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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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 太極旗 ]
관련 검색 :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현충일
유래우리나라의 국기. 우리나라에서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던 것은 1876년...유래자세히 보기의미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문양은 음(陰: 파랑)과 양(陽: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의미자세히 보기관련정보국기 다는 법 , 국기의 제작, 국기의 관리, 국기에 대한 맹세
태극기 다는 법태극기 다는 법자세히 보기국경일 및기념일조의를표하는 날
다는 날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국군의 날 및 정부지정일다는 방법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않고 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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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날현충일, 국장기간, 국민장일 및 정부지정일다는 방법깃면의 너비(세로)만큼 내려 닮. 완전한 조기를 달 수 없는 경우는 바닥 등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내려 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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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는 심한 비·바람 등으로 국기가 훼손되어 그 존엄성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달지 않음
우리나라의 국기. |
국기문제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880년(고종 17) 8월 일본에서 귀국한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가져온 주일청국참찬관(駐日淸國參贊官) 황쥰셴[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이다. 중국용기(中國龍旗)를 청나라에 주청(奏請)하여 군기(軍旗)와 국기로 사용하도록 권고한 이 제안에 따라 조선정부에서는 그 해 12월 1일에 입북(入北)한 진하겸동지사은사(進賀兼冬至謝恩使) 일행에 사역원부사직(司譯院副司直) 이용숙(李容肅)을 수행시켜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을 통하여 진전시켰던바, 조선순문(朝鮮詢問) 8조 중 제7조가 그것이다. 고대사회 때부터 각 집단은 그 집단을 상징하기 위하여 동물·해·달과 같은 징표를 사용하였는바, 염색과 방적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러한 징표를 종이나 천에다 표시하게 된 것이 깃발이다. 그러나 이러한 깃발이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 때 쓰인 삼색기가 처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태극도안의 기를 사용한 것이 국기 사용의 효시가 된다. 그러나 태극도안의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화된 것은 이듬해인 1883년 1월이다. 그 과정을 보면,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국기 제정문제가 논의되다가, 1882년 박영효가 고안한 태극무늬의 기를 고종이 “태극 주위에 4괘(四卦)를 배(配)한다.”고 공포함으로써 정식 국기로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고종의 공포 당시 태극기의 규격이나 형태에 관한 정확한 명시가 없었으므로, 태극기는 각양각색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인 1949년 2월 국기시정위원회의 결정으로 규격과 문양의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현재 쓰고 있는 국기이다. 국기는 한 나라의 상징물이므로 일반적으로 그 존엄성의 유지를 위하여 법률로써 관련사항을 규정하는데, 우리 나라 국기에 대하여는 1984년 2월 21일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국기에 대한 경례방법’·‘국기의 제작·게양법’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기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하여는 <형법> 제105·106·109조에서 규율하고 있다. 제105·106조는 모욕을 목적으로 우리 나라 국기의 손상·제거, 또는 더럽히거나 비난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였으며, <형법> 제109조는 외국의 국기에 대한 동일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신라시대부터 우리 조상이 사랑했던 전통무늬인 태극을 주된 문양으로 함으로써 민족전통에 합일하는 국기이다. 특히, 태극기는 1883년 공포 이후 일제의 강점이 시작된 1910년까지 28년 이상이나 대내외에서 국기로서의 구실을 했고, 민족항일기를 통하여 국권회복의 상징이 되었으며, 피로 얼룩진 항일투쟁적 역사성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가 전통적인 태극기를 국기로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반면에 북한의 깃발은 아무런 역사성이 없는 것으로서, 이는 소련군정 초기에 북한이 각종 행사에 태극기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태극기 그 내용은 황쥰셴의 제안을 듣고 우리나라의 선박에 사용할 기표(旗標)를 제정함에 있어서 참고로 중국선박에 사용하고 있는 기표와 우리나라의 기표에 사용할 도식과 색상에 관하여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홍장은 1881년 2월 2일 올린 상주문에서 중국용기와 같은 화룡방기(畫龍方旗)를 국기와 선박기표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고, 다만 제정과 사용의 절차상 문제에 대하여 용기의 척촌(尺寸)·회구(繪具)·안색(顔色)·도식(圖式) 등은 북양대신에게 자문을 구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2월 4일 청나라 덕종(德宗)은 조선정부에 회자(回咨)할 것을 명하였고, 이 회자문은 3월 16일 성경예부(盛京禮部)의 자문으로 조선정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뒤 조선정부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시켰는지는 불명하다. 