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토생원전(兎生員傳)》《토(兎)의 간(肝)》이라고도 한다.
한문본인 《토별산수록(兎鼈山水錄)》《별토전(鼈兎傳)》 등 여러 이본(異本)이 있다.
판소리 계통의 소설인 《춘향전(春香傳)》《심청전(沈淸傳)》 등과 같이 영 ·정조 시대에 형성된 작품으로, 판소리 《수궁가(水宮歌)》를 소설화한 것이다.
옛날부터 전하는 고구려의 설화(說話)인 《귀토지설(龜兎之說)》에 재미있고 우스운 익살을 가미한 내용으로 한글이 생기자 정착된 의인소설(擬人小說)이다.
내용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나, 우화적(寓話的)이고, 고사(故事)를 인용해가며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표현하여 전편에 희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점에서 공통적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불전(佛典)인 《자타카 본생경(本生經)》에도 있고, 자라와 원숭이를 소재로 한 비슷한 설화가 《별미후경(鼈獼猴經)》에 있으며, 일본에는 《수모원(水母猿)》이 있다.
이와 같은 인도나 한국 및 일본의 민담(民譚)들은 한 기원에서 각 민족에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귀토지설》이 한국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에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잡혔을 때에 이 고지(故智)를 이용하였다는 설화이다.
《토끼전》은 자라와 토끼를 의인화한 우화 소설이며, 판소리계 소설이다.
원래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등의 문헌에 실린 '구토 설화'에서 유래되어 판소리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에 소설로 기록되었다.
동해 용왕의 딸이 병이 들자, 신하인 거북이 토끼의 간을 구한다는 짤막한 이야기인 구토 설화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 결말이 다른 이야기가 12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판소리와 소설로 만들어졌다.
현재 이 이야기는 한글 또는 한글과 한문 혼용으로 된 책이 34종, 손으로 쓴 한문책이 4종 등 여러 책이 전하고 있다.
책의 종류가 많은 만큼 제목 또한 《별주부전》, 《토생원전》, 《토의 간》 등 다양하다.
판소리 《수궁가》의 원 작품이고, 개화기 소설 《토생원전》 역시 이 이야기로부터 창작되었다.
내용
남해 용왕 광리왕은 바닷속 깊은 곳에 영덕전이라는 휘황찬란한 새 용궁을 짓고 큰 잔치를 열었다.
동서남북 네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해산물로 차린 음식에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을 구해다가 마시며 마음껏 즐겼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용왕은 그만 덜컥 병이 나 드러누워 버렸다.
크게 당황한 신하들은 약이란 약은 다 써 보고 용하다는 의원까지 다 불러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용왕은 이제 꼼짝 없이 죽는구나 하며 마지막으로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내려와 용궁을 뒤덮더니, 도포 차림에 흰 수염을 배 위까지 드리우고 깃털 부채를 든 한 신선이 나타났다.
신선은 용왕에게 육지에 사는 토끼의 간을 구해 따뜻할 때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평생 바닷속에서만 살아온 용왕은 토끼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용왕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신선은 토끼에 대해 말로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용왕은 신하를 불러 토끼를 잡아 오라 명한다.
말로만 듣던 산속 토끼가 맞았다.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자, 그동안 멸시를 받던 주부가 나섰다.
토끼를 그려 주면 잡아 오겠다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했다.
용왕은 주부의 요구대로 전복에게 토끼의 생김새를 설명하게 하고 화공에게 토끼의 그림을 그리라 명했다.
병만 낫게 해 준다면 자자손손 잘 살게 해 주겠다 약속했다.
주부는 토끼 그림을 들고 친척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뭍으로 떠났다.
육지에 오른 주부는 봄날의 정취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난생 처음 구경하는 신비로운 풍경에 정신이 혼미하던 주부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주부와 한 핏줄이 분명한 남생이 '남성이'를 만나 토끼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보름날 열리는 산속 회의에서 주부는 마침내 토끼를 보고, 용궁에서 화공이 그려 준 그림을 품에서 꺼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큰 소리로 토끼를 불러 세웠다.
순간 토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생전 처음 들어 본 점잖은 소리였던 것이다.
