이었고, 서민들의 주식곡은 대개 보리와 콩이었다.
2. 과채류
앞시대에 있었던 도토리·밤·잣·마 외에 무·상추·복숭아·오얏(자두)·배·밀감 등이 기록에 전한다.
이중 상추는 수(隨)나라 사람들이 그 종자를 입수하기 위해 비싸게 사갔으므로 천금채(千金菜)라 불렸다.
잣 또한 그 질이 좋아 신라의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가지고 가서 비싼값에 팔았다고 한다.
밀감은 이때부터 이미 제주의 특산물이었으니, 일본에서는 이 밀감을 구하고자 사람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약용식품으로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삼이 식용된 것도 이때이다.
통일신라로 오면 미나리·오이·앵두·참외 등의 과채류도 등장하게 된다.
3. 수산물류
항해술의 발달, 지중양식(池中養殖) 등으로 비교적 풍부한 수산물이 식생활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이 시대의 구체적인 수산물의 종류는 ≪해동역사 海東繹史≫<물산지 物産志>에 웅어·새우·조기·상어·돌고래·가자미·숭어·문어·농어·낙어·반어·다시마 등이 보인다.
4. 육류
앞시대에 비해 목축이 한층 조직적으로 발달하였다. 신라에서는 목숙전(㉰典)이란 관아를 두어 목축에 쓰이는 사료를 담당하고 있었고, 양을 사육하는 양전(羊典), 고기를 다루는 육전(肉典)도 있었다.
도서지방에 방목장(放牧場)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어 신라의 목축이 매우 기업화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구려에서도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벽화에 외양간과 마구간이 그려져 있어 소·말 등의 가축이 사육되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백제에서도 소·돼지·닭 등이 사육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5. 조미료
암염(岩鹽)이나 해안의 암초·해초 등에서 소금기를 채취하던 단계를 거처 이 시대로 오면 차부(鹺府)라는 관청을 두어 소금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는 소금이 필수적인 조미료의 하나로 식생활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원삼국시대에 벌써 만들어졌던 장(醬)이 본격화되었고 꿀·기름·천초·생강 등도 사용되었다. 이밖에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와 일부 상류층에서 조미료로 쓰던 귤피(橘皮)도 있었다.
조리법
1. 떡의 발달
앞시대에 등장한 떡은 쌀을 중심으로 한 농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한층 발달하였다.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어김없이 발견되고 있는 시루를 비롯하여, 고구려 벽화의 시루모습,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서 산견되는 떡에 관한 기록 등은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이 시대의 떡은 제향음식으로 쓰이는 외에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 만들어졌다.
2. 김치의 활용
이 시대로 오면 김치가 중요한 부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고추가 쓰이기 이전이므로 장이나 젓갈에 저려 만든 짠지의 일종이었다,
삼국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의 ‘나라쯔께’라는 것도 이 때의 짠지가 전해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천초·생강·귤피 등 향신미(香辛味) 나는 조미료를 이용하여 국물김치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3. 포(脯)의 등장
≪삼국사기≫<신라본기 신문왕조>에 신문왕의 결혼예물로 포가 들어있다.
이는 육류를 얇게 저며서 말린 오늘날과 비슷한 육포가 이 시대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육류를 말려 저장하는 방식은 삼국 이전부터 있어 왔으나 이때는 대개 고기를 통채로 말려 저장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포는 한단계 발전한 육류가공법인 셈이다.
4. 기호식의 다양화
원삼국시대에 있어왔던 술 외에 차(茶)가 새로운 기호음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차가 전래된 것은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이다.
그러나 이때의 차는 당(唐)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차가 이땅에서 직접 재배된 것은 그후로도 2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이르러서였다.
통일신라시대로 오면 차에 곁들여 먹는 기호품으로 강정과 유밀과가 만들어졌다.
강정은 당의 면견(麵繭)이 전래된 것으로 이때에는 견병(繭餠)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유밀과는 그 본고장이 인도로 추정되는데, 불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5. 국의 등장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글에 "헛되게 밥만 먹으니 국에 맛을 조화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 문헌에서 국[羹]에 관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인듯 하다.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하여 그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우리 음식의 대표적인 부식으로 뿌리를 내린 국은 바로 이 시대에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장법
장류(醬類)가 한층 발달하여 이를 이용한 저장식품이 고안되었고, 젓갈을 이용하여 저장하는 방법도 고안되었다. 이때의 저장법에서 또하나 중요한 것은 장빙(藏氷)의 시작이다.
각종 기록과 유적으로 남아있는 석빙고 등을 볼 때 결빙기에 천연빙을 채취하여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식품을 저장하는데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음식문화
고려왕조는 관료제도의 발달과 불교적 분위기의 심화를 그 특징으로 했던 시대이다.
식생활도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주로 채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다가 몽고로부터 설렁탕이 들어오면서 차차 육식으로 변화되어 갔다.
원으로부터의 소주·상화(霜花)·포도주·후추·설탕 등의 도입이 식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반면에 고려의 음식이 원으로 전래되기도 하였으니, 고려병(高麗餠)이라 불리우던 유밀과를 비롯하여 고려하인(高麗蝦仁)·고려육(高麗肉)·고려유령(高麗乳領) 등과 같이 고기를 기름에 튀기거나 지지는 요리가 그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유밀과·떡·국수 등 곡물로 된 별식이 현대와 거의 다름없는 방법으로 조리되었고, 두부·콩나물과 같은 콩가공식품도 개발되었다. 또한 국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밥과 국이라는 기본적인 상차림의 구조가 정착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소금의 전매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고, 고려청자기의 놀라운 발달이 식생활을 문화적인 차원으로 높여 주었다.
식재료
1. 곡류
앞시대의 다양한 곡류가 고려 때에도 모두 생산되었다. ≪해동역사≫에 따르면 콩류로는 특히 검은콩과 완두콩이 생산되었고, 조는 가장 생산량이 많았다고 한다.
이 시대에는 전쟁으로 굶주린 자가 많아 역사상 최초로 원(元)으로부터 강남미를 수입하기도 하였다.
2. 육류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했던 만큼 초기에는 여러번의 도살금지령이 내려져 식탁에서 고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난 13세기 중엽에 이르러 몽고인들과 겨루게 되면서 때로는 몽고의 풍속대로 육류로 된 음식을 만들어주어야 했으니, 이로부터 다시 육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육류로 쓴 것은 소·말·돼지·닭·거위·오리였고, 서민들 사이에서는 개고기가 널리 식용되었다.
또한 토끼·사슴·멧돼지·노루·꿩 등 야생동물의 고기도 식용되었다.
이밖에 ≪고려사≫에는 신우(辛禑)왕이 여항(閭巷)에서 대나무장대로 참새를 나꾸어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3. 수산물류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인들이 즐겨 먹던 수산물은 미꾸라지·전복·게·새우·굴·조개·소라·해조·곤포(昆布) 등이 었다.
이 가운데 특히 새우잡이가 성하여 젓갈을 만들어 귀천이 모두 즐겨 먹었고, 게잡이도 성하였다.
4. 과채류
고려 때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는 <가포육영 家圃六詠>에서 오이·가지·무·파·아욱·박 등 6가지 채소에 대하여 읊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6가지 채소는 이규보 자신이 그의 채마밭에 심어 식용하던 채소이니, 이것이 이 시대의 주된 채소였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 더덕·고사리·송이버섯 등도 식용되고 있었음이 이때의 문헌에서 산견된다.
과일로는 모과·배·오얏·살구·감·대추·밤·복숭아·앵두·능금·잣·유자·귤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 말엽에는 홍다구(洪茶丘)에 의해 수박이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포도도 포도주를 담가 먹을 정도로 성하였다.
5. 조미료
초·참깨·참기름 등과 함께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후추가 들어와 조미료로 이용되었다.
단맛을 내는데는 꿀과 물엿이 쓰였고, 송(宋)나라나 남해상인으로부터 사들인 설탕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4.1.6. 가공식품
콩을 가공한 콩나물과 두부가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
콩나물은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 대두황(大豆黃)이란 이름으로 나오는데, 콩를 싹트게 하여 햇볕에 말려 약에 쓴다는 내용이 부연되어 있다.
두부는 고려 말의 학자인 이색(李穡)의 시에 등장하고 있는데, 연하고 물렁물렁한 두부의 특징은 물론 영양가가 많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조리법
1. 다양화된 곡물음식
주식으로 쌀밥, 보리에다 피를 섞어 지은 잡곡밥, 팥죽·칼국수·메밀국수 등을 만들었다.
별식으로 백설기떡·감설기떡·쑥떡·흰떡·꿀떡·수단(水團) 등의 떡류를 비롯하여 유밀과·다식(茶食)·상화·만두 등도 만들었다.
2. 국의 발달
이 시대로 오면 국이 크게 발달하였다. 된장국을 예로 들더라도 곤포로 다시를 낸 다음 된장을 넣어 끓이다가 파·마늘로 양념함으로써 지금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조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의 종류도 다양하여 몽고의 영향으로 만들게 된 설렁탕을 비롯하여 토란국·조갯국·아욱국·순채냉국·다시맛국·미역국 등이 있었다.
