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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역사(국내 .각지역.)

삼천포 , 三千浦. 1 삼천포 , 三千浦.경상남도 사천시에 있는 1종항이다. 1958년 대(對) 일수출에 활기를 불러일으킨 선어(鮮魚) 수출항으로 지정되었고, 1966년 4월 16일 개항장이 되었다. 한려수도의 기항지이며, 어항과 임해공업의 수출항으로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1990년 현재 접안시설인 물량장 1,597 m와 잔교(棧橋) 1기가 있으며, 외곽시설로서 방파제 588 m, 방사제 65 m, 호안 2,252 m, 도류제(導流堤) 161 m가 있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항구로 한려수도의 기항지이며, 어항과 임해공업의 수출항으로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삼천포대교, 교량 길이는 436m에 이른다. 섬 지역의 개발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관광자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교량 형식은 하부공이 우물통 기초로 되어 있고.. 더보기
삼천포 . 三千浦港. 삼천포 . 三千浦港. 삼천포 . 三千浦港.삼천포는 신라시대 때 사물현이라는 작은 포구였으나 고려시대에 조세미를 수송하기 위하여 통양창을 설치하였다. 조창을 설치하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자 삼천리라는 마을이 생겼다. 삼천리 지명은 이곳에서 고려 개성까지 수로로 삼천리나 되었기 때문이다. 1956년에 삼천포읍과 남양면을 통합으로 삼천포시가 되었고 1995년에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면적은 58.81㎢, 인구 약 6만 4천. 한려수도의 중심 항구이자 수산물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은 삼천포는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학섬이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항구로 1966년 4월 개항되었다 삼천포시.. 더보기
경주 . 첨성대./ 개성첨성대. 開城瞻星臺. 경주 . 첨성대./ 개성첨성대. 開城瞻星臺.신라 선덕여왕 때인 7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전해지는 첨성대(瞻星臺)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또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天文臺)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아온 관점이었다.1960년대 중반부터 이런 관점에 대한 반론이 하나둘 제기되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격렬한 논쟁이 있었으며, 최근까지 수많은 이설(異說)들이 등장했다.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시대 천문을 관측하던 건물. 높이 약 9.5m. 국보 제31호. 역법을 만들기 위한 일월행성의 운행관측과 천문현상의 관찰로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의 목적에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 첨성대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고.. 더보기
경주 첨성대 . 慶州瞻星臺. 경주 첨성대 . 慶州瞻星臺. 신라시대에 건립된 천문대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하며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밑에서부터 4.16m 되는 곳의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1개 반을 사용하여 상층부와 기단을 제외한 27단을 쌓아 올렸다.(전체 돌의 개수는 401개)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단에서 제20단까지와 제25단에서 제26단까지의 두 곳에 정.. 더보기
만리장성.The Great Wall.1 만리장성.The Great Wall, 만리장성.The Great Wall.Die Chinesische Mauer, 中國─萬里長城.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으로 ‘장성(長城)’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성벽은 대부분 15세기 이후 명나라 때에 쌓은 것이다. 길이가 서쪽의 간쑤성[甘肅省] 자위관[嘉峪關]에서 동쪽의 허베이성[河北省] 산하이관[山海關]까지 2,700㎞에 이른다. 지형의 높낮이 등을 반영하면 실제 성벽의 길이는 6,352k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문화유산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리고 ‘인류.. 더보기
서울의 4대문.4소문. 사대문 [四大門]조선 건국 초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수도인 한양을 지키기 위해 세운 성곽의 문이다. 한양의 동서남북에는 4개의 커다란 성문인 4대문(四大門)을 두었고, 4대문의 사이사이에는 작은 성문인 4소문(四小門)을 두었다. 4대문은 세워진 방위에 따라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으로 불리나, 정식 이름은 유교 사상의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근거를 두어 지어졌다.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이라 하여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여 '숭례문(崇禮門)'이라 하였다. 그러나 북대문의 이름은 지(智)를 넣어 '숙지문'이라 하지 않고 청(淸)을 넣어서 '숙청문'이라고 하였으며, .. 더보기
숭례문.(남대문) 1 숭례문.(남대문) 숭례문.(남대문)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에는 도성을 둘러싼 4개의 문이 있었다.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청문,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등이다. 각각의 성문은 조선 태조 때인 1396년에 지었는데, 네 개의 문 가운데 정문은 남쪽의 숭례문이다. 숭례문의 ‘숭례’는 예를 숭상한다는 뜻이다. 문의 위쪽에 걸린 현판은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의 형인 양녕 대군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서울 남대문에는 ‘남대문 문턱이 대추나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문턱도 없는데 그 문턱이 대추나무라고 하듯이 터무니없는 말로 우김질을 한다는 뜻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빌딩숲에 갇혀 외롭게 서 있다가 2008년 방화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남대문은 도성의 4대문과 4소문 중 남쪽으로 난 .. 더보기
숭례문.(담대문) 숭례문"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있는 도성의 남쪽 정문. 조선시대 한양에는 4대문(四大門)과 4소문(四小門)이 있었다. 4대문의 동쪽 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 문은 돈의문(敦義門), 남쪽 문은 숭례문(崇禮門), 북쪽 문은 숙정문(肅靖門)이다. 이 중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남대문, 동대문으로도 불렸다. 그렇다고 호적이 바뀌는 건 아니다. 공식 이름은 여전히 현판에 표기돼 있는 것처럼 숭례문, 흥인지문이다. 숭례문은 한양 도성의 정문으로 4대문 중 최고다. 1395년(태조 4) 착공해 1398년(태조 7) 완공됐고, 1447년(세종 29)과 1479년(성종 10)에 크게 고쳤다. 숭례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1899년 서울시내 전차 노선 공사로 동대문과 서대문이 헐리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