토끼가 주부 곁으로 오자, 주부는 토끼에게 자신이 모자라 용왕을 잘 보필하지 못했기에 지혜로운 신하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말에 관심을 보이는 토끼에게 주부는 얼른 토끼야말로 지혜로운 자라며, 토끼의 눈이 맑은 만큼 속도 밝아 하늘의 이치를 모조리 꿰뚫고 있으니 얼른 자신을 따라 용궁으로 가자고 꼬였다.
토끼는 용궁에 글 잘하는 신하도 없다고 하니 출세는 떼어 놓은 당상인 듯했으나 망설이며 못 가겠다고 하자, 주부는 살짝 당황하여 이유를 물었다.
토끼는 주부가 산속을 알면 얼마나 알까 싶어 거짓을 이야기했다.
주부는 허풍을 떠는 토끼가 괘씸하여 단숨에 산속 세계의 현실을 이야기하여 토끼를 쥐구멍으로 몰아넣고, 의심이 눈을 가리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만 가야겠다고 했다.
토끼는 용궁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주부를 따라 길을 떠났다.
바닷가에 도착한 주부는 망설이는 토끼 뒷다리를 덥석 물어 등에 태우고 헤엄쳐 용궁으로 갔다.
주부가 없는 틈을 타 수궁문을 지키는 군사들을 살살 꼬여 상황을 들은 토끼는 눈앞이 캄캄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용왕 앞으로 끌려 나간 토끼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도 처량하고 서글퍼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용왕이 토끼에게 빨리 배를 내밀어 칼을 받으라고 명하자, 토끼가 꾀를 내어 뭍에다 간을 꺼내 놓고 와서 없다고 하며, 자신이 뭍으로 나가 방자산 최고봉 늙은 소나무에 매달린 다른 토끼의 간까지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놀란 주부는 토끼의 간이 들락날락한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일단 배를 갈라 보자고 했다.
하지만 토끼의 말에 이미 넘어간 용왕은 토끼에게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바닷속 구경을 실컷 하고 뭍에 도착한 토끼는 바다가 안 보이는 높은 언덕에 도착하여 주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주부에게 어떤 동물이 간을 빼놓고 다닐 수 있냐며, 한바탕 혼을 내고는 토끼 똥이 몸에 좋으니 그거라도 들고 돌아가라고 했다.
용왕은 주부가 들고 온 토끼 똥을 먹고 다시 건강해져서 삼천 살을 넘게 살았다고 한다.
등장 인물
토끼
토끼는 산속의 위험한 생활에서 벗어나 벼슬을 하려는 욕심에 자라를 따라 용궁으로 가지만, 위기 앞에 당당히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목숨을 구할 만큼 영리하고 지혜롭다.
또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용왕과 맞서는 백성을 대표하며, 사건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산속에서는 한없이 힘없고 연약하지만 용왕을 살리는 구원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물로도 표현된다.
자라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한 성격을 유지하는 인물로, 판본에 따라서 《별주부전》이라 부를 만큼 토끼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육지에 가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고 나서고,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성실히 해낸다.
하지만 토끼의 속임수에 빠질 만큼 어리석다.
용궁 세계의 지배 계층이지만, 주목 받지 못하는 하급 관리이다.
용왕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신하이다.
용왕
용궁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지배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밤낮으로 잔치만 하다가 병을 얻을 정도로 부패하고, 병을 낫게 할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하는 능력 없는 왕이다.
게다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찮은 토끼쯤은 죽어도 괜찮다는 전형적인 권력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물론 탐욕이 지나쳐 토끼의 꾀에 속아 넘어가는 한심한 인물이기도 하다.
토끼전 파헤치기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나타나 있는 풍자 소설이다.
《토끼전》에 나타난 풍자는 지배층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토끼전》이 창작된 시기로 추정되고 있는 17, 18세기는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만 힘을 쏟던 시기였고, 지배 관료 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백성들의 삶이 점점 더 어려워져 백성들의 불만이 나날이 커지던 시기였다.
