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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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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정의

명절의 하나로 음력 정월보름날.

내용

한자어로는 ‘상원()’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 :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 : 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명칭이다.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최상수()의 ≪한국의 세시풍속≫을 보면, 12개월 동안 세시풍속행사 총건수는 189건이다. 

그 중 정월 한 달이 세배·설빔 등 78건으로서 전체의 거의 절반이 되어, 1년의 세시풍속 중에서 정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보여준다. 


정월 78건 중에서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세시풍속 항목은 40여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수를 넘고, 1년 365일에서도 이 하루의 행사가 5분의 1이 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가 동제()나 줄다리기 등 뜻이 깊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집중되어 있다. 

임동권()이 쓴 ≪한국세시풍속≫은 12개월에 총 192건의 세시행사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 정월 한 달에 102건이 있어서 전체행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정월 14·15일의 대보름날 관계 항목수가 55건으로 역시 정월 한달 102건의 반이 넘으며, 1년 전체의 4분의 1이 넘고 있다.

이러한 숫자상의 경향은 어느 세시풍속 조사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하는 날로서 당연히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한 뜻을 가져온 듯하다.


우리 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보름달이 가지는 뜻이 아주 강하였다. 

정월대보름이 우선 그렇고, 다음의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도 보름날이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단오가 큰 명절이기도 하였으나, 중부 이남에서는 7월 보름인 백중보다도 비중이 작았다. 

중부 이남에서는 단오를 그렇게 큰 명절로는 여기지 않았다.


씨름판이나 그네, 또는 백중 장() 같은 세시풍속 행사들이 단오보다는 7월 보름에 성하였다. 

단오 때는 1년 농사 중 제일 큰일의 하나인 모내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바쁜 때이고, 백중 때는 김매기도 다 끝나고 가을 추수만을 남긴 한가한 시기라는 농사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결과이다.


이렇듯 달을 표준으로 하는 상원이나 추석은 중국에서도 물론 고대 이래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당송대() 이래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추석은 한식·단오·중구( : 9월 9일)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던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가위[] 기록 이래로 중국과는 달리 보름달의 비중이 훨씬 컸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이 양()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 데 대해서 달은 음()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출산력·물·식물들과 연결된다.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세시풍속에서 그러한 예를 들면, 우선 동제가 그렇고, 줄다리기 같은 것들도 그 전형이 된다. 

동제를 지내는 시일은 약 6,000동의 서면조사 통계로는 정초가 30%, 대보름이 40%, 10월 기타가 30%로서 대보름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시간도 대개 자정으로서 1년 열두 달의 첫 보름달이 충천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된다. 

동제신()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이 대보름날 행사였다.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을 그렇게 여기는데, 여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 그것을 성행위로 여긴다는 관념들은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보름날의 뜻은 이와 같은 행사들의 요점에서 특히 잘 집약된다. 

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


대보름날을 설날처럼 여기는 태곳적 관습의 전승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150여 년 전의 ≪동국세시기≫에도 “이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그믐날 밤 수세()하는 예와 같다.”고 되어 있다. 

현대의 각 지방 민속조사보고서들에도 이러한 관습들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려고 하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제야()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이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보름새기’를 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대보름날의 모든 관습들은 달을 표준으로 하던 신년이라는 고대생활의 유습이 계속 강하게 전승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상원은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부터 8대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일본에서는 대보름을 ‘소정월(’)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은 양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일부의 북유럽나라들의 민속에서는 1월 14일을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투리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 제1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태양의 비중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큰 것이었다. 

실제 농경을 위해서는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었고, 대보름은 바로 그 대표요 상징적인 날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서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기풍·기복행사로서 볏가릿대[竿]세우기·복토()훔치기·용알뜨기·다리밟기·나무시집보내기·백가반()먹기·나무아홉짐하기·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


이날 행해지는 제의와 놀이로서는 지신밟기·별신굿·안택고사·용궁맞이·기세배()·쥐불놀이·사자놀이·관원놀음·들놀음과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다. 

이날에는 고싸움·나무쇠싸움 등의 각종 편싸움이 행하여지고, 제웅치기·나무조롱달기·더위팔기·개보름쇠기·모기불놓기·방실놀이·뱀치기 등의 액막이와 구충행사()도 행하여진다.


정월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날은 달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이 날에는 개인과 집단을 위한 기복 의식이 치러졌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 먹기 등이 있다. 

줄다르기, 고싸움, 돌싸움, 차전놀이, 동제() 등은 농사의 풍년을 비는 주술적인 행위로 집단 기복 의식이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보름동안 동네 웃어른을 찾아뵙고 세배 드리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냈다. 