3. 기호식품의 발달
가장 보편적인 기호품으로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술이 이 시대로 오면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한림학사들의 공동작품인 <한림별곡 翰林別曲>에 등장하는 술만 예로 들더라도 잣술·솔술·예주·댓잎술·배술·오가피술 등의 이름이 보인다.
다른 기호품으로는 우유가 있었다.
원나라와의 교류 이후 국가의 상설기관으로 우유소(牛乳所)가 생겨 이곳에서 우유를 공급했는데, 이때의 우유는 주로 낙죽(酪粥)의 원료로 쓰였다.
4. 육류 요리
설리자[雪裏炙]라 하여 소의 갈비나 염통을 기름에 양념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담갔다가 다시 센불에 굽는 요리가 있었는데, 주로 술안주로 쓰였다.
저장법
1. 쌀
흙으로 높게 바닥을 만든 다음, 쌀가마를 쌓아 올려 그 위를 풀로 덮어 비바람을 막았다.
이러한 쌀 저장법은 가마니를 쌓아 올리는 방벙이 좋아서 공기가 잘 통하고 몇 해를 지나도 햅쌀과 같았다고 하니, 그 저장법이 매우 발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밤
도기(陶器)에 넣어 흙속에 묻었다.
이렇게 저장한 밤은 해를 넘겨도 손상이 없었고 여름철에도 그 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어육류
생선은 소금에, 육류는 계피같은 향신료에 각각 절여서 말려 저장했다.
4. 채소
무는 소금에 절였다가 채소가 없는 겨울에 먹었고, 무청은 장속에 넣었다가 여름철에 먹었다.
채소를 소금에 절였다가 마늘·생강 등의 향신료를 넣어 버무려 두었다가 먹는 김치의 방법이 널리 쓰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교로 했던 만큼 유교적 정치윤리가 강조하는 사례(四禮), 그 중에서도 조상에 대한 봉제사(奉祭祀)와 가족제도에 따른 식생활이 크게 중요시 된 시대였다.
중인(中人)계급의 대두로 인한 상하층의 식생활 교류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외래식품이 널리 전래 보급되어 식생활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전래된 고추는 고춧가루로 가공되어 그 이전까지 담백미(淡白味)였던 우리 음식을 조화미(調和味)로 바꿈에 따라 한식(韓食)의 특성을 배가시켰고, 대표적인 부식인 김치를 완성시켜주었다.
3첩·5첩·7첩·9첩·12첩 등으로 구분된 첩수별 반상차림이 정착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한식 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식재료
1. 곡류
종류는 고려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 적전(籍田 : 임금이 친히 경작하던 토지)에서는 벼·기장·피·당서·팥·콩·보리·수수·밀 등 9가지 품목의 곡식을 심었다.
이밖에 이 시대 중엽에 처음으로 옥수수가 옥촉(玉凊이란 이름으로 전래되었다.
2. 육류
일상적인 부식으로는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 등이 주로 쓰였고, 개고기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이밖에 말고기를 포로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후기로 오면 쇠고기 소비의 수요격증과 쇠고기 편식(偏食)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3. 수산물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조선시대의 어류는 근 50여 종으로 현재 어획되고 있는 어류가 거의 망라되고 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오늘날 즐겨 먹는 명태가 조선조 중엽에 명천에서 태모(太某)라는 사람이 처음 잡아 그 이름을 명태라 했다는 것이다.
멸치어업이 크게 성행하여 젓갈로 만들어져 새우젓과 함께 김치류에 들어간 것도 이때이다.
4. 과채류
19세기 초의 문헌인 ≪임원경제 林園經濟≫에 따르면 아욱·부추·갓·쑥갓·평지·시금치·상추·미나리·순채·여뀌·생강·두릅·고수풀 등 다채로운 채소류가 식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버섯류도 고려 때의 송이버섯 외에 표고버섯·석이버섯 등이 식용되었다.
이 시대 중엽에는 우리 음식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준 고추가 전래되었고, 토마토가 남만시(南蠻枾)라는 이름으로, 호박이 호과(胡瓜)란 이름으로 각각 전래되었다.
또한 조엄(趙曮)에 의해 고구마가 감저(甘藷)란 이름으로 처음 이 땅에 들어왔고, 순조 때에는 감자가 북저(北藷)란 이름으로 전래되었다.
과일류는 고려시대부터 먹어오던 종류 외에 효종대에 중국의 빈과(ね0xFD29가 사과란 이름으로 전래되었고, 견과류인 땅콩이 낙화생이란 이름으로 이우촌(李雨村)에 의해 이 땅에 들어왔다.
조리법
조선조 후기로 오면 현재와 다름없는 여러가지 조리법을 볼 수 있다. 곧 발효법(醱酵法 : 술·장·초·김치), 굽는법(생선구이·고기구이), 말리는법(어포·육포·곶감·건율), 찌는법(고기찜·생선찜·떡류), 조리는법(생선조림, 연근·우엉 등과 같은 근채류 조림), 볶는법(고기볶음·나물볶음), 지지는법(생선지짐·나물지짐, 화전·부꾸미 등과 같은 떡류), 무치는법(나물), 끓이는법(죽·밥·탕류), 삶는법(수육·나물, 경단·단자 등과 같은 떡류), 짜는법(기름류), 가루를 내는법(깨소금·고춧가루·밀가루) 등이 모두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저장법
1. 어육류
생선류는 말리는 방법 외에 생선을 독에 넣고 소금을 뿌린 다음 땅에 묻는 염해법(鹽醢法)이 있었다.
육류도 말리는 법과 함께 연기에 쏘이거나, 고기에 술을 뿌려 삶아서 묻는 법, 장에 묻어두는 법 등 다양한 저장법이 개발되었다.
2. 과일
감·밤·대추 등은 햇볕에 말려서 저장하였다.
말린 과일은 형태와 맛이 본래의 과일과 크게 달라 그 이름도 곶감[枾諸]·율저(栗諸)·조저(棗諸)라고 달리 불렀다.
3. 채소
고춧가루의 보급으로 채소를 가공 저장하는 김장법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김장은 1년의 식생활 중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였는데, 그 시기는 <농가월령가> 10월조에 “무·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라고 했듯이 대개 음력 10월이었다.
김장독은 추위에 얼어터지지 않도록 짚으로 싸서 땅에 묻거나, 짚으로 삼각형의 가가(假家)를 지어 그 속에 보관하였다.
근대 이후의 음식문화
개화기로 오면 서양화의 물결이 거세어지면서 우리 음식은 서양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즈음 확대된 일본의 세력 아래서 생활의 핍박이 서민의 식생활을 곤궁으로 몰아갔다.
식생활의 궁핍화는 그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층 가중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식생활 속에서도 19세기 말기에 태동하기 시작한 서양음식과 서구식 영양이론이 점점 한국내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인에 의해 가공식품이 제조되어 식생활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었다.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광복 직후의 식생활은 최악의 극빈상태에서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굶주림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서구로부터의 원조물자, 보리혼식, 분식장려 등으로 식량난 해결에 박차를 가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식량난 해결에 주안점을 두는 한편 국민영양에도 관심을 두어 식생활 개선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식생활 개선은 서구식 식습관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1970년대로 오면 공업화의 양상으로 식생활도 공업화 내지 산업화 되었다. 이에 따라 즉석식품이 식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로 오면 동물성식품의 소비과다, 지방질의 과잉섭취 경향으로 성인병의 발병률이 증가되면서 서구식 식습관에 대한 반성이 촉구되었다.
또한 가공식품의 해독에 대한 논란도 일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식품에 대한 역반응으로 건강식품, 무공해식품, 자연식품 등에 관한 관심과 함께 보다 합리적인 식생활이 모색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식재료
1. 육류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오리고기·양고기 등이 선호되고 있다. 이중 쇠고기를 찾는 경향은 절대적이어서 수입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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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채류
재래의 과채류 외에 서양과채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 종류를 보면 케일·캐비지·셀러리·파슬리·아스파라가스·레터스·치커리·래디시·비트·피망·콜리플라워·브로콜리·바나나·파인애플·파파야·멜론·키위·레몬·오렌지·자몽·바바코 등이다.
3. 가공식품
식품산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가공식품이 생산 공급되고 있다.
그 종류는 밀가루·식빵·과자·라면·인스턴트면류·전분·물엿 등의 탄수화물 가공품을 비롯하여 햄·소시지·베이컨·수산물통조림 등의 동물성 가공품, 분유·처리우유·유산균발효유·아이스크림 등의 유가공품, 콩기름·쇼트닝 등의 유지류 가공품, 사이다·콜라·쥬스 등의 청량음료, 탁주·청주·소주·맥주·위스키 등의 알콜음료, 커피·홍차·녹차 등의 차류, 글루타민산소오다·간장·토마토케첩·마요네즈 등의 조미료 식품이 있다.
