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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春香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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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

춘향과 이 도령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한 판소리 작품으로 열두마당의 하나.

개관

춘향가는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춘향가는 근원설화를 바탕으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무렵에 소리판에 등장한 이래 여러 명창의 손을 거쳐 성장하였고, 19세기 중기 이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면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판소리이다.

춘향가는 여러 가지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적층문학()이다. 

대체로 <열녀설화>를 모태로 해서 작품의 전반부가 이루어지고, 전반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식으로 <암행어사설화>를 수용하여 후반부가 이루어져 있다.

주요 플롯 형성에 작용한 설화에는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신원설화()>, <염정설화()> 등이 있다. 

<열녀설화>는 열녀에 관한 설화로서 ‘지리산녀설화’(『동국여지승람(輿)』)와 ‘도미설화’(『삼국사기()』 「열전()」) 등이 있고, <암행어사설화>는 암행어사와 기생 사이에 이루어진 인연을 이야기한 설화로서 『계서야담(西)』 등에 전하는 ‘노진 설화()’, ‘김우항() 설화’, ‘박문수() 설화’, ‘성이성() 설화’ 등이 있다. 

<신원설화>는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혼을 달랬다는 설화로서 남원 지방의 ‘박색녀() 설화’, 밀양 지방의 ‘아랑설화’, ‘심수경() 설화’, ‘춘양타령’(조재삼, 『송남잡지()』) 등이 있으며, <염정설화>는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설화로서 『동야휘집()』에 전하는 ‘성세창() 설화’ 등이 있다.

삽입 플롯 형성에 작용한 설화는 <신물교환설화()>, <수기설화()>, <몽상설화()>, <한시설화()> 등이다. 

<신물교환설화>는 이몽룡과 춘향이 이별할 때 신물로 면경과 옥지환을 주고받은 것의 근원설화로 『동야휘집()』의 ‘홍섬의 이야기’나 ‘조위의 이야기’ 등이 있으며, <수기설화>는 춘향이 이몽룡에게 결연하기 전에 불망기()를 요구하는 것의 근원설화로 『동야휘집()』에 관련 설화가 전한다. 

<몽상설화>는 춘향이 옥중에서 꾼 꿈을 봉사가 해몽해 주는 것의 근원설화로 『지봉유설()』과 『동각잡기()』 등에 전하고, <한시설화>인 “금준미주()······”는 『국조보감()』과 ‘성이성 설화’ 등에 관련 내용이 전한다.

춘향가의 형성에 관한 견해로는 무가() 발생설과 양 진사 창작설, 원곡() 번안설, 문장체 소설 선행설, 한문 소설 부연설 등이 있다. 

판소리의 무가 발생설에 주목하여 춘향가가 ‘춘향굿 단계→춘향소리굿 단계→춘향소리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춘향가에서 파생된 『춘향전()』의 이본은 대략 100여 종 이상이 전하고 있다. 

경판본 춘향전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고, 문장체 소설의 성격이 강하며, 『열녀춘향수절가()』(완판 84장본)는 19세기 말에 불리던 춘향가를 거의 그대로 판각한 것이다. 

『남원고사()』계 춘향전은 서울에 있던 세책가()에서 유통되던 것으로 춘향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데, 그 분량이 무려 10만 자에 이른다. 

『옥중화()』(1912)는 이해조가 박기홍의 춘향가를 산정()한 것으로 그 후에 족출()한 활자본 춘향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용

춘향가는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남원 부사가 내직으로 승차하여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가 춘향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를 내세워 거역하다가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서울로 올라간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호남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남원 부사를 봉고파직() 시키고 춘향을 구출하여 함께 서울로 올라가 행복하게 산다.

춘향가가 민중 예술의 하나로 소리판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충청도 목천()의 만화() 유진한()이 1753년 호남을 여행하면서 춘향가를 듣고 돌아와 이듬해인 1754년에 지은 「가사춘향가이백구()」(『만화집()』)를 통해 춘향가의 등장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춘향가의 기본 줄거리를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18세기 중엽에는 골격을 갖춘 춘향가가 호남 지역에서 널리 불렸고, 양반층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독자적인 예술성을 일정하게 확보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춘향가가 등장한 것은 대략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의 춘향가는 분량도 짧고 소박한 것이었을 것이다.

판소리의 예술적 성장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송흥록, 모흥갑, 고수관, 염계달 등 소위 전기 팔명창()이 활동하던 19세기 중기이다. 

이 시기는 유가행사() 등을 통해 판소리와 양반층의 만남이 보편화되어 판소리의 예술적 기반의 무게 중심이 민중층에서 양반층으로 기울어졌다. 