농업과 상업, 수공업 기술이 발전하자 부자가 되는 상민이 늘어났고, 부자가 된 상민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사거나 거짓으로 고쳤고, 실력이 아니라 돈으로 관직을 얻는 등 피지배 계층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양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런 사회 변화는 엄격했던 신분 제도가 흔들리는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했으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백성들에게 판소리나 우화 소설은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세속적이면서도 권력을 풍자하는 《토끼전》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었고, 그 덕에 《토끼전》은 수많은 판본을 낳았다.
《토끼전》의 세계는 용왕을 중심으로 자라와 수궁 대신들이 있는 바닷속 세계와, 토끼를 중심으로 여러 짐승들이 있는 산속 세계로 나뉜다.
바닷속 세계는 정치 지배 관료층의 세계이고, 후자는 백성들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 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사회 인물들이 투영된 것이다.
반대로 토끼는 백성의 입장이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토끼가 수궁에서 호의호식하고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 죽을 뻔했지만, 결국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결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토끼가 사는 힘겨운 세상
토끼는 용궁으로 가기 전에 자라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산속 세계가 얼마나 즐겁고 흥겨운지를 자세하게 늘어놓으며, 사계절의 아름다운 경치를 벗 삼아 풍족하게 살고 있다고 허풍을 떤다.
하지만 자라는 주린 배를 채우려고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면 포수며 사냥개가 쫓아오고,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굶주림 때문에 바위 틈 굴속에 처량하게 들어앉아 있는 게 현실이라며 조목조목 육지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자라가 밝히는 육지 세상의 현실은 도저히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산속 회의를 연 호랑이의 말처럼 짐승 모두 목숨을 지키는 일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우처럼 높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없다.
힘이 없으면 재산에다 자식까지 갖다 바쳐야 할 만큼 암울한 현실을 나타낸 《토끼전》의 현실 인식은 양반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널리 퍼진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하지만 바닷속 세상도 각박하고 살기 힘든 곳이긴 마찬가지이다.
용왕은 토끼의 간을 구하고자 신하들을 모두 불러들이지만, 정작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는 신하는 없다.
한림학사 깔따구와 간의대부 물치가 오직 집안의 힘만으로 벼슬에 올라 함부로 날뛰고 있다는 벌덕게의 핀잔에서 알 수 있듯이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부패한 곳이었다.
《토끼전》에서 풍자하고 있듯이,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과 현실은 무척 어지러웠다.
왕은 이름뿐이고, 여러 정당이 나타나 권력을 얻으려고 싸움을 일삼았다.
권력을 손에 쥐려는 몇몇 가문들의 부정부패는 세월이 흘러도 계속되었고, 돈으로 벼슬을 산 관리들은 다시 권력을 휘둘러 재물을 모았다.
탐욕스런 관리들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고, 엄청난 세금에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마음도 사나워졌다.
참다못한 백성들은 홍경래의 난(1811)이나 임술 농민 봉기(1862), 동학 농민 전쟁(1894) 같은 항쟁으로 지배 계층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로써 조선의 사회 체제는 서서히 무너졌다.
용왕, 부패한 용궁
《토끼전》은 용왕이 영덕전이라는 새 용궁을 짓고, 사흘 내내 잔치를 벌이다가 병을 얻는 데서 시작한다.
휘황찬란한 용궁에 온갖 진귀한 해산물로 차린 음식,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 등 온갖 사치스러운 생활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당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들을 외면한 지배 계층의 부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병을 얻은 용왕이 약을 구하려고 하자, 약으로 쓸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고 나서는 신하가 하나도 없었다.
아홉 가지 큰 도리를 알고 있는 좌승상 거북도, 대대로 학문이 높은 우승상 잉어도 말뿐이고, 한림학사 깔따구는 호랑이에게 조서를 내리라는 한심한 대답만 할 뿐이다.
게다가 신하들이 서로 나뉘어 큰 싸움을 벌일 태세가 되자,
용왕이 뜯어말리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병에 걸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용왕의 위엄은 이미 땅에 떨어져 초라하다.
이런 용궁의 상황은 당시 병든 조선의 현실과 무척 닮아 있다.
한심스러운 상황은 자라가 나서면서 정리가 된다.
자라는 평생 다른 이들의 멸시만 받던, 보잘것없는 맨 끄트머리 신하여서 용왕조차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자라는 자신이 참혹하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는 충성심을 보인다.
