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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와 놀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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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와 놀부. 1

〈흥부와 놀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옛이야기예요. 


착한 동생 흥부와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부가 있는데, 흥부는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서 복을 받고 형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지요.

〈흥부전〉은 다른 옛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어디선가 시작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보태지고 다듬어져 만들어진 것이지요.


〈흥부전〉은 착하고 나쁜 형제가 나오는 옛이야기나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갚은 이야기, 어떤 물건에서 재물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 등이 섞여서 나왔다고 볼 수 있어요. 


〈흥부전〉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옛이야기로 〈방이 설화〉와 〈박 타는 처녀〉를 꼽을 수 있어요.

〈방이 설화〉는 〈흥부전〉과는 반대로 동생이 심술궂고 형이 착해요. 

착한 형은 복을 받고 형을 괴롭힌 나쁜 동생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에요.


〈박 타는 처녀〉는 몽골의 옛 이야기로, 어느 착한 처녀가 제비의 다친 다리를 고쳐 주어 제비가 다음 해에 박씨를 물어다 주었는데 그 안에 온갖 보물이 나와 복을 받는다는 내용이에요. 

〈흥부전〉을 읽고 나서 비슷한 옛이야기를 찾아서 읽어 보는 것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랍니다.



고전소설 <흥부전>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줄거리나 등장인물 등의 변형 없이 원작을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자식이 많은 동생 흥부 식구들이 곡식을 축내는 것이 매우 마땅찮았던 탐욕스러운 놀부는 흥부네를 내쫓는다. 

흥부는 놀부에게 식량을 부탁하러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형수의 밥주걱 매질 세례였다.


흥부는 하는 수 없이 매 값으로 어린 자식들을 먹이고 매를 맞으러 관아에 간다. 

하지만 매 값도 떨어지고 보릿고개를 맞게 된다. 

흥부 식구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오로지 초가집 지붕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짓고 있는 제비 식구들뿐이었다.

어느 날, 흥부는 구렁이가 제비집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구렁이를 내쫓고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구한다.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던 날, 흥부 식구들은 제비 식구들의 안전을 빌고 꼭 돌아오기를 바란다. 


흥부네 제비 식구들은 제비 왕국으로 돌아가 흥부의 은혜를 갚아줄 것을 요청한다.

눈 내리는 겨울이 지나고 꽃들이 개화하는 어느 봄 날, 제비가 흥부네로 돌아와 박씨를 건넨다. 

박이 풍성하게 열리자 흥부네는 박을 자르기 시작한다. 

박죽이라도 해 먹으려 했던 박 속에서 수십 개의 금덩어리가 발견된다.

흥부 식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박을 자른다. 

박에서는 보석, 비단옷, 엽전, 기와집 등이 쏟아져 나오고 흥부는 부자가 된다.


흥부가 부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된 놀부는 흥부를 찾아간다. 

흥부는 놀부에게 구렁이에게 다친 제비를 구해줘서 얻은 박씨로 부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뒤, 다시 고쳐준다. 

강남으로 떠나간 제비를 애타게 기다린다.


놀부 집에도 제비가 돌아와 빨간 박씨를 건넨다. 

놀부의 지붕에도 박꽃이 피고 드디어 박이 열린다. 

부푼 기대를 안고 박을 켜기 시작한 놀부 앞에 나타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호랑이 한 마리였다. 

호랑이는 놀부에게 만 냥을 가져오지 않을 경우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다.

만 냥을 잃게 된 놀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 박을 켜지만 이번에는 용이 나타나 나머지 재산을 모두 빼앗는다. 


망연자실한 놀부 앞에 박이 저절로 열리며 마지막으로 관에서 귀신이 나와 놀부 내외를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용은 불을 뿜어 기와집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놀부는 집과 재산을 모두 잃는다. 

거지가 된 후에야 흥부의 심정을 알게 된 놀부는 깊게 뉘우친다. 

놀부의 소식을 전해들은 흥부는 놀부를 찾아와 같이 살 것을 제안한다. 

두 형제는 서로를 위하며 우애롭게 살아간다.


등장 인물

흥부
선량하고 순박한 인물로, 조선 후기의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착한 행실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현실 감각이 부족하고 경제 관념이 투철하지 못해 무능한 가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욕심 많은 놀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지만 형을 원망하지 않는 착한 동생이다.