조리법
1. 주식류
밥(흰밥·팥밥·콩밥·오곡밥), 죽(흰죽·두태죽·장국죽·어패류죽·비단죽), 국수(온면·냉면), 만두(어만두·준치만두·규아상·편수)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2. 부식류
국(맑은장국·토장국·곰국·냉국), 찌개(된장찌개·고추장찌개·젓국찌개), 전골(낙지전골·버섯전골·신선로), 찜(육류찜·어패류찜·채소류찜), 선(가지선·오이선·애호박선·어선), 조림(생선조림·육류조림), 초(전복초·홍합초·삼합초), 저냐(육류저냐·채소류저냐·어패류저냐), 구이(육류구이·생선구이·더덕구이·김구이), 적(산적·누르미), 편육, 족편, 나물(숙채·생채·잡채), 회(생회·숙회), 포(육포·어포), 젓갈(어패류젓·알젓), 김치(배추김치·보쌈김치·깍두기·동치미·갓김치·두릅김치)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3. 별식
떡(시루떡·단자·도병·전병)과 과줄(유밀과·다식·강정·정과·과편·숙실과)이 만들어지고 있다.
4. 후식
수정과, 화채(오미자화채·과즙화채·꿀물화채), 차(율무차·모과차·유자차·솔잎차)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음식문화 의 특성
절식은 우리의 책력인 태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절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산되는 식품으로 음식을 만들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먹는 것이다.
각 절기별 음식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절기별 음식입춘일
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 속에서 자라는 산개(山芥)를 비롯하여 승검초·파싹 등을 살짝 데쳐 초장에 곁들여 절식으로 삼는다.
설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이날은 흰떡국을 끓여 먹고, 약식·인절미·단자류·저냐·편육·강정·식혜·수정과 등 여러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세찬상에 올린다.
상원(정월 대보름)
오곡밥·약식·부럼·귀밝이술·묵나물·복쌈 등이 절식으로 마련된다.
이 가운데 부럼은 1년 동안의 태평을 기원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사 하고 축수하는 의미에서 견과류를 깨 먹는 것이다.
묵나물은 여름에 나오는 채소를 말려 묵혔다가 이날 삶아서 볶은 것이다.
이밖에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데우지 않은 술을 대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것이며, 복쌈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취나물·배춧잎·김 등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이다.
중삼절(삼짇날)
진달래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쳐 먹거나,두견주를 담가 마신다.
오미자 국물에 녹두국수와 잣을 띄운 화면(花麵)을 먹기도 하고, 녹두국수에 붉은 물을 들여 꿀물에 띄운 수면(水麵)을 먹기도 한다.
등석일(초파일)
이때쯤 돋어나는 느티나무싹을 따다가 멥쌀가루에 섞어 느티떡을 만들어 먹거나,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절식으로 삼는다.
단오
수리취절편·각서(角黍)·제호탕 등이 절식으로 꼽힌다.
이 중 수리취절편은 쑥을 넣어 만든 떡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 낸 절편이고, 각서는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어 소를 넣은 다음 양쪽에 뿔이 나게끔 오무려 싼 만두의 일종이다.
이밖에 제호탕은 오매육·초과·백단향·축사 등을 곱게 빻아 꿀과 함께 고아서 물에 타 마시는 청량음료이다.
유두일
수단(水團), 건단(乾團), 상화병(霜花餠), 연병(連餠)등을 만들어 절식으로 삼는다.
수단은 멥쌀가루나 찹쌀가루를 쪄 구슬 처럼 둥글게 빚은 다음 이것을 다시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운 것인데, 계절적으로 유두일(음력 6월 15일)이 햇보리의 수확 시기이므로 보리로 만들기도 한다.
건단은 수단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떡을 물에 띄우지 않은 것이다.
상화병은 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부풀린 다음 소를 싸서 찐 음식이고, 연병은 밀전병을 부쳐 소를 넣고 싸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오무려 싼 음식이다.
삼복
하지(夏至)로부터 세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네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로부터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하는데, 이 초복·중복·말복을 가리켜 삼복(三伏)이라고 한다.
삼복 기간은 여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때이므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절식으로 개장국·장어국·육개장국·삼계탕· 임자수탕 등을 만든다.
칠석
절식으로 밀전병과 밀국수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날 이후가 되면 밀가루에서 밀냄새가 나기 때문에 마지막 밀음식 향연이 되는 셈이다.
백중
일명 백중(百衆)·백종(百種)·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고래로부터 남녀가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와 춤을 즐기던 날이나, 신라에서 고려로 오면서 불교가 성해짐에 따라 우란분재(盂蘭盆齋 : 조상의 초혼을 공양하는 것)와 같은 불교의 유풍이 뒤섞이게 되었다.
절식으로는 각종 과일과 튀각·부각 등과 같은 사찰 음식이 전해진다.
추석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2대 명절로, 이 때(음력 8월 15일)쯤에는 햇곡식이 익을 때이므로, 이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먹는다.
토란이 많이 나는 철이므로 토란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이 밖에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 등을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꿴 화양누르미, 살이 오른 닭으로 만든 닭찜 등도 만들어 절식으로 삼는다.
중구(중양절)
황국이 은은한 향기를 내 뿜으며 필 때이므로 이것을 따서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주를 담근다. 또한 이 때쯤 무르익는 배와 유자로 화채를 만들기도 한다.
상달
음력 10월을 일 년 12달 중 첫째가는 달이라고 하여 상달이라 한다.
이때에는 고사를 지내기 위하여 백설기나 팥시루떡을 찐다.
또 신선로가 절식으로 전해오고 있다.
동지
찹쌀가루로 새알심을 빚어 넣어 끓인 팥죽을 절식으로 삼는다.
팥의 붉은 빛이 액을 막아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절식 풍속이다.
납일
동지가 지난 뒤 셋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 한다.
이날이 되면 궁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사냥한 산돼지와 산토끼를 제물로 사용하였다.
이날은 또 참새를 잡아 어린이들이 먹으면 마마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기도 하였다.
절식으로는 골동반과 골무떡이 있다.
지역별 향토음식
우리나라는 아시아 동부에 위치한 반도로 삼면이 바다이다.
또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서 사계절의 구분이 확연하고 지역적인 기후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각 지방마다 특성있는 식품 재료가 생산된다.
이러한 각 지역의 식품 재료는 자연과 생활의 조화를 꾀해 왔던 우리 선조들에 의해 그 지방의 풍미를 대표하는 독특한 음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향토 음식이다. 각 도별 향토음식의 특성과 종류는 다음과 같다.
경기도
서울과 개성의 음식은 사치스럽고 복잡한 편이다. 그러나 그 외의 지방은 전체적으로 음식의 풍이 소박하고, 간은 중간 정도이며, 맛은 구수하고 양은 많은 편이다강원도
영서지방은 감자·옥수수·메밀·도토리·버섯 등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많고, 영동지방은 해산물로 된 음식이 많다.
그 특성은 소박하고 구수하다. 감자부침·쇠미역쌈·능이버섯회·도토리묵·지누아리장아찌·서거리김치·명태식해·찰옥수수시루떡·메밀총떡 등이 대표적인 향토식이다.
충청도
주부식은 물론 별식에 이르기까지 늙은 호박을 많이 쓰는 것이 이곳 음식의 특성이다.
국이나 찌개의 맛을 내는데는 쇠고기보다 닭·소합·굴 등을 쓰고 또 된장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렇게 끓인 국물은 그 맛이 매우 구수하다.
음식의 양은 충청도의 인심을 반영하듯 많은 편이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은 새뱅이(새우)지짐이·호두장아찌·늙은호박찌개·굴냉국·홍어어시욱·쇠머리떡·호박떡 등이다.
경상도
음식의 특성은 대체로 짜고 맵다.
곡물 음식 중에는 국수를 즐기는데, 날콩가루를 넣은 칼국수를 특히 좋아한다.
생선국에 소금간을 하는 특이한 조리법도 있다.
대구육개장·안동식혜·곰치장아찌·당귀장아찌·토란줄기찜·갖은정과·모듬백이·부편 등이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전라도
자연적 특성에 의해 먹을 거리가 풍부한데다,
예부터 부유한 토반들이 대를 이어 살면서 좋은 음식을 전하고 있어 어느 지방보다도 음식이 사치하고 가짓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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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은 간이 세고 매운편이며 김치는 국물이 없는 것이 특성이다.
대표적인 향토 음식은 전주비빔밥·순창고추장·매생이 국·꽃게미역국·생이젓(토하젓)·죽순탕·만나지·파만두·대합조개만두·풋마늘갑오징어산적·감단자·감고지떡·익산섭전 등이다.
제주도
음식의 특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편이다. 주식으로는 해물을 넣어 쑨 죽이 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부식도 해산물을 이용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전복죽·전복소라회·자리회·옥돔미역국·오분자기찌개·자리젓·돼지족탕 등과 얍개·중개·솔편 등의 향토떡이 있다.
황해도
음식의 특성은 구수하고 소박하며, 떡이나 만두 등의 음식은 그 크기가 매우 큼직하다.
칼국수나 만두에는 닭고기를 많이 쓰며,김치가 맑고 시원하여 국수를 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마는 경우가 많다.
음식의 간은 별로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것이 충청도 음식과 비슷하다.
연안식해·강엿돼지족·호박짠지된장국·황해도고기전·김치순두부·오쟁이떡·연안인절미· 혼인절편·수수무살이 등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평안도
이 지방의 산세를 반영하듯 풍성하고 대륙적이며 겨울에 먹는 음식이 다른 지방보다 발달되어 있다.