자라는 육지로 나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리석은 용왕 때문에 물거품이 된다.
용왕은 간을 빼놓고 왔다는 토끼의 말에 속아 토끼의 배를 가르기는커녕 오히려 큰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은 토끼에게 높은 벼슬과 땅, 진귀한 물건을 상으로 내리라고 말한다.
이처럼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용왕과 신하들은 왕의 권위와 충이라는 유교 윤리가 약해지던 당시 사회를 보여 준다.
지배 계층에 대한 백성들의 비판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놀림과 풍자는 용왕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용왕은 자라가 가져온 토끼 똥을 신비로운 약인 줄 알고 덥석 받아먹고는 병이 낫는다.
용왕이 낫지 못하고 죽는다는 책도 있지만, 용왕의 목숨을 살린 게 하필이면 똥이라니! 끝까지 용왕을 풍자하며 흔들리는 권력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토끼의 꾀주머니
《토끼전》의 토끼는 지배 계층과 맞서며 자신을 지켜야 하는 힘없는 백성이다.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은 지배 계층이 아닌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토끼전》은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묘사하며 다양한 성격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속에서 토끼는 까불대며 폴짝폴짝 뛰고 바윗돌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매우 활발한 모습이다.
자라에게 평소에 듣지 못한 '토 생원'이라는 호칭을 듣자 뛸 듯이 기뻐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자라의 말에 귀가 솔깃해질 정도로 가볍다.
반면에 토끼는 의심도 많고,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며 변덕스럽기도 하다.
자라의 말에 흔들렸다가도 여우의 한마디에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자신이 용왕의 약으로 잡혀 온 사실을 알고는 겁이 나서 바들바들 떤다.
이렇듯 육지에서 용궁에 오기까지 토끼는 욕심도 많고 허풍도 있지만, 겁도 많고 어리숙하다.
바로 소심하고 평범한 백성의 모습 그대로이다.
용궁에서의 토끼는 그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위기에 처한 토끼는 살아 나갈 방법을 찾는 데 무척 적극적이고 침착하며 치밀하기까지 하다.
용왕과의 대화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용왕에게 무식하다며 침착하게 꾀주머니를 열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배를 갈라 간이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자라에게 신하의 도리와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며 호통을 치기까지 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곧이듣고는 잔치를 열어 주고, 토끼는 용왕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짐짓 점잔을 빼며 용왕을 쥐락펴락한다.
토끼는 용왕을 속여 목숨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왕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민중으로 상징되는 토끼가 용왕을 대놓고 놀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온갖 고통을 당하며 살던 백성들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토끼전》의 토끼는 강인한 생명력과 뛰어난 지혜를 바탕으로 지배 계층의 권력과 당당히 맞선다.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용왕으로 대변되는 병든 국가까지 살려 내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연약한 피지배 계층으로 보이나 실은 굉장한 힘을 가진 민중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승부 끝에 남은 희망
용궁에서 살아 나온 토끼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용궁에서 겪은 일에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자랑을 늘어놓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육지를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익숙한 산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토끼는 어느새 삶에 대한 의지가 높아졌고, 자신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변화를 이끌 준비가 된 것이다.
한편 용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람본 《별토가》에서는 자라를 기다리던 용왕이 병이 심해져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는다.
경판본 《토생전》에서는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안 자라가 목숨을 끊자 용왕은 자신의 욕심으로 충신을 잃었다며 후회하고 태자에게 어진 정치를 부탁하며 죽는다.
신재효본 《퇴별가》에서는 다른 이본과 달리 병이 낫는데 자라가 토끼 똥을 얻어 와 병을 고친다.
이렇게 《토끼전》은 병든 용왕을 통해 조선 후기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며 지배 계층의 탐욕과 거짓을 폭로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민중의 희망을 함께 보여 준다.
소설의 줄거리.
남해(南海)의 용왕(龍王)인 광리왕(廣理王)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영약(靈藥)인 토끼의 간(肝)을 구하는 사명을 띤 자라가 산중에서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水宮)으로 돌아오던 중 내막을 알게 된 토끼가 기지로써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노라는 말에 속아 토끼를 놓쳐 버린다.
