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는 1521년 에스파냐인(人)에게 정복되기 훨씬 이전부터 원주민 인디언에 의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미 BC 2000년 경 옥수수 농사를 기반으로 한 촌락이 각지에 발달하였으며, 기원 전후에 이르러서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우아칸에 태양과 달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구축되었고, 이것을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멕시코는 2006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11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1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인구대국에 포함된다.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국토의 14%를 차지하는 중앙고원에는 전 인구의 45%가 거주하는 데 비해, 북부 태평양지역은 국토의 21%를 차지하는데도 거주민은 전 인구의 8%에 불과하다.
전 인구의 약 76%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수도인 멕시코시티에는 약 1,941만 명(2005년)이 거주하고 있어, 일본의 도쿄 대도시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대도시권이 형성되어 있다.
인구 추계에 따르면 멕시코의 전체 인구는 2025년 경에 1억 3천만 명, 2050년 경에는 1억 4천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16%이며, 평균수명은 75.4세(남자 72.6세, 여자 78.3세)이고, 15세 미만 인구의 비중이 30.6%에 달해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를 보인다.
조출생률과 조사망률은 각각 인구 1,000명당 20.7명과 4.7명이고, 합계출산율은 2.4명이다.
주민은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족인 메스티소가 60%, 인디언이 30%, 에스파냐계(系) 백인이 9%이고, 그밖에 물라토, 삼보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다.
에스파냐어(語)가 국어이지만 인디언들은 아직 나우아틀·마야, 아스테카, 사포테카 등 그들 고유의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한다.
전국민의 89%가 에스파냐 통치시대에 보급된 로마가톨릭교를 신봉하며 나머지는 기독교, 샤머니즘 등을 신봉한다.
멕시코 중앙고원의 톨텍, 마야에 뒤이은 치첸이차, 욱스말 등의 후기 고전문명이 융성하였으며, 멕시코분지 일대에서는 아스텍제국(帝國)이 일어나 1325~1521년까지 약 200년간 테스코코호(湖) 주변을 도읍으로 번영을 누렸다.
1521년 8월 에스파냐 탐험대의 장군 코르테스에게 정복된 후 300년 동안, 에스파냐의 ‘누에바에스파냐’로서 에스파냐의 부왕(副王)이 통치한 식민지 시대가 전개되었다.
16세기는 식민과 포교(布敎)의 시기, 17세기는 혼혈화가 진전된 시기, 그리고 18세기는 고유의 혼혈문화를 형성하여 독립의 기운을 북돋운 시기이다.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은 1810년 9월 16일 혁명적 애국자인 미구엘 이달고의 유명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을 계기로 기운이 일기 시작하여, 1821년 멕시코의 독립을 인정한 코르도바 협정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독립 이후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전제정치로부터 공화제로 이행하여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중앙집권주의파와 연방주의파의 대립이 심하여 혼란에 빠졌다.
1846년의 실정(失政)은 미국과의 전쟁을 초래하여, 2년 후에는 영토의 북부를 상실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연방주의파는 인디언 출신의 베니토 후아레스를 대통령으로 하여 자유주의 헌법을 반포하고,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단행하여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이른바 레포르마(개혁)를 달성하고 근대화를 지향하였다.
1861년 외채(外債) 지불문제로 무력간섭이 비롯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막시밀리안이 괴뢰황제(傀儡皇帝)로 부임했으나 총살당함으로써 간섭정치는 종지부를 찍었다.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등장했으나, 대토지소유제 강화가 기폭제가 되어 1910년 11월 20일 멕시코 혁명으로 돌입하였다.
1917년 2월 5일 국가의 권리와 농민·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혁신적인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오늘날 멕시코의 근대국가로서의 번영은 이 신헌법을 바탕으로 구축된 것이다.
‘아시엔다’라 불리던 대토지 소유제도는 농지개혁으로 무너졌다.