놀부
부도덕하고 몰인정하며 심술궂은 인물이다.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경제 활동에 있어서는 성실하고 끈기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물욕이 강하고 형제애가 없는 흥부의 형이다. 

흥부가 제비를 도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다.



흥부 부인
흥부의 아내로, 여리고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생활고에 힘들어하고 자식들이 배를 곯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일방적으로 남편을 원망하거나 몰아세우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며 다독이는 인물이다.


놀부 부인
놀부의 아내로, 남편 못지않은 심술꾼이며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돈 없고 가난한 흥부를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는 등 흥부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제비
이 작품에서 주요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다. 

흥부의 가난을 해결하고 놀부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는 등 작품 내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흥부 아이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이다. 

부모 속도 모르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토끼, 곰, 사슴


흥부가 박을 켤 때 옆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




용, 호랑이, 귀신

놀부가 켠 박에서 나와 놀부를 응징하는 존재이다.

(박을 타는 흥부와 흥부 처의 움직임을 보며) 아이들의 합창 -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박을 타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하는 대사이다. 

‘영차, 영차’ 대신에 ‘엄마, 아빠, 엄마, 아빠’를 반복해 외치는 모습에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들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놀부가 켠 두 번째 박에서 나온 용이 놀부의 남은 재산을 빼앗고 기와집을 부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용이 놀부의 박에서 나온다. 

당시 괴수물이 인기여서 이러한 설정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유행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흥부와 놀부가 박을 켜는 장면에서 판소리가 삽입되어 한 편의 마당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부전》은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이다. 

조선 시대에 지어진 한글 소설이며 판소리계 소설로 작자와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 수 없다. 

욕심 많은 형 놀부와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 흥부의 이야기로, 해학과 풍자가 뛰어나다.


내용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조선 후기 판소리계 소설로, 흥보전·박흥보전()·놀부전·연()의 각()·박흥보가·흥보가·놀부가·박타령 등으로도 불린다.

이본은 필사본으로는 「흥보전」·「박흥보전」·「연의 각」·「흥부전」 등의 이름으로 전하는 30종의 이본이 있고, 판본으로는 20장본과 25장본 2종의 경판본이 있는데, 25장본을 모본으로 하여 20장본이 나왔다.


활자본으로는 신문관본·박문서관본·신구서관본·경성서적조합본·영창서관본·세창서관본·회동서관본·동양서원본·중앙인서관본 등 10종이 전하는데, 

이 중 영창서관본과 세창서관본 중에 ‘연의 각’으로 되어 있는 이본이 있고, 활자본 경성서적조합본은 한문본이다.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렸기 때문에 많은 창본도 다수 전하는데, 「박타령」이란 제목으로 신재효()의 「박타령」, 이선유()의 「박타령」을 비롯하여 4종이 있다. 

「흥보가」란 제명으로 19종의 창본이 있다.

이들 이본들은 경판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판소리적인 서두로 시작되고 있어, 「흥부전」이 판소리 사설의 정착 과정에서 생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본간의 관계를 보면, 경판본과 사본인 일사본() 「흥부전」이 비슷한 내용을 지니고 있으나 경판본이 훨씬 축약되어 있다. 

신재효「박타령」의 독창성이 가장 강하며 다른 이본들은 서로 비슷하다.

신재효본에는 흥부의 착한 행실을 말한 부분,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 나와 오랫동안 빌어먹는 장면 등이 추가되어 있는 반면, 흥부가 매를 대신 맞으러 가는 장면 등은 빠져 있다. 

신재효가 전래의 「흥부가」를 「박타령」으로 개작한 것은 대략 1870년대로 추측되는데, 개작 당시에 신재효의 독창성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신재효의 「박타령」 개작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놀부의 당당한 양반으로의 격상, 흥부의 타락한 인물로의 전락, 작품의 서민적 삶의 발랄성 거세, 또 주제를 다분히 윤리도덕적으로 바꾸어 놓은 점 등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작품의 지역적 배경에 대해서 일사본·신재효본·「연의 각」 등에서는 모두 충청·전라·경상 삼도의 어름이라고 하였는데, 경판본에서는 경상·전라 양도의 어름이라고 하였다. 

