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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기념물, 문화재,(국보급,관리국 or ,관할지자체,소속)

히말라야 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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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산맥"

인도 대륙 북쪽에서 중앙아시아 고원 남쪽을 동서로 길게 연결하는 만년설의 산맥. 인도와 중국 티베트 사이에 있는 산맥.아시아 대륙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는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이라 부르는 지역으로 총 연장 2,50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히말라야는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 네팔, 시킴, 부탄 및 티베트 남부를 뻗어내리면서 몇 개의 산계로 나누어진다. 

히말라야의 지역 구분은 명확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힌두쿠시, 힌두라지의 산맥이나 파미르, 티베트의 쿤룬 산맥이 히말라야에 포함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와 중국 티베트 사이에 있는 산맥이에요. 히말라야 산맥은 길이가 2,400킬로미터나 되어, 파키스탄, 중국, 인도, 부탄, 네팔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어요.


 히말라야 산맥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8,848m)을 포함하여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14개나 있다. 이렇게 히말라야 산맥을 포함한 지구의 거대한 산맥들은 지각의 판과 판의 충돌인 판구조 운동의 산물이다. 지각 판이 충돌하면 그 압력에 의해 지층이 물결 모양으로 휘면서 습곡 산지가 형성된다. 때로는 대륙판끼리 또는 대륙판과 해양판이 만나 산맥이 형성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은 그 높이가 8848미터인데 히말라야산맥을 이루는 산봉우리 중 하나이지요. 

뉴질랜드 사람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답니다. 


네팔 고봉 중 8개 봉이 솟아 있으며,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등이 있고, 6,000~7,000미터급의 수많은 고봉들이 네팔과 중국의 국경선상을 동서에 걸쳐 장장 800킬로미터나 펼쳐져 히말라야 전체 길이의 3분의 1을 차치한다. 이 거대한 산맥은 남북으로 네팔과 중국의 티베트 고원, 동쪽은 시킴 히말라야, 서쪽은 인도의 가르왈 히말라야와 연결된다. 


가르왈 히말라야는 네팔 서쪽 국경에 있는 칼리 강에서 인도의 수틀레지 강까지 길이 320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이다. 인도 최고봉이자 성역인 난다데비(7,816m)와 카메트(7,756m)를 가진 산역이다. 


이 지역은 히말라야 산맥 중 접근이 쉽고 아름다운 암봉들이 많아 일찍부터 등반 활동이 시작된 곳이다. 이 지역의 동부는 난다코트(6,861m), 트리슐(7,120m), 창가방(6,864m), 두나기리(7,066m) 등이 있다. 또 이 지역의 강고트리 산군에는 차우캄바(7,138m)를 포함 바기라티(6,856m), 쉬블링(6,543m) 등 6,000~7,000미터급의 유명 암봉들이 밀집해 있다.


히말라야는 가르왈 히말라야의 서쪽이며, 수틀레지 강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550킬로미터의 산악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가 웅자를 드러내고 카시미르 분지가 이곳에 속한다. 


펀잡은 다섯 개의 강을 의미하며 인더스 강의 5대 지류 중 4개가 이 지역을 흐른다. 


펀잡 히말라야에는 최고봉 낭가파르바트와 눈(7,135m), 쿤(7,077m) 등이 있다. 


한 개의 8,000미터급 산과 두 개의 7,000미터급, 6,000미터급의 산이 여러 개 있다. 

히말라야산맥을 종단하는 협곡 연변의 도로는 험난하고 가축도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에 교역 ·순례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교통은 활발하지 못하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치 정세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와 티베트로 통하는 도로는 폐쇄되어 있다. 예부터 다질링∼걍체 및 캄파종 간, 심라∼가르록, 길기트∼파미르 간을 잇는 길이 유명하였다. 


