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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春香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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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春香傳 .


조선조 사회에서 가장 미천한 기생 춘향과 양반의 아들 이도령이 당시의 엄격했던 사회적 계급의식을 초월하여 벌이는, 대표적인 고전 사랑의 서사시이다.

조선조 인조대왕 때에 전라도 남원 부사 이등이 한 아들을 두었으니 이름이 이영이었다. 

그가 16세가 되자 풍채가 수려하고 문장이 뛰어나 칭찬이 자자했다.


소설의 이본이 120여 종이나 되고,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일 작품이 아닌 ‘춘향전군()’이라는 작품군으로 보아야 한다.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되었으리라고 보이는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이나, 문장체 소설로 바뀐 것도 있고, 한문본도 있다.

창극·신소설·현대소설·연극·영화 등으로도 개작되었다. 

한국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 또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거듭 논란되었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그 다음에 새로 부임한 관리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한다. 

춘향은 일부종사()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한다. 

이본에 따라서는 춘향이 다르거나,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이 가지는 성격에도 차이가 있다.

신관 부사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한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 하는 점도 일정하지 않다. 

이 작품은 설화를 소재로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어 근원설화() 탐색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내용으로는, 

신원설화() : 남원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아자제 도령을 사모하다 죽었는데, 원귀가 되어 남원에 재앙을 가져오자 이를 액풀이하는 제의설()에 근원을 두고, 양진사()가 제문()으로 창작하였다는 설.

암행어사 설화() : 노진()·조식()·성이성()·김우항()·박문수() 등의 고사에서 야담으로 형성된 암행어사 출두의 설화가 「춘향전」 후반부와 같이 부연되었다는 데에서 「춘향전」이 그 주제를 따왔다는 설.

조선조 야담에 보이는 도령과 기생과의 애련설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의 설화가 이에 해당된다.)인데, 이는 「춘향전」 전반부의 제재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기타 설화 : 

「춘향전」 속에 삽입된 제재로서의 춘향이 이도령에게 수기()를 받는 이야기, 춘향이 판수에게 해몽을 청하는 이야기, 암행어사 출두장면에서 이어사의 ‘금준미주()’ 한시의 작시() 설화 등이 조선조 야담에 나옴으로써 이를 수용하였다는 설.

이들 설화가 열녀설화()·조선조 유교 윤리와 결부하여 「춘향전」 생성의 제재가 되었다고 보는 설 등이다.

이러한 설화도 「춘향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없으므로, 이를 소재로 어떤 창작자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진다. 

이 창작설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은 「춘향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모순이다.

당시의 사회상으로 보아 16세의 이도령이 서울로 올라가 소과()·대과()에 합격하여 왕의 비서인 승지가 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 

이에 비하여 남원부사는 3년이라는 한정된 시한이 있다.

현행 「춘향전」이 이어사가 남원에 내려와 춘향을 구출하는 시한이 1년 내지 1년 반이므로, 현실적으로 「춘향전」이 성립할 수 있는 개연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설화를 합성한 원 창작자의 작극술(Dramaturgie)이 「춘향전」의 주조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남원에 남아 있는 춘향과 관련된 여러 유적들, 즉 춘향의 사당, 춘향의 묘, 성안의부사(使)의 기적비, 박석치(), 춘향이 버선발로 이도령을 따라갔다는 버선꼴 밭 등은 다 「춘향전」이 예원()에 헌전된 이후에 견강부회()된 민간어원설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원에서는 매년 5월에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춘향전」이 현대의 신화가 되어 있다는 증거는 되지만, 춘향을 실존인물로 비교하여 생각하려는 타당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춘향전」을 더늠으로 한 광대는 많으나 그 실지 창본이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없다. 

신재효()본이 있기는 하나 광대는 아니므로 창본이라 하기는 어렵다. 

현존본으로는 이선유()본과 박기홍()조에 의한 이해조()의 「옥중화()」, 이동백()본 등이 있다.

이를 분석하여 보면, 완판의 「열녀춘향수절가()」와 문체상의 차이는 없다. 

이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4·4조를 기본으로 하는 운문으로 되어 있고, 삽입가요가 있고, 어미가 현재 진행 종지형으로 되어 있는 문체상의 특징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춘향전」 이본을 분석하여 보면, 대부분 판소리계본이라 이를 축약한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본으로는 판본 9종이 있는데, 경판본()이 4종, 완판본()이 3종, 안성판본()이 1종이다. 이들은 대개 1850년 이후의 판본이다. 

사본으로는 영조 30년(1754) 유진한()의 한시() 「춘향가」를 필두로 하여 한문본이 5종, 한글 사본이 약 30여 본이나 되어 앞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그 중 자수가 많은 것은 「남원고사()」로서 「춘향전」 문학의 압권을 이루고 있다. 

신문학기의 활자본으로는 이해조의 「옥중화」(1912), 최남선()의 「고본춘향전()」(1913)을 비롯하여 38책이 있으며, 활판본·한문본 4책, 번역본(일본·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 등을 합하여 16종이 있고, 희곡 몇 본 등이 있다.

이 중 사본 판본에는 판소리계 본이 많으며, 또 이 계통을 제외하고는 행문()이 같은 사설로 나가는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춘향전」 문학의 민속예술적 측면을 드러내 주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이 중 계통을 따진다면, 완판의 「별춘향전()」 병오판() 33장본, 「열녀춘향수절가」 84장본은 상호 적층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어 특이하며, 경판·안성판 계통은 「남원고사」와 한 계통을 이루고 있다. 

신분관계로 따지면 춘향의 신분이 기생으로 되어 있는 것이 고형이고, 신재효의 「춘향가」에서는 성천총()의 서녀로 나와 중간형을 이루며, 「열녀춘향수절가」의 성참판()의 서녀로 나와 있는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신분상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후기본적인 색채가 짙다.

이해조의 「옥중화」는 박기홍조에 의거하여 고쳐 지은 것으로 보여지며, 활판본 계통은 대개 이 「옥중화」에 의거하고 있다. 

이들 이본 중 가장 특이한 것이 유진한의 「춘향가」이며, 이의 정착이 1754년이므로 가장 오래된 것인 동시에 여기에 “(소옹위작타령사호사상전후천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춘향전」의 판소리 생성을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춘향전」은 숙종 말이나 영조 초에 광대의 판소리에서 비롯된 이후, 판소리뿐만 아니라 소설·희곡·오페라·영화 등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하여 현대적 변모를 계속하고 있는 성장하는 고전이다.

민족고전의 대표격인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의 단편적 비평에서부터 1980년대의 본격 연구에 이르기까지 60년에 걸친 연구사가 있다. 