이후 1934년 취임한 대통령 카르데나스에 의하여 집단농장의 창설, 멕시코노동자총연합(CTM)의 결성, 석유업의 국유화 등이 추진됨으로써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1970년대 중반 집권한 대통령 포르티요 때에는 주요 산유국 중 하나가 되면서 빠른 경제 발전을 보였다.
지나친 외채 부담과 1980년대 중반이후 계속되는 유가 하락으로 인해 포르티요 이후의 대통령들은 심각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은 재정적 위기상황의 개선과 광범위한 경제부양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1980~90년대에 걸쳐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 자유화 조치도 그 일환으로 행해졌다.
카를로스 살리나스(1988∼1994) 대통령은 과감한 시장개방정책을 추진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켰으며 석유노조를 약화시키고, 1994년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였다.
1994년 3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여당 후보인 콜로시오가 유세 도중 저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1994년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Chiapas)주에서 사파티스타(Zapatista) 원주민 농민들의 무장투쟁이 발생하면서 정치적으로 극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접어들었으며, 12월에는 외환위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과 IMF 등 국제금융기구에 의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후 사회양극화와 이에 따른 생활고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2000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계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의 빈센테 폭스(VicenteFox)가 당선되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71년 만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일당 지배의 역사가 끝난 것이기도 하다.
제도혁명당(PRI : Partido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은 1929년 3월 국가혁명당(PNR), 1938년8월 멕시코혁명당(PRM)에서 1946년 1월 18일 현재의 당명으로 개정하였으며,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당으로, 멕시코혁명의 이념을 표방하며 중도 및 좌우익 공존 노선과 문화개방정책을 추진해왔다.
1994년에 발생했던 경제 위기와 장기집권에 따른 보수화, 부정부패 및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으로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하였으며, 이후 2006년에도 재집권에 실패하였다.
국민행동당(PAN : Partido de AcciónNacional))은 중산층, 실업가 등으로 구성되어 중도우익 성향의 정당으로, 1995 년도 지방선거에서 선전하면서 제1야당의 위치를 고수한 이래 정치적 비중이 확대되다가 2000년 7월 대선 승리로 사상 처음 집권하였으나, 2003년 총선 및 2004년 지방선거에서는 패배하여 상하원 제2당에 그쳤다.
폭스정권에 이어 2006월 7월 대선에서도 치열한 경합 끝에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Felipe Calderon)이 좌파진영의 로페즈 오브라도르(Lopez Obrador) 민주혁명당(PRD)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오브라도르 진영은 부정선거였다는 이유로 선거결과에 불복, 전면 재검표를 요구하면서 장기 농성 및 대규모 군중시위가 발생하고 급기야는 대안정부까지 구성됨으로써, 칼데론 신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대선에서 36% 미만 지지 확보, 상하원 과반수 의석 미달 등에 직면한 칼데론 신정부는 정치기반의 취약성과 정통성 시비를 극복 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출범하였다.
전통 문화
멕시코의 전통 의상은 고대 문명의 영향을 받아 멕시코를 상징하는 갈색이나 짙은 빨강 등 흙의 색상을 본뜬 색이 많으며, 스페인에 점령된 뒤로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의상이 발달하였다.
원래는 면, 나무껍질, 용설란의 줄기로 만든 옷감이 많았지만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모, 실크 등도 많이 사용된다.
남자들은 면으로 된 셔츠와 바지를 입고 후아라체(가죽으로 된 샌들)를 신으며, 뜨거운 태양을 막기 위해 솜브레로(창이 넓고 끝이 말려 올라간 모자)를 쓰고 비가 오거나 추우면 판초를 입는다.
여자들은 후이필(원피스)과 퀘치케이틀(외투)을 입고 국기의 색인 빨강·초록·흰색으로 된 레보조(스카프)를 머리에 쓴다.
전통 음악
멕시코의 전통 음악은 단순한 리듬이 특징이며 현악기는 멜로디를, 관악기는 후렴부를 구성한다.