영국 식민지시대에는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네팔의 구르카족()이 영국의 용병으로 고용되었고, 1920년대에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인부로 채용된 네팔 주민 셰르파는 지금도 히말라야 지방을 여행하거나 등반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거대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는 히말라야산맥에는 힌두계() ·티베트계 ·이슬람계 주민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저마다 고유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어 특이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특히 네팔 지역에서는 해발고도 2,000m선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은 곳에서는 목축의 비중이 높은티베트인()들이 흑우() ·야크 ·들소 등을 사육하고 보리 ·밀 ·메밀을 가꾼다.


 그보다 낮은 곳은 쌀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힌두계 주민의 생활터전인데 경작에는 소를 사용하고 젖짜기용 물소를 사육한다. 농경의 상한()은 주()능선 이북이 평균 3,600m이지만, 때로는 4,000m까지 올라가며, 가파른 산중턱에는 계단식의 경작지가 이루어져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히말라야 산맥은 펀잡 히말라야에서 끝이 난다. 

인더스 강이 이 산줄기를 카라코람 산맥과 명확하게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라코람 산맥은 지리적으로 양자를 하나의 산줄기로 보자는 견해도 있다. 좀더 넓게 본다면 중앙아시아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모든 고봉군을 히말라야로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가장 많은 고봉이 밀집한 산맥은 6개다. 


히말라야·카라코람·힌두쿠시·쿤룬·톈산·파미르 산맥 등이다. 


파미르 지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는 이들 산맥을 넓은 개념의 히말라야로 묶어 하나의 등반 대상지로 파악하자는 것이 광역 히말라야다.카라코람(Karakoram) 산맥은 중앙아시아 남쪽과 인도 북서쪽에서 동서 500킬로미터, 남북 150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큰 장벽이며,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이룬다. 터키어로 카라는 ‘검은색’을, 코람은 ‘돌’을 의미한다. 


이 산역에는 8,000미터급 4개 봉과 수많은 6,000~7,000미터급 산이 모여 있다. 

세계 제2위 고봉인 K2(8,611m)를 위시하여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룸Ⅰ(8,068m) 등이 솟아 있으며, 인더스 강 지류의 샤이요그 강에서 길기트 강 부근의 25개 산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삼 히말라야는 인도 북동쪽 브라마푸트라 강에서 부탄의 마나스 강까지 이어지는 400킬로미터의 산맥이다. 이 지역은 히말라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이 지역은 밀림 지대가 많아 접근이 어렵고 벵갈 만과 근접해서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히말라야라 부르는 지역은 동쪽의 브라마푸트라 강에서 시작, 서쪽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장장 2,500킬로미터, 남북으로 폭 200~300킬로미터의 산맥을 가리킨다. 즉 동쪽 부탄의 남차바르와(7,756m)에서 서쪽의 낭가파르바트(8,126m)까지 이어지는 이 산맥이 가장 정통한 의미의 히말라야 산맥이며, 그레이트 히말라야라고도 부른다. 


이 협의의 히말라야는 동쪽에서부터 아삼(Assam) 히말라야, 부탄 시킴(Bhutan Sikim) 히말라야, 네팔(Nepal) 히말라야, 가르왈(Garhwal)히말라야, 펀잡(Punjab) 히말라야로 나뉜다. 

히말라야 산맥은 대륙판인 인도 판과 아시아 판의 충돌로 형성되었다. 


대륙판끼리 충돌하는 곳의 밀도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대륙판도 맨틀로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 밀어붙이는 강력한 힘에 의해 대륙이 충돌하는 전단부에서는 광범한습곡과 단층을 수반하는 거대한 산맥이 형성된다.