이들 연구는 소설 「춘향전」 연구가 주대상이 되어 장르론적 측면, 작품론적 측면과 소설사적인 측면이 주로 검토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연구 업적은 조윤제()의 『교주춘향전()』이 박문서관에서 나오면서 본격화 되었고, 이때부터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연구의 주요대본으로 선택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학술 논문과 함께 김동욱()의 『춘향전연구()』와 같은 통합론적 업적이 단행본으로 출판됨으로써 연구가 심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앞 시대에 주요 관심사였던 발생론에 대한 관심을 극복하면서, 서사구조나 문체에 대한 연구들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주의 방법과 역사주의 방법 등 새로운 비평 방법에 근거한 업적들과 함께 「춘향전」 주제론이 연구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남원고사」라는 새 이본이 발견됨으로써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로만 쏠리던 관심이 보다 다양한 대본을 통한 연구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춘향전」을 기생계() 춘향전과 비기생계() 춘향전으로 구분하였다. 

「남원고사」는 기생계에 속하고 「열녀춘향수절가」는 비기생계에 속함을 밝혀 「춘향전」의 문학본질 탐색을 위한 새 바탕을 마련하였다.

198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이본 발견이 주춤한 반면, 「춘향전」의 작품 분석에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하는 연구가 눈에 띤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총정리하여 제시하는 노력이 있었는데, 총 8책으로 이루어진 『춘향예술사자료총서』(설성경 편, 국학자료원, 1998)가 대표적이다.

‘대춘향전군’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이본을 바탕으로 한 거시적 접근이 용이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춘향전」의 작품 세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성과가 기대된다.

「춘향전」의 현대적 변모에서 보여준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한 여러 형상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춘향전」이 민족적 공감을 얻는 이치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9세기까지의 「춘향전」만을 다루던 전통적 접근 방법을 극복하고, 20세기의 「춘향전」까지 포함하는 탈시대적 연구의 길이 열리게 되리라고 본다.

유동적인 「춘향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고전 「춘향전」과 현대 「춘향전」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참모습의 객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춘향전」의 고전으로서의 생명과 그 본질을 찾는 첩경이 되어, 「춘향전」의 예술적 가치가 총체적 구조로 밝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춘향전」은 그 공간배경이 남원이기 때문에 남원 지역에는 ‘열녀춘향사()’라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을 통하여 실존하였던 것으로 믿고 있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며 그 넋을 추모한다. 

춘향의 생일로 믿는 음력 4월 8일에는 광한루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춘향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춘향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 조선 시대의 한글 소설이며 판소리계 소설이다. 

양반인 이몽룡과 기생의 딸 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조선 후기의 평민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자와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예부터 전해지던 설화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내용은 같으면서도 부분적으로 내용이 다른 이본이 100여 종 전한다.


조선 시대 숙종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 전라도 남원 고을에 월매라는 기생이 있었다. 

월매가 기생 일을 그만두고 서울 성 참판의 둘째 부인이 되어 정성껏 기도한 끝에, 하늘나라 선녀가 품에 날아드는 꿈을 꾸고서 딸 춘향을 낳아 귀하디귀하게 키웠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춘향이 열여섯 나던 해, 음력 오월 오일 단옷날이었다. 

남원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봄 경치 구경을 하러 광한루에 나갔다가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만나고자 한다.

방자의 주선으로 이몽룡과 춘향은 광한루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한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비록 혼인식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이몽룡은 동부승지 벼슬을 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 

몽룡은 어머니께 춘향을 한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으나 기생첩을 들여서 한양으로 데려갈 수는 없으며 앞으로 벼슬을 하는 데도 방해가 될 거라는 꾸중을 듣는다.

결국 춘향에게 이별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춘향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서럽게 울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이몽룡은 그런 춘향에게 한양으로 올라가서 장원 급제하여 데려가겠노라 약속을 하고 떠난다. 

남은 춘향도, 떠나가는 이몽룡도 좀처럼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여러 달 뒤에 남원 고을에 변학도라는 새로운 사또가 부임하게 되었는데, 이 사또는 오로지 기생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춘향을 보고 싶어 했다. 

변 사또의 아랫사람들이 춘향은 이미 지난번 사또의 아들 몽룡과 혼인을 하였고 오직 한마음으로 몽룡을 기다리는 중이라 일러 주었다.

하지만 변 사또는 어떤 양반이 엄한 부모 아래 살면서 혼인도 하기 전에 그저 놀던 계집을 데려가겠느냐며 춘향을 관아로 데려오라고 한다. 

춘향은 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한 끝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한양에 간 이몽룡은 밤낮으로 공부하여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하고 전라도 암행어사에 임명된다. 
거지꼴로 변장하고 전라도 땅으로 들어간 이몽룡은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매 맞고 감옥에 갇힌 춘향의 소식을 듣고 남원으로 가 월매를 만난다. 
월매는 거지꼴을 한 이몽룡을 박대하지만 춘향의 몸종 향단은 이몽룡을 정성껏 대접한다.

이몽룡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감옥에 갇힌 춘향을 만나는데, 춘향은 이몽룡을 원망하지 않는다. 

어머니 월매에게 이몽룡을 잘 대해 줄 것을 당부하고, 이몽룡에게는 변 사또의 생일인 내일 자기가 맞아 죽으면 서방님의 선산 발치에 자기를 묻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튿날 남원 가까운 고을의 수령들이 남원 관아로 모여들고 변 사또의 생일 잔치가 열린다. 

이몽룡이 거지 차림으로 잔치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가 탐관오리의 학정으로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하다는 뜻의 시를 짓는다.

그 시를 돌려 읽은 이들은 하나둘 관아를 빠져 나갔으나 변 사또는 술이 잔뜩 취해서 춘향을 대령하라 한다. 

그때 "암행어사 출두야!" 요란하게 외치는 역졸들 소리가 나며 어사또가 관아로 들어온다.

어사또는 감옥에 갇혀 있던 죄인들을 불러 하나하나 조사해서 죄 없는 사람들은 풀어 주었다. 
춘향의 차례가 오자 짐짓 거짓으로 춘향에게 자신의 수청을 들면 목숨은 살려 주마고 한다. 하지만 춘향은 자기를 죽이라며 거절을 하고 향단에게 몽룡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때 어사또가 "얼굴을 들어서 나를 보아라." 한다. 

춘향은 어사또가 이몽룡임을 확인한다. 

춘향 모녀와 향단은 어사또를 따라 한양으로 들어가는데, 임금은 이몽룡에게 더 큰 벼슬을 내리고 춘향에게는 정렬부인이라는 호칭을 내린다. 