이에 자라가 자살하려던 찰나, 도인(道人)의 도움으로 선약(仙藥)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서, 자라와 토끼의 행동을 통하여 인간성의 결여를 풍자하고 비판적 서민의식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
642년(신라 선덕여왕11) 김춘추(金春秋:태종무열왕)가 백제에 복수하려고 고구려에 청병(請兵)을 하러 갔다가 오히려 마목현(麻木峴)과 죽령(竹嶺)의 반환을 요구받고 억류를 당하게 되었다.
고구려 왕의 총신(寵臣)인 선도해(先道解)에게 뇌물을 주고 술을 대접하였더니 취한 선도해가 귀토(龜兎)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춘추는 여기에서 암시를 얻어 고구려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용궁의 용녀(龍女)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肝)을 약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북은 그 일을 자청하여 육지로 나가 토끼를 꾀어오던 도중 이 사실을 등에 업힌 토끼에게 실토하자 놀란 토끼는 꾀를 써서 말하기를 “원래 토끼는 간을 꺼냈다 집어 넣었다 할 수 있는데, 마침 속이 답답하여 꺼내서 볕에 널어 놓고 왔으니 도로 가서 가져오겠노라”고 하였다.
이 말에 속아서 거북은 토끼를 다시 육지까지 업고 가서 내려놓자 토끼는 거북의 어리석음을 욕하고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그 후 《별주부전(鼈主簿傳)》 《수궁가(水宮歌)》 등의 소재가 되었다.
토끼와 자라
바닷속 불국정토로 향하는 불전설화의 주인공
사찰 경내에는 종종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조각이나 그림들이 눈에 띈다.
토끼와 자라(거북)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그림이나 조각의 형태로 법당 문이나 평방 또는 법당 안팎의 벽면에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승주 선암사 원통전의 출입문 궁창에는 두 마리의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김제 금산사 보제루에서는 누운 자세로 건물 부재를 받치고 있는 한 쌍의 토끼를 볼 수 있으며, 남원 선원사 칠성각의 외벽과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의 내부 창방, 양산 통도사 지장전의 내벽 등에서도 토끼 형상이 눈에 띈다.
여천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위에도 토끼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선암사와 금산사의 경우는 토끼만 그려져 있으며 선원사와 남장사, 통도사의 경우는 토끼와 자라가 함께 나타난다.
사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토끼와 자라는 불교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토끼 - 헌신과 희생의 상징
토끼는 우리나라의 민간설화에서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지혜로운 자[智者]로 묘사되기도 한다.
토끼는 민첩하게 뛰기 때문에 사기(邪氣)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귀가 커서 장수할 상이며, 갈라진 윗입술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하여 다산할 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찰 장식에 나타나는 토끼는 이와 다른 불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찰 장식에 나타나는 토끼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헌신과 희생의 상징형으로 달에 살고 있는 토끼이고, 또 하나는 부처의 전생설화(前生說話)와 관련된 토끼이다.
토끼가 헌신과 희생의 상징형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제석천과 토끼에 얽힌 불교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여우와 원숭이와 토끼가 불심(佛心)을 터득한 것을 자랑하려고 제석천을 찾아갔다.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제석천이 시장기가 돈다고 하자,
여우는 즉시 잉어를 물어오고 원숭이는 도토리알을 들고 왔으나, 토끼만 어떻게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왔다.
토끼는 제석천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더니 불 속에 뛰어들며, 내 고기가 익거든 잡수시라고 하였다.
제석천이 토끼의 진심을 가상히 여겨, 중생들이 그 유해나마 길이 우러러보도록 토끼를 달에다 옮겨놓았다.
이렇게 하여 토끼가 달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되는 것이 선암사 원통전의 토끼문양이다.
고창 선운사 영산전의 천장화 가운데 여우가 물고기를 잡아 입에 물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위의 설화에서 제석천을 위하여 물고기를 잡아온 여우를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불전설화 와 별주부전
남장사 극락보전의 내부 창방에 그려진 그림과 통도사 지장전 내벽의 벽화에는 토끼가 자라 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장면이 있는데, 토끼와 자라 일행이 용궁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수면 위에 기와지붕을 그려놓은 것이 흥미롭다.
