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가장 합리적인 글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세계 문자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전에 우리 민족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세종대왕이 1446년 제정 · 공포한 한국의 국자(國字) 또는 그것을 해설한 책의 이름을 말한다. 훈민정음은 세계에 표기했다. 따라서 우리말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가 요구되었는데, 세종대왕은 남의 나라 글자인 한문을 빌려 쓰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백성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한문은 우리말과 서로 통하지 않았으며, 배우기에 상당히 어려운 글자였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이 배우기 쉬운 새로운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불편을 덜어 주고 우리말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것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이유를 세종대왕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류통(與文字不相流通) 고우민(故愚民) 유소욕언(有所欲言) 이종불득신기정자(而終不得伸其情者) 다의(多矣) 여(予) 위차민연(爲此憫然) 신제이십팔자(新制二十八字) 욕사인인이습(欲使人人易習) 편어일용이(便於日用耳))." 흔히 『언해본(諺解本) 훈민정음』이라고도 한다.
번역한 사람이나 번역된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세종 말년부터 세조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번역방식은 한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토(吐)를 달고, 한자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東國正韻式漢字音)을 표기하였으며, 그 아래에 두 줄로 한문의 자석(字釋 : 뜻풀이)을 한 다음, 그 구절 전체를 번역하였다. 한문본과 국역본은 그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어서, 국역본에는 원한문본에 없는 치음자(齒音字)에 관한 규정, 즉 한어(漢語)의 치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치음자를, 치두음자(齒頭音字 : ㅈ ㅊ ㅉ ○ ㅆ)와 정치음자(正齒音字 : ㅈ ㅊ ㅉ ○ ㅆ)로 따로 제자해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첨가되어 있으며, 이 규정은 1455년(단종 3)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통고(四聲通攷)』의 범례에도 들어 있으므로, 번역사업은 1455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역본 훈민정음』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는 박승빈본(朴勝彬本, 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소장)이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한 조사에 의하면 『월인석보』 책머리 부분을 따로 제책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국역본은 1459년(세조 5)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책머리에 실려 있는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다. 그 원간본은 서강대학교 소장되어 있고, 1568년(선조 1)희방사(喜方寺)의 중간본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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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대왕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다. 내가 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편리하게 사이용하기를 바란다.” 2015년 3월에는 배 씨 집에 불이 나면서 상주본 한 장이 소실되고 나머지도 불에 그을리는 등 상주본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7년 4월 배 씨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상주본 전체를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경북 상주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고, 상주본 한 장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배 씨가 낙선하면서 자발적 공개는 무산됐고, 문화재청과 배 씨의 법정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종 대왕은 왜 한글을 만들게 되었을까?
조선 시대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한자로 글을 적었어. 그러나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려웠지. 게다가 한자는 복잡해 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글자였어. 당연히 양반들만 글자를 사용했던 거지. 세종 대왕은 백성들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드셨어.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는 출발부터 어려움이 많았어. 최만리 등의 학자들이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큰 나라를 모시는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격렬히 반대했거며. 그래도 세종 대왕은 뜻을 굽히지 않고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눈이 짓물러 한쪽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연구했지. 그 결과 1443년에 드디어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읍니다.
"한글은 주로 누가 사용했을까?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양반들은 상스러운 글자라는 뜻의 ‘언문(諺文)’,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절반밖에 안되는 것 같다며 ‘반절’이라 부르면서 무시했어. 또 당시 여자들은 한문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때마침 훈민정음이 생기자 궁궐과 양반집 여자들이 맨 처음으로 훈민정음을 쓰기 시작해서 ‘암글’이라고도 불렀대. 훈민정음의 편리함이 널리 알려져 상민 신분의 남자들도 쓰게 되면서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갔지.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글자를 가지게 된 거야.
연산군은 왜 한글 사용을 금지했을까?