이몽룡의 첫째 부인이 된 춘향은 이몽룡과 오래도록 함께 살았다.


등장 인물

성춘향
양반 성 참판과 기생 월매의 딸로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루어 내는 진취적인 인물이다. 

출신은 천민이지만, 스스로는 기생임을 인정하지 않는 강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부부간의 믿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정절을 보여 준다.


이몽룡
춘향을 사랑하게 되는 남원 부사의 아들이며 나중에 지방 관리의 부정 부패를 바로잡는 암행어사가 된다.

처음에는 춘향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철없는 양반의 모습을 보이지만, 나중에는 춘향과 사랑하게 되면서 백성의 고통을 감싸 안고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모범적인 관리의 모습을 보인다. 

신분 제도를 넘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백성들 편에 선 양심적인 지배 계층을 상징한다.


변학도
자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부패한 관리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죄 없고 약한 백성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두르고, 권력을 이용해 백성을 강제로 억누르려 한다. 

백성의 재산을 빼앗고, 제멋대로 남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의 대표자로, 결국 벼슬에서 쫓겨나고 만다.


월매
예전에 기생이었으며, 춘향의 어머니이다. 

때로 가볍고 촐랑대는 듯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말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인물이다. 

이몽룡과 춘향 사이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어떤 인물보다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백성의 모습을 잘 나타낸 개성적인 인물이다.

조선 의 신분 제도

조선에는 사람의 신분을 양민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제'라는 법적 신분 제도가 있었다. 

양민은 과거 시험을 보고 벼슬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신, 세금을 내야 하는 조세의 의무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부역의 의무가 있었다.

천민은 노비처럼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들로, 자유가 없는 대신 세금을 내거나 부역을 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 

실질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는 '반상제'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었다.

신분에 따라 정치·경제적 지위가 정해지고, 권리와 의무도 정해졌다. 

양반은 땅과 노비 등 재산을 가졌지만, 천민은 소유물로 취급되어 주인이 마음대로 팔거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신분이 자식에게 대대로 이어졌고, 혼인 또한 같은 신분 안에서 이루어졌다.

양반은 양민이나 천민을 첩으로 둘 수 있어서 신분이 다른 자식이 생기기도 했다. 

첩의 자식은 서얼이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어머니가 천민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했다. 

《춘향전》의 춘향도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낮은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 할지라도 신분 이동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천민만 아니라면 누구나 과거를 치러 벼슬을 할 수 있었고, 양반도 죄를 지으면 노비가 되기도 했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 후기는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이나 상민들도 벌어들인 돈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었다. 

양반이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허울만 간신히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분 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춘향전》에서처럼 신분이 다른 남녀의 사랑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의의를 지닌다. 춘향이 몽룡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분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신분 제도의 변화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다.

탐관오리 변학도, 암행어사 이몽룡

조선 후기 신분 제도의 변화는 지방 정치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지방은 중앙에서 내려보낸 수령보다 그곳에 뿌리를 둔 양반의 세력이 더 강했다. 

이렇게 중앙 정부의 힘이 지방 세력보다 약해지자, 정부는 수령의 권한을 강화하여 지방을 다스리려고 했다.

하지만 수령의 권한이 커지자 문제점도 나타났다. 

수령이 막강한 힘을 이용해 세금을 마구 거둬들이고,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빼앗거나 형벌을 제멋대로 행사하는 등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 했기 때문이다. 

《춘향전》에는 이러한 탐관오리의 횡포가 변학도의 행태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암행어사는 왕의 명령으로 지방 관리를 감시하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암행어사에게는 수령의 잘못이 드러나면 관청의 창고를 잠그고, 관리가 법을 어긴 정도에 따라서 왕에게 보고하고 바로 벼슬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몽룡은 변학도의 죄를 물어 벌을 주는 암행어사로, 힘없는 백성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바람을 실현시켜 주었다.

이처럼 《춘향전》은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탐관오리 변학도와 백성의 뜻을 파악하고 못된 관리를 벌하여 사회를 바로잡은 암행어사 이몽룡을 통해 조선 후기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신분의 벽을 넘은 춘향의 사랑

막강한 권력자인 사또 변학도는 춘향에게 수청 들기를 강요하지만, 춘향은 이몽룡에 대한 정절을 내세워 거절한다. 

조선 시대 여성의 정절은 단순한 남녀 관계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족 중에서 남편에 대해 정절을 지키는 열녀가 나온다는 것은 양반에게는 가문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상민에게는 힘겨운 부역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되었으며, 천민에게는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열녀에 대한 유교적 여성관은 점점 바뀌기 시작한다. 

인간 평등과 신분 해방을 주장하는 실학이나 천주교, 동학 등 새로운 사상들이 퍼지면서, 유교 사상에 의해 사회와 격리되었던 여성들이 자신들도 남성과 동등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춘향이 이 도령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여성으로 등장하고, 사또인 변학도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회적 변화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춘향은 계속되는 매질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곤장을 치던 집장사령과 곁에서 지켜보던 아전과 고을 사람들은 춘향을 동정하고 모진 사또를 비난한다. 

춘향의 저항이 백성들의 공감을 이루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춘향의 정절은 여성에게 강요된 유교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작품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권력의 횡포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백성들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침내 춘향은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백성들의 바람대로 천민 여성이라는 신분을 뛰어넘는다.


첫눈에 반한 몽룡과 춘향, 부부의 연을 맺기로 하다 
기생 월매는 남원 고을의 성 참판의 눈에 들어 그의 둘째 부인이 되고, 어여쁜 딸 춘향을 낳는다. 

착하고 곱게 자란 춘향은 열 여섯이 되던 해 단옷날(음력 5월 5일),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다가 남원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 두 사람은 기생의 딸과 사또의 아들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혼인을 하지는 못하지만,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한 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과거시험을 보러 이몽룡이 한양에 간 사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죄로 춘향이 감옥에 갇히다 
그 사이 남원에는 새로운 사또인 변사또가 부임한다. 

변사또는 사또로서 일은 하지 않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춘향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 그에게 부하들은 춘향에게는 이몽룡이라는 정인이 있으며,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간 이몽룡을 춘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준다.

변사또는 그런 사정은 무시하고 무조건 춘향을 데려오라 부하들에게 지시한다.  

춘향은 자신을 보러 오라는 변사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몽룡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변사또는 춘향을 감옥에 가둬버린다.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 변장하여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가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갔던 이몽룡은 장원급제를 하여 전라도 암행어사가 된다. 

변사또의 악행과 춘향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이몽룡은 즉시 남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거지로 변장하여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간다. 

사람들과 변사또는 거지로 변장한 이몽룡을 무시한다.

이몽룡은 계속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사람들이 돌려볼 수 있게 한다.