국기문제가 재론된 것은 조미조약이 체결되던 1882년 4월 6일의 일로, 조선측의 전권부관(全權副官) 김홍집과 청사(淸使) 마젠충[馬建忠] 사이에서 대두되었다. 재론의 계기가 된 것은 양국 사신의 업무연락을 담당하였던 홍로시(鴻臚寺) 사품(四品) 이응준(李應俊)이 독창적으로 제작한 조선측 국기도안을 마젠충에게 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논의에서 마젠충은 황쥰셴이 제안한 중국용기의 사용을 반대하면서 조선국왕의 복색·문양 및 조야복색 등을 기초로 하여 백저청운홍룡기(白底靑雲紅龍旗)의 도식을 제안하였으며, 다만 용조(龍爪)를 4자로 하여 중국용기와 구별되도록 하였다. 그 뒤 4월 11일 김홍집은 이응준이 제시한 도식의 수정안으로 홍색을 청·백색으로 바꾸어 권자(圈子)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 때 마젠충은 백저(白底)에 중앙에 반홍반흑(半紅半黑)의 태극도(太極圖)와 그 둘레에 팔도(八道)를 뜻하는 흑색의 팔괘(八卦) 및 홍색의 주연(周緣)이 있는 도식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태극·팔괘도식의 국기제정문제가 조선정부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메이지환(明治丸) 편으로 출항한 다음 영국인 선장과 상의하여 태극기 대·중·소 3본(本)을 만들었다는 것과, 태극도에 반홍반흑을 사용하자는 마젠충의 제안이 반홍반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박영효는 8월 22일 태극기 소본(小本)과 함께 국기제정사실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 보고하였으며, 1883년 1월 27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장계에 따라 팔도사도(八道四都)에 행회(行會)함으로써 태극기가 정식으로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행 태극기를 대한민국 국기로 정식 공포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이다. 태극 도형의 문양(文樣)과 이념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통적으로 쓰여왔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주역』 계사(繫辭) 상(上)에 나오지만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다. 중국에서 태극의 문양이 보이기는 송나라 때로,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처음으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는데, 그 연대는 11세기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었으며, 1144년(인종 22)에 죽은 검교대위(檢校大尉)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태극이나 태극에 내포된 음양사상은 우리나라 고대의 문화유적이나 생활습속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민속설화 또는 의학에 있어서 병리·생리 등을 음성·양성으로 분류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그것이다. 고구려 고분내의 사신도(四神圖)라든지, 특히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대민속에서 액(厄)막이하는 부적(符籍)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태극도형 등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태극도형 또는 그것이 머금고 있는 음양사상을 일찍부터 이해하고 활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태극기는 백색을 바탕으로 하여 중앙에 음(陰, 靑)·양(陽, 紅)의 양의(兩儀)가 포함된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이 있고, 네 귀〔四維〕에는 건(乾)·곤(坤)·감(坎)·이(离)의 사괘(四卦)가 배치되어 있다. ① 흰 바탕: 바탕이 흰 빛으로 되어 있는 것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한민족의 동질성과 결백성을 상징한 것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이상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하겠다. 고대 동부의 여러 족속들이 백의(白衣)를 숭상한 것은 공통된 문화적 특징이라 하겠지만, 특히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나라 사람들이 흰 옷을 숭상해 입었다.”고 하였으며, “상중(喪中)에는 남녀 모두가 순백(純白)으로 입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색을 숭상한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② 일원상의 태극: 유교철학에서 태극은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표현한 것이므로 사멸(死滅)이 있을 수 없는 구원(久遠)의 상(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황(李滉)은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이며, 어떠한 것에도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천상(天上)의 달이 천강(千江)에 비칠 때 강마다 둥근 달이 있는 것처럼 천지로 말하면 천지가 한 태극이라 할 수 있으며, 만물로 말하면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의 원만성을 구비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만유(萬有)가 모두 태극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그 원리는 인간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이므로, 인도(人道)의 극치가 곧 태극이며, 태극이 다름아닌 인극(人極)인 것이다. 