약 7,000만 년 전 인도 판은 적도를 지나 북쪽으로 이동하여 약 5,000만 년 전 아시아 판과 충돌했다. 인도 판이 계속해서 밀어붙이자 두 대륙의 가장자리가 깨지면서 밀쳐 올라가 두꺼워졌다. 그 결과 생성된 것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약 800만 년 전에 지금과 같은 높은 지형을 이루었다. 날카로운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은 침식을 오랫동안 받지 않아 그 형성 시기가 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북쪽을 향해 판 운동이 계속되고 있어 1년에 약 5cm씩 밀어 올려지고 있다. 하지만 침식 작용에 의해 봉우리가 마찬가지로 깎여 나가고 있어 산맥이 성장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히말라야 산맥은 12월에서 2월말 사이 북쪽 시베리아 평원 부근에서 발원한 한랭 건조한 바람의 이동을 가로막아 냉기가 남쪽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한다. 이 바람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지 못하고 대신 방향을 동쪽으로 바꿔 중국, 한국, 일본으로 차가운 북서풍을 몰고 오는 것이다. 지구 둘레의 6분의 1에 이르는 거리에 걸쳐 있는 히말라야 산맥은 비행기와 인도 기러기 이외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곳이다. 이렇게 히말라야 산맥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장벽과도 같아 지구의 기후 체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인도양에서 발원한 고온 다습한 기단은 6월 하순에서 8월 사이 대륙으로 내습하는데, 이때 히말라야 산맥에 부딪히면서 큰 비를 몰고 온다.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아삼 지방의 연평균 강수량은 1만 1,400mm나 된다. 


이는 히말라야 산맥이 계절풍인 몬순을 막기 때문이다. 


신비의 땅 히말라야는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면서 그 자체가 곧 삶이다. 


그들은 히말라야를 거스르면서 한편으로는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히말라야를 닮아간다. 


에베레스트 산의 해발 8,000m 부근에는 노란색 석회암 층인 옐로우 밴드가 나타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남쪽에 있던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는 바다가 있었는데, 그 바다를 테티스해라고 한다.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의 충돌로 테티스해의 바닥에 있던 퇴적암의 흔적인 옐로우 밴드가 융기에 의해 높은 고도로 들어 올려진 것이다. 이 층에서 조개와 산호 등 바다에서 살던 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된다. 히말라야 의야생 산양" 몸길이 130∼170㎝, 어깨높이 60∼100㎝, 뿔길이 최대 44㎝로, 히말라야타르·히말라야영양이라고도 한다. 


타르속()에 속하는 야생염소의 일종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크며, 몸무게가 100㎏ 이상 되는 것도 있다. 몸빛깔은 노란색부터 검은색까지 부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수컷의 얼굴은 검은색을 띤다. 


높은 산의 험준한 벼랑에서 무리지어 서식하나, 발정기 이외에는 수컷과 암컷이 따로따로 생활한다. 임신기간은 약 180일이고, 한배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나뭇잎·새싹·풀잎 등 식물질을 먹는다.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뉴질랜드에 도입되어 산악지대에서 야생화되었다. 히말라야산맥·뉴질랜드에 분포한다. 털은 길며, 특히 수컷은 목 부분에 털이 촘촘하게 나 있고, 암컷은 수컷보다 털의 길이가 짧다. 뿔의 형태는 좌우로 납작하고 뒤로 굽은 형태이다. 


암수 모두 뿔이 있다. 뿔은 해마다 자라는데 수컷이 암컷보다 더 길고 무거우며 튼튼하다.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총칭인데, 대표적으로 영양이나 고산조, 뇌조, 히말라야곰, 산양 등이 있다. 보통 고산지대란 해발고도 2,500 m 전후에서 그 위쪽을 말하는데, 온도와 기압이 낮고 바람이 강한 혹독한 환경이므로 서식동물의 수는 적은 편이다. 

동물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규정짓기는 어렵다. 


고산지대는 해발고도 2,500 m 전후에서 그 위쪽을 말하며, 관목대() ·초원대() ·암원대() ·불모대() 등이 있는데, 온도와 기압이 낮고 바람이 강하며 일사()가 강해서 하루 중의 온도차가 크다. 따라서 북방의 한랭지와 비슷한 혹독한 환경이기 때문에 서식하는 동물도 제한되어 있으며, 개체수도 많지 않다. 


고산동물은 포유류인 영양(), 고산조()인 뇌조() 등을 들 수 있고,중앙아시아 ·히말라야 ·티베트, 그리고 중국의 쓰촨[] ·윈난[] 등의 고지대에서는 히말라야곰 ·야크 ·산양 ·영양 ·무플런양 등이 서식하고 있다. 