암탐관오리 무리를 잡고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다 
이몽룡이 지은 시를 본 사람들은 좋지 않은 예감에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오직 변사또만이 술과 흥에 취해 자리를 피하지 못한다.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말과 함께 암행어사 일행과 어사또가 들이닥친다. 

어사또는 변사또가 저지른 부정부패의 증거들을 모으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준다.

어사또는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춘향에게 자신의 수청을 들라고 하지만, 춘향은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어사또의 말을 거절한다.


재회한 춘향이 몽룡과 행복하게 살다 
어사또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보라 춘향에게 명한다. 

춘향은 고개를 들어 어사또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어사또가 바로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몽룡이었기 때문이다. 

춘향과 이몽룡은 눈물의 재회를 한다. 

그 후 이몽룡과 춘향, 월매는 한양으로 올라가 살게 된다.

이몽룡은 더 높은 관직에 올라 나라를 위해 일하고 춘향은 정렬부인이라는 호칭을 받는다. 

춘향과 이몽룡은 그 후로도 백년해로하며 살았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춘향전 역시 그런 경우죠. 춘향전에는 춘향과 이몽룡의 변치 않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랑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춘향은 기생의 딸이고 이몽룡은 춘향이 사는 고을 사또의 아들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이었죠. 

둘은 그 벽을 뛰어넘습니다. 

춘향은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해 이몽룡에 대한 의리를 지킴으로써, 이몽룡은 암행어사가 되어 곤경에 처한 춘향을 구해주는 것으로 이에 비해 변사또는 사또라는 높은 신분과 유식함을 갖고 있음에도 고을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않고 부정부패를 저지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신분보다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바른 마음으로 의리를 지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며 살아갈 때, 우리도 춘향과 이몽룡처럼 우리를 가로막는 벽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가 한글 소설로 정리되어 창작된 것을 말해요. 쉽게 말해, 판소리의 사설(가사)이 소설이 되어 책으로 읽히는 것이지요.

판소리에는 제목 끝에 '-가'가 붙고, 판소리계 소설에는 '-전'이 붙어요. 

예를 들어 판소리 <춘향가>가 소설로 쓰였을 때는 <춘향전>이라고 하고, 판소리 <심청가>가 소설로 쓰였을 때는 <심청전>이라고 한답니다. 

소리꾼과 고수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판소리를 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지요.

판소리는 청중을 직접 앞에 두고 공연을 하므로, 소설에 비해 구성이 보다 극적이에요. 

판소리는 소설에 비해 입말체를 많이 써서 생동감이 넘친답니다.



어느 날 책방에서 학문에 힘쓰다 봄날을 맞아 마음이 들떠서 방자를 불러 고을에서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방자가 대답하기를 남원 광한루() 경치가 그 중 으뜸이라 하자 이도령은 방자를 앞세워 광한루 구경을 갔다.

이때에 기생 춘향()이 댕기 따고 대단치마를 입고서는 흥에 겨워 그네를 타는데 몸을 날려 올라 한번 굴러 공중에 솟구쳐 도화 늘어진 가지 톡톡 차니 꽃잎이 떨어졌다.

도령이 경치를 구경하며 문득 잊은 글귀 생각하다 어떤 미인이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방자에게 물었다. 

"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 선녀가 하강하였나 보다."

이에 방자는 딴청을 피우다 대답했다. 

"그녀는 다름 아니라 본읍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로소이다. " 하고 대답하자 이도령은 방자에게 춘향을 불러오라 일렀다. 

방자가 가서 춘향을 불러 춘향이 광한루 아래 문안을 아뢰고 당상에 오르게 하여 예를 갖추니 도령이 나이와 이름을 묻자 춘향이 아리따운 소리로 나이는 16세요, 이름은 춘향이라고 아뢰었다.

이에 춘향의 모습에 반한 이도령이 말했다. 

"네 이팔이 나의 사사 십육과 정동갑이라.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 네 형용이 이름과 같구나. 절묘하고 어여쁘다. 

썩은 나무에 앉은 부엉이 같고 줄에 앉은 초록 제비로다. 

너를 부른 뜻은 다름 아니니 나도 서울에서 삼월춘풍 화류시 주사청루에 진취하고 절세가인 결연하여 세월을 소견하였거니와 금일 너를 보매 세간 인물이 아니로다. 

정신이 황홀하여 불승탕정이라 탁문군()의 거문고에 월노승을 맺어두고 백년가약을 누릴까 부름이라."

이에 춘향이 대답하였다. "소녀 비록 기생집의 여자이오나 마음은 북극천문에 턱을 걸어 남의 첩이 되지 않기로 맹세하였사오니 도련님의 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이도령이 다시 말했다. "비록 육례는 갖추지 못하나 혼인은 착실한 혼인이 될 것이니 잔말 말고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쭈오되, "만일 허락한 후 사또께옵서 필경 갈리시면 도련님은 올라가고 관대가 성취하여 금슬지락으로 세월을 보낼 적에 날 같은 천첩이야 생각할까. 속절없는 이내 일신 개밥에 도토리 되리니 아무리 하여도 이 말씀 이행치 못할 소이다."

"만일 불행하여 사또께서 경직으로 올라가실 터이면 너를 설마 버리고 갈쏘냐." "그러할진대 후일 상고차로 약속 증서를 써 주십시오."이에 도령이 '모년 모일 불망기라. 우연히 광한루에 올랐다가 천생배필을 만나니 백년가약을 맺기로 언약하니 후에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 이 문서를 보여주고 소송을 하라.' 춘향이 불망기를 접어 비단주머니에 넣은 후에 "이 산너머 한 모롱이 지나가면 벽오동 섰는 곳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도령이 춘향을 홀연 보낸 후에 책방으로 돌아와 정신이 산란하여 진정할 길 없는지라. 마지못하여 서책을 보려고 펼쳐놓은즉, 글자마다 춘향이요 글귀마다 춘향이라. 서책을 아니 읽으면 사또 불호령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동헌 퇴청하기를 기다려 몸을 숨겨 가만히 성을 넘어 방자놈 따라 춘향의 집을 찾아가더라. 

방자 문에서 춘향 어미를 부르니 춘향 어미 나와본즉 책방 도련님이어늘, 가장 놀라는 체하며 이른 말이, 이 어인 일이뇨. 사또께서 아시면 우리 모녀 다 죽을 것이니 돌아가라. 이도령 하는 말이, 관계치 아니하니 바삐 들어가자 한다. 

