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 Argentin.
아르헨티나는 신대륙 발견에서 반세기쯤 지난 16세기 중엽 이후 에스파냐 사람들에 의한 식민이 시작되었으며, 16세기 말부터 식민지 건설을 본격화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건설의 기초가 다져졌다.
식민사업은 페루에서 남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북서부부터 시작되었으며, 17세기까지 13개의 에스파냐인 도시가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유럽인보다 인디오가 더 많았고, 광물자원도 적었기 때문에 에스파냐 정부가 그곳을 소홀히 하여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19세기 초, 유럽 시민혁명(市民革命)의 영향과 함께 나폴레옹군의 에스파냐 본국 정복 등이 동기가 되어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1810.5).
그후 내란을 거쳐 1816년 7월 9일 투쿠만 회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하는 중앙집권적 공화국(라플라타 合州國)의 성립을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아르헨티나의 독립과 통일이 달성되었다.
아르헨티나 공화국 최초의 헌법은 미국헌법을 본뜬 것으로 1825년에 제정되었다.
1853년 현행 헌법이 제정되어 1860·1866·1898년에 개정되었으며, 페론 대통령 시대인 1948년에 새 헌법으로 바뀌었으나 1957년에 부활되었다.
공화국이 된 후로 아르헨티나는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쟁(政爭)과 내란, 혁명을 되풀이하였으며, 1864∼1870년에는 파라과이와의 전쟁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하였다.
19세기 말부터는 유럽계 자본이 유입되고 프랑스·이탈리아·독일계의 이민이 활발해짐에 따라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 나라에도 큰 영향을 주어, 일부에서는 파시스트 지지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중립방침이 지켜졌다.
전후에는 전시내각의 노동장관인 페론이 실권을 잡았으며, 그는 1946년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정책은 ‘사회적 정의·경제적 자유·정치적 독립’을 슬로건으로 하는 국가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노동자의 극단적인 보호, 사회보장제도 및 사회복지시설의 확충, 외국자본의 추방, 공익사업 및 중요산업의 국유화(國有化), 중화학공업을 기간으로 하는 산업육성 등 국력의 증진과 사회주의화를 기도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완전한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나중에 국민의 반감을 사서 1955년에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였으며, 그 뒤에는 민정(民政)과 쿠데타에 의한 군정(軍政) 등으로 정권교체가 잇달았다.
1970년까지 15년 동안 공식 선거로 취임한 대통령은 프론디시(1958)와 일리아(1963)뿐이었으며, 쿠데타와 정권교체가 잦아 임기를 채운 정권이 없었다.
1966년 쿠데타로 일리아 정권을 넘어뜨린 전 육군사령관 옹가니아는 국회·지방의회·정당 등을 해산시키고 불안정한 정정(政情)을 군사체제로 극복하려고 하였으나, 군부내의 의견 불일치 때문에 1970년에 권좌(權座)에서 쫓겨났다.
그후 반정부세력의 테러리즘이 활발해졌으며, 1973년에는 정치역량이 뛰어난 페론이 다시 대통령이 되고 이사벨 부인이 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74년에 고령의 페론이 죽자, 이사벨이 그 뒤를 이어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1976년 3월의 쿠데타로 이사벨도 실각하고, 비델라 군사평의회의장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비델라 정권은 곧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실상 헌법을 정지시켰으며, 페론파(派)를 탄압, 반정부활동을 억압하고 통치력 강화에 주력하였다.
경제자유주의 노선을 실시하고, 외화(外貨)의 적극적 도입과 경제협력의 촉진을 내용으로 한 외화법(外貨法)을 제정하였으며, 1977년 9월에는 국유회사의 민간불하방침을 정하는 등 경제부흥을 지향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하였다.
1981년 3월에는 비올라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8개월 만에 사임하고, 그해 12월 레오폴드 갈티에리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에 올랐다.
1982년 4월에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전쟁을 벌인 끝에 175일 만에 패전하였으며 심각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982년 7월 비뇨네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국민들의 민정이양 요구에 굴복하여 1983년 10월 총선거를 실시, 같은해 12월 급진당의 알폰신 라울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민간정부가 출범하였고, 1989년 7월 페론당(정의당)의 카를로스 사울 메넴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미 달러와 페소화의 환율를 1:1로 고정 시킨 태환 정책과 시장개방조치 단행 등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한편, 전기, 철도, 수도, 석유, 항공 등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1994년 8월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변경하여 1995. 5월에 재선에 성공하였다. 집권 2기에 들어 방만한 경제운영으로 재정적자 확대를 초래하였다.
