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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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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불교 전설,

소몰이 노인과 무학

<서울·往十里>

조선 건국초. 송도 수창궁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 만한 길상지로 구나.』

 

무학대사는 흐믓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었다. 이때였다.

 

『이놈의 소는 미련하기가 곡 무학 같구나. 왜 바른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쩍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장,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신지요?』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면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장,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북쪽을 향해 10리쯤 걸었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근처였다.

 

『과연 명당일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스님은 그 길로 태조와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

 

『스님, 성은 어디쯤을 경계로 하면 좋겠습니까?』

 

태조는 속히 대역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북쪽으로는 삼각산 중바위 밖으로 도성을 축성하십시오. 삼각산 중바위(인수봉)는 노승이 5백 나한에게 예배하는 형국이므로 성을 바위 밖으로 쌓으면 나라가 평안하고 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핵대사의 뜻과는 달리 조정의 일파는 이를 반대,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한다고 강경히 주장했다.

 

태조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존경하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일등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학대사와 대신들의 도성 축성에 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 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으면 중바위가 성안을 넘겨다보는 형국이므로 불교가 결코 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도전 일파 역시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유교가 흥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으므로 무학대사 의견에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태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결정키로 했다.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이튿날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봄볕에 다 녹아내리는데 축성의 시비가 일고 있는 인수봉 인근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정도전 등 대신들은 이 사실을 태조에게 즉시 고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므로 도성을 인수봉 안으로 쌓아야 한다고 거듭 주청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 선대로 성을 쌓도록 하시오.』

 

이 소식을 들은 무학대사는 홀로 탄식했다.

 

『억불이 기운이 감도니 이제 불교도 그 기운이 다해 가는구나.』

 

성이 완성되자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여 눈 「설(雪)」자와 빙 둘러싼다는 울타리〔圍〕의 「울」자를 써서 「설울」이란 말이 생겼고 점차 발음이 변하여 「서울」로 불리워졌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 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 「왕(往)」자와 십리(十里)를 써서 「왕십리(往十里)」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유래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 지역이 도선동으로 분할됐다. 도선동은 1959년부터 행정동명으로 불리다가 1963년 법정동명이 됐다.

 

왕십리 청련사 부근에는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바위터가 있었고 주위에는 송림이 울창했다고 하나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청련사 밑에는 무학과 발음만 같고 글씨는 다른 무학봉이 있고 이 이름을 딴 무학초등학교가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무학봉에서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전설도 있어 왕십리는 도선·무학 두 스님의 인연지인 것 같다.

 

그 밖에도 서울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무악재는 무학 스님의 이름에서 연유한 「무학재」가 변한 것이고, 청량리는 청량국사에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한다.

 

한국불교전설 - 소몰이 노인과 무학

 

수덕사 버선꽃

<예산·수덕사>

『도련님, 어서 활시위를 당기십시오.』
시중 들던 할아범이 숨이 턱에 차도록 채근을 하는데 과연 귀를 쫑긋 세운 노루 한 마리가 저쪽 숲속에서 오고 있었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화살이 막 튕겨지려는 수간 수덕은 말없이 눈웃음을 치며 활을 거두었다.

『아니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몰이를 하느라 진땀을 뺀 하인들은 활을 당기기만 하면 노루를 잡을 판이기에 못내 섭섭해 했다.

『너희들 눈에는 노루만 보이느냐? 그 옆에 사람은 보이지 않느냐?』

『이 산골짜기에 저런 처녀가?』

하인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도련님, 눈이 부시도록 아리땁습니다. 노루 대신 여인을… 헤헤.』

『에끼 이녀석, 무슨 말버릇이 그리 방자하냐. 자 어서들 돌아가자.』

수덕은 체통을 차리려는 듯 일부러 호통을 치고 갈 길을 재촉했으나 가슴은 뛰고 있었다.

노루사냥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여인, 어쩜 천생연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덕 도령의 가슴은 더욱 뭉클했다.

「차라리 만나나 볼 것을…」

양반의 법도가 원망스럽기조차 했다.

『이랴.』

마상에서 멀어져가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들떠있는 수덕의 가슴은 진정되지를 않았다. 책을 펼쳐도 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에 어리는 것은 여인의 모습뿐.

하는 수 없이 도령은 할아범을 시켜 그 여인의 행방을 알아오도록 했다.

할아범은 그날로 여인이 누구이며 어디 사는가를 수소문해 왔다.

그녀는 바로 건넛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 낭자였다. 아름다웁고 덕스러울 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문장이 출중하여 마을 젊은이들이 줄지어 혼담을 건네고 있으나 어인 일인지 모두 일어지하에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덕의 가슴엔 불이 붙었다.

자연 글읽기에 소홀하게 된 수덕은 훈장의 눈을 피해 매일 처녀의 집 주위를 배회했다.

그러나 먼 빛으로 스치는 모습만을 바라볼 뿐 낭자를 만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가슴을 태우던 수덕은 용기를 내어 낭자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덕승 낭자, 예가 아닌 줄 아오나….』

『지체 높은 도련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낭자! 나는 그대로 인하여 책을 놓은 지 벌써 두 달, 대장부 결단을 받아주오.』

두 볼이 유난히 붉어진 낭자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일찍이 비명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고혼을 위로하도록 집 근처에 큰 절 하나를 세워 주시면 혼인을 승낙하겠습니다.』

『염려마오. 내 곧 착수하리다.』

마음이 바쁜 도령은 부모님 반대도,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상관치 않고 불사에 전념했다.

기둥을 가다듬고 기와를 구웠다. 이윽고 한 달만에 절이 완성됐다.

수덕은 한걸음에 낭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단청이 끝났소. 자 어서 절 구경을 갑시다.』

『구경 아니하여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무엇을 다 안단 말이오.』

그때였다.

『도련님 저 불길을….』

절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있는 게 아닌가. 수덕은 흐느끼며 부처님을 원망했다.

낭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수덕을 위로했다.

『한 여인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하면서 절을 다시 지으십시오.』

수덕은 결심을 새롭게 하고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 목욕재계하면서 기도를 했으나 이따금씩 덕숭 낭자의 얼굴이 떠오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일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절을 완성 할 무렵 또 불이 나고 말았다.

다시 또 한 달. 드디어 신비롭기 그지없는 웅장한 대웅전이 완성됐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덕은 흡족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도련님, 소녀의 소원을 풀어주셔서 그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이 미천한 소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신방이 꾸며졌다. 촛불은 은밀한데 낭자가 조용히 일을 열었다.

『부부간이지만 잠자리만은 따로 해주세요.』

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수덕은 낭자를 덥썩 잡았다.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돌풍이 일면서 낭자의 모습은 문밖으로 사라졌고 수덕의 두 손에는 버선 한짝이 쥐어져 있었다.

버선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앞에는 큼직한 바위와 그 바위 틈새에 낭자의 버선 같은 하얀 꽃이 피어있는 이변이 일어났다.

신방도 덕숭 낭자도 세속의 탐욕과 함께 사라졌다.

수덕은 그제야 알았다. 덕숭 낭자가 관음의 화신임을.

그리하여 수덕은 절 이름을 수덕사라 칭하고 수덕사가 있는 산을 덕숭산이라 했다.

지금도 수덕사 인근 바위 틈에서는 해마다 「버선꽃」이 피며 이 꽃은 관음의 버선이라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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