춘향의 모 마지못해 이도령을 들여 불로초로 빚은 술에 좋은 술을 내오니 이리 소리하며 즐기다가 날이 새면 몸을 빼어 돌아오고 어두우면 조용히 날아가서 자취 없이 다니기를 여러 날이 되었더니 이때 남원 부사 선정 베풂을 임금이 아시고 품계를 높여 호조 판서를 제수 하시고 패초하는 문첩이 내려오니 부사 택일 발행할 새 영을 불러 이르되, 너는 내행을 모시고 먼저 올라가라 하니 도령이 이 말 들으매 낙담상혼하여 목이 메어 겨우 대답하고 내아에 들어가 치행제구를 차리는 체하고 바로 춘향의 집으로 가니 춘향이 목이 메어 울며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이 설움 어이할꼬. 이별이야 평생 처음이요, 다 하건마는 우리같이 설운 이별 또 어디 있을손가. 답답한 이 슬픔을 어이하리." 하며 훌쩍훌쩍 울었다.

비단주머니를 열고 면경()을 주며 왈, 장부의 어엇한 마음 이 면경과 같아서 변치 않으리라 하니 춘향이 역시 옥지환()을 벗어내어 도련님 주며 왈, 계집의 높은 절개는 이 옥지환과 같을지라. 

천만년이 지나도 옥빛이야 변하리까하여 춘향과 눈물로 이별하고 서울을 향할 새 돌아보고 또 돌아보니 한 산 넘어 오리() 되고 한 물 건너 십리 되매 춘향의 형용이 묘연한지라 할 수 없어 장탄식하며 올라갔다.

구관 사또 올라가고 신관 사또 육방관속 현신 받은 후에 이방 불러 분부하되,"본읍에 예쁜 기생이 있느냐" 물으니 이방이 "기생 춘향이 있으나 관아에 딸린 기생의 명부에는 없다"고 하며 구관 사또 자제와 언약이 된 사실을 고하고 춘향이 수절한다 하자 신관 사또 노해서 어린 자식들이 첩을 얻자니 말이 되느냐면서 도임 후에 우선 기생 점고부터 받는지라.

춘향의 이름이 기생 안에 없으니 어인 일이냐 물으니 이방이 춘향은 수절한다 하니 아따, 수절이 어이 있는가 바삐 가서 잡아들이라 하니 관노 사령들이 우당퉁탕 바삐 가서 대문을 박차며 춘향을 잡아 불러들여 물었다.

"네 본읍 기생으로 신관 도임 초에 현신 아니하기를 잘했느냐""소녀는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을 모시는 고로 대령치 못하였나이다. 

""무에야! 너 같은 기생이 수절이라니! 잔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하라." 하니 춘향이 말했다. 

"만 번 죽어도 그것은 못하옵니다."

신관이 크게 화를 내어 춘향을 결박하여 형틀에 앉힌 후 집장에게 분부하여 대매의 허락하도록 매우 쳐라 하니 군노 등이 주장 곤장 도리깨 다 버리고 형장을 눈 위에 번뜻 들어 후려치며 이제도 분부 거역할쏘냐 춘향이 아뢰되, 사또께서 나의 일신을 토막내어 저미거나 오리거나 하실지라도 목은 한양 성내에 보내어주심을 바라나이다. 

신관이, 말이 저런 요악한 년 한 매에 승복하게 하라 하니 점장이 한 번 치고 두 번 치니 백옥 같은 다리에 유혈이 낭자하니 인사불성 하여 죽은 듯한지라 분부하여 하옥시켰다.

이때 서울로 올라간 이도령은 주야로 학업에 힘써 태평과에 장원을 하니 임금은 이도령에게 삼도어사를 제수 하였다. 

이에 사은하고 행색을 새 칠푼짜리 헌 파립에 헌 망건 박쪼가리 관자 달고 물렛줄로 당졸하고 헌 도포에 오푼짜리 무명 동다회를 양지머리에 잔뜩 눌러 띠고, 전주성 안에 들어 여기저기 탐문하고 바라보니 한철 농부들이 일하고 있다.

이어 한 농부에게 "이 고을 원님 정사 어떠하며 민폐나 없으며 또 호색하여 춘향을 수청 들였단 말이 옳은지" 하고 묻자 농부 화를 내어 하는 말이, "철석같이 수절하는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형을 가해 옥에 가두었으니 구관의 아들인지 개아들인지 한번 떠난 후에 종무소식 하니 그런 쇠자식이 어디 있으리오."하고 말했다.

이에 어사가 다시 길을 가다 주막에 들르니 한 노인이 한가로이 흥얼거리고 있자 다시 물었다. 

"이보시오 노인장, 본관이 호색하여 기생 춘향을 작첩하여 호강한단 말이 사실이오?" 하고 묻자 노인이 화를 내면서 "송백 같이 곧은 절개를 가진 춘향에게 누명을 씌우지 마소. 

원님이 음탕하여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형하여 옥귀신을 만드는데 구관의 아들인지 난정의 아들인지 그런 계집은 버려두고 찾질 아니하니 그런 개아들이 어디 있으리오.

"하거늘 이 말을 들은 후 춘향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일각이 여삼추였다.

급히 남원 성중에 들어가 탐문하면서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 행랑채는 쓰러지고 안채는 기울어져 서까래 나발 불고 마당은 개똥판이 되었으니 춘향 어미 탕관에 죽을 쑤며 탄식하거늘 어사 춘향 어미를 부르니 대답하되, 뉘라서 이 심란중에 부르는고 하며 보다가 거지는 눈이 없어 동냥 달라 왔는가. 

어사 웃으며 또 부르니 자세히 보다 얼굴은 도련님이 분명하나 의복은 상거지라. 

다시 급히 춘향 어미와 함께 춘향을 보러 가니 칼머리를 쓰고 있던 춘향이 어사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소연했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서방님 날 살려주오. 명일은 사또 생일이라, 필경 일이 있으리니 칼머리나 들어주오."이에 어사 대답하기를 "어찌하든 염려 말라."

하고 춘향 어미를 따라가 밤을 지새고 이튿날 밝은 낮에 관문 밖에 가서 탐문하니 과연 본관의 생일이라. 

포진 범백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 

어사 문 밖에서 기웃기웃 하다가 문 군사 소피하러 간 사이에 돌입하여 청상에 올라 하는 말이, 내 마침 지나다 오늘날 성찬 음식이나 얻어먹을까 하노라하니 본관은 미안히 여기고 운문 영장은 웃고 하는 말이 또한 예사라. 

좌석에 참례함이 무방하다했다. 

분부하여 음식이 들어올 제 통인에게 분부하여 술상을 저 양반께 드려라. 

하니 통인놈이 부어드리니 어사 받지 않고 "내 가만히 본즉 어떤 데는 기생년으로 술을 드리고 어떤 데는 이 모양으로 얼렁뚱땅하니 어쩐 일이뇨. 