김장생(金長生)은 만물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 즉 진리의 주체적인 인극을 강조하였다. 인극으로서의 주체는 남을 해(害)하지 않고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공동주체이다. 여기에 각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의 도리(道理)가 성립되며,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된다 하겠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중에서 천·지의 요소를 인간으로 집약하여 인도주의 정신을 고취하여왔다. 단군설화에서 단군(檀君)이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桓雄)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한 것이라든지, “무릇 도는 인간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은 누구나 이방(異邦)이 따로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한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眞鑑國師) 비문,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 등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태극의 진리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더할 나위 없는 것을 일컬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추상적 원리는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음양상대(陰陽相對)의 구체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 태극과 음양과의 관계: 태극이 곧 음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음양을 떠나서 태극은 존재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태극기의 도형을 실제로 고찰하면 홍색의 양과 청색의 음이 상하로 상대화합(相對和合)되어 있는 음양의 도상(圖象)만 보일 뿐이지 태극의 원리는 내재한 까닭에 보이지 않는다. 양상음하(陽上陰下)로 배치된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고 따라서 사회와 민족국가가 형성된다. 음양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만물이 성장하고 번영한다. 음과 양은 본래 성질을 달리하여 각립(各立)하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머리와 뿌리를 맞댄 대립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하여 생성, 발전하는 것이다. 즉, 이원적 부잡성(不雜性: 개별성)과 일원적 불리성(不離性: 융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상호 화합성을 구현하고 있거니와, 이를 조종하고 통일하는 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불교철학에 있어서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고매한 화엄(華嚴)의 도리를 대중 속에 생활화시킨 것이라든지, 원효(元曉)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 있어서 공(空)과 유(有)를 원융하여 일승불교(一乘佛敎)를 이룬 것이라든지, 율곡철학(栗谷哲學)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가 묘합(妙合)하여 일원화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사상 등은 모두 음양양의(陰陽兩儀)의 중화작용(中和作用)을 진리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④ 사괘(四卦): 건·곤·감·이의 사괘는 태극도형의 음양 양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배열된 것으로, 음양이 생성,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태극도형은 좌에서 우로 회전하지만, 태극기에서의 도형은 우에서 좌로 회전하고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고, 곤(☷)은 태음(太陰)으로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 속에서 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 속에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태양인 건에서 소음인 이로 바뀌고, 이에서 태음인 곤으로 성장하며, 또 곤에서 소양인 감으로 바뀌고, 감에서 태양인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 발전을 수행한다. 건은 천도(天道)로서 지선(至善)·지공(至公)의 정의(正義)를 의미하고, 곤은 지도(地道)로서 후덕(厚德)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하며, 감은 수성(水性)으로서 지혜와 활력을 나타내고, 이는 화성(火性)으로서 광명과 정열을 뜻하는 것이며, 백색 바탕은 평화의 정신을 상징한다. 정의와 풍요, 광명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우리 국기의 사괘가 상징하는 특징이며, 백색의 바탕인 평화의 정신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것은 곧 산업과 도의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정열과 지성을 겸비한 온전한 인간과 사회를 이룩하려는 이상을 포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업과 도의, 정열과 지성을 원만하게 조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며,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와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희구하는 좌표인 동시에 홍익인간의 국시(國是)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1) 제작방법 깃면은 흰빛으로 하고 길이와 너비는 3과 2의 비례로 한다. 