1999년 12월 라디깔당(UCR)과 Frepaso당의 연합야당(Alianza) 후보인 들라루아(Fernando de la Rua) 대통령이 취임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경제정책 실패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긴축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예금인출 제한조치가 실시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시위가 발생하여 2001년 12월 20일에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결국 12월 24일에 아르헨티나는 1,32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상환유예(moratorium) 선언으로 국가 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1년 12월 31일 선출된 두할데(Eduardo Duhalde) 대통령은 경제사정 악화에 따른 사회불안과 IMF와의 교섭부진 등 총체적 위기가 극에 달하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2003년 4월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페론당 내 개혁좌파성향의 키르츠네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멕시코와 더불어 중남미 지역경제의 삼각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이다.
브라질과 함께 전체 남미지역 국민총생산의 70%를 차지하고 또한 남미 최대 경제블록인 메르코수르의 리더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1년 12월에 발생한 경제위기와 페소화 평가절하 조치로 경제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으나, 2003년~2004년 경제가 급속도로 반등하면서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농목축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이며, 10%를 차지하는 농지에는 옥수수를 비롯한 사료작물과 목초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
농목축업 생산의 중추지역은 팜파스이며, 비옥한 팜파스는 아르헨티나가 보유하는 부(富)의 최대원천이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후반에 세계시장에서 활약하여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그러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산업혁명 후 유럽 국가들의 식료품 수요가 급증하였을 때 자국의 진로를 이 거대한 시장의 식료품 공급국으로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제1차 산업국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광대하고 비옥한 국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매년 8천만 톤 이상의 곡물을 생산한다.
주요 농산물은 밀·보리·귀리 등의 맥류와 옥수수·아마·목화·목초류(온대 및 아열대성의 것이 중심)·고구마 등이며, 북반구의 단경기(端境期)에 곡물이 출하된다는 이점이 있다.
목축업은 농업의 최대부문으로 매우 활발하며, 소·양·돼지의 고기, 원피(原皮)·양모가 곡물 및 그 가공품과 함께 이 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이다.
특히 육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육류가 풍부하기 때문에 국민 1인당 식육소비량은 연간 190kg이다.
콩·콩기름·콩가루, 해바라기 기름, 레몬·레몬즙, 꿀, 배, 옥수수, 수수, 마늘, 우유분말, 포도즙, 소고기 등은 세계 1~3위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의 급속한 경제성장 및 중산층의 확대로 아르헨티나산 콩 및 콩기름의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전통적인 농사패턴에 변화가 일고 있다.
많은 목축 농장주들이 축산농장을 갈아엎고 콩을 재배하는 등 목장 개조 붐이 불고 있고, 다른 곡물도 콩 재배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아르헨티나는 각각 세계 3위의 콩 및 콩기름 생산국이면서, 콩이나 콩기름을 좋아하지 않는 아르헨티나는 거의 전량을 수출함으로써 세계에서 콩기름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콩은 식량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대체에너지원으로서 특히 바이오디젤 원료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수산업은 고기가 풍부하므로 생선 수요가 적어 부진한 편이다.
임업에서는 차코 지방의 케브라초가 타닌의 원료로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광업은 파타고니아 지방의 석유, 리오네그로주(州)의 철광석, 파타고니아 지방 남단의 석탄 등의 개발이 행해진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6대 광물자원 보유국으로 금, 은, 구리, 납 ,아연 등 광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매장 가능지역의 75%가 아직 미탐사 상태라 개발 잠재력이 매우 크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남미 지역 원유생산 3위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천연가스 생산도 남미 1위다.
근대공업은 축산물의 가공업과 섬유공업이 중심이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수입 강재(鋼材)가 가공된다.
2010년 아르헨티나의 총 수출액은 685억 달러이고, 총 수입액은 564억 달러이며, 121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558억 달러의 수출과 447억 달러의 수입으로 110억 달러의 흑자를, 2006년에는 총 수출액은 466억 달러이고, 총 수입액은 316억 9000달러를 기록하였다.
아르헨티나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수입이 314억 달러에서 90억 달러로 28.7% 감소하였으나, 2003년부터 수입이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2003년에 수입 대체 움직임이 있었으나 2002년 수입 급감(중단)에 따른 재고부족으로 130억 달러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며, 2004년부터 산업경기 진작과 수출호조에 따른 자본재, 원자재, 중간재 중심으로 수입수요가 이어져 수입 급증세를 보였다.
2009년 기준 아르헨티나의 주요 수출 국가는 브라질 18.78 %, 중국 9.26 %, 칠레 7.11 %, 미국 6.38 % 순 이고 주요 수입 국가는 브라질 31.12 %, 미국 13.69 %, 중국 10.26 %, 독일 4.69 % 순 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밀가루, 석유, 대두, 대두유, 밀, 옥수수, 가솔린, 소고기, 천연가스, 디젤트럭, 동, 해바라기 기름, 자동차 등이고, 주요 수입품목은 유가증권, 자동차 및 동 부품, 휴대폰, 경유, 트랙터, 천연가스, 휘발유 등이다.