대저 술이란 권주가 없으면 무미하니 기생 중 묘한 년으로 하나 보내오."

본관이 듣고 이르되, 고객()이로다. 

내 운봉의 말을 듣고 고약한 꼴을 본다하고 운봉은 웃고 기생에게 분부하여 아무 년이나 가보아라. 

하니 한 년이 마지못하여 가며 하는 말이, "아니꼬워라. 권주가 없으면 술이 목구멍에 넘어 들어가지 아니하나."하고 술을 부어드리며 억지로 권주가를 불러준다. 

노래가 끝나자 어사가 술상을 받아보니 개다리 헌 소반에 이면이 한 접시요, 경계다리 하나 놓고 양지차돌 곁들였네. 

어사 두 다리로 상을 박차 엎지르고 일어서 그 엎지른 것을 긁어모아 소매에 뭉치어서 좌상을 향하여 뿌리니 본관의 얼굴에 튀었는지라 상을 찡그리고 하는 말이 인사불성이로고하며 운봉을 탓했다. 


어사 하는 말이,

"나도 부모 덕에 글자인지 배웠더니 이런 잔치에 그저 감이 무엄하니 운을 부르면 글귀나 짓고 감이 어떠하뇨.

"좌중 논란이 분분하다가 기름 고() 높을 고() 둘 내고 지필묵을 주니 어사 거침없이 글귀를 짓더라. 일렀으되, 그 글 뜻이 금잔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 사람의 피요, 옥접시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이 흘러 떨어질 제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란 말이었다.

이 글은 대저 사또를 원망하고 백성을 위함이라 암행어사인지 수상히 여긴 운봉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 먼저 간다고 나가고 나자 이내 어사가 역졸에게 분부하여 마패로 삼문 두드리며 암행어사 출두라 하니 일읍이 진동하여 부서지니 해금 저 피리 장구 거문고 등물이라. 

각읍 수령들이 쥐 숨듯 달아날 제 임실 현감은 갓을 옆으로 쓰며 이 갓구멍을 누가 막았는고 하며 전주 형관은 말을 거꾸로 타며 이 말 목이 근본이 없느냐 아무커나 바삐 가자 하고 원님은 강똥 싸고 이방은 기절하고 각 지방의 이방 등은 오줌 싸고 내동헌에도 물똥을 싼다 하니 원님이 떨며 왈, 우리 집안은 똥으로 말한다 할 제 어사 남원 부사를 파직시키고 관가의 창고를 봉해 잠근 후 공사를 처결할 새, 관속의 신상은 대분본하라. 

하고 죄수 춘향을 올리라 하니 옥쇄장이 춘향을 압령하여 들어올 제 춘향이 울며 하는 말이, 우리 서방님더러 칼머리나 들어달라 하였더니, 오늘은 사생간 결단이 날 것이어늘 어디 가서 이 경상을 아니 보는고.

하고 크게 슬피 울었다. 

그러자 형방이 이르되, "어사 사또께서 분부를 내려 오늘부터 너를 수청들이라 하시니 그대로 거행하라."그러나 춘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녀 전등 사또 자제 도련님과 백년가약 하였기로 분부 시행 못하겠삽네다."

그러자 어사가 직접 물었다. 

"너 같은 천기로 무슨 수절이냐. 바삐 거행하라.""소녀를 만단을 내실지라도 마음은 변치 못하리로소이다. 

"어사가 웃으며 "너 같은 절개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하고 말하면서 기생들을 분부하여 춘향의 쓴 칼을 이로 물어뜯어 벗긴 후 "네 나를 보라."

춘향이 마지못하여 살펴보니 의심 없는 낭군이라. 

뛰어올라가며 어사의 소매를 잡고 울며 목이 메어 말을 못하거늘, 어사 옥수를 잡고 만단으로 위로했다. 

이때 춘향의 어미 미음을 가지고 오거늘, 관속들이 치하하니 춘향 어미 이른 말이, 그 어인 말인고하며 삼문 틈으로 디밀어보다가 어사가 바로 옛날 이도령인 것을 알자 뛰어나와 손뼉치며, 얼싸 좋을 시고, 지화자 좋을 시고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음날 어사가 크게 잔치를 배설하고 춘향과 다시 만나 즐거움을 누리다가 공사를 처결하고 춘향 모녀를 데리고 서울에 올라와 임금에게 전후 사정을 아뢴바, 임금이 이를 크게 칭찬하여 "천기로 수절함은 천고에 없는 일이로다" 하고 정렬부인을 내리셨다.



「춘향전」의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춘향전」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여성의 굳은 정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한 채 죽음을 불사하는 춘향의 모습은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유교 윤리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과부의 재가마저 금지한 채 열녀 만들기에 나섰던 양반 사회의 윤리를 「춘향전」은 아주 잘 보여 주었던 것이지요.

「춘향전」의 숨겨진 주제는 무엇일까? 이는 춘향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춘향은 본래 기생 월매와 전임 사또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양반의 피가 흐르기는 했지만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요. 

춘향은 비록 기생이지만 양반의 노리개가 되는 것을 거부한 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신분적인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한 것이지요. 

적어도 민중들은 춘향이 신분적인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춘향이 이몽룡과 혼인하는 설정은 바로 민중의 신분 상승 욕구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 담긴 참된 주제는 신분적 구속에서 벗어난 인간 해방인 것입니다.

탐관오리를 향한 민중의 저항

「춘향전」의 또 다른 주제는 탐관오리에 대한 비판과 저항입니다. 

이몽룡 일가가 떠나고 난 뒤 남원에 새로 부임한 변학도는 조선 후기 부패한 관료의 전형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다른 일은 물려 두고 기생점고부터 시작합니다. 

기생점고란 기생을 하나둘씩 불러서 점검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향락을 일삼을 생각부터 한 것이지요. 

백성은 굶주리는데 생일잔치를 위해 흥청망청하는 모습도 부패한 변학도의 모습을 잘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극적으로는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거지 행색으로 나타나 밥술을 얻어먹으며 쓴 한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금준미주천인혈)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촉루낙시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

위의 시처럼 당시 조선은 부패한 관료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향락만을 일삼고 있었지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춘향이 변학도에게 수청을 거부한 채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는 것은 탐관오리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

「춘향전」은 지배층의 권위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풍자와 해학을 동원합니다. 

웃음은 지배 계층의 권위를 해체하는 기능을 하지요. 

아래 인용문은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모인 양반들이 암행어사가 출두한 직후 허둥대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방 실혼()하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과줄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구라.