깃면은 태극과 4괘로 구성된다. 태극은 깃면의 두 대각선이 서로 교차하는 점을 중심으로 깃면너비의 2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린 다음, 두 대각선 중 왼쪽 윗모서리에서 오른쪽 아래 모서리로 그어진 대각선상의 원의 지름을 2등분하여 왼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아랫부분에 그린다. 그 오른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윗부분에 그리고, 반원으로 연결된 원의 윗부분은 빨강색(진홍색)으로, 그 아랫부분은 파랑색(아청색)으로 한다. 그 다음 4괘는 깃면의 왼쪽 윗부분에 건을, 오른쪽 아랫부분에 곤을, 오른쪽 윗부분에 감을, 왼쪽 아랫부분에 이를 각각 배열한다. 괘의 길이는 태극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로 하고, 괘의 너비는 태극지름의 3분의 1(깃면너비의 6분의 1)로 하며, 괘와 태극 사이는 태극지름의 4분의 1(깃면너비의 8분의 1)을 띄운다. 괘의 길이 중심을 깃면의 두 대각선상에 두되 그 길이는 두 대각선과 각각 직각을 이루도록 한다. 괘의 구성은 효(爻)로 하되, 그 효의 너비는 괘너비의 4분의 1(깃면의 너비 24분의 1)로 하고, 효와 효 사이 및 끊어진 효의 사이는 효너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8분의 1)로 한다. 괘는 검정색이다. 깃봉은 아랫부분에 꽃받침이 5편(片) 있는 둥근 모양에 가까운 무궁화봉오리 모양으로 하며, 색은 황금색으로 한다. 깃대는 대나무 또는 쇠 등의 견고한 재질로 만들고, 색은 대나무색 또는 이와 유사한 색으로 한다. (2) 게양방법 국기는 비 또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의 낮에 게양함을 원칙으로 하며,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6시에 내리며,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5시에 내린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그 행사 때에만 달기도 한다. 경축할 때는 깃봉과 깃 사이를 떼지 않고 단다. 일반 가정의 대문에는 집 밖에서 보아 왼쪽에 곧게 세우며, 건물의 옥상에는 그 중앙에 국기를 게양한다. 국장·국민장 등 조의를 표할 때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만큼 떼어서 단다. 외국기와 같이 달 때는 최우선의 위치에 단다. 태극기와 외국기 하나를 같이 세울 때는 태극기를 왼쪽에 세우고, 서로 엇갈리게 할 때는 태극기의 깃면이 단상을 향하여 왼쪽에 오게 하고 깃대는 밖으로 가게 한다. 세 나라 이상의 외국기와 함께 세울 때는 홀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향해서 왼편이 둘째, 오른편이 셋째순으로 하며, 짝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왼편 첫째로 하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단다. |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서, 태극과 팔괘(八卦)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태극은 우주 자연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적색은 존귀와 양(陽)을 상징하고 청색은 희망과 음(陰)을 나타낸다. 팔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사시사방(四時四方)을 의미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따라서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통일·창조·광명·무궁을 상징한다. 한국에서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었다. 이 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을 때 일본 사신이 일본국기를 내건 데 대하여 당시 조선 사신은 국기가 없어서 내걸지 못하였다. 그 뒤 외국과의 교섭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껴, 1881년 충청도관찰사 이종원(李淙遠)이 제출한 태극 팔괘의 도식(圖式)에 의해 비로소 국기를 정하였다. 실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는 역관이었던 이응준이 김홍집의 명에 의해 만들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국내에서 국기로 제정하여 공포·사용한 것은 1883년부터이다. |
태극기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서, 태극과 팔괘(八卦)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태극은 우주 자연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적색은 존귀와 양(陽)을 상징하고 청색은 희망과 음(陰)을 나타낸다. 팔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사시사방(四時四方)을 의미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따라서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통일·창조·광명·무궁을 상징한다. 한국에서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었다. 이 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을 때 일본 사신이 일본국기를 내건 데 대하여 당시 조선 사신은 국기가 없어서 내걸지 못하였다. 그 뒤 외국과의 교섭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껴, 1881년 충청도관찰사 이종원(李淙遠)이 제출한 태극 팔괘의 도식(圖式)에 의해 비로소 국기를 정하였다. 실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는 역관이었던 이응준이 김홍집의 명에 의해 만들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국내에서 국기로 제정하여 공포·사용한 것은 1883년부터이다. |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각국이 일정의 형식 요건을 부여하여 공식으로 정한 기. 국기는 외국에 통보되어 상호 인지됨으로써 국제법상의 효과를 발생한다.
국기에 대해서 국제법은 다음과 같은 권리 및 의무를 정하고 있다.