음식 중에는 국수를 가장 즐겨 먹는데, 겨울에는 동치미 국물이나 꿩탕에 만 냉면, 여름에는 어복쟁반이라는 뜨거운 국수를 먹는다.
음식의 간은 슴슴하여 맵고 짜게 먹는 일이 드물며, 양은 푸짐한 편이다.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는 내포중탕·무곰·어복쟁반· 동치미냉면·굴린만두·녹두지짐·노티 등이 있다.
함경도
음식의 특성은 장식이나 기교가 없이 소박하며, 크기는 큰 편이다.
간은 세지 않고 맵지도 않으며, 북으로 갈 수록 담백한 맛을 즐긴다.
그러나 이 지방을 대표하는 함흥냉면에는 고춧가루양념이 애용되어 ‘다대기’라는 말이 이곳에서 나왔을 정도이다.
함흥냉면·가자미식해·강냉이밥·북어찜·섭죽·되비지찌개·순대·가랍떡 등이 대표적인 향토식이다.
현황과 전망
오늘날 우리 음식은 거주지의 변화, 세대가족의 변화, 생활의 레저화, 여성의 사회진출 이라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먹기도 번거럽다는 이유에서 이다.
대신 조리시간과 먹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외식산업의 한 업태인 패스트푸드가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패스트푸드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80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패스트푸드 업자들이 외국의 유명 메이커와 상표 및 기술제휴를 맺고 우리 국민 속으로 파고들면서부터이다.
게다가 불어닥친 수입개방은 외래 음식문화의 범위를 한층 확대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몇 년전에 신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선호도 조사결과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김치이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햄버거와 피자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들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원인이 되고 각종 성인병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우리 고유의 음식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외국인들도 우리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어 전통 비빔밥이 기내식(機內食)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우리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세계적인 음식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좀더 우리 고유의 음식을 세계인에게 알리고 또 그들의 식성에 맞게끔 문제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음식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몸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분을 제공해 주고, 보너스로 다양한 맛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들.
이번 에는 고기, 생선, 채소,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단백질의 주공급원 고기 들.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영어 어휘들 중 먼저 고기(meat)와 생선(fish)에 대해 살펴보자. 이 두 종류의 음식은 인간이 꼭 필요로 하는 영양소(nutrient)들 중 하나인 단백질(protein)을 공급하기 때문에 몸짱이 되려면 이런 음식들을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지?
① beef : 소고기 ② pork : 돼지고기 ③ chicken : 닭고기 ④ duck : 오리고기 ⑤ turkey : 칠면조고기 ⑥ lamb : 양고기 ⑦ trout : 송어 ⑧ salmon : 연어 ⑨ catfish : 메기 ⑩ codfish : 대구 ⑪ mackerel : 고등어 ⑫ tuna : 참치
읽을 거리 시리얼의 어원
미국에서 주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으며,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침 식사용으로 많이 이용되는 우유를 넣어 먹는 곡물식을 '시리얼(cereal)'이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이 말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농사와 곡물의 여신인 세레스(Ceres)에서 온 말이다.
▷ 참고 표제어 : [한 눈에 들여다 보기] 그리스 로마 신화
더 알아보기 스테이크의 종류
패밀리 레스토랑(family restaurant) 같은 음식점에 가면 스테이크(steak)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름들이 낯설어서 뭐가 뭔지 어리둥절할 경우가 많고, 그 이름들을 한번 알아보자
• fillet(필레) : 허리 부분의 연한 살로 만든 스테이크
• rump(럼프) : 소 엉덩이 살로 만든 스테이크
• sirloin(서로인) : 허리 끝 부분 살로 만든 스테이크
• T-bone(티본) : 안심이나 등심 중 T자형 뼈가 붙은 부분의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섬유질 의 공급원 인 채소.
앞서 살펴본 고기와 생선도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균형 있는 식사란 항상 필요한 법.
여기서 살펴볼 채소(vegetable)들은 우리 몸에 섬유질(fiber)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① carrot : 당근 ② lettuce : 상추 ③ radish : 무 ④ cabbage : 양배추 ⑤ cucumber : 오이 ⑥ red pepper : 고추 ⑦ celery : 샐러리 ⑧ parsley : 파슬리
과일 - 새콤달콤
마지막 순서는 과일(fruit)이야. 과일은 섬유질은 물론 비타민(vitamin)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① peach : 복숭아 ② apricot : 살구 ③ plum : 자두 ④ tangerine : 귤 ⑤ avocado : 아보카도 ⑥ melon : 멜론 ⑦ papaya : 파파야 ⑧ mango : 망고
더 알아보기 맛을 나타낼 때는 이렇게!
음식의 서로 다른 맛을 나타낼 때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보자!
• salty : 짠
• sweet : 달콤한
• sour : 신, 시큼한
• bitter : 쓴, 씁쓸한
• spicy/hot : 매운
읽을 거리 달걀은 네 가지 모습
여러 가지 음식들 중 가장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달걀이야. 달걀은 네 가지 로 요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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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g (달걀) |
boiled egg (삶은 달걀) |
scrambled egg (스크램블드 에그) |
fried egg (달걀 프라이) |
찬물 대신 따뜻한 물살이 쪘다고 느껴지면 따뜻한 물을 마신다.
식사 전 상온(약 20℃)의 물 한 잔을 마시는 게 좋다.
얼음을 띄운 차가운 물은 가스를 차게 하므로 피한다.
생강차
생강을 먹거나 생강차를
마시면 소화가 잘 돼 살찌는 걸 막을 수 있다.
또 생강에는 복부 팽만감을 가라앉히는 성분이 있다.
바나나
큼지막한 바나나 하나에는 칼륨이 약 602mg 들어 있다.
칼륨은 체내 나트륨 수치를 조절해 가스가 차
배가 빵빵해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파인애플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한 파인애플은 소화를 촉진하고
복부팽만을 줄여주는 효소인 브로멜라인을 갖고 있다.
파슬리
샐러드나 스파게티 같은 음식에
뿌려먹을 수 있는 파슬리는 소변이 잘 나오도록 돕는 천연 이뇨제다.
샐러리
샐러리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샐러리에는 수분 밸런스를 지켜 주는 나트륨과 칼륨이 함유돼 있다.
치커리
치커리는 복부 팽만감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고 장 속의 좋은 박테리아를 돕는다.
양배추 김치
사워크라우트(sauerkraut)는 양배추를 싱겁게 절여 발효시킨 독일 전통 김치.
소화를 돕는 효소와 몸에 좋은 박테리아가 들어 있다.
현미와 잡곡
현미와 수수, 조 등 잡곡에는 식이섬유가 많아 장 기능을 촉진하고, 소화를 돕는
박테리아 활동을 촉진한다.
미소국
일본식 된장으로 만든 미소 국은 쌀쌀한 기운을 느낄때
따뜻한 온기를 줄뿐 아니라, 소화 기능을 돕는 효소가 들어 있다.
한식 > 한국음식의 종류와 용어 |
한국 고유의 전통적 요리로 한식(韓食)이라고도 한다.
한자어 ‘요리’는 ‘저울로 달다’ ‘가사(家事)를 정리하다’
‘일을 알맞게 처리하다’라는 뜻이며, 한국에서 음식 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1870년 무렵부터이다.
한국어에서는 예전부터 ‘음식’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여 왔다.
고조선 이후 대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농작물 개발로 식품 종류가 많아지자 조리법이 다양해졌다.
조선시대 중기에 이르러서는 일상 식생활에서 주식과 부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한식,[ 寒食 ]
분야계절날짜다른이름관련속담관련풍속
정일 |
봄(음력 3월) |
양력 4월 5일경 |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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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
한식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이 아니다.
한식은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2월 한식과 3월 한식을 구분하는 관념이 있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3월에 한식이 있으면 지역에 따라서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介之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고, 중이는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 재위 .C. 636~628)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한국에서 한식을 언제부터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문종 24년(1070)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에는 금화(禁火)와 성묘의 풍습, 투란(鬪卵: 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 놀이가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한식의 시기가 변하였는데, 고려 후기에는 동지 후 105일이었지만, 전기에는 그보다 7일 정도 빠른 양력 3월 30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도 한식은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한식을 주제로 한 많은 시가 전해지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한식에는 금화와 개화가 행해졌다.
세종 13년(1431)에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으며, 매년 임금은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에 있는 관청과 대신 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 숭배였다.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냈고, 종묘에서 제외되었거나 후손이 없는 왕과 비빈 등에 대해서는 성묘를 했다.
허물어진 능묘를 보수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여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이렇듯 한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조상 숭배와 관련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집안에 따라서는 사당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서울 지역에서는 제사에 앞서 먼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성묘의 대상은 기제사를 받는 조상도 있지만,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먼 조상이나 후손이 없는 사람인 경우도 많다.
또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산소에 개사초(改莎草: 잔디를 새로 입힘)를 하거나 비석 또는 상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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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소를 부려보기도 한다.