경판본에서는 성 없이 놀부·흥부로만 하였는데, 세창서관본에서는 두 형제가 연생원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신재효본에는 박가()로 나온다.

「흥부전」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충청·전라·경상 삼도의 어름에 악하고 사나운 형 놀부와 순하고 착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 


아내와 많은 자식과 함께 쫓겨난 흥부는 할 수 없이 언덕에 움집을 짓고 살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하루는 놀부의 집으로 쌀을 구하러 갔으나 매만 맞고 돌아왔다. 

여러 가지 품팔이를 다해 보아도 먹고 살길이 없어, 대신 매를 맞아 주는 매품팔이를 하나 그것도 안 되었다.

어느 해 봄,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고 사는데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불쌍히 여겨 다리를 매어 주니 고맙다고 날아갔다.

그 이듬해 봄에 돌아올 때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는 그 박씨를 심어 가을에 큰 박을 많이 땄는데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제비 새끼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날려보냈다. 

이듬해 봄에 제비가 가져다 준 박씨를 심어 많은 박을 땄는데 그 속에서 온갖 몹쓸 것이 나와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 

흥부는 이 소식을 듣고 놀부에게 재물을 주어 살게 하고, 그 뒤 놀부도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형제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흥부전」 근원설화에 대하여는 첫째 고유설화, 둘째 고유설화와 외래설화와의 혼합, 셋째 몽고설화, 넷째 불교설화의 네 가지 갈래로 추론되었다. 

그 중에도 몽고의 ‘박타는 처녀 설화’가 「흥부전」과 내용이 비슷하여 가장 가까운 설화로 지목되어 왔다.

「흥부전」의 설화적 골격은 악하고 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형제담, 동물이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보은담, 어떤 물건에서 한없이 재물이 쏟아져 나오는 무한재보담()의 세 이야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설화는 선악형제담으로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흉내내다 실패한다는 모방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 영감」·「소금장수」·「부자 방망이」·「금도끼 은도끼」·「단방귀장수」·「말하는 염소」 등의 구전설화가 동일유형의 설화에 해당한다.

동물보은담에 해당하는 설화로 『육도집경()』의 「방구보은설화()」, 『삼국유사』의 「자라토주설화()」, 구전설화인 「새보은설화」·「사슴보은설화」 등이 있으며 무한재보담으로는 구전설화 「이상한 남」 등이 있다. 


선악형제담·동물보은담·무한재보담이 「흥부전」을 구성하는 3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이야기는 불교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 

「흥부전」의 근원설화에 해당하는 불전설화로는 『현우경()』의 「선구악구설화()」, 『잡비유경()』의 「파각도인설화()」 등을 들 수 있다.

「흥부전」은 원래의 불전설화였을 근원설화가 민간설화로 유출, 전승되는 과정에서 불교적 의미는 탈색되고, 조선 후기의 사회적 배경이나 현실 인식 등을 담아 내면서 발전한 작품이다.


「흥부전」은 조선 후기 서민사회에서 광대·가객 등 서민 예능인들에 의하여 형성된 작품이므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작품을 생성시키고, 향유했던 서민계층의 의식이 잘 투영되어 있다. 

두 주인공인 흥부와 놀부는 당시 서민사회의 일정한 신분적 특징과 유형을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로 투영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흥부와 놀부는 같은 형제이면서도 양반과 천인으로 그 사회적 신분이 상이하게 설정되었다고 보는데, 그 이유를 판소리계 소설의 중요한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작품의 사회사적 의미를 화폐경제의 발달, 천부()의 대두와 물질적 가치관의 성행에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이와는 달리 흥부와 놀부의 신분관계를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했다고 보고, 놀부는 요호부민()의 반영인 반면에, 흥부는 소작의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상실하여 품팔이꾼으로 전락한 영세농민을 반영한 인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견해차가 있어도 「흥부전」이 당시 서민사회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고, 서민계층의 삶과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흥부전」은 대체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소설로서 인과응보적 권선징악의 주제와 사상을 지닌 작품이다. 