노래 가사는 주로 남녀의 사랑과 민족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19세기 초 마리아치라는 악단에 의해 멕시코의 전통 음악은 라틴 아메리카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리아치는 가죽 술이 달린 옷과 장식이 달린 부츠 차림에 솜브레로를 쓰고, 적게는 세 명에서 많게는 50명 이상이 연주를 한다.
즉흥적인 연주가 장점으로,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음악을 연주한다.
전통 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 고대 문명의 의식을 표현한 춤이나 스페인 수도사들에 의해 전파된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은 춤 등 지역마다 다양한 춤이 발달하였다.
그중 할리스코 주의 전통 춤은 멕시코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비교되는 아름다운 춤이다.
여자들은 화려한 색깔의 긴 스커트 자락을 잡고 마리아치의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며, 남자 댄서는 판초와 솜브레로 차림으로 춤을 춘다.
스페인의 민속춤 플라멩코의 영향을 받았으나, 플라멩코에 비해 밝고 경쾌한 춤이다.
전통 스포츠, 차레리아
차레리아는 멕시코 고유의 스포츠이다.
카우보이인 차로가 거친 말을 타고 기술을 보이는 경기로, 화려한 의상 때문에 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송아지에게 삼베로 만든 밧줄을 던져 재빨리 감기, 안장 없이 소 타기, 말 타기, 구보 등 다양한 경기가 펼쳐진다.
전통 의식, 볼라도르
고대 멕시코 마야 문명의 의식으로 성인 남자 다섯 명이 30m 높이의 장대 위로 올라가 한 사람은 꼭대기 위에서 북과 피리를 연주하고, 네 명은 다리를 줄에 매달아 빙빙 돌며 날 듯이 땅으로 내려온다.
네 사람은 땅에 내려오기 전에 열세 바퀴씩, 모두 합해 52회를 돌게 되는데, 이것은 메소 아메리카 달력의 주기 52년을 상징한다.
땅과 하늘, 지하 세계를 수직으로 연결하여 태양을 숭배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스페인어로 '나는 사람들의 놀이'란 뜻으로, 복장과 음악에는 스페인의 영향이 더해졌으나 의식의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음식 문화
멕시코의 음식 문화는 멕시코의 역사와 비슷하게, 아메리카 원주민과 스페인의 음식 문화가 합쳐져 발달했다.
멕시코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수수와 선인장을 재료로 한 다양하고 독특한 요리 방법이 개발되었고, 뜨거운 날씨처럼 독특하고 자극적인 맛이 특징이다.
그중 옥수수는 멕시코 토양에 적합한 농작물로 오랫동안 멕시코인들의 주식으로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7000년경부터 재배되어 왔다.
옥수수는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아스텍 신화에서 네 번의 멸망 끝에 인류를 재건한 신들이 인간을 위해 찾아 나선 식량이 바로 옥수수이다.
마야 신화에서는 옥수숫 가루로 인간을 만들었다고도 하며, 옥수수의 모습을 한 옥수수 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추 역시 옥수수와 함께 멕시코 음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멕시코에는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작고 빨간 고추부터 맵지 않은 피망까지 약 200종류의 고추가 있다.
칠리 고추는 우리나라의 청양고추보다도 무려 20배나 더 매워서 먹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이다.
멕시코의 고추로 만든 타바스코 소스, 핫 소스, 살사 소스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옥수수의 신 치코메코아틀
멕시코의 주식인 옥수수의 신으로, 멕시코인들은 수확 시기에 이 신에게 감사와 풍요를 비는 제사를 지냈다.
북으로는 미국과 3,200㎞의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과테말라, 벨리즈와 접하고 있다.
해안선의 길이 9,220㎞로 캐나다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번째 규모이다.
시에라 마드레 산맥이 남북으로 국토 중앙을 통과하고, 국토의 절반 이상이 고지대로 중심부는 해발 평균 2,600m, 북부는 평균 1,200m에 달한다.