한식 무렵이면 볍씨를 담근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먹는 고초일(苦草日)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넣는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데,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든다고 하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리면 그 반대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치면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인접 국가의사례
중국에서 한식은 산서(山西)지방에서 시작되어 남북조시대 말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날짜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후한(後漢)시대부터 동지 후 105일 전후 3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24절기의 하나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는 청명(淸明)은 동지 후 107일로 밀려났으며 한식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한식은 농사의 시작과 겹치므로 풍년을 기원하여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 던지기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당나라 무렵부터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묘(上墓)가 중요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송 때부터 한식의 금화(禁火) 풍속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는 한식 자체가 폐지되었다.
대신 청명이 다시 부각되었으며, 청명의 날짜도 다시 동지 후 105일로 환원되었다.
명절의 하나.
내용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든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아 3월 한식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한다.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淸明節)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4절후 속에 들어 있지는 않으나 습속으로 전해 내려오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벼슬을 마다하고 면산(緜山)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제사)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제사)를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한식 / 성묘명절의 하나.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며, 한식에는 성묘를 한다.
청명[ 淸明 ]
분야계절날짜관련속담관련풍속
절기 |
봄(음력 3월) |
양력 4월 5일경 |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
음력 3월에 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청명은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다.
중국에서는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寒食條)에 기록하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 민간에서도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로 날씨와 관련된 속신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점친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서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파도가 세게 치면 물고기가 흔하고, 날씨가 맑아도 물밑에서 파도가 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경남 사천에서는 청명날의 날씨가 좀 어두워야 그 해 농작물(農作物)에 풍년(豊年)이 들고, 너무 맑으면 농사(農事)에 시원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해도 좋다고 믿는다.
이날은 손이 없기 때문에 묘자리 고치기, 비석 세우기,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 일이나 해도 좋다고 한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들이다.
향토음식, [ 鄕土飮食 ]
지방 특유의 전통 음식.
우리나라는 삼천리 강산이라 불릴 정도로 산수가 수려하여 우수한 식품이 많이 생산된다.
동·서·남은 바다에 접해 있고 북은 큰 강으로 경계를 짓고 있다.
그 지세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과 북의 기후차가 현저하므로 곳곳의 산물이 달라지고 따라서 산업형태도 달라진다.
각 지방의 향토음식은 1900년 중반까지는 고유한 특색이 있었으나 점차 산업과 교통이 발달하여 다른 지방과의 왕래와 교역이 많아지고, 물적 교류와 인적 교류가 늘어나서 한 지방의 산물이나 식품이 전국 곳곳으로 퍼지게 되고, 음식 만드는 솜씨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방마다 음식의 맛이 다른 것은 그 지방의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부 지방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서 음식의 간이 남쪽에 비하여 싱거운 편이고 매운 맛은 덜하다.
음식의 크기도 큼직하고 양도 푸짐하게 마련하여 그 지방 사람들의 품성을 나타내 준다.
반면에 남부 지방으로 갈수록 음식의 간이 세어서 매운맛도 강하고 양념과 젓갈을 많이 쓰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형적으로는 북부 지방은 산이 많아 밭농사를 주로 하여 잡곡의 생산이 많고, 서해안에 면해 있는 중부와 남부 지방은 쌀 농사를 주로 하므로 북쪽 지방을 주식으로 잡곡밥을, 남쪽 지방은 쌀밥과 보리밥을 먹게 되었다.
찬품으로는 전국 어디에서나 좋은 반찬이라 하면 고기 반찬을 꼽으나 평상시의 찬은 대부분 채소류가 중심이고, 저장하여 두고 먹을 수 있는 김치류, 장아찌류, 장류가 있다.
산간 지방에서는 육류와 신선한 생선류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말린 생선, 해초 그리고 산채로 만든 음식이 많고, 해안이나 도서 지방은 바다에서 얻는 생선이나 조개류, 해초류가 찬물의 주된 재료가 된다.
전국적으로 일상적인 식생활에서의 음식법은 공통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그 지방에서 나는 토산 식품과 특별한 양념이 보태어져 지방마다의 고유한 향토음식이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1900년 후반부터 새로운 외래 식품의 유입과 외국의 음식문화도입, 외식 산업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서 고유한 향토음식은 변형되고 새로운 향토요리가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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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
서울은 양반음식이라고 하나 기실 생산하는 식료품은 별로 없다.
그러면서 음식이 사치스럽기는 개성·전주와 쌍벽을 이룬다.
특히 조선시대에서부터 계속 우리 나라의 수도였기에, 음식은 궁중의 풍속을 따라 격식이 복잡하고 맵시를 보는 전통이 전해졌다. 따라서 관북·관서 지방의 풍속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외국의 사신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음식에 화려한 멋을 내는 풍이 나타나고, 극히 의례를 존중하는 풍이 복잡한 음식의 차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짓수가 많고 한 가지의 양을 조금씩 차리는 풍이 보인다.
음식은 식품을 복합적으로 쓰고 양념도 많이 써서 복잡한 맛이 난다.
떡의 모양에서도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있고. 그 고장 사람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송편의 예를 들면 서울의 송편은 큰 밤톨만 하고 통통하다.
이에 비하여, 황해도의 송편은 손바닥만하고, 강원도의 감자송편은 손으로 꽉 쥐었다 놓은 문양을 그대로 둔다.
주식류
장국밥·설렁탕·흑임자죽·잣죽·떡국·비빔국수·국수장국·메밀만두·생치만두·편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설렁탕은 구전에 의하면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음식이다.
이 음식은 음력 정월 하순경 왕이 선농단에서 친경을 한 뒤에 이날 나온 노농(老農)들과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하여 소를 잡아 큰 가마솥을 수십 개를 걸어놓고 국을 끓여서 뚝배기에 국밥을 말아먹은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선농단에서 끓인 탕이라 해서 ‘선농단탕’이라 하였는데 점차 ‘선농탕’·‘설렁탕’으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찬류
열구자탕(신선로)·떡찜·떡볶이·갈비찜·호박선·각색전골·홍합초·전복초·간납·우설편육·양지머리편육·갑회·굴회·어채·육포·구절판·숙주나물·묵은나물볶음·김쌈·장김치·숙깍두기·매듭자반·수란·족편 등이 있다.
굴비나 관메기, 암치 등 말린 생선을 굽거나 지짐이를 하고, 육포, 젓갈류와 장아찌 등의 밑반찬의 종류가 특히 많다.
떡류
두텁떡(봉우리떡)·상추떡·물호박떡·각색편·느티떡·약식·화전·주악·석이단자·대추단자·쑥구리단자·밤단자·유자단자·은행단자·건시단자·율무단자·솔방울떡 등이 있다. 고급 재료를 써서 손이 많이 간 떡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남촌과 북촌을 일러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칭할 정도로 떡을 많이 만들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매자과·약과·만두과·흑임자다식·콩다식·송화다식·밤다식·진말다식·녹말다식·쌀다식·실깨엿강정·땅콩엿강정·백자편 등이 있다.
음청류로는 오미자화채·흰떡수단·진달래화채(두견화채)·원소병·보리수단·미삼차·유자차·대추차·생강차·곡차·오미자차·구기자차·결명자차·당귀차·제호탕·오과차·모과차·계피차 등이 있다.
경기도지방
옛 서울 개성을 포함한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바다에 면하여 있고, 기후는 중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서해안의 해물과 산골의 산채는 물론 밭곡식도 여러 가지가 고루고루 있어 음식도 소박하면서 다양하다.
음식은 서울에 접하고 있으면서도 소박한 편이고, 간도 중간정도이고 양념도 수수하게 쓰는 편이다.
경기도는 강원도·충청도·황해도와 접하고 있어 이들 지방의 음식과 서로 공통점이 있다.
음식명도 같은 경향의 것이 많이 보인다.
음식은 범벅이나 풀대죽·수제비와 같이 호박·감자·옥수수·밀가루·팥 등을 섞어서 만든 구수하고 양이 많은 음식이 많다.
곡류음식에서는 오곡밥·찰밥을 즐긴다.
국수는 맑은 장국국수보다 칼국수를 제물에 끓인 것 같은 제물국수와 메밀칼싹두기 같은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음식이 많아 관서지방의 동치미냉면과는 대조적인 입맛을 즐기고 있다.
냉콩국은 충청도·황해도와 똑같이 잘 만드는 음식이다. 국수는 가는 것보다는 칼로 썬 부드러운 것을 즐기고 있다.
개성은 떡국도 조랭이떡국처럼 흰떡에 공을 들여 멋을 부리고, 편수도 서울지방의 편수처럼 모지게 싸지 않고 동글게 모자모양으로 싸서 매우 부드럽고 매끈하게 만든다.
특별히 많이 생산되는 것은 없으나 밭곡식도 나물도 고루고루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주식류
팥밥·오곡밥·팥죽·조랭이떡국·냉콩국수·제물국수·칼싹두기·버섯장국수제비·수제비·개성편수 등이 있다.