이러한 유교적 윤리도덕을 내세우는 것만이 「흥부전」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그 이면에 당시의 급변하는 현실사회에서 몰락한 양반과 아직도 위세를 부리려는 기존 관념이 허망한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서민의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에서도 「흥부전」의 주제는 발견된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옛날 옛날 경상도와 전라도가 맞닿은 어느 고을에 형제가 살았다. 

동생 흥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제 형제를 사랑으로 대했다. 

형 놀부는 욕심이 많아 허구한 날 심술을 부려 대니 한 부모에게서 났지만 성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놀부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흥부가 항상 못마땅했다. 

집안일은 안하고 남 일에만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놀부는 생트집을 잡아 흥부네 식구를 쫓아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흥부와 놀부라는 형제가 살고 있었다. 

동생 흥부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곱고 착했지만, 형인 놀부는 제 욕심만 차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놀부는 남을 돕느라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하는 흥부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제비

쫓겨난 흥부네는 고향 근처 복덕촌에 자리잡고 살았다. 

내외가 밤낮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돈 한 푼 모으지 못했다. 

자식만은 부자여서 한 번에 하나만 낳는 게 아니라 둘씩, 셋씩 낳아 아들만 조르르 스물아홉이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음식 타령을 하며 생떼를 써 댔다.

흥부는 곡식이라도 빌릴 셈으로 관가에 갔다가 죄 지은 사람 대신 곤장을 맞고 돈을 받는 매품 파는 일을 맡게 되었다. 


흥부는 아내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매품을 팔러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벌써 다른 이가 매를 맞고 돈을 받아 갔다는 것이다.

그나마 돈 벌 일이었던 매품도 못 팔게 되자, 결국 흥부는 곡식을 얻으러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형 놀부의 집으로 향한다. 

놀부는 흥부가 살려 달라며 먹을 것을 청하자 몽둥이찜질을 했다. 

흥부가 안채로 도망가자 놀부 아내는 흥부를 나무라며 밥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후려쳤다.


흥부 내외는 서러워 서로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때마침 웬 스님이 흥부네 집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흥부네 사정을 들은 스님은 좋은 집터를 하나 잡아 주고 사라졌다. 

흥부는 스님이 잡아 준 터에 수숫대로 집을 짖고 살았는데, 그 다음부터 흥부네 살림이 차차 나아졌다.


세월이 흘러 봄이 되자, 흥부네 집 처마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들더니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쳤다.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들어와 제비 새끼들을 잡아먹는 것을 본 흥부가 서둘러 구렁이를 쫓아냈으나 겨우 제비 새끼 하나만 구할 수 있었다. 

흥부는 혼자 남은 제비가 가여워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하루는 제비가 날기 연습을 하다 떨어져 그만 발목이 뚝 부러지고 말았다. 

흥부는 명태 껍질과 명주실을 구해다가 부러진 다리를 친친 동여매 주었다.


가을이 되어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 제비 왕에게 사연을 이야기하자, '보은표' 라는 박씨 하나를 흥부에게 갖다 주어 은혜를 갚으라 했다. 

다음 해 봄이 되어 다시 흥부의 집을 찾은 제비는 흥부 앞에 박씨를 떨어뜨려 주었다. 

흥부가 뒤뜰 볕 잘 드는 곳에 땅을 파고 거름을 뿌린 뒤 박씨를 심으니 순이 나고 넝쿨이 되어 쭉쭉 뻗어 나갔다.

팔월 추석이 되어 온갖 음식을 지지는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했다. 

흥부네 집은 서늘한 기운만 가득했다. 


흥부가 박 속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마당 가운데에 박을 놓고 타기 시작하자, 자식 스물아홉이 구경을 하러 좌우로 쭉 늘어섰다.

박이 어찌나 큰지 부부가 마주 서서 노래를 하며 톱질을 했다. 

박을 쪼개니 그 안에서 쌀 나오는 쌀궤, 돈 나오는 돈궤, 귀한 약과 색색의 비단이 나오고, 급기야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대궐 같은 기와집 수백 간을 지어 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져 있었다. 

그렇게 흥부는 하루아침에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다.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놀부는 샘이 나서 슬슬 배가 아파 왔다. 

그래서 그길로 흥부네 집을 찾아갔다. 