멕시코는 지체(地體) 및 지형의 구조로 보아 북아메리카의 일부이다.
대(大)·소(小) 앤틸리스제도(諸島)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의 습곡축(褶曲軸)과 같은 계열에 속하므로,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를 총칭하는 중부아메리카에서 주요부를 차지한다.
중생대 말기부터 제3기에 걸쳐 일어난 태평양 연안의 폭넓은 신기(新期) 습곡산맥은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의 두 산맥을 이루고, 파나마지협(地峽)까지 불안정한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를 형성하며 뻗어 있다.
태평양 쪽의 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산맥은 해발고도가 평균 2,000m, 멕시코만(灣) 쪽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산맥은 평균고도 1,500m로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지형을 이룬다.
그 사이에 있는 평균고도 1,700m의 멕시코고원은 국토의 1/3 을 차지하면서, 시에라마드레델수르산맥과 하나가 되어 파나마에 이른다.
북위 19°선을 따라 동서로 횡단하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 습곡산맥의 연장인 대·소 앤틸리스제도가 유카탄반도에서 시작하여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이른다.
4,000m 이상의 설선을 안고 있는 오리사바(5,700m), 포포카테페틀(5,452m), 이스탁시우아틀(5,286m), 톨루카(4,677m), 콜리마(3,960m), 마린치(4,460m) 등의 화산들은 멕시코고원에 있다.
이처럼 높은 산들 덕분에 멕시코의 심장부는 아나와크고원(‘물가 근처’라는 뜻)에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에 인구의 반 이상이 집중 거주하며 생산물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멕시코 남부지역에는 종종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이 발생한다.
전국토의 39%는 초원, 26%는 산림지대이며 경작이 가능한 땅은 13%이다.
기후는 고도에 따라 상이한 기후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해안지대는 열대성 기후특징이 나타난다.
연중 고온다습한 기후로, 중부 고산지대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건조한 온대성 기후이며 나머지 국토는 아열대 기후이다.
멕시코의 중심부는 열대 고원의 상춘(常春) 지역이며, 특히 1,500m 내외가 최적온(最適溫) 지대를 이룬다.
해발 2,300m에 위치한 멕시코시티의 경우 연중 온난한데, 6~9월에는 우기로서 기온이 온화하고, 11~1월은 기온이 낮은 겨울 기후이며, 나머지 2~6월은 한국의 봄 기후와 비슷하다.
연중 기온은 평균 5℃-25℃ 사이이다.
강우량은 일반적으로 적은 편인데, 북서부는 435mm, 북동부는 685mm, 중부는 879mm, 남부는 1,301mm 정도의 분포를 나타낸다.
설선을 지닌 화산의 융설수(融雪水)가 풍부하며 옥토를 만들고, 멕시코분지에서는 수향(水鄕)의 경관을 나타내는 지역도 볼 수 있다.
식물상(狀)은 고원으로 인한 수직적 분포와 건조기후에 지배된다.
1,000m 이하 열대우림지역은 혹서로 인해 코코야자, 바나나, 카카오 등 열대작물 재배에 알맞고, 1,500m 내외는 참외, 귤, 망고 등의 열대 과일과 커피, 사탕수수 등이 재배된다.
2,000m 내외의 온대에서는 멕시코인(人)의 주식인 옥수수가 산출되며, 멕시코 분지를 둘러싼 3,000m 이상의 산지는 냉대지역으로 소나무가 무성한 국유림지대가 전개된다.
건조지역은 선인장 등이 자라는 황지(荒地)를 이룬다.
북부고원지대는 반사막의 경관을 나타내며 식물은 거의 없다.
멕시코는 고지 및 공해로 인해 산소가 여타지역보다 25~30% 부족해 간혹 두통, 미열, 구토 등 고지증세로 시달리거나 공해 때문에 먼지에 의한 알레르기로 고생하기도 한다.