특히 조랭이떡국은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수도인 개성지방에서 조선왕조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한풀이하려고 가래떡 끝을 비비 틀어서 만들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경기도 지방의 음식에는 고려시대 음식의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찬류
계삼탕(영계백숙)·갈비탕(가리탕)·곰탕·족탕·닭젓국·뱅어국·냉이토장국·민어매운탕·감동젓찌개·종갈비찜·무찜·두부장조림·주꾸미조림·배추꼬랑이볶음·송이산적·쇠갈비구이(숯불갈비구이)·돼지고기구이·꽁치된장구이·두부적·홍해삼전·조개전(대합전유어)·배추잎장아찌·쇠머리수육·양지머리수육·잡회·생굴회·연평도조기젓·오징어젓·굴젓·메밀묵무침·물쑥나물·파상추절이지·달래무침·용인외지·수무짠지·순무김치·꿩김치·고구마줄기김치·숙김치(삶은 김치)·보쌈김치·수무섞박지·무비늘김치·백김치·장떡·풋고추부각·파래·튀김·순대·오징어순대·족편별법 등을 들 수 있다.
떡류
색떡·여주산병·우매기·개성경단·각색경단·근대떡·수수도가니·수수지지미(부꾸미)·개떡 등 떡종류도 많고 상당히 멋을 내고 있다. 여주는 산병, 강화도는 근대떡, 가평은 메밀빙떡, 개성은 경단, 우매기 등 독특한 떡이 많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약과·강정·정과·다식·엿강정 등이 있다.
가평의 송화 다식, 강화의 인삼정과, 여주의 땅콩엿강정, 개성모약과가 특색이 있다.
음청류는 화채는 모과 화채·배화채·노란장미화채·송화 밀수 등이 있고, 차는 강화 수삼꿀차·연천 율무차 등이 있다.
경상도지방
동해와 남해를 끼고 있어 전라도와 비슷한 기후이면서도 해산물의 종류가 다르고, 들판에서 곡식도 골고루 생산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물고기를 고기라고 할 만큼 생선을 제일로 치고 있다.
음식은 해산물을 회로 먹는 것이 제일이라고 한다.
젓갈은 멸치젓을 가장 많이 담그며, 밥상에 놓는 젓갈의 종류도 전라도의 다음으로 많다.
음식의 간은 소금간이 세고 매운 점은 전라도를 능가한다.
음식의 풍은 멋을 내거나 사치하지 않다.
해산물을 가미하는 음식이 매우 많다.
신선한 생선을 국에 넣어 소금간을 하여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내륙이나 산간지방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조리법이다.
곡물음식 중 국수를 가장 즐기고 날콩가루를 섞어서 손으로 밀어 칼로 써는 부드러운 국수를 제일로 친다. 제물국수와 장국국수도 즐긴다.
국수장국은 쇠고기보다는 멸치장국이나 조개를 주로 쓴다. 범벅이나 풀대죽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주식류
진주비빔밥·무밥·통영비빔밥·갱식·애호박죽·떡국·밀국수냉면·닭칼국수·건진국수·조개국수 등을 들 수 있다.
찬류
재첩국·계삼탕·고동국·추어탕·선짓국·북어미역국·들깨참깨미역국·마른홍합미역국·동태고명지짐·호박선·우렁찜·바닷게찜·미더덕찜·미더덕찜별법·아구찜·장어조림·메뚜기볶음·오징어불고기·상어돔배기구이·갈치구이·청어구이·유곽·갯장어구이·상어돔배기전·배추적·김부치개·파전·해파리회·피조개회·광어회·멍게회·장어회·우렁회·생멸치회·잉어회·안동식혜·약대구포·붕어포·마른문어쌈이 있다
그리고 시래기된장무침·해물잡채·상추겉절이·꼴뚜기무생채·톳나물·두부생채·청각무침·돋나물무침·풋마늘겉절이·솎음배추겉절이·배추쌈·전복김치·속세김치·콩잎김치·우엉김치·부추김치·우엉잎자반·고추부각·감자부각·꼴뚜기튀김·메밀묵 등이 있다.
특히 회·생선구이 등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다.
떡류
모시잎송편·밀비지·만경떡·쑥굴래·잡과편·잣구리·부편·감자송편·칡떡 등이 일반적인 떡이다.
상주·문경 지역은 떡에 밤·대추·감 등의 과실과 오미자·소엽·모시풀 등을 넣는다.
감이 많이 나는 상주에서는 감을 떡가루에 섞어 설기떡·편떡 등을 만들고, 밀양에서는 쑥을 넣은 쑥굴래가 유명하고, 경단에 곶감채를 붙인다.
마천마을은 감자로 송편을 만들고, 거창에서는 송편을 멍개잎을 깔고 찐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유과·준주강반·대추징조·강냉이엿·우엉정과·다시마정과·각색정과 등을 있고, 음청류로는 단술감주·수정과·유자화채·유자차·물식혜·얼음수박·잡곡미숫가루·찹쌀식혜·안동식혜 등이 있다.
전라도지방
전라도는 개성에 버금가게 음식솜씨가 사치스럽다.
위치는 남과 북으로 매우 떨어져 있다.
개성은 고려의 음식을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는 매우 보수적인 데가 있는 반면에 전라도는 조선의 양반풍을 멋있게 받아서 고유한 음식법을 지키고 있다.
황해와 남해의 보고를 끼고 기름진 호남평야를 안고 있어 쌀이 풍부하고, 해물을 곁들이는 음식이 매우 여러가지가 있다.
깊은 산이 유명하여 산에서 나는 귀한 산물이 많아 음식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콩나물을 기르는 법이 특수하고 각색 죽은 보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전라도는 부유한 토반들이 대를 이어서 좋은 음식을 전하고 있는 고장이다.
그 상차림은 음식의 가짓수를 많이 올리는 것을 즐기고 있어 외지사람을 놀라게 하며, 음식솜씨 자랑을 많이 한다.
이것은 혼인의 선물 음식을 보면 알 수 있다.
기후가 온난하여 젓갈은 간이 매우 세고,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간이 짜고 국물이 없는 김치를 담근다. 이것으로 다른 음식의 간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김치와 대조적이다.
주식류
전주비빔밥·콩나물국밥·피문어죽·깨죽·오누이죽·대추죽·합자죽·대합죽·냉국수·고동칼국수 등이 있는데, 특히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찬류
머우깨국·천어탕·추어탕·죽순찜·홍어어시육·붕어조림·멸치자반·두루치기·장어구이·숯불불고기·생치섭산적·송이산적·산돼지고기구이·애저·육회·홍어회·고막회·생산대구아가미젓·젓갈류·육포·어포(민어포·대구포)·산채·겨자잡채·톳나물·파래무침·꼴뚜기무생채·갓쌈지·고들빼기김치·배추포기김치·검들김치·굴깍두기·반지(백지)·굴비노적·마른찬(짠 반찬)·가죽부각·부각·황포묵 등이 있다.
특히 홍어회는 혼례·환갑 등 큰 잔치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드는 음식이다.
떡류
국내 최고의 쌀 생산지인만큼 곡식으로 만드는 떡도 다양하다.
식생활이 윤택하여 아낙네들의 음식솜씨도 각별하다.
따라서 떡의 종류도 매우 많으며 사치스럽게 만든다.
감시리떡·감고지떡·나복병·호박메시리떡·복령떡·수리취떡(수리취개떡)·송피떡·고치떡·삐삐(삘기송편)·호박고지차시루떡·감인절미·감단자·전주경단·해남경단·우찌지·차조기떡·섭전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산자(유과)·유과별법·고구마엿·동아정과·생강정과·연근정과 등을 잘 만들고, 음청류로는 유자화채·곶감수정과를 잘 만든다.
강원도지방
강원도는 한류와 난류가 엇갈리는 깊은 동해바다에 면하고, 우리 나라의 척추 구실을 하는 태백산맥의 깊은 산과 골짜기와 그 사이사이에 분지가 자리잡은 곳이다.
그 분지와 산골마다 각각 다른 생산품이 많다.
소박한 풍토로 인하여 묘미있고 깊이 있는 음식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감이 있다.
이 고장의 특산품은 감자·옥수수·메밀·도토리 등이다.
이것들을 주식의 재료로 삼았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 예로부터 구황식품이 되던 것이다.
강원도는 구황식품의 보고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황식품들은 평상시에는 주식으로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향토 별미로서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되었다.
강원도의 감자는 하얀 분이 많이 나고 질척거리지 않으며 특히 맛이 좋다.
옥수수도 알이 굵고 차진 것이 유명한 찰옥수수이다.
감자로 음식을 만드는 법이 많은데 통으로 쓰기도 하나 주로 강판에 갈아서 녹말을 내어 이용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질긴 맛을 낼 수 있고 또 감자의 형태가 달라져서 조리법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
산골에는 소음식(素飮食: 단일한 제료를 사용한 음식)이 많으나 해안지방에서는 멸치·조개 등을 넣어 맛을 내고 있다.
주식류
강냉이밥·감자밥·차수수밥·토장아욱죽·메밀막국수·팥국수·감자수제비·강냉이수제비·강냉이범벅·감자범벅 등이 있다.
옥수수와 감자를 다양하게 주식으로 이용하는 점이 특색이다.