남장사의 그림에는 자라 등에 타고 있는 토끼와 함께 육지에서 그들을 환송하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있어 민담(民譚)의 내용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이 그림은 「별주부전」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해중 용궁에 사는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 대신들을 모아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 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토끼 화상을 가지고 육지에 이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에 이른다.
용왕이 간을 내라고 하자 속은 것을 안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용왕은 토끼를 크게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에 이른 토끼는 어떻게 간을 내놓고 다니냐고 자라에게 욕을 하면서 숲속으로 도망가버린다.
어이없어 하던 자라는 결국 빈손으로 수궁에 돌아간다.
남장사 극락보전 내부 창방의 토끼와 자라 그림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유혹하여 용궁으로 데려가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별주부전」은 인도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佛典說話)를 근원으로 한다. 불전설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본생담(本生譚)으로, 원왕본생(猿王本生)과 악본생(鰐本生), 그리고 원본생(猿本生)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인도에서 교훈적인 우화로 전해오다가 불교 경전에 포용되면서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원래 인도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이고, 물에 사는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불교 경전에 삽입된 고대 인도설화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될 때 악어와 원숭이가 자라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하였다.
설화가 지니는 불교적 의미는 같아서 설화 속의 원숭이는 석가의 전신(前身)이며, 악어는 변절한 부처의 제자인 제바달다(提婆達多)로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내용이 되었다.
중국에서 각색된 본생담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그 주인공이 다시 토끼와 거북으로 변하였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김유신조에 삽입된 귀토설화(龜兎說話)의 내용을 보면 그 주인공이 토끼와 거북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용궁 - 바닷속 불국정토
통도사와 남장사의 귀토도(龜兎圖)에서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용궁이다.
용왕의 신묘한 능력으로 만들어진 용궁은 불교에서 바닷속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여겨졌다.
불자들은 현세에 불법이 유행하지 않게 될 때에는 용왕이 용궁에서 경전을 수호한다고 믿었으며, 『해용왕경』(海龍王經)「청불품」(請佛品)을 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통도사에는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 쓴 편액(扁額)이 달린 전각 한 채가 있다.
전각의 이름을 해장보각이라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에 두며, 또 대장경의 진리를 바닷속 수많은 보배에 비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선암사에서는 대웅전 지붕의 착고판마다 ‘海’자가 씌어 있고, 대웅전 옆 요사채의 판벽에는 ‘海’자와 ‘水’자가 투각되어 있는데, 이 역시 불전 주변의 공간이 바닷속 불국정토, 즉 용궁을 상징하기 위한 묘책이라고 스님들은 말한다.
불전 주변 공간이 바닷속 불국정토인 용궁을 상징하기 위하여 海자와 水자를 새겼다.
자라 - 용궁으로 향하는 인도자
사찰 장식 중에는 토끼는 보이지 않고 자라만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앞쪽의 주춧돌과 설봉당부도를 비롯한 미황사의 많은 부도들, 그리고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윗면과 선암사 불조전 천장에 있는 자라가 그 예이다.
때로는 자라가 아니라 완연한 거북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도 있는데, 흥국사 대웅전 앞 석등과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축대 밑, 창원 불곡사 일주문 등에서 보이는 거북이 대표적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라와 거북은 별개의 동물이지만 설화 속에서는 양자를 뚜렷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별주부전」에는 별주부, 즉 자라가 주인공이고, 『삼국사기』 「열전」의 김유신조에는 자라가 아닌 거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북이든 자라든 간에 그것이 사찰 장식물로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불자들의 관념 속에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상상의 배가 있다.
이러한 관념이 표현된 것이 반야용선도이며, 반야용선의 선수를 상징하는 법당 앞의 용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자라와 거북도 현실을 떠난 이상세계인 바닷속 용궁을 향해 가는 탈것의 상징형으로 볼 수 있다.
불영사 대웅보전 축대 밑에 커다란 거북석상이 하나 있다.
이 거북석상은 대웅보전 건물을 등에 지고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윗면과 왼쪽 모서리에도 자라가 새겨져 있는데, 머리를 앞으로 두고 있어 대웅전 건물을 인도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불전 앞의 자라나 거북상은 반야용선의 용과 마찬가지로, 이를테면 반야귀선(般若龜船)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비석의 귀부를 살펴보자.