판소리는 자연스럽게 양반층의 가치관이나 기호에 부합하는 쪽으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그 후 이러한 변모는 더욱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신위(, 1769~1845)·송만재(, 1769~1847)·이유원(, 1814~1888)·윤달선(, 1822~1890) 등 뛰어난 감식안의 소유자들이 판소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관극시()」(신위), 「관우희()」(송만재), 「광한루시」(장지완), 「춘양타령」(조재삼), 「광한루악부()」(윤달선), 「관극팔령()」(이유원) 등에서 춘향가에 관한 시문을 남겼다.

춘향가의 성장과 발전은 역대 판소리 명창들이 창조한 다양한 더늠을 중심축으로 이루어졌다. 

춘향가 더늠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개발되어 양적으로 다른 판소리 작품에 비해 많았다. 

동편제 명창들이 춘향가 더늠을 많이 남겼고, 춘향가 더늠이 춘향가의 성장을 주도했으며, 춘향가 전승의 핵심축을 담당하였다.

춘향가는 역대 명창들의 뛰어난 더늠의 적층적 집적체( )이다. 장자백()의 <광한루경>, 김세종()의 <천자뒤풀이>, 이석순()의 <춘향방사벽도>, 김창록(祿)의 <팔도담배가>, 송광록(祿)의 <긴사랑가>, 고수관()의 <자진사랑가>, 박만순()의 <사랑가>, 모흥갑()·박유전()·성민주()·유공렬()의 <이별가>, 정정렬()의 <신연맞이>, 진채선()의 <기생점고>, 전상국()의 <공방망부사>, 장수철()의 <군로사령>, 조기홍()의 <십장가>, 염계달()의 <남원한량>, 송흥록(祿)·이날치()·한경석()·송재현()·임방울()의 <옥중망부사>, 박만순()의 <옥중몽유가>, 오끗준의 <봉사해몽>, 성창렬()의 <장원급제>, 송업봉()의 <어사남행>, 황호통()의 <만복사불공>, 황해천()·송만갑()의 <농부가>, 강재만()의 <어사와 방자 상봉>, 백점택()·이동백()·김해 김녹주()의 <박석티>, 허금파()의 <옥중상봉>, 임창학()의 <어사출두> 등이 춘향가의 예술 세계를 풍요롭게 했던 주옥같은 더늠들이다. 

그 밖에 김찬업()·박기홍()·김석창()·송수철() 등 춘향가에 뛰어난 명창들도 춘향가 더늠을 가졌을 터이므로 판소리 전성기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춘향가의 더늠이 예원()을 수놓았을 것이다.

춘향가의 더늠 중에는 <긴사랑가>와 같이 그 역사가 오래된 것도 있고, <쑥대머리>처럼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것도 있다. 

<팔도담배가>처럼 오래된 이본에 화석으로 겨우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만복사불공>과 같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도 있으며, 더러는 흔적도 없이 판소리사에서 사라진 것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춘향가에서 불리고 있는 소리 대목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적성가>(진양조장단, 우조), <천자뒤풀이>(중중모리장단, 평조), <긴사랑가>(진양조장단, 우조), <자진사랑가>(중중모리장단, 추천목), <이별가>(진양조장단, 계면조), <신연맞이>(자진모리장단, 우조), <천지삼겨>(진양조장단, 계면조), <쑥대머리>(중머리장단, 계면조), <과거장>(자진모리장단, 우조), <박석틔>(진양조장단, 우조), <어사와 장모>(중중모리장단, 계면조·경드름), <어사출두>(자진모리장단, 우조) 등을 꼽을 수 있다.

등장인물

춘향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춘향은 죽음을 각오하고 정절을 지킴으로써 마침내 사랑을 성취하고 신분을 상승시키는 의지적인 인물이다. 

이 도령은 미숙하고 철없는 책방 도령이었지만 춘향과 이별한 후에는 사랑의 약속에 충실한 남아로 변모하는 인물로 의뭉스럽고 능청스러운 점도 있다. 

신관 사또는 괴팍하고 성질이 급하며 광기조차 있는 인물로 당대 탐관오리의 전형이고, 월매는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하며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창본

판소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질적 양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개인차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서로 다른 창법을 형성하게 되고, 마침내 예술적 표현에 관한 방법론적 차이를 드러내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춘향가의 사설은 대동소이하고, 음악적 구성도 사설의 의미와 정조에 따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더늠의 첨가 등을 통해 독특한 무늬와 빛깔을 지닌 개성적인 춘향가가 창조되면서 세부적인 면에서 짜임새가 다른 바디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완창하는 데 짧게는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바디가 있는가 하면, 길게는 여덟 시간이 걸리는 바디도 나오게 되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춘향가는 동편제로는 송만갑제와 김세종제가 있고, 서편제로는 김창환제와 정정렬제가 있다.

그리고 김연수, 김소희, 박동진 등이 새로 짜서 부르던 춘향가는 송만갑제, 정정렬제 등 여러 바디 중에서 좋은 대목을 골라 재구성한 것이다.