멕시코의 음식
토르티야와 타코
토르티야는 옥수수로 만든 대표 음식으로, 옥수숫 가루를 반죽하여 밀전병처럼 둥그렇게 구운 것이다.
토르티야에 음식을 싸 먹는 것을 타코라고 하며 멕시코 사람들은 우리가 밥을 먹듯 토르티야와 타코를 먹는다.
타코 요리는 싸 먹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따라 수십 가지로 나뉘는데, 토르티야에 음식을 넣고 튀기면 퀘사딜라, 콩·양파·치즈 등을 얹은 조금 두꺼운 토르티야는 소페, 튀긴 토르티야 조각에 치즈를 녹여 부어 먹는 것은 나초라고 한다.
토르티야는 옥수수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지만 옥수수가 재배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밀가루로 만들기도 한다.
파히타
구운 쇠고기나 치킨을 볶은 양파, 신선한 샐러드와 함께 밀가루 토르티야에 싸서 먹는 요리로 살사 소스나 토마토 소스, 사워 크림 등을 얹어서 먹기도 한다.
원래는 쇠고기만을 넣어 먹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테킬라
용설란의 일종인 마게이라는 선인장의 포기를 쪄서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드는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40도에서 60도나 되는 독한 술이지만, 냄새가 없고 맛이 산뜻하다.
마실 때 레몬 즙과 소금을 함께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통문화
멕시코의 철도 총연장은 1만 7665km(2006년 기준), 도로 총연장은 23만 5670km(2004년 기준), 수로 총연장은 2,900km(2007년 기준)이고, 공항 1,839개(2006년 기준)가 있다.
고원성의 지형으로 저지와 해안과의 교통이 불편하였던 멕시코가 유럽식의 도로로 변모한 것은 1930년 이후부터이다.
여객과 화물의 많은 부분이 도로교통에 의존하고 있는데, 주요한 고속도로망은 멕시코 연방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고 있으며, 기타 동서로 달리는 횡단고속도로가 각 항구로 연결된다.
항구로는 대서양 연안에 베라크루스, 탐피코가 있고, 태평양 연안에 콜리마, 마사틀란, 살리나크루스 등이 있다.
관광자원이 되는 고대문명의 중심지는 중앙고원이며, 그밖에 올메카, 사포텍, 믹스테, 마야 등 고원 남부와 유카탄반도에도 있다.
테오티우아칸, 톨텍, 아스텍에 이은 중앙고원의 문명은 테오티우아칸의 멸망으로 고전기가 끝나고 톨텍의 시작으로 후기고전기가 비롯된 것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그 중간의 약 300년은 공백기로, 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이 현재 발굴중인 테오테낭고의 유적이다. 고대문명의 유적지는 다음과 같다.
욱스말 :
유카탄반도 메리다 남쪽 약 70km의 구릉지대에 있는 마야 고전기 후기의 종교 유적지로, 자연지형을 이용한 몇 개의 건축물이 무리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현재 주요 건축물은 피라미드로 완전히 개축되어 있으며, 특히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총독관저’가 눈에 띈다.
각기 다른 모자이크로 장식된 4개의 건물로 형성된 ‘승원(僧院)’은 마야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엘타힌 :
수도인 멕시코 북동쪽 약 210km 지점에 있는 베라크루스 고전기 문화의 중심지이며 ‘벽감(壁龕)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이는 6층의 계단식 벽감으로, 각층 측면에는 365개나 되는 작은 벽감이 설치되어 있다.
치첸이차 :
메리다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 고전기 후반에서 후기 고전기에 걸친 종교 유적지로, 에스파냐인의 정복 후에도 마야족의 성지로서 알려졌다.
유적은 남북 3km, 동서 2km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남쪽에는 수도원·교회·붉은 집 등 고전기 후반의 푸크(puuc) 양식 건축물이 많다.