「춘향전」 중에서


인용한 부분은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도장 상자인 인궤와 군역을 기록한 장부인 병부는 관청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입니다. 

관리들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물건이지요. 

그 대신 과자와 송편을 든다는 설정이 우리를 웃게 합니다. 

탕건 대신에 술 거르는 통, 용수를 쓴다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설정이지요. 

이처럼 「춘향전」과 같은 판소리 소설들은 해학과 풍자로 부당한 권위를 해체했습니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남원은 예부터 '하늘이 고을을 정해 준 땅이자, 기름진 땅이 백 리에 걸쳐 있는 드넓고 풍요로운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 주고, 남해와 서울로 가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지요. 

해마다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에는 《춘향전》과 관련 있는 명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광한루원

광한루원은 광한루가 있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입니다. 

광한루는 이 도령이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사랑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누각으로, 처음에는 '광통루'라고 불렸지요.

'광한루'라는 이름은 세종 때 유명한 학자인 정인지가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는 바람에 인조 16년(1638)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누각은 사방이 트여 있고 마루를 높여 지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각은 선비들에게 있어 자신을 갈고 닦는 정신적인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선비들은 누각에 모여 글도 짓고, 풍류도 즐기며,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했습니다. 

좋은 경치를 보아야 좋은 글도 지을 수 있다는 이 도령의 말이 그저 핑계만은 아닌 것이지요.


광한루 주위의 연못에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왼쪽 섬은 영주산, 가운데 섬은 봉래산, 오른쪽 섬은 방장산을 나타냅니다. 

섬과 섬 사이는 아담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방장정이 세워져 있습니다.

방장산 옆에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새들이 만들어 주었다는 다리에서 이름을 따온 오작교가 있습니다. 

오작교는 이 도령과 춘향, 견우와 직녀처럼 젊은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하는 장소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다리를 건너곤 합니다.

오작교를 건너 앞쪽으로는 이 도령이 언뜻 본 춘향을 못 잊어서 찾아온 월매 집이 있습니다. 

거지꼴을 한 이 도령이 허겁지겁 향단이 내놓은 밥상을 받던 곳이기도 하지요. 

월매 집에는 당시 생활을 알 수 있는 각종 도구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춘향 이야기, 박색 고개

광한루원을 나와 전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춘향이 이 도령을 보낸 '춘향이 고개'가 있습니다.

이 도령은 과거 시험에 붙어 춘향을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 이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올라가지요. 

춘향이 고개는 '박색 고개'라고도 하는데, 박색은 아주 못생긴 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고개에는 우리가 아는 《춘향전》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춘향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 속 춘향은 《춘향전》의 춘향과는 달리 너무 못생겨서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춘향은 사또 아들을 한 번 본 뒤 마음을 빼앗겨 그리워하지만, 사또 아들은 춘향이 너무 못생겼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춘향은 마음의 병이 들어 숨을 거두고, 그 뒤 남원에는 3년 동안이나 심한 가뭄이 들어서 사람들이 춘향 묘에 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고서야 비가 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별의 무대 오리정

춘향이 고개 너머에는 오리정이라는 누각이 있습니다. 

〈남원고사〉에는 춘향이 한양으로 떠나는 이 도령을 뒤쫓아 이곳까지 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춘향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소이지요.

오리정 주위에는 이 도령이 떠난 뒤 춘향이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어 고인 눈물이 물가를 이루었다는 '춘향이 눈물방죽'이 있습니다. 

춘향이 울면서 버선을 벗어 집어던져 떨어진 곳이라는 '춘향이 버선밭'도



춘향전의 배경 설화

〈춘향전〉의 근원 설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가장 근접한 설화로 알려져 있는 것은 열녀 설화와 암행어사 설화, 신원 설화 세 가지이다.

열녀 설화는 〈삼국사기〉 열전의 〈설씨녀〉, 〈도미처〉 등에서 그 원형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종래의 열녀 설화는 극단적인 정절 관념을 고집하면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춘향전은 정절 관념을 유지하면서도 그 결말이 행복하게 맺어져 기존의 열녀 설화와는 다른 성격을 보인다.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대체로 여성의 수절과 정절을 강조했던 양반들의 유교적 의식과 현실적인 삶의 문제나 정서에 더 긍정적이었던 서민 의식이 타협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행어사 설화는 노진, 김우항, 박문수, 성이성 설화가 대표적인데 대부분 강직하고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 백성들을 수탈하고 폭정을 일삼는 탐관오리를 용기와 지략으로 벌 준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암행어사 설화는 〈춘향전〉 가운데서도 주로 후반부에 관련되는데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수탈로 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민중들의 바람이 암행어사 출두라는 서사적 장치로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원 설화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원통한 고통을 겪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내용을 다룬 설화로 아랑 설화, 향량 설화, 심우경 설화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춘향전〉에서는 변학도의 야욕으로 인해 억울하게 옥에 갇힌 춘향이의 고난을 구원해 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젊은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과 시련, 시련의 극복이라는 〈춘향전〉의 중심 서사 가운데 ‘시련-시련의 극복’이라는 큰 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이도령과 춘향이 계층을 넘어선 사랑을 하는 것으로 보아 염정 설화에서 그 근원을 찾기도 한다. 

염정 설화란 넓게 보아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이에 속하는 작품 대부분은 양반과 기녀처럼 신분이 다른 두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어 흔히 양반-기생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된다. 

대표적인 염정 설화로는 《동야휘집》의 〈성세창 설화〉가 있으며,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각각 양반집 아들과 관기의 딸이라는 신분적 구도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배경 설화론이 대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관탈민녀형 설화가 배경 설화라는 인식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열녀 설화 중에서 ‘도미설화’를 관탈민녀형 설화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나온 주장이다. 

관탈민녀형 설화는 관리의 수탈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본 구조는 ‘(가) 어느 고을에 절개가 굳은 미녀가 있었다. 

(나) 관리는 이 소문을 듣고 그 여인을 범하려고 한다. 

(다) 미녀는 관리의 청을 거절한다.’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춘향전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춘향전〉의 중심 서사는 관탈민녀형 설화에 의존하고 있으며 여기에 열녀 설화와 암행어사 설화가 부분적으로 포함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춘향전〉은 어느 하나의 배경 설화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춘향전〉 내에는 어느 하나의 배경 설화나 원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작품 내에 존재하는 이질적 요소들은 각각 여러 배경 설화들로부터 그 기본 뼈대를 추출해 내어 〈춘향전〉의 구도에 맞게 변형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대목

아니리

만단()으로 개유하니 춘향이 절행()만 도도()한 게 아니라, 효성 또한 지극한 지라. 