송만갑제 춘향가는 송만갑→박봉래→박봉술로 전승되었는데, 대략 76개의 소리 대목으로 짜여 있다. 

처음부터 제자군 대목까지가 송만갑제이고 <박석티> 이후는 정정렬제가 섞여 있다고 한다. 

<춘향이 방자 따라가는데>, <춘향거동>, <이 도령 꾀병>, <업음질타령>, <말농질>, <백구타령>, <젊은 농부 냅떠서>, <경전야숙>, <벌떼 같은 군로사령>, <수청하던 통인이며> 등 다른 바디에 없는 소리 대목이 10개 정도 있으며, 다른 바디에 있는 <산세타령>, <그때에 향단이>, <일절통곡>, <향단에게 붙들리어>, <내행차 나오는데>, <이 돈이 웬 돈인가>, <돈타령>, <사령 뒤를 따라가다>, <춘향이 다짐받다>와 같은 소리 대목 9개가 빠져 있다. 

대목 수로 볼 때 전체의 1/5 정도가 다르지만 이 대목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구성상 다른 점이 많은 것은 아니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세종→김찬업→정응민→정권진·성우향·조상현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성우향이 부르는 춘향가는 대략 82개의 소리 대목으로 짜여 있다. 

<춘향모 탄식>, <그때 향단이>, <이 돈이 웬 돈인가>, <돈타령>, <춘향이 다짐 받는데>, <어사또 밥 먹는데>와 같이 다른 바디에 없는 6개 소리 대목이 있으며, <이 도령 동헌에 들리는데>, <도련님 먼저 오르시오>, <음식차림>, <백구타령>, <어사술상> 같이 다른 바디에 있는 소리 대목 5개가 없다. 

대목 수로 볼 때 전체의 1/7 정도가 다르지만 이 대목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구성상 다른 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창환제 춘향가는 김창환()이 정창업에게 배운 뒤 신재효() 문하에서 지침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신재효의 『동창춘향가』와 『남창춘향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김창환→김봉학→정광수로 전승된 이 춘향가는 대략 83개의 소리 대목으로 짜여 있다. <금출지내력>, <방자 이 도령의 내력을 말하다>, <방자야 상방에 불 껐나 봐라>, <쑥대머리>, <이 도령 유가>, <촛불 꺼지는데>, <춘향이 정신 차리다>와 같이 다른 바디에 없는 소리 대목이 7개 들어 있고, <궁자타령>, <돈타령>과 같이 다른 바디에 있는 소리 대목 2개가 없다. 대목 수로 볼 때 전체의 1/9 정도가 다르다.

정정렬제 춘향가는 정정렬이 기존의 춘향가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신식() 춘향가로 ‘정정렬 나고 춘향가 새로 났다.’라는 절찬을 받았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정정렬→김여란→박초선·최승희로 이어지는 이 춘향가는 대략 79개의 소리 대목으로 짜여 있다. 다른 바디에 없는 소리 대목은 <춘향몽사>, <춘향 사라지다>, <도련님 그 시부터>, <도련님 듣조시요>, <방자 나가는데>, <하나는 남중 문장재사>, <맷돌타령>, <건장한 두 패조군>, <춘홍이 산홍이>, <말씀 여쭙기는 황송하오나>, <난향이 달래는데>, <춘향이 이 말 듣고>, <본관사또 주인이라>, <고인 불러 삼현 치고>, <운봉이 무변이라> 등 대략 15개 정도이다. 

다른 바디에 있으나 이 바디에 없는 소리 대목은 <기산영수>, <앉었다 일어서>, <백백홍홍>, <춘향 설부화용>, <방자 춘향 부르러 가다>, <네 그른 내력>, <산세타령>, <성참판>, <궁자타령>, <정자타령>, <갈까보다>, <돈타령>, <사령 뒤 따라가다>, <한탄문안>, <어사또 밥 먹는데>, <어사술상>, <뒤풀이> 등 17개에 이른다. 79개의 소리 대목 가운데 32개 대목이 다른 소리 대목으로 짜여 있어 다른 바디와 다른 점이 가장 많다.

김연수제 춘향가는 동초() 김연수(, 1907 ~1974)가 정정렬제 춘향가를 바탕으로 유파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바디를 수용하여 새롭게 짠 춘향가이다. 흔히 동초제 춘향가라고 한다. 김연수는 정정렬이 신식 춘향가를 만들면서 삭제했던 <기산영수>, <앉았다 일어서서>, <백백홍홍>, <춘향의 화용>, <네 그른 내력>, <산세타령>, <적성가> 등 옛 더늠을 다시 수용하였고, <춘향탄생>, <만복사불공>, <옥중상봉> 등 신재효의 춘향가 및 『옥중화』를 수용하였다. 김연수→오정숙→이일주로 이어지는 이 춘향가는 전판을 부르는 데 무려 8시간 정도 걸리는 가장 긴 춘향가이다.