[보박, Marmota Bobac] 타르바간(tarbagan)이라고도 한다. 몸길이 49∼58cm꼬리길이 11∼13cm이다. 오소리와 비슷하며, 몸은 굵고 튼튼하고 실팍하다. 머리는 편평하고, 꼬리와 귀는 짧다. 네 다리는 굵고 짧으며, 발톱은 단단하고 크다. 몸 윗면은 붉은빛을 띤 갈색 또는 노란빛을 띤 갈색이고, 머리와 코의 윗면은 연한 노란빛을 띤 갈색이다. 지역에 따라 등면에 검은 털이 섞일 때도 있다. 


붉은꿩" 

몸길이 약 43cm이다. 수컷의 머리와 등, 날개, 꼬리 위쪽은 짙은 잿빛이다. 목 앞쪽과 가슴, 배는 노란빛을 띤다. 꼬리 아래쪽은 선홍색이다. 꼬리는 12개의 깃털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 위쪽에 장식 깃털이 있으며 이 부분의 색은 회청색, 노란색 등 개체마다 다르다. 목 앞쪽은 붉은색이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탁한 갈색이다. 목덜미는 회색을 띤다. 수컷과 암컷 모두 눈 주위에 붉은색 피부가 겉으로 드러나있다. 


머리 위의 장식 깃털은 회청색이나 노란색 등 다양. 암컷: 전체적으로 탁한 갈색, 목덜미는 회색 수풀이 우거진 곳 등. 겨울에는 낮은 고도로 이동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북부, 티베트, 중국 남부와 중부 등 건조한 초원에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한다. 


여름에는 1m 이내의 구멍을 파고 살지만, 9월 초순에는 10∼20마리가 힘을 합하여 약 2m의 터널을 파고 이듬해 4월 초순까지 동면하는데, 그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동면에서 깨어난 직후에도 피하의 지방조직에 두꺼운 지방층이 남아 있다. 5월에 3∼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해발 2,500~4,500m 부근의 혼합림, 수풀이 우거진 곳 등에 서식한다. 겨울이 되면 낮은 고도로 이동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북부, 티베트, 중국 남부와 중부 등에 분포해있다. 분포 지역에 따라 11~15개의 아종()으로 나뉜다. 


모피는 품질이 좋아서 담비의 대용으로 쓰이나, 기생하는 벼룩이 페스트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폴란드와 루마니아, 유럽, 러시아, 알타이산맥, 몽골, 중국 서부 및 북동부, 티베트, 히말라야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1. 네팔의 연혁(위치, 면적, 인구, 언어, 종교 등),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네팔 국기의 상징, 2. 히말라야 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인 타팔 거리. 히말라야 수염수리는 주로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에서 서식한다. 이들 지역에서는 이 새를 신성하게 여기는 탓에 사원의 지붕이나 유목민 마을에서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이는 주로 동물의 죽은 고기를 먹는데, 먹이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뒤 바스러진 뼈에서 골수를 빼먹는다. 


‘네팔’이라는 이름은 그 곳에 살아온 네와르(Newar)라는 민족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표기된 고대 문서들이 남아 있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도 카트만두가 있는 카트만두계곡 지역에 오래 전 살았던 ‘네(Ne)’라는 힌두교 현자가 이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네팔은 ‘네의 보호를 받는 곳’이라는 뜻 카트만두 계곡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적어도 1만1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네팔의 초기 정착민들은 기록에 의하면 고팔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고, 마히스팔라, 키라타 같은 정착민들이 뒤를 잇습니다. 


2500년 전부터 티베트-버마 계통 사람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습니다. 기원전 500년 무렵 작은 왕국들이 오늘날의 네팔 남부에 생겨납니다. 그 중 한 왕자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요. 바로 싯다르타 고타마, 석가모니입니다. 찬드라굽타는 토착 왕조였던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제국을 세운 뒤 속속 영토를 늘려갔으나, 결국 거대한 적에게 맞부딪치게 됩니다. 