아르헨티나의 2010년 총 GDP는 5,960억 달러이고 1인당 GDP는 1만 4700 달러이다. 경제 성장률은 7.5%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7.9%를, 인플레이션률은 22%를 기록하였다.
1999년부터 4년간 경기침체 영향으로 -21.5%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보이던 아르헨티나는 키르츠네르 정부가 집권한 2003년 이후 국제 경제 환경이 유리하게 적용하여 연 7~8%의 높은 성장률이 있었으나 2008년 하반기 이후에 여러 경제적 상황의 악화로 인해 침체하였다.
아르헨티나의 교육 체제는 유아교육(2~5세), 일반 기초교육(9년), 중등교육(3년), 대학(5년)으로 나누어진다.
일반기초교육은 의무교육이며, 중등교육은 본인의 진로에 따라 진학과 기술, 상업 등의 과정을 선택하여 진학한다.
대학은 약 4백여 개가 있으며 철저한 졸업 정원제로 입학 학생의 20% 정도만 졸업한다.
2004년 기준으로 성인의 문맹률은 2.8%으로 남미 전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전화 보급률은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2005년 현재 유선전화 사용자수가 880만 명,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2,210만 명에 달한다.
국영 TV방송국은 1951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설되었고, 그 후 생겨난 TV방송국도 대부분 국가가 감독한다. 1997년 현재 42개 TV방송국이 있다.
라디오의 경우, 1998년 현재 AM이 260 개FM이 1000개(대부분 미인가) 정도의 방송국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인터넷 국가코드는 .ar이다. 인터넷 호스트 수는 2006년 현재 6억 1,200만 개이고, 인터넷 사용자수는 2005년 현재 약 1,000만 명에 달한다.
농업이 중심이 된 산업구조로서 첨단산업 분야에서 부각될만한 기술수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핵분야와 일부 항공산업은 상당한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상 수상자 5인을 배출하였으며, 볼펜, 헬리콥터, 만화(Animation) 영화 등은 아르헨티나인이 최초 발명, 특허를 받았다.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1962년 2월 15일에 국교를 수립하여 현재 상호 대사관을 개설하고 있다.
북한과는 1973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북한공관 방화사건 후 1977년 북한 공관원 전원이 무단 철수하였으며 같은 해 6월 아르헨티나 정부가 북한에 대하여 단교 조치를 내렸다.
"한국과는 1968년 문화협정, 1972년 발명특허권 보호협정, 1980년 경제·과학 및 기술협력협정, 1981년 무역협정, 1992년 복수상용비자협정, 1994년 투자보장협정, 1995년 범죄인 인도협정, 1996년 원자력 협정 및 항공업무협력 협정, 2003년 과학기술협력협정, 2003년 수산기술협력 약정체결, 2003년 일반여권 비자 면제 시행, 2004년 외교관/관용 여권 비자면제 협정(교환각서), 2004년 경제무역협력협정 및 개정문화협정 서명(기타, 9개 경제관련 약정 서명) 등을 체결하였다.
2006년 4월에는 주 아르헨티나 대사관 내에 남미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남미자원협력센터가 설립되었다.
이는 2004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의 남미순방 이후 남미국가들과의 자원협력 추진을 위한 후속조치 차원에서 창설된 것이다.
2005년 현재 대한(對韓) 수입은 3억 9000만 달러, 대한 수출은 3억 7154만 달러이다.
주요 대한 수입품은 전자, 전기제품 등이고, 주요 대한 수출품은 사료, 피혁 등이다.
2004년 기준으로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33개국 중 한국의 11위 수출 대상국(멕시코, 브라질, 파나마, 바하마, 칠레, 버뮤다,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다음)이고, 4위 수입대상국(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다음)이다.
아르헨티나의 영토, 인구 규모, 자연자원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교역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대 아르헨티나 수출은 1997년도에 6억3천만 달러를 정점으로,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 침체로 하락추세를 보이다가 2003년부터 다시 증가하여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높은 회복세를 기록하였다.
2001년까지 전자제품(가전 및 산전) 및 전자부품과 자동차 및 직물, 일반기계류 등이 우리나라의 대 아르헨티나 수출을 주도해 왔으나, 2002년부터는 석유화학제품 및 정밀화 학제품이 주력품목으로 부상중이다.
우리나라의 대아르헨티나 주요 수입품목으로는 원유, 사료, 동광, 대두유, 알루미늄괴, 박류, 옥수수 등이 있으며 이러한 1차산품이 대 아르헨티나 수입액 중 90% 이상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원유 수입이 2001년에 이어 2002년에도 1억 달러를 상회하고 2003년에도 2억 달러 넘게 수입되었으나 2004년 들어 3천만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아르헨티나에는 2006년 현재 3,000여 명의 교민과 1만 2,500여 명의 체류자가 있다. 약 2만여 명에 달하는 한국교포들은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온세(Once), 아베쟈네다(Avellaneda), 플로레스(Flores, 일명 109촌) 등 3개 지역에 밀집해 있다.