놀부는 흥부에게 좋은 대접을 받고 부자가 된 사연을 듣고 나서 돈궤와 화초장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놀부가 집에 가 돈궤를 여니 그 안에 돈은커녕 구렁이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래서 돈궤를 흥부네 집으로 보냈는데 흥부가 열어 보니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놀부는 흥부가 제비 다리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며 저도 제비를 길러 보기로 했다. 

날이면 날마다 밖으로 나가 제비 몰기를 한 끝에 드디어 어느 날 제비 한 쌍이 놀부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았다.

놀부는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 새끼가 떨어지지 않자, 직접 구렁이 노릇을 하며 제비 다리를 똑 부러뜨리고서는 제비 다리에 민어 껍질을 친친 감아 주었다.

가을이 되어 강남으로 돌아간 제비가 놀부의 일을 제비 왕에게 고하자, 제비 왕은 크게 노여워하며 박씨 하나를 놀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이듬해 봄, 놀부는 박씨를 받자 일 년 농사에 쓸 거름을 몽땅 가져다 붓고 박씨를 심었다. 

놀부의 바람대로 커다란 박이 여섯 통 열렸다. 

놀부는 일꾼을 불러다가 톱질을 시작했다.

박이 열릴 때마다 빚 받으러 온 노인, 놀부네 안방에 묘를 쓰겠다는 상제, 거지떼, 사당패 들이 나오더니 갖가지 이유로 놀부에게서 돈을 받아 돌아갔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될 참인데도 놀부는 마지막 박을 탔다.

장군이 나와 놀부의 죄를 일러 주며 목을 부러뜨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놀부는 기절을 하고 만다. 


흥부가 그때 마침 소식을 전해 듣고 나타나 장군 앞에 엎드려 빌었다.

결국 장군은 흥부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돌아갔다. 

놀부가 깨어나 보니 그 많던 재산이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놀부 부부는 흥부에게 용서를 빌었다. 

놀부는 그날부터 좋은 사람이 되었고 흥부는 형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로 형제는 지난 일은 모두 잊고 한 평생을 정답게 잘 지냈다.


돈이 세상을 

《흥부전》의 배경인 조선 후기는 새로운 농업 방식의 등장, 상공업의 발달, 조세 제도의 개혁 등 경제 변화가 많은 시기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제력이 향상되어 부를 쌓은 농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직을 얻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들도 생겨났다. 

부를 쌓은 농민은 돈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도 하고, 몰락한 양반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품을 팔기도 했다. 

기존의 조선 사회가 신분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면, 조선 후기는 점점 돈이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일부 양반층과 부농들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소작농에게 빌려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확한 작물의 일부를 거두어들여 시장에 내다 팔아 이득을 얻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불린 돈으로 다시 토지를 사서 쉽게 재산을 불렸다.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졌다. 

그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화전민, 유랑민이 되어 떠돌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 사회의 경제 변화에서 주목할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화폐의 유통이다. 

국내 상업과 대외 무역이 활기를 더해 감에 따라 금속 화폐가 필요해지자 숙종 4년에 '상평통보'라는 화폐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 많은 화폐가 발행되어 17세기 말에는 전국적으로 유통되기에 이른다. 

화폐의 유통은 물건을 사고파는 교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양반 지배층이 재산을 늘리거나 고리대금업을 할 목적으로 화폐를 창고에 쌓아 두어 시중에 화폐 유통량이 부족해지기도 했다. 

이럴 경우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돈을 구하지 못해 생활은 어려워졌다.

《흥부전》에는 이러한 조선 후기 백성들의 생활 모습과 경제 관념, 사회 구조의 모순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상속 제도

조선 초기만 해도 재산 상속은 아들과 딸, 맏아들과 그 외 자녀의 구별 없이 균등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속 제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변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지배층에 대한 신뢰를 잃은 백성들은 신분 제도가 갖고 있는 모순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에 불안해진 양반 지배층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신분 제도를 중심으로 상하 계층의 역할과 경계를 분명히 하는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통치 질서를 강화해 나간다. 


예법과 제사를 훨씬 강조하게 되었고, 17세기 이후에는 딸은 제사를 지낼 수 없었고 아들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맏아들에게 상속이 집중되었다.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며 빈털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흥부가 맏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이미 잘사는 놀부와 못사는 흥부 같이 경제적 격차가 심한 형제가 많이 나타났다.