북쪽에는 전설 어린 성천(聖泉) 외에 ‘쿠쿨칸의 피라미드’, ‘전사(戰士)의 신전’, ‘천주(千柱)의 그룹’, ‘구기장(球技場)’, ‘촘판틀리(Tzompantli:骨柱)’ 등 후기 고전기의 톨테카·마야 양식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신전이 남아 있는 피라미드에는 4면에 계단이 있는데, 계단의 수가 모두 365단으로 그들의 우주관을 상징하고 있다.
‘카라콜’이라 불리는 톨테카 양식의 탑은 내부구조와 탑의 모양으로 보아 천문대(天文臺)로 생각된다.
테오티우아칸 :
수도 멕시코 북서쪽 40km 지점에 있으며, '인간이 신이 되는 곳'이란 뜻으로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BC 4세기~AD 7세기 중엽의 것으로, 옥수수 농사를 기반으로 한 비군사적 신권정치의 도시국가였으며, 전성기에는 2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많은 건물과 궁전이 복원되고 있는데, 무방비 상태의 도시가 고원상에 전개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테오테낭고 :
수도 멕시코 남서쪽 60km 지점 톨카분지(盆地)의 남단에 있는, 고전기 후기로부터 후기 고전기에 걸친 종교·정치 유적지이다.
테오티우아칸과 툴라의 공백기를 메웠던 문명으로 발굴이 진행중이다.
신권정치에서 군사정체(軍事政體)로 이행하는 과도적 특성을 지닌 성채도시(城砦都市)로, 방비적 성격이 짙다.
오토미족(族)이 건설한 것이라 한다.
테노치티틀란 :
1325년 아스텍족이 테스코코호(湖) 안의 작은 섬에 도읍했을 때의 유적으로, 톨텍의 군사적 성격을 이어받은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였으나, 1521년 에스파냐인에게 파괴되었다.
3문화광장에서 당시의 유적을 볼 수 있는데, 특히 25t의 거석(巨石) 캘린더에는 아스텍의 세계관이 나타나 있으며, 현재 국립인류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툴라 :
수도 멕시코 북쪽 약 60km 지점에 있는 톨텍 문명의 중심지로, 유적은 골짜기에 둘러싸여 방어적 성격이 짙은 구릉상에 남아 있다.
군사적 성격이 강한 4인의 전사상(戰士像)은 유명하다.
팔렝케 :
마야 고전기의 종교 유적지로, 멕시코 남동부 타바스코주(州)의 주도 비야에르모사 남동쪽 100km 지점에 위치한다.
중심부는 남북 500m, 동서 300m의 단구상(段丘上)에 있다.
비취(翡翠)의 가면으로 유명한 왕묘가 있는 ‘비명(碑銘)의 신전’을 비롯하여 ‘궁전’, ‘태양의 신전’, ‘십자(十字)의 신전’등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미틀라 :
수도 멕시코 남동쪽에 있는 오악사카로부터 남동쪽으로 40km 떨어진 유적으로, 몬테알반에서 옮겨온 사포텍 문명의 종교 유적지로서 후기 고전기에 번영하였다.
기하학적 무늬가 섬세한 모자이크가 건물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모자이크 기법에 의하지 않고 석벽(石壁)에 직접 새겨넣은 점이 특이 하다.
몬테알반 :
오악사카 서쪽 언덕에 있는 사포텍족의 종교도시로, 3∼4세기를 최성기로 하여 ‘피라미드’, ‘신전’, ‘구기장’의 유적군 외에 ‘춤추는 사람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고전기 건축물이 유명하다.
다수의 지하식 석실묘(石室墓)가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 특히 수장급(首長級)의 묘 내부는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고 껴묻거리[副葬品]가 묻혀 있다.
그 외에도 멕시코 고대문명(아즈텍, 마야문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인류사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이 있다.