한국 교민 대부분이 원단생산, 의류 봉제, 도.소매업, 수입업 등 섬유 및 의류에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의류시장의 4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철도는 2005년 현재 총연장 3만 1902 ㎞로, 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정비되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였으나, 페론 대통령 집권기에 국유화된 후부터는 경영의 불합리로 시설개선을 위한 충분한 자재를 확보하지 못하여 노후화하였다.
1883년에 안데스를 넘는 철도가 개통되어 칠레와 연결이 가능해졌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한 팜파스의 방사상(放射狀) 철도망은, 수도를 비롯한 여러 도시와 휴양지의 웅장한 건축물과 함께 지난날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영토가 광대하기 때문에 항공은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며, 전국적으로 공항 1,381개(2006년)가 있다.
자동차교통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도로망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도로는 2004년 현재 총 22만 9114㎞이고, 그 중 8만 8809km가 포장된 도로이며 고속도로는 734km에 달한다.
수로는 2006년 현재 총연장이 1만 1000km이다.
아르헨티나의 국토 면적은 276만 6,890 ㎢로 세계 8위이다.
이는 한반도(22.2만 ㎢)의 약 12.5배, 남한(9.9만㎢)의 약 28배 크기에 해당한다.
전 국토의 61%가 비옥한 경작가능지인 팜파스(Pampa) 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아르헨티나의 북쪽은 볼리비아, 북동쪽은 우루과이·브라질·파라과이, 서쪽은 칠레와 접하고 남동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최대 남북길이 3,700km, 최대 동서길이 1,700km이다.
광대한 국토의 서부에는 안데스산맥이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뻗어 있다.
북쪽은 회귀선(回歸線) 부근에서 남쪽은 아한대의 티에라델푸에고섬까지 이르는 범위이기 때문에 지형·기후·식물 등도 지역차가 매우 크다.
자연적 조건으로 보아 안데스산맥, 남부의 파타고니아 고원, 중앙부의 팜파스 평원, 안데스와 팜파스 사이를 차지하는 산록 건조분지(山麓乾燥盆地), 북부의 미시오네스 고원과 차코 저지로 나누어진다.
안데스 산맥은 북반부가 높아 6,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많으며, 남아메리카의 최고봉 아콩카과산(6,959m)도 이곳에 있다.
남단부에서는 해발고도 1,000m 부근까지 빙하가 내려와 있다.
파타고니아 대지는 지역이 넓은 반건조성 초원과 관목(灌木)으로 덮여 있고 안데스 산록 가까이에는 사막 상태를 이룬 곳이 많다.
안데스와 팜파스의 중간을 차지하는 산록 건조분지는 남북으로 뻗어 있는 사막지대로, 안데스에서 발원한 하천과 많은 샘 때문에 산록에는 많은 오아시스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km의 반원을 그리며 펼쳐진 대초원(大草原) 팜파스(Pampas, 면적 60만㎢)는 구릉이 전혀 없는, 망망대해같이 평탄한 평원이다.
반원의 중앙부는 기후도 온화하고 강수량도 많아 습윤(濕潤) 팜파스라고 불리며 주변지대(건조 팜파스)로 향할수록 건조도가 심해진다.
이 지역은 비옥한 팜파스 토양이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팜파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흑토지대 및 미국 옥수수지대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지에 속한다.
북부의 차코 저지는 사바나 기후로, 하천을 따라 회랑(回廊) 또는 섬 모양으로 숲이 분포하고 관목들이 섞여 있는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우기에는 온통 ‘진흙의 바다’로 변한다.
미시오네스 고원은 브라질 고원의 일부이며, 열대우림에 뒤덮여 있다.
국토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펼쳐져서 위도에 따른 기온차가 크다.
전반적으로 북부는 아열대, 중부는 온대, 남부는 한대(남극) 기후특징을 보인다.
중앙지역은 평균기온 18℃로 살기에 좋으며, 안데스 지방과 파타고니아 남부는 일반적으로 한랭하다. 아르헨티나는 10~3월이 우기이고, 4~9월이 건기에 해당된다.
'나라.역사,(국외) 각지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바다 주,Nevada . (0) | 2018.04.12 |
---|---|
러시아. Russia, Russian Federation. (0) | 2018.03.13 |
멕시코 . Mexico. 1 (0) | 2018.03.11 |
멕시코 . Mexico. (0) | 2018.03.11 |
흉노. (0) | 2018.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