김소희제 춘향가는 만정() 김소희(, 1917 ~1995)가 새롭게 짠 춘향가이다. 흔히 만정제 춘향가 또는 만정판 춘향가라고 한다. 처음부터 <사랑가>까지는 동편제인 김세종제 춘향가를 근간으로 하여 구성하였고, <이별가>부터 끝까지는 서편제인 정정렬제 춘향가를 근간으로 구성하였는데, <사랑가>와 <천자뒤풀이>는 김세종제를 이어받은 정응민제의 것으로 바꾸었다. 이 춘향가는 김소희→신영희·안숙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김창룡()·이동백() 등이 불렀던 중고제 춘향가는 전승이 끊어졌고, 일제강점기에 취입된 유성기 음반에 중고제 춘향가의 일부가 전하고 있다. 이 외에 장자백이나 박기홍 등이 부른 춘향가와 같이 오래전에 불리던 춘향가가 일부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특징 ' 의의

춘향가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서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판소리의 대표작이다. 

춘향가는 화평한 대목·슬픈 대목·위풍당당한 대목·우스운 대목 등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고, 사설의 내용에 맞게 장단과 조가 적절하게 짜여 있으며, 역대 명창들의 다양한 더늠으로 짜여 있다. 

춘향가가 청중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것은 인간의 삶과 민족 정서에 맞는 절실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원한 관심의 대상인 청춘 남녀 사이의 사랑을 작품의 기본 바탕으로 삼고, 신분의 차이로 인한 갈등, 선과 악의 대립, 당대의 사회적인 문제 등을 다루고 있어 서민층은 물론 양반층의 관심을 끌었고, 또한 진한 감동도 줄 수 있었다.

춘향가는 현실적인 소재를 통하여 당대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고, 시대적 모순과 아픔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 

장면 묘사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등장인물들이 현실성있게 생동하는 인물들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과 근대정신의 영향으로 성장하던 서민 의식을 풍부하게 반영하였다.



우리의자랑.


우리는 세계 무대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민족 예술의 하나로 판소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판소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온축()된 우리 민족의 예술적 역량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창()이 주는 귀맛, 절제된 발림이 주는 눈맛, 추임새를 통한 입맛까지 두루 제공하여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백미()로 일컬어지고 있는 〈춘향가〉는 문학적·음악적 그리고 연극적 층위 등 판소리의 모든 층위에서 그 예술성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춘향가〉는 한때 실제 인물설이나 중국 문학 영향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견해가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되었다. 

한 남자에 대해 정조를 지킨다는 열녀 설화,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넋을 달랜다는 신원() 설화, 암행어사가 권력자나 부자의 횡포를 징치()하고 약자의 한()을 풀어준다는 암행어사 설화, 기생과 양반 자제가 사랑한다는 염정 설화, 관리가 평민의 여자를 빼앗으려 한다는 관탈민녀형() 설화 등이 〈춘향가〉의 근원 설화로 탐색되었다. 

이외에 몽상() 설화, 한시() 설화, 신물 교환 설화, 수기() 설화 등도 근원 설화로 제시된 바 있다. 
이 설화들이 〈춘향가〉의 형성에 일정한 몫을 담당하였을 것이지만 이들을 모두 근원 설화로 볼 수는 없다. 

〈춘향가〉의 서사적 골격을 제대로 갖춘 설화를 근원 설화로 보아야 할 터인데, 그에 적실하게 부합되는 단일한 설화가 없으니 문제가 된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춘향가〉는 관탈민녀형 설화를 중심 축으로 하고 여타의 다양한 설화들을 종속 설화로 수용하여 이루어졌다고 이해하면 무방할 듯하다. 
판소리의 무가 기원설()에 주목하여 〈춘향가〉는 ‘근원 설화→춘향가’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춘향굿 단계→춘향소리굿 단계→춘향소리 단계’라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춘향가〉가 민중 예술의 하나로 소리판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충청도 목천() 사람인 만화() 유진한()이 호남을 여행하면서 광대들이 공연하던 〈춘향가〉를 듣고 지은 「가사 춘향가 이백구()」(1754년, 영조 30년)를 통해 〈춘향가〉의 대체적인 등장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춘향가〉의 기본 줄거리를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18세기 중엽에는 이미 골격을 갖춘 〈춘향가〉가 호남 지역에서 널리 불렸으며, 양반층의 관심을 끌 만큼 독자적인 예술성을 일정하게 확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춘향가〉는 이보다 상당히 앞선 시기에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은 대체로 17세기 후반인 숙종 연간의 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춘향가〉는 문학적 층위의 사설도 짧고 거칠었으며, 음악적·연극적 층위에서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소박한 형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