멕시코시의 중앙광장으로 정식 명칭은 Plaza deConstitucion(헌법광장)이며 주요 국가행사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국립궁전, 라틴아메리카 최대인 멕시코시 대성당, 템플로마요르 등의 주요 문화유적이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가리발디(Garibaldi) 광장에서는 멕시코 특유의 악단인 마리아치의 연주 및 노래 청취가 가능하다.
원래 이름은 '엘 보레고' 광장이며 마리아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 주식인 따꼬와 테킬라를 제공하는 술집과 식당으로 가득하다.
시내에 위치한 투우장은 객석 5만석의 세계 최대의 투우장으로서 건기 중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경기가 진행된다.
2002년 교황청에서 성지로 공식인정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은 멕시코 가톨릭의 상징인 과달루페 성모마리아가 1531년 발현한 장소로, 멕시코 중남미 도처에서 성지순례자가 방문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중남미 제일의 대도시로 16세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중심지인 멕시코시티는 고대·근대·현대의 모든 요소가 집결되어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받기도 하였다.
과학기술
멕시코는 전화 회선 수가 100명 당 18개로 전화 밀도가 낮은 편이다.
정부와 사업체에는 충분한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열악한 편이다.
무선전화기 이용자가 유선전화기이용자보다 많은 것이 특징적이다.
멕시코에서는 1882년 텔레포니차 멕시카나가 멕시코 시티에서 처음으로 전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1903년 멕시코 정부가 무선국을 설치하였고, 1960년 전기통신 총국에서 국내 전신총국이 분리되었다.
2006년 현재 공중통신 서비스를 위한 본회선수는 1986만 1000개이다.
1996년 8월까지 공중 통신 서비스는 텔멕스(Telefonos de Mexico)의 독점이었고, 1997년 1월부터 아반텔, 이우사텔, 알에스트라 등의 신규 사업자가 통신 서비스 시장에 참여하여 텔멕스와 경쟁 체제를 이루었다.
여전히 텔멕스가 지배적이다.
코페텔은 1996년 설립된 통신 규제 기관으로 무선주파수 할당, 망과 장비의 표준화제정, 각종 인허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텔멕스는 남미지역에서 망 규모로는 2위의 공중 통신사업자이지만 총수입으로는 최대의 사업자이다.
1990년 말부터 민영화를 추진하여 1998년 기준 카르소 글로벌 텔레콤이 지분을 40.9%를 보유하고 있다.
아반텔은 1994년 설립되어 장거리 전화 서비스 시장에서 텔멕스의 경쟁자가 되었다.
1997년 말까지 텔멕스의 로컬 전화회선의 약 90%가 디지털 교환기에 연결되었고, 멕시코시티, 과달라자라, 몬테레이 등의 일부 도시는 완전히 디지털화되었다.
전송망은 동선, 동축케이블, 디지털 마이크로파, 위성통신 등의 다양한 전송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무선 전화 서비스는 1989년 처음 도입되었으며, 2006년 현재 약 5701만 6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하였다.
텔멕스 소유의 텔셀만이 전국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인터넷서비스는 1997년 4월 인터케이블이 몬테레이에서 처음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5월에 메가케이블도 고속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과달라하라에서 시작하였다.
통신교통부는 케이블산업에 대한 면허 부여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케이블 면허는 15년 단위로 발부되고 있다.
인터넷 국가코드는 .mx이고, 인터넷 호스트수는 2007년 762만 9000개이고, 인터넷 사용자수는 2006년 기준 2200만 명에 달한다.
TV방송국 수는 2002년 기준으로 총 510개이고 전국방송국과 지방방송국이 있다.
라디오 방송국은 2003년 기준 AM 850개, FM 545개, 단파방송국 15개가 있다.
라디오 방송국의 약 70개 정도가 국영방송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방송이다.
방송사업자로는 멕시코 최대 방송사인 텔레비자(Televisa)가 국내 방송 4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케이블비전을 소유하고 있다.
TV아즈테카(Television Azteca)는 텔레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2개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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