찬류
삼시기국·꾹저구탕(뚜거리탕)·쏘가리매운탕·대게찜·감자조림·도치두루치기볶음·석이볶음·풋고추볶음·송이장아찌·마른오징어젓갈무침·물오징어불고기·동태구이·감자부침개·느리미·강어회(향어회·가물치회)·오징어무침·오징어회·가자미식해·건어포(암치·대구·북어·오징어)·박나물·취나물·지누아리무침·파래무침·더덕생채·취쌈·창란젓깍두기·채김치·동치미·돌김·들깨송이부각·메추리튀김·올챙이묵(옥수수묵)·메밀묵 등을 들 수 있다. 동해의 해산물과 산골의 산나물이 찬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떡류
쌀떡보다는 잡곡으로 만드는 떡이 많고 비교적 소박한 맛과 모양이다.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의 차이가 조금 있다.
영동지역에서는 송편을 많이 만들고 다음은 시루떡이다.
큰일 때에는 절편과 인절미를 주로 만든다.
개피떡을 주로 만들고 흰떡은 별로 많이 만들지 않는다.
영서지역은 화전마을이 많아서 옥수수·조·수수·감자·메밀로 만드는 떡이 많다.
특히 옥수수의 생산이 많아 옥수숫가루에 강낭콩을 섞어서 만드는 잡곡설기떡을 잘 만들고 특색이 있다.
감자시루떡·감자떡·감자녹말송편·감자경단·옥수수설기·옥수수보리개떡·메밀전병(총떡)·댑싸리떡·메싹떡·팥소흑임자·각색차조인절미·무송편·방울증편 등을 이 지역의 특색 있는 떡으로 꼽을 수 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과줄(산자·박산)·약과·송화다식·황골엿(옥수수엿) 등을 잘 만들고, 음청류로는 앵두화채·책면·연엽식혜(연엽주) 등이 있고, 차는 강냉이차·당귀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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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지방
충청도는 바다에 전혀 접하지 않은 북도와 황해에 면하여 있는 남도로 그 지역적 여건이 다른 점이 많으나, 일반 생업은 농업이다.
특히 충청남도의 예당평야 백마강 유역에 펼쳐진 지역은 농경에 적합하여 곡물이 풍부하고 황해에는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당시 신라에서는 보리를, 고구려에서는 조를 주식으로 하던 때에도 백제에서는 쌀이 주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충청도 지역이 바로 백제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주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밥이다.
밥은 흰밥을 으뜸으로 숭상하고 일반적으로는 보리밥을 많이 먹었다.
보리밥은 보리를 잘 대껴서 먹으면 촉감이 흰밥과 다름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구수하며 맛이 있다.
이를 통하여 충청도 사람들의 소박함과 동시에 숙련된 조리기술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죽·밀국수·수제비·범벅 등이 있는데, 늙은 호박을 많이 쓴다.
이것은 영양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고 범벅을 만드는 것은 타도와 비교해서 특징적이다.
국물을 낼 때에 여름에는 닭과 소합을 쓰고 겨울에는 굴 같은 해물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고기를 먹기 힘들었으므로 주로 소(素)국을 끓였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해물을 넣고 맛을 내어 날떡국·밀국수 등을 끓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식생활의 합리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식류
콩나물밥·보리밥·찰밥·녹두죽·호박풀대죽·보리죽·날떡국·칼국수·나박김치냉면·호박범벅 등을 잘 만든다.
찬류
굴냉국·넙치아욱국·봄아욱국·콩김치국·청포묵국·콩국·시래기국·콩나물찌개·호박지찌개·청국장찌개·담북장·상어찜·홍어어시육·마른조갯살조림·떡볶이·말린묵볶음·명태볶음·장떡·갈비구이·돼지고기고추장양념구이·더덕고추장양념구이·굴비구이·호박고지적·감자부침개·깻잎장아찌·오이지·콩나물짠지·파짠지·돼지머리편육·육회·오징어회·미꾸라지회·어리굴젓·고추젓·애호박나물·취나물·늙은호박나물·참죽나물·오가리나물·콩나물무침·열무물김치·가지김치·박김치·시금치김치·새우젓깍두기·청포묵 등이 있다.
떡류
꽃산병·쇠머리떡·약편·해장떡·막편·곤떡·볍씨쑥버무리·수수팥떡·감자떡·감자송편·칡개떡·햇보리떡·도토리떡 등을 들 수 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무릇곰·모과구이·무엿·수삼정과 등이 있고, 음청류로는 찹쌀가루·천도복숭아화채·미수 등이 있다.
제주도지방
제주도는 본토와는 멀리 떨어진 도서로서 외딴섬이다.
해촌(海村)·양촌(陽村)·산촌(山村)의 구분이 뚜렷하고 그 생활양식의 차이가 있다.
해촌은 식물 지대 및 평야 식물 지대보다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해녀들이 잠수 어업을 많이 한다.
양촌은 평야 식물 지대의 중부 하부에 있는 마을로 농업 경제 중심인 시대에는 부유한 층이었고, 유교의 영향이 농후하고 지식인이 많았고 계의 조직이 발달하여 이곳 주민들이 세력이 컸다고 한다.
제주도는 농사짓는 땅이 적어 가정의 식량을 겨우 대는 정도이고 쌀 농사는 아주 적고 산도(山稻)·육도(陸稻)라는 밭벼가 있고, 밭곡식은 조·피·보리·메밀·콩·팥·녹두·깨 등 잡곡이 주가 되고, 감자·고구마의 생산이 많다.
채소와 된장, 해조류가 찬의 재료가 되고 바닷고기도 말려서 두고 쓰고 수육은 주로 돼지고기이며 닭을 쓰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쇠고기는 정월 명절에나 육지에서 들어오는 것을 사서 먹게 마련이다.
쌀이 귀하므로 평소에는 보리·조·팥 등의 잡곡밥을 많이 짓고 제삿날이나 비념에 고은밥(쌀밥)을 지어먹는데, 쌀은 80%를 육지에서 들여와야 하는 형편에 있었다.
1900년대 후반에는 외지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옛날의 식사는 잡곡밥에 된장을 푼 배춧국·콩잎국·뭇국·파국·호박국·미역국·생선국을 반드시 끓이고, 반찬은 자리젓·갈치자반·전갱이자반·고등어자반·건어를 쓰고, 회는 새 것이 손에 들어오면 먹게 되고 자리회를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 하였다.
말린 전복과 귤은 진상하기에 바빴다고 하며 일상 음식에 먹기는 어려웠다.
점심에 먼 곳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대로 엮은 도시락에 잡곡밥을 담고, 찬은 된장과 자리젓을 옆에 담아 가지고 나갔는데, 밭에서 연한 콩잎을 따서 쌈을 싸면 일품이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고 가족이 쌀밥으로 음복함은 물론 다음 새벽에 젯밥을 이웃과 반드시 나누어 먹는데, 이는 갯밥어울림이라 하여 정의를 돈독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자주성이 강하여 장가들면 밭 한자리라도 나누고 따로 세간을 차리는 것이 전통적인 습관이었으니, 일찍 핵가족의 형태를 실천하여 자수성가의 길을 가르쳤다.
부지런하고 소박한 성품이 음식에서도 나타나 소박하고 꾸밈없고 질박한 식생활이었다.
주식류
주식은 잡곡밥을 주로 많고, 메밀로 만든 칼국수·저배기·범벅·빙떡 등이 있다.
전복·옥돔·깅이(게) 등을 넣은 해물죽과 초기(표고버섯)·닭·매역새(미역) 등도 넣은 죽이 있고, 곤떡국·생선국수·메밀저배기·메밀만두 등이 있다.
찬류
고사릿국·톳냉국·돼지고기육개장·된장찌개·복쟁이지짐이·상어지짐이·오분쟁이찜·자리지짐이·돼지고기조림·옥돔구이·돼지고기구이·볼락구이·상어포구이·상어산적·계란전·고사리전·초기전(표고전)·꿩적·메밀묵지짐이·꿩지짐이·후춧잎장아찌·풋고추오이장아찌·자리회(물회)·자리강회·비계회·전복소라회·돼지새끼회·몰망회·오징어회·양에무침·톳나물·날미역쌈·날다시마쌈·콩잎쌈·전복김치·동지김치·해물김치·나박김치·다시마튀각·가죽부각·깻잎부각·수애(순대)·청묵(메밀묵) 등을 만들어 먹는다.
섬 지역인 관계로 해산물의 이용이 많으며, 소의 사육이 적어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많은 것이 한 특징이다.
떡류
쌀보다 잡곡이 흔하여 떡도 메밀·조·보리·고구마로 만드는 것이 많다.
떡종류는 다른 지방에 비하여 적은 편이다.
쌀로 만드는 떡은 명절·제사에만 만들 정도로 귀하고, 평소에는 메밀로 만드는 떡이 많다.
빙떡이라 하여 무채나물을 소로 넣고 돌돌 말아 부친 떡이 맛있다.
또 고구마 전분을 가지고 만드는 떡이 특별하다.
반찰곤떡·달떡·도돔떡·침떡(좁쌀시루떡)·차좁쌀떡·오매기떡·돌래떡·속떡(쑥떡)·빙떡(메밀부꾸미)·빼대기(감제떡)·상애떡 등을 주로 만들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약과·닭엿·꿩엿·돼지고기엿·하늘애기엿·호박엿·보리엿을 만들고 있고, 음청류로는 술감주·밀감화채·자굴차·소엽차를 만든다.