(1) 국기의 존중과 고의의 파손에 대한 손해배상 또는 사죄 등의 요구권,
(2) 외교사절의 국기게양권,
(3) 의례와 사죄의 의사표시로서의 국기게양,
(4) 상선의 국기게양,
(5) 군함의 국기게양,
(6) 본국의 경축일 등 특정한 날에 외국인에 대해 인정된 국기게양,
(7) 공격 시에 자국의 국기를 게양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시(戰時) 묘책으로서의 교전국에 의한 외국국기의 일시 게양,
(8) 전시 또는 내란 등 비상사태에서 외국인의 주소와 사무소 등에서의 본국의 국기게양,
(9) 상선(商船)이 복수의 국기를 게양하는 것을 금지.
또한 국기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것으로서 국장(國章)이 있다.
국장은 협의로는 기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문장(紋章) 등으로 국가의 상징으로서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항공기의 날개 등에 표시되는 국기, 국장의 모양 등도 국기에 준하여 취급된다.
국기 게양일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 제12조(국기의 게양일)에 따르면 '국기를 게양하여야 하는 날'과 '조기 게양일'(애도를 표시)은 다음과 같다.
· 3월 1일: 3·1절
· 6월 6일: 현충일(조기 게양)
· 7월 17일: 제헌절
· 8월 15일: 광복절
· 10월 1일: 국군의 날
· 10월 3일: 개천절
· 10월 9일: 한글날
· 국가장 기간: 조기 게양
· 정부가 따로 지정하는 날
·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또는 지방의회의 의결로 정하는 경사스러운 날(당해 지방자치단체에 한함)
국기 게양
<h7 class="se_textarea" id="TABLE_OF_CONTENT1" style="display: block; width: 700px; height: 43px; padding: 0px; outline: 0px; border: none; background: 0px 0px; font-family: inherit; font-size: inherit; font-weight: inherit; line-height: inherit; color: inherit; text-align: inherit; font-style: inherit; text-decoration: inherit; resize: none;">게양 방법</h7>
경축일 또는 평일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않고 게양한다. 그러나 조의를 표하는 날(현충일, 국가장 기간 등)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깃면의 너비(세로)만큼 떼어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국기를 조기로 게양할 때에는 깃면을 깃봉까지 올린 후에 깃면 너비만큼 다시 내려서 달고, 강하할 때에도 깃면을 깃봉까지 올렸다가 내린다.
국기를 다른 기와 함께 게양할 경우 다른 기도 조기로 게양하여야 하며, 국기를 외국기와 함께 게양할 경우도 외국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이 경우에는 사전에 해당국과 협의를 거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 국경일, 평일 게양 시
· 조의를 표하는 날 게양 시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의례 절차에서 낭송하는 맹세문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각종 의식에서 행하는 국민의례 절차를 정식 절차로 할 경우에 '국기에 대한 경례' 시 경례곡 연주와 함께 위 맹세문을 낭송하여야 한다.
약식 절차로 할 경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 시 전주곡이 없는 애국가를 주악하고 맹세문은 낭송을 하지 않는다.
이 맹세문은 1968년 충남도 교육위가 자발적으로 만들어 보급한 것이 시초다.
1972년 문교부가 이를 받아들여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시행하도록 하였고, 1980년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 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실시하도록 하였다. 이후 1984년 2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으로 법제화되었다.
1996년에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국기 강하식 및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송을 생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2007년 7월에는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의 제정ㆍ공포에 따라 행정자치부에서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여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규정하였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國旗에 對한 盟誓▽)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낭송하는 것으로 1968년 3월 충청남도교육위원회가 처음 작성하여 보급하기 시작한 것을 1972년 문교부가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였다.
2007년 5월, 행정자치부는 기존의 맹세문 문안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점과 문법에 어긋난 점을 지적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 수정안을 확정하여 2007년 7월 27일 공포 시행하였다.
1968년 3월 - 충청남도 교육청 장학계장 유종선, 국기에 대한 맹세 작성, 1972년 - 문교부가 전국 각 학교에 시행하도록 지시, 1980년 -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실시, 1984년 2월 -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실
맹세문 변천과정" 초기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ㆍ1974년 이후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ㆍ2007년 이후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출처 & 참고문헌
[국기 게양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게티이미지 코리아
[국기, 태극기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201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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