저의 모친 말을 거역치 못하여 저의 집으로 돌아갈 제,


진양

비 맞은 제비같이 갈짓자 비틀 걸음 ‘정황없이 들어가서, 제 방으로 들어가며, 향단 발 걷고 문 닫쳐라. 

침상 편시 춘몽 중에 꿈이나 이루어 가시는 도련님을 몽 중에나 상봉하지 생시에는 볼 수가 없구나. 

방 가운데 주저앉아, 아이고 어찌리. 

도련님을 만나기를 꿈 속에서 만났는가. 이별이 꿈인거나. 꿈이거든 깨워주고 생시거든 님을 보세. 

베개 위에 엎드리어 모친이 알까 걱정이 되어 크게 울든 못하고 속으로 느껴 주어, 아이고 언제볼꼬. 우리 도련님이 어디만큼 가겻는고. 어디 가다 주무시는가. 

날 생각고 울음을 우는거나. 

진지를 잡수었는가, 앉았는가, 누웠는가, 자는거나. 

아이고 언제 볼꼬.’ - 임을 이별한 춘향의 슬픔


진양

자탄()으로 밤이 깊어 비몽사몽()간에 도련님이 오시는데, 가시던 그 맵시로 청사()에 홍띠 띠고 만석 당혜() 끌면서 충충충충충충 들어오더니 춘향 방 문고리 잡고 지긋지긋 흔들며, 춘향아 잠자느냐, 내 왔다 문 열어라. 

이삼차 부르되 대답이 없으니, 도련님이 돌아서 발 구르며, 계집이라 하는 것이 무정한 것이로구나. 

나는 저를 잊을 가망이 정히 없어 가다가 도로 회정()을 하였는데, 저는 그 새에 영영 잊고 잠만 저리 깊이 들어 자니, 나는 간다, 잘 살아라. 충충충충 나가거늘, 춘향이 반가와 깜짝 놀라 깨달아 문 펄쩍 열고 바라보니,

도련님 청() 중추막 자락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담뱃불도 반짝반짝하거늘, 도련님을 붙들어 볼 줄로 우루루루 뛰어나서 보니, 도련님이 간 곳 없고 청 중추막도 흔적이 없고 파초잎만 너울너울, 담뱃불도 간 곳 없고 반딧불만 반짝반짝하거늘, 춘향이 기막혀 그 자리 펄썩 주저 앉아, 아이고 허망하여,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신 임을 붙들어 주고 잠든 나를 깨워 주지. 방으로 들어가 촛불로 이웃 삼고 고서()로 벗을 삼아 긴 밤을 지내는데,


중모리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가고 한 달 가고, 날 가고 달 가고 해가 지낼수록 임의 생각이 뼛속에 든다. 

도련님 계실 제는 밤이 짧아 한이더니 도련님 떠나시던 날부터 밤도 길어서 원수로구나. 

도련님 계실 적에 바느질을 하노라면, 도련님은 책상 놓고 소학(), 대학(), 예기(), 춘추(), 모시(), 상서() 이두시()를 역력히 외어 가다, 나를 힐끗 돌아보고 와락 뛰어 달려들어 나의 허리 부여 안고, 얼씨구나 내사랑이지 하던 일도 생각이요, 

그 중 더욱 간절한 게 이배() 기별 오기 전에 주련() 한 장 쓰시기를 시련유죽()에 불개청음대아귀()를 붙여 두고 보라기에 심상히 알았더니 이제 와서 생각을 하니 이별을 당하려고 실참()으로 쓰셨던구나.

행궁견월 상심색( )의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춘풍도리 화개야()에 꽃만 피어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 단장성( )에 비 죽죽 와도 임의 생각, 추절() 가고 동절()이 오면 명사() 벽해()를 바라보고 뚜루루루루 끼룩 울고가는 기러기 소리에도 임의 생각. 앉아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없어 모진 간장()에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끌거나.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이리 앉아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구나.

<춘향전> -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대목'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춘향가 중 유명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적성가() : 이몽룡이 광한루에 구경 왔다가 사면 경치를 보며 사나이의 부푼 마음과 뜻을 한가하게 노래하는 장면으로 느린 진양장단에 화평하고 꿋꿋한 우조 선율로 부른다.


-천자()풀이 : 이몽룡이 춘향이 만날 일을 생각하고 마음이 들떠서 천자문을 읽으며 천자풀이를 한다. 구성진 중중모리장단에 흥겨운 평조 선율로 되었다.


-사랑가 : 이몽룡과 성춘향이 약혼을 하고 부르는 사랑가이다. 사랑가에는 긴 사랑가 · 자진 사랑가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긴사랑가는 느린 진양장단에 우조로 불러 한가한 느낌을 주고, 자진사랑가는 중중모리장단에 ‘추천목’으로 불러 구수한 느낌을 준다.


-이별가() : 성춘향과 이몽룡이 이별하게 되니 성춘향과 춘향 어머니가 이를 애통해 하는 슬픈 대목이다. 성춘향이 부르는 노래는 진양장단에 계면조로 되어 있는데, 춘향이 몽룡에게 하소연하는 슬픈 대목이며, 춘향 어머니가 부르는 대목은 중중모리장단에 계면조로, 춘향 어머니가 통곡하며 이몽룡에게 떼를 쓰는 장면을 적절히 나타내고 있다.

-신연맞이 : 
변학도가 남원부사로 새로 부임되어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광경을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씩씩하고 위엄 있게 노래한다.


-옥중가() : 춘향이 정절을 지키다가 신임사또에게 매를 맞고 옥중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부르는 슬픈 대목이다. 옥중가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천지삼겨’와 ‘쑥대머리’가 유명하다. ‘천지삼겨’는 진양장단에 계면조로, ‘쑥대머리’는 중모리 장단에 계면조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장() : 이몽룡이 과거장에 나가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시가를 행진 하는 위풍당당한 장면을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부른다.


-어사(使)와 장모() :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걸인으로 변장하고 춘향이집에 가서 춘향모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을 그린 대목이다. 중중모리 장단이며 춘향모가 하는 말은 계면조로, 이도령이 하는 말은 경드름으로 부른다.

-어사출도(使) : 남원부사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이도령이 암행어사로서 출도하여 잔치마당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을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부른다. 
매우 극적이고 긴박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춘향전」에서 ‘방자’의 역할도 중요?

「춘향전」의 해학성에 기여하는 인물로 방자를 빼놓을 순 없지요. 

그는 이몽룡의 하인으로서 상전의 위세를 믿고 양반 행세를 하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양반에게도 능청스럽게 구는 등 매우 희극적인 인물입니다. 

<봉산탈춤>의 말뚝이처럼 양반을 조롱하는 인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