이름 하여 알렉산드로스! 하지만 그리스(마케도니아) 군대는 끝내 마우리야를 무너뜨리지 못했으니, 마우리야는 기원전 316년 인도 북서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기원전 250년경이 되자 네팔 남부 지역은 인도 북부에 기반을 뒀던 마우리야(Maurya)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잠시 샛길로 가서 마우리야 제국을 들여다볼까요. 마우리야는 철기 문명에 기반을 둔 제국이었죠. 


기원전 250년 무렵의 마우리야 영토는 아래 지도에서 보시듯 인도 아대륙과 그 북부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제국을 세운 주인공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야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인 셀레우코스1세의 침공도 물리치고 인더스강 서쪽으로 영토를 늘려갑니다. 


마우리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 중의 하나였고, 전성기에는 영토가 히말라야 산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산맥에 이르렀다. 네팔의 역사는 인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네팔은 4세기에는 인도 굽타 왕조 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5세기 인도 중·북부 드넓은 지역을 장악했던 굽타 왕조 시기는 인도 역사의 황금기로도 불리지요. 대략 400~750년에는 리차비(Lichchhavis)라고 불리는 왕조가 카트만두계곡을 비롯한 현재의 네팔 중부지역을 지배합니다. 


이 시기 네팔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책이 있지요. <서유기>로 알려진 현장(삼장)법사의 순례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8세기에 이르자 리차비 왕조는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이 때부터 네팔은 티베트인들의 거점이 되고, 네와리의 시대가 열립니다. 


11세기 무렵에는 포카라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네와리에 속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뿐. 그러나 네와리의 시대는 잠시에 그쳤고, 11세기 말이 되자 인도 찰루키야(Chalukya) 제국의 물결이 남쪽으로부터 밀려옵니다. 


네팔인들도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지는 않았으니... ‘말라’라는 일군의 지도자들이 떠오릅니다. 


말라 왕들은 약 200년 동안 네팔을 다스렸고, 그 동안 20여개의 크고 작은 왕국들이 명멸했습니다. 


네팔 중부가 다시 통일된 것은 14세기 말 자야스티티(Jayasthiti) 왕조가 들어서면서였습니다. 자야스티티는 말라 왕들 중의 한 명입니다. 당시 카트만두와 파탄, 바드가온 등의 도시들이 라이벌이 되어 싸우고 있었는데, 자야스티티는 바드가온을 다스린 데발라데비라는 여왕의 손녀와 결혼을 합니다. 


자야스티티는 주변 작은 왕국들을 복속시킨 데 이어 1370년에는 파탄을 손에 넣었고, 1374년에는 바네파, 파르핑 같은 지역들을 정복합니다. 


1395년에는 드디어 네팔 중부를 모두 장악합니다. 지금도 자야스티티는 네팔인들의 역사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고르카 왕국은 히말라야 북쪽까지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만, 이 때문에 중국 청 왕조와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결국 청에 밀려 네팔의 영토는 히말라야 남쪽 기슭으로 다시 줄어들었고... 이 무렵 이미 인도에서는 영국이 식민지화를 진행하고 있었지요. 네팔 왕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1815-1816)이 일어납니다. 


고르카가 패배했지만, 이 때 고르카의 용맹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영국이 이들을 용병으로 삼기 시작했고 그것이 ‘구르카 용병부대’의 전설로 오늘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또 샛길로 가자면, 구르카 용병들은 20세기의 수많은 전쟁들에 영국의 용병으로 동원됐습니다. 


영국 정부가 이들에게 영국 군인들에게 내주는 것과 같은 연금을 주지 않자 용병들이 소송을 벌여 이기기도 했고요. 그러나 용병은 용병, 영국 제국주의 군대에 들어가 돈을 받고 다른 피지배 민족들을 학살하는 일에 동원된 사람들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연금 형평성’ 문제와는 별개다. 이 왕조 또한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1482년이 되자 네팔은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의 세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갈라져 있던 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18세기 중반입니다. 영국 식민주의 군대의 ‘구르카 용병’으로 유명한 고르카(Gorkha)족의 왕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가 인도로부터 무기를 들여와 정복전에 나섭니다. 