황해도지방
황해도는 연백평야가 펼쳐진 곡창으로 인심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잡곡이 많다. 조는 알이 굵고 구수하여 남도지방에서 보리를 먹듯이 메조를 많이 먹는다.
곡식이 많으므로 가축도 사료가 좋아 고기의 맛이 유별하다고 한다.
집집마다 기르는 닭은 살지고 맛이 좋다.
어느 음식이든지 닭을 많이 쓴다.
따라서 밀국수나 만두에도 닭고기를 쓰고 있다.
김치는 기후관계로 맑고 시원하고 맛이 좋아 국물에는 김치국물을 쓰는 일이 많다.
특히 동치미국물은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어 밤에 출출하면 냉면국수나 찬밥을 동치미국물에 말기만 하여도 훌륭한 밤참이 되었다고 한다.
인심좋고 소박한 황해도 사람들은 음식도 구수하고 소박한 것을 즐기고 겉모양을 내는 일은 별로 없다.
만두도 큼직하게 만들기 때문에 큰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자주 만든다.
식성은 별로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충청도의 식성과 비슷하다.
주식류
주식으로 쌀밥도 먹지만 잡곡을 섞은 세아리반·잡곡밥·김치밥·비지밥 등이 있고, 남매죽·수수죽·밀범벅·호박 만두·냉콩국·씻긴 국수·김치 말이·밀낭화 등이 있다.
세아리반은 낟알 세 가지를 넣어 지은 밥이란 뜻으로 찰기장의 노란빛이 식욕이 나게 해준다.
찬류
찬류에는 돼지고기와 두부가 많이 쓰이는데, 김치국·조깃국·되비지탕·호박지찌개·김치순두부찌개·애호박찌개·조기매운탕 등 푸짐한 국이나 찌개가 있고, 북어찜·붕어조림·돼지족조림·개구리구이·고기전·잡곡전·대합전·녹두빈자(빈대떡·녹두지짐)·행적·동치미·호박김치·갓김치·고수김치·묵장떼묵·연안 식해 등이 있다.
떡류
전라도와 마찬가지로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어서 곡식이 풍부한 편이다.
잡곡떡과 쌀떡이 여러가지 있는데 모양은 사치하지 않고 수더분한 감이 나고 구수한 풍의 떡이 많이 있다.
잔치메시루떡·무설기떡·오쟁이떡·큰송편·혼인인절미·혼인절편·수리취인절미·증편·꿀물경단·우기·찹쌀부치기·잡곡부치기·수수무살이·좁쌀떡·닥알떡·닥알범벅 등이 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무정과를 꼽을 수 있다.
평안도지방
자연환경은 산세가 험하나 황해에 면하여 있고 들판도 넓어서 밭곡식도 산채도 어물도 풍부하며, 성품도 진취적이고 대륙적이다.
음식의 솜씨도 풍성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이 특색이다.
서울에 비하면 소박한 멋을 풍긴다. 특히 길고 추운 겨울에 먹는 음식들이 더욱 푸짐하다.
음식 중에 국수를 가장 즐긴다. 겨울에는 냉면을, 여름에는 어복쟁반이라는 뜨거운 장국의 국수를 즐기는 품은 이열치열의 이치라 하겠다.
냉면국물은 찡하는 맛이 난다는 동치미국물을 꿩탕에 섞어 쓰고 있다.
냉면국물은 꿩탕아 아니면 냉면의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온면은 제각기 말아서 먹는 게 아니고 장국을 끓이면서 놋쟁반에서 떠먹는 것이다.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도 적극적이고 회식의 방법도 대담한, 사교적인 일면을 식사형태나 차림에서 볼 수 있다.
서울이 격식에 맞추어 의례적인 데 비하여 이곳은 형식에 매이지 않고 실질적이다.
곡물로 만드는 음식은 조밥이 많다. 장국밥격인 온반(溫飯)과 장국국수격인 온면(溫麵)이 쌍벽이다.
김칫국에 마는 냉면과 상응하는 음식이 김치말이이다.
닭죽이나 어죽은 강변에 나가서 만드는 야외놀이 음식이다.
집안에서 푸짐한 것은 만둣국이다. 크기가 궁중 만두인 병시(餠匙)의 갑절이나 되는 푸짐한 것이다.
가루음식을 매우 즐기는데, 국수를 즐기는 풍은 유별나다.
메밀과 옥수수의 품질이 좋아 메밀국수·강량국수가 나오는 원인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간은 심심하여 맵고 짜게 먹는 일이 적고, 한가지 음식을 양껏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주식류
온반(장국밥)·김치말이·닭죽·평양냉면·생치냉면·어복쟁반·강량국수·온면·평안만둣국·굴(굴린)만두 등이 있다.
찬류
고사릿국·오이토장국·내포중탕·더풀장·콩비지(되비지)·꽃게찜·똑똑이자반·무곰·풋고추조림(댕가지조림)·당고추장볶음·돼지고기구이·도라지산적·돼지고기전·더덕전·녹두지짐·도라지장아찌·돼지고기편육·냉채·가지김치·영변김장김치·돼지순대 등이 있다.
떡류
서울과 비교하면 매우 큼직하고 소담스럽게 만들고 재미난 이름의 떡이 많다. 송기떡(절편·개피떡)·골미떡·조개송편·꼬장떡·뽕떡·무지개떡·니도래미·찰부꾸미·노티(놋치) 등이 있다.
노티(놋치)는 잡곡 가루로 만든 전병인데 지져서 집청하여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찰기장과 차수수, 찹쌀을 각각 불려서 가루로 빻아서 엿기름 가루와 물로 버물 버물 반죽하여 찐다.
쪄낸 떡을 다시 엿기름 가루를 뿌리면서 고루 반죽하여 방에 두어 삭힌다.
삭은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번철에 참기름을 두르고 지진다. 지져 낸 떡을 항아리에 꿀이나 설탕을 켜켜로 뿌려서 재워 두고 먹는다.
후식류
과줄·견과류·돌배(산배)·엿·태식 등을 즐겨 먹는다.
함경도지방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고장이고 험한 산골과 동해에 면한 고장이 있다.
그 산물들로 산해진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곡류 중에서도 밭곡식이 많고 그 질이 우수하고 양이 많이 산출된다.
곡식은 콩·조·옥수수·수수·피 등이 많이 나고, 특히 메조·메수수가 이남의 메곡식과는 달리 매우 차져서 맛이 구수하고 좋다.
고구마·감자도 품질이 좋아서 녹말을 내어 국수를 눌러서 냉면에 쓰고 있다.
음식의 간은 짜지 않고 담백하나 마늘·고추 등 양념을 강하게 쓴다.
함흥냉면은 생선회를 맵게 비벼먹는다. 이 점이 다른 고장과는 다르다.
다데기라는 말도 이 고장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고춧가루 양념의 별칭이다.
그러나 함경북도로 올라갈수록 간은 세지 않고 맵지 않으며 담백한 맛을 즐긴다.
또한 음식의 모양도 큼직하게 대륙풍이고 시원스럽고 장식도 단순하여 기교를 부리거나 사치스러운 풍이 적다.
성품이 활발하여 야성적인 음식을 즐긴다.
주식류
잡곡밥·닭비빔밥·찐조밥·가릿국·얼린콩죽·옥수수죽·물냉면·회냉면·감자국수·감자막가리만두 등이 있다.
찬류
세천어국(천렵국)·다시마냉국·동태매운탕·영계찜·가지찜·북어무침·비웃구이·닭섭산적·두부전·북어전·감자지짐·콩부침·두부장아찌·고등어회·두부회·대구젓·가자미식해·도루묵식해·명란젓·원산잡채·깻잎쌈·콩나물김치·쑥갓김치·함경도대구깍두기·채칼김치·봄김치·동태순대·순대 등이 있다.
콩과 두부로 만든 음식이 많은데 콩부침·두부전·두부장아찌·두부회 등이 있다.
두부는 더운물에 데쳐서 양념 간장을 찍어 먹고, 콩부침은 불린 콩을 갈아서 소금 간하여 풋고추와 파를 채를 얹어 기름을 두르고 지진다.
떡류
벼농사를 짓는 곳이 적으나 밭농사는 매우 풍족하게 되어 콩·조·옥수수·수수·피 등의 품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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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메수수가 남쪽의 것보다 훨씬 차져서 떡을 하면 매우 좋다.
떡은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 일이 드물고 소박하고 구수하다.
찰떡인절미·달떡·오그랑떡·찹쌀구이·괴명떡·꼬장떡·언감자떡 등이 있다.
후식류
조과류로는 과줄·강정·산자·약과·만두과·들깨엿강정·콩엿강정 등이 있고, 음청류로는 식혜(단감주)를 들 수 있다.
전주비빔밥전주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콩나물비빔밥이라고도 한다.
주재료는 쌀, 콩나물, 황포묵, 고추장, 쇠고기육회(또는 쇠고기볶음), 접장, 참기름, 달걀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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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세시풍속,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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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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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의 종류와 용어 (사진으로 보는 전문조리용어 해설, 2008..)
한식 [寒食] (한국세시풍속사전)
음식 [Food, 飮食] - 나도 모르게 군침이 꿀꺽! (초등영어 개념사전, 2010...)
한식 [寒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명 [淸明]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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