귀부는 비신(碑身)을 받치는 거북 형태의 돌을 말한다.
귀부에는 경주의 신라태종무열왕릉비처럼 완전한 거북 형태가 있는 반면, 여주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를 비롯한 대다수의 귀부가 그렇듯이 용두귀신(龍頭龜身)의 형태가 있다.
귀부를 자세히 보면 네 발로 땅을 짚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귀부의 앞발을 보면 왼발은 땅을 짚고 있고, 오른발은 발바닥이 보이도록 위로 젖히고 있어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
천안 봉선홍경사터 비갈의 귀부는 고개를 심하게 휘젓고 있는데, 이것은 거북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때 취하는 행동이 분명하다.
거북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 도교에서 보면 선계(仙界)가 될 것이고, 불교에서 보면 사후에 안주할 극락정토가 될 것이다.
이상향의 조성
자라나 거북은 용궁으로 가기 위한 탈것, 또는 인도자로서뿐만 아니라 사찰의 특정 공간을 바닷속 용궁으로 조성하기 위한 상징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사찰 건물은 아니지만 남원 광한루의 기둥머리와 평방에 토끼가 자라 등에 올라타 앉은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누각뿐만 아니라 경내에 있는 열녀춘향사당 앞쪽 기둥머리에도 똑같은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으며, 광한루 연못가에도 물 속을 향해 큼직한 자라석상이 하나 놓여 있다.
열녀춘향사당(좌)과 광한루(우)의 토끼와 자라
광한루라는 이름은 달 속에 있는 가상의 궁전인 광한전(廣寒殿)에서 따온 것이다.
광한전은 도교의 이상세계인 월궁(月宮)을 말하며, 그것은 불교의 용궁과 비견될 수 있다.
월궁은 옛 서민들의 상상 속에 살아 있던 선계요, 이상향이었으며, 서민들은 그런 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월궁에 가서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삶의 공간 속에 월궁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선원사 칠성각의 토끼와 자라
몸의 일부분만을 밖으로 내밀고 있지만, 역시 사찰의 특정 공간을 불교의 이상향인 용궁으로 조성하기 위해 장식된 것이다.
어떤 공간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수법을 쓰는 예는 고래(古來)의 풍습과 유물 속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우리나라 장례 풍속에 나뭇가지로 문의 형태를 만들고 문설주에다 숭어를 매달아놓는 경우가 있다.
바다와 민물을 넘나들며 사는 속성을 지닌 물고기인 숭어를 달아놓고,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문임을 상징토록 한 것이다.
중국 한나라 때의 무덤에서 발견된 화상전(畵像塼)을 보면 아래쪽에는 물고기가, 그 위쪽에는 새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새는 하늘의 상징형이고, 물고기는 물의 상징형이다.
사찰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자라나 게도 현실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인 바닷속 용궁으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흥국사 대웅전 축대 전면에 게를 조각해놓은 것도 대웅전 일대의 공간이 용궁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바용궁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바다를 상징토록 하기 위한 것이며,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에 새겨진 여러 마리의 자라와 게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찰 장식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거북)는 가깝게는 「별주부전」의 주인공들이며, 근원적인 의미로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화현(化現)이자, 반야귀선의 주인공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요, 이상향인 용궁을 현실 공간에 조성하기 위한 묘책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다.
파도가 잠든 깊은 바다에는 항상 흔들림 없는 심연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일러 해인(海印)이라 한다.
번뇌의 바람이 잠든 마음의 바다, 그것을 또한 해인삼매(海印三昧)라 한다.
이 해인삼매의 바닷속에 잠겨 있는 용궁은 관념상의 불국정토라 할 수 있다.
그런 불국정토를 지상에 구현해놓고, 그 세계로 향하고자 했던 불자들의 마음이 사찰의 토끼와 자라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용왕경:
서진(西晋)의 승려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불교 경전. 석가모니가 일찍이 영축산에 있을 때 바다 용왕을 위하여 육바라밀과 십덕(十德) 등의 보살법을 설하여, 용과 아수라 등이 모두 성불할 것임을 널리 알린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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