1769년의 칸티푸르(Kirtipur) 전투와 같은 몇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카트만두계곡을 손에 넣습니다. 고르카와 라나 왕조" 고르카 왕국과 영국의 전쟁 뒤 네팔은 왕정 내 분열로 불안정한 상태가 됩니다. 


1846년에는 승승장구하고 있던 군벌 지도자를 몰아내려던 음모가 드러났고 ‘코트(Kot) 학살’이 일어납니다. 군벌들이 부딪치고 처형과 숙청이 잇따르면서 왕실은 초토화됩니다. 쫓겨날 뻔했던 바로 그 군벌, 중 바하두르 쿤와르(JungBahadurKunwar)는 마침내 승자가 되어 라나(Rana) 왕조를 열었습니다. 


라나 왕조는 친영파였고 인도 세포이 항쟁 때에도 영국을 지원했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역시 네팔은 굳건히 영국을 지원합니다. 인도가 영국 식민통치에 신음하며 반영 독립운동을 벌인 것과 달리 네팔은 1923년 영국과 공식적으로 우호협정을 체결했습니다. 


1924년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철폐됐지만 네팔 왕국에는 여전히 인신매매와 노예제가 흔했습니다. 라나 왕조의 억압적인 통치가 도전에 부딪친 것은 1940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에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합니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네팔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고래 사이에 낀 새우가 된 네팔은 1951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네팔의회당 주도의 새 정부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왕실과 정부 간의 권력다툼은 끝나지 않았고 마헨드라(Mahendra) 국왕(1955-1972년 재위) 시절인 1959년 이래로 1989년까지 ‘정당 없는 의회’인 판차야트(Panchayat) 체제가 자리를 잡습니다. 


비렌드라 국왕은 ‘잔 안돌란(민중운동)’이라 불리는 국민적 요구에 밀려 개헌을 하고 1991년 5월 다당제 선거를 실시하게 되지요. 이미 왕조는 구시대적인 존재로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미움만 잔뜩 받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경 낙후된 농촌을 중심으로 마오주의 공산당과 반군이 세를 불리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왕조를 없애고 공화국으로 가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당시 마오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으로 1만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다가 왕실의 신망을 아주 땅바닥에 떨어뜨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2001년 6월 1일 키렌드라 국왕과 아이스와리야 왕비를 비롯한 왕실 일가족이 몰살당한 겁니다. 살인극을 벌인 인물은 다름아닌 디펜드라 왕세자였습니다. 


왕세자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을 사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디펜드라가 원하는 여성과 결혼하지 못하게 부모가 막은 것이 살인극의 이유가 됐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 뒤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갸넨드라는 국민들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인기가 통 없었다고 합니다. 


민주화 요구에 직면해 갸넨드라는 국왕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는 데에 동의했고, 명목상의 왕실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고, 2007년 12월 의회는 왕조를 없애고 공화국으로 가기 위한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킵니다. 


2008년 4월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마오주의 네팔공산당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5월 28일 실시된 의회 투표에서 564명 중 560명의 찬성으로 네팔은 공화국이 됐습니다. 


240년 역사의 라나 왕조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갸넨드라는 15일 뒤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퇴거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변모했습니다. 그 해 8월 15일, 마오주의 지도자 프라찬다(본명은 푸시파 카말 다할)가 총리로 선출되면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이행이 완료됩니다.  


공산당 주도 연립정부는 이듬해 무너졌고, 새로 출범한 정부도 2011년 또 무너졌고, 헌법을 놓고 아직도 싸움이 지속되는 판국입니다.


2014년 2월에 의회 내 주요 정당들이 제헌의회를 다시 소집하는 데에 합의하면서 수실 코이랄라 현 총리가 취임했습니다만, 


지진으로 모든 정치일정은 중단된 상황이죠. 네팔의 미래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밝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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