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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량 孫亮.손휴 孫休.손량 孫亮.손호 孫皓. 1.손량 孫亮.중국 삼국시대의 오(吳)나라 제2대 황제(재위 252∼258). 손권(孫權)의 아들. 손량의 옹립에 공이 컸던 손준(孫峻)이 정권을 잡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손림(孫綝)이 정권을 잡았다. 257년 손량이 친정(親政)을 선언하고, 외척 전(全)씨와 의논하여 손림을 죽이려다 반대로 폐위되어 회계왕(會稽王)으로 지위가 떨어졌다. 자(字)는 자명(子明). 손권(孫權)의 아들. 손권의 맏아들 손등(孫登)이 죽자 손화(孫和)와 그의 동생 손패(孫覇) 사이에 태자문제를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어린 손량이 태자가 되어 252년 손권이 죽은 뒤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 결과 손량의 옹립에 공이 컸던 손준(孫峻)이 정권을 잡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손림(孫綝)이 정권을 잡았다. 257년 손량은 친정.. 더보기
손권孫權.Sūn Quán(형제"손책 [孫策].손견 [孫堅] 1. 손권孫權. 중국의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 안후이, 후난을 비롯한 각 지방의 산월 민족과 그 밖의 이민족을 토벌 진무하고, 타이완, 하이난섬 방면에도 원정군을 보냈으며, 랴오둥의 공손씨와도 접촉을 시도하는 등 국내외의 경영에 노력하였다. 자는 중모(仲謀), 시호(諡號)는 대황제(大皇帝)이다. 손견(孫堅)의 둘째 아들로 200년에 형 손책(孫策)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주유(周瑜) 등의 보좌를 받아 강남(江南)의 경영에 힘썼다. 당시 형주(荊州: 湖北省襄陽縣)에는 유표(劉表)가 세력을 떨치고, 화북(華北)에는 조조(曹操)가 있어 남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조상의 본적은 오군(吳郡) 부춘(富春)이고, 하비(下邳)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모(仲謀)이다. 삼국(三國) 시대 동오(東吳)의 건립자로 부친.. 더보기
전통 한지. Korean paper, 韓紙. 전통 한지 Korean paper, 韓紙. 종이를 발견하기 전, 인간은 죽간이나 목간을 주로 사용하였다. 종이의 기원에 대한 연대와 장소는 분명하지 않으나 기원전 2,5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피루스(Papyrus)라는 식물 내피를 가공하여 종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식물성 섬유를 종이의 단계로 만드는 초보적인 단계로 종이의 기원으로는 엄밀히 보기 어렵다.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사용하는 동안 동양에서는 문자를 표기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소재들, 예를 들어 소나 돼지의 뼈, 거북의 등껍질, 청동 그릇, 나무판자, 얇은 대나무판, 판석 등을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상고시대 때 거북이의 껍질이나 죽간, 목간, 비단 위에 글씨를 쓰고 기록하였으나 서한시대(B.C.206~224)에 이르러 마포(.. 더보기
경주시慶州市, Gyeongju-s.3 경주시慶州市, Gyeongju-s" 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도시입니다. 약 천 년 동안 신라와 통일 신라의 도읍지로 크게 발전한 경주는 누구나 인정하는 거대한 보물 창고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751년에 불국사를 짓기 시작한 김대성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 곁으로 떠나고 말았어요. 신라 왕실은 공사를 이어받아 불국사 공사를 마무리했어요. 긴 공사 끝에 모습을 드러낸 불국사는 지금보다 웅장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완공될 당시에는 건물이 80채가 넘었다고 해요. 지금의 불국사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나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국사는 이상적인 불교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어요. 처음 지어졌을 때 불국사의 이름은 ‘화엄불국사’였어요. 화엄불국사(.. 더보기
경주 여행. 경주 여행" 신라는 천년 동안 지속된 왕국이야. 경주는 아직도 천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도시이고, 문화유산들도 많이 남아있어. 경주라는 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라 길을 걷다 땅을 파면 수천 년 전의 토기가 발견될 것 같은 예감까지 들게 해. 경주는 도시 그 자체에서 신라의 고고한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우리 함께 신라의 고고한 흔적을 느끼러... 石窟庵"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이다.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 더보기
경주시慶州市, Gyeongju-si 1 유물의 수적인 면에서는 뒤지지만 규모나 예술적인 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동편기슭에는 남산에서 가장 큰 절로 비구니들의 수도처인 보리사와 8세기 말 신라불상의 걸작으로 보물로 지정된 석가여래좌상, 비스듬히 기울어진 바위 위에 조금은 거칠게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지역축제로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정부지정 문화관광 축제인 한국의 술과 떡잔치, 매년 4월 초 보문관광단지일원에서 펼쳐지는 경주벚꽃마라톤대회, 경주버섯축제, 문무대왕해맞이대축제와 새해맞이토함산기원대축제 등이 있다. 농촌전통테마마을인 안강옥산세심마을은 69호에 155명의 마을주민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한국의 농촌마을로 농촌진흥청에서 2002년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 자립적으로 농촌체험관광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이다. 읍·면1). 감포읍(甘浦邑).. 더보기
경주시慶州市, Gyeongju-si 경주시慶州市, Gyeongju-si 경주는 아직도 천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도시이고, 문화유산들도 많이 남아있어. 경주라는 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라 길을 걷다 땅을 파면 수천 년 전의 토기가 발견될 것 같은 예감까지 들게 해. 경주는 도시 그 자체에서 신라의 고고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 첨성대첨성대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천문대 중 가장 오래 됐어. 첨성대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봐.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선의 미를 뽐내고 있는 첨성대는 한국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어. 특히 첨성대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워. 2) 국립 경주 박물관국립 경주 박물관은 7만 8,680점의 소장 유물과 2,383점의 전시 유물, 국보 13점, 보물 29점의 지정 .. 더보기
정몽주 [鄭夢周 정몽주 [鄭夢周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본관 영일(迎日).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 1357년(공민왕 6)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藝文檢閱)·수찬·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으며,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女眞族) 토벌에 참가하고 1364년 전보도감판관(典寶都監判官)이 되었다. 이어 전농시승(典農寺丞)·예조정랑 겸 성균박사(禮曹正郞兼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