연산군 10년인 1504년에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글로 쓰인 글이 발견되었어. 연산군은 이 글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글을 쓴 사람을 고발하면 상금과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했지. 한양의 백성들 중 한글을 아는 사람을 불러 글씨체를 연산군 10년인 1504년에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글로 쓰인 글이 발견되었어. 연산군은 이 글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글을 쓴 사람을 고발하면 상금과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
한양의 백성들 중 한글을 아는 사람을 불러 글씨체를 훈민정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쓴 《용비어천가》,《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이라는 여러 종류의 책을 펴내기도 했읍니다. 훈민정음 혜례본(상주본) 이 논문에서는 2008년 7월에 세상에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묵서에 대한 연구이다. 현재에는 이 책을 촬영한 영상화면을 통해서 책의 면면을 살필 수밖에 없지만 다행히도 영상이 비교적 깨끗하여 책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국보 70호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목에서 쇄출된 것이 확실하다. 다만 세종 임금의 서문 4장을 비롯한 본문의 여러 장이 낙장 상태이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학술 서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 책에는 5면에 걸쳐서 묵서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본문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고 있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술된 오성과 오음의 배합이 기존의 일반적인 배합과 다르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이 묵서를 기록할 당시인 18세기 이후 무렵에는 보편화된 견해로 보인다. 현재 책을 볼 수 없으므로 묵서와 관련된 사진과 묵서 묵서 내용을 책에 적힌 대로 정리하여 부록에 실었다. 이 글에서는 2008년 7월 30일에 신문과 방송 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책은 상주에서 공개되었는데 당시에 한국국학진흥원의 소속 연구원이 실사하여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임을 확인하였다.
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안동 MBC 뉴스 방송팀이 촬영하였다. 당시 안동 MBC에서 촬영된 화면을 통해서 책을 살펴본 필자(남권희)도 역시 세종 당시에 간행된 원본으로 간주한 바 있다. 불행히도 이 책은 소유주 논쟁에 휘말려 세상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 책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소유주로 인정받은 분이 2012년 5월 3일자로 국가에 기증하였다. 앞으로 책을 찾는다면 국가 소유의 문화재가 되고 학자들이 실물을 보면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안동 MBC에서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책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함과 동시에 책에 적힌 묵서의 내용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묵서의 기입 근거와 시기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영문"
This article aims to present a critical bibliography of a particular copy of Hunmin jeongeum haerye (訓民正音解例, Explanations and examples of the correct sounds for the instruction of the people), the existence of which was made known to the public on July 30th, 2008. It is called Hunmin jeongeum haerye Sangjubon (hereafter “Sangjubon”) following the city name where the book came to ligh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wo-fold. It first provides a general bibliographic description of the book.
Then, it further investigates when and why the brush-written notes inside the book were made through an examination of their content. We have reached the following conclusions:
1. Printed using the same woodblocks, Sangjubon belongs to the same edition as Gansongbon. Unlike Gansongbon which has truncated top and bottom margins, Sangjubon seems to be preserved in its original size.
2. The brush-written notes were written in the top and bottom margins of the pages containing the poetic summary of the “Explanation of the design of the letters”. Included in the notes are (i) a list of the 23 letters for “initial sounds” (consonants), each with an example and additional pieces of classificatory information regarding the Five Sounds, the Five Notes, and the laryngeal features (cheongtak 淸濁), (ii) a list of the 11 letters for “medials” (vowels), and (iii) a discussion on the correspondence between the Five Sounds and the Five Notes.
3. Regarding (iii) above, we show that the particular text the note writer referred to was the “Sisheng wuyin jiunong fanniutu xu” (四聲五音九弄反紐圖序), written by the Buddhist monk Shengong (神珙) and contained in the Enlarged and expanded jade chapters (Daguang yihui yupian 大廣益會玉篇, published in 1013 in the Northern Song).
4.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Sino-Korean readings transcribed in the Korean alphabet next to the Chinese characters, we argue that the notes reflect Southeastern (Gyeongsang) dialect. We also date the notes to the 18th century or later. <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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