《흥부전》은 흥부의 비참하고 어려운 상황을 다룬 장면에서조차 익살과 웃음이 넘쳐 난다. 

흥부의 가난은 당시의 이야기꾼이나 소리꾼에 의해 슬프고 우울한 것이 아닌 과장되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유쾌하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웃음은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 보려는 백성들의 건강한 삶의 의지를 나타낸다.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제비가 도움을 준다는 초현실적 방법으로 부자가 된 흥부의 이야기는 부를 꿈꾸는 수많은 백성들을 대리 만족시켰다. 

놀부가 호되게 매운맛을 볼 때면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며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사람들은 《흥부전》을 통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통쾌함을 느끼고, 팍팍한 삶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강남 갔던 제비, 

판소리 《흥부전》 중 <제비 노정기>는 강남에서 박씨를 물고 흥부네 집까지 오는 제비의 여정을 차례로 담고 있습니다. 

《흥부전》에 나오는 강남이 중국 양쯔 강 이남의 화남 지방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10세기 이후 중국의 도시는 화북 지방보다 화중과 화남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화남 지방은 따뜻한 기후와 해상 무역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지요. 

우리나라 선비들에게도 화남 지방은 이상향으로 손꼽혀 온 도시였습니다.

강남
제비는 따뜻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는 여름 철새입니다. 

제비의 습성을 떠올려 보면 강남은 제비가 찾아가는 따뜻한 곳, 풍요로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흥부전》에서 묘사되는 강남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제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비들의 왕국으로 그려집니다. 

흥부가 구해 준 제비는 제비 왕에게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고 박씨를 하나 받게 되는데, 그 박씨로 인해 흥부는 가난을 해결하고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비의 왕국인 강남은 보은과 풍족함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남은 '물의 건너편'을 뜻하기도 합니다. 

물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다시 태어남, 깨끗함, 신비로움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흔히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강이 흘러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로 나뉜다고 여겼습니다.

이때 강의 건너편은 죽음과 부활, 탄생을 모두 포함하는 신의 공간이라고 보았습니다. 

제비가 물어 온 박씨의 신비한 능력을 생각하면, 강남의 의미를 초월적인 힘을 갖고 있는 신의 세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착한 흥부는 복을 받고 나쁜 놀부는 벌을 받는다는 흥부전. 

동화책이나 이야기로도 많이 접해본 이야기이기 때문에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흥부전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메시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식구들 먹일 음식이 없어 괴로워하던 흥부는 급기야 죄인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아주고 돈을 받는 ‘매품’이라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서민들이 살아남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는 점과, 형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패한 사회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흥부전의 화자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계속 낳는 흥부 부부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서 그들을 풍자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의 모습과 흥부로 대표되는 우매한 자의 모습, 놀부로 대표할 수 있는 탐욕스러운 자 모두 흥부전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흥부가 대책도 없이 너무 많은 아이를 낳았다고 비판하기도 해요.


박은 덩굴을 치면서 자라는 풀이에요. 줄기와 잎 전체가 잔털로 덮여 있고 줄기가 변한 덩굴손이 있어서 다른 물건을 감고 올라가요. 

여름에 흰 꽃이 피는데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 햇살이 나면 시드는 특징이 있어요.

가을에 덜 여문 박을 따서 속을 긁어 내어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어요. 

박을 두 쪽으로 쪼갠 다음 말려서 바가지로 만들어 쓰기도 한답니다.


흥부와 놀부' 가사 악보

흥부와 놀부 악보

1.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흥부 놀부 살았다네 
맘씨 고운 흥부는 제비 다리 고쳐 주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주렁주렁 열렸네 복 바가지 열렸네 
톱질 하세 톱질 하세 슬근 슬근 톱질 하세 
하나 켜면 금 나오고 둘을 켜면 은 나오고

2.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흥부 놀부 살았다네 
심술 궂은 놀부는 제비 다리 다쳐 놓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주렁주렁 열렸네 헛 바가지 열렸네 
톱질 하세 톱질 하세 슬근 슬근 톱질 하세 
셋을 켜도 금은 없고 넷을 켜도 은은 없고

 '흥부와 놀부' 계이름 악보

흥부와 놀부 계이름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