설날은 개인적이며 가족 중심의 피붙이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었다.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 쥐불놀이 등의 절기놀이는 실생활에서 거의 사라졌으며, 문화예술축제 및 경연대회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의식 중에는 오곡밥, 약밥, 부럼 등 절기 음식만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행하는 세시 풍속.

개설

정월 대보름은 음력으로 1월 15일을 일컫는 말로, 한 해의 첫 보름이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이라 부른다. 한자어로는 ‘상원()’이라고 한다. 

중원()[음력 7월 15일, 백중] 및 하원()[음력 10월 15일]과 연관하여 부르는 것으로 우리나라 세시 풍속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공동체 및 개인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이 전해져 온다. 

농경 생활을 영위했던 우리 민족에게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연원 및 변천

농경 생활을 영위하였던 전통 사회에서 달-여신()-대지()의 음성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정월 대보름에 풍요 관념과 한 해의 흉풍을 예측하는 풍속을 많이 행했다. 

『열양세시기()』에는 “세속에 전하기를 신라 소지왕이 까마귀 말을 듣고 금갑()을 쏘아 화를 면한 이적이 있어 감사의 뜻으로 까마귀밥으로 만든 것이 약밥이고 이것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 되었다고 한다.”라고 하여 보름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시골 사람들은 보름 하루 전날에 짚을 군대 깃발인 둑기[] 모양으로 묶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사방으로 벌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벼 낟가리[]라고 하며, 이것으로 풍년을 기원한다.”, 

“제웅의 머리통에 동전을 집어넣고 보름날 하루 전, 즉 14일 초저녁에 길에다 버려 액막이를 한다.”,

“이때 꼭두새벽에 종각 네거리에서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려 묻거나 부뚜막에 바르는데, 부자 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 정월 대보름에 행했던 다양한 풍속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도 정월 대보름에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들이 행해지고 있으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와 농사 풍흉을 점치는 행위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절차

화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월 대보름 풍속은 다음과 같다.


액막이[액맥이]

제웅은 짚으로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든 것인데, 그해 액운이 든 사람의 사주를 써서 동전과 함께 제웅 안에 넣어 14일 밤에 다리 밑에 버린다. 

이때의 동전은 액이 든 사람을 대신해 제웅이 먼 세계로 갈 때 필요한 노잣돈이다. 

노두 놓기는 마을 앞 개울가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을 말하는데, 삼재 등의 액이 든 사람이 가마니나 오쟁이에 모래를 넣어 동네 앞 개천에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정초에 자신의 신수점을 봐서 액이 들거나 그해 운이 좋지 않을 경우 이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쓰였고, 지금도 간혹 행해지고 있다.


액막이 디딜방아 세우기

정월 14일 밤에 마을의 여자들이 주동이 되어 이웃 마을로 몰래 가 디딜방아를 훔쳐 마을 입구에 ‘Y’자형으로 세우고 양다리에 월경이 묻은 속옷을 입혀 놓는다. 

이렇게 하면 그해 마을이 평안하고 전염병이 돌지 않는다고 한다. 

이 주술 행사는 천연두의 예방에 큰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세워진 디딜방아는 전염병이 끝나면 태워버리기도 하고 다시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도 한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막이 디딜방아는 꼭 정월 대보름에만 세우는 것은 아니다. 

정초에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세우기도 하고, 전염병이 돌기 시작할 때 세우기도 하며, 마을에 전염병 환자가 생기면 세우기도 한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정초에 마을에 병이 들어오지 말라고 다른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 마을 입구에 세워둔다. 

이 마을에서는 주로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에서 디딜방아를 훔쳐왔는데, 이때는 남자와 여자들이 같이 가서 여자들이 방아를 떼어놓으면, 남자들이 메고 온다. 

훔쳐온 디딜방아는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두고, 거기에 부인들의 속곳을 거꾸로 입혀둔다. 

괴상한 모습 때문에 잡귀나 질병이 그것을 보고 놀라서 못 들어온다고 여겼다. 

디딜방아에 고사를 지내지는 않고 세워두기만 한다.


잰부닥 넘기

14일 밤에 대나무, 피마자대, 고추대 등을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지른다. 

이를 ‘잰부닥 불’ 혹은 ‘가랫불’이라고 한다. 

이 불을 나이만큼 뛰어 넘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불을 피울 때 노간주나무나 대나무를 넣는데, 이렇게 하면 노간주나무가 타면서 ‘오독오독’ 소리를 내고 대나무는 ‘텅텅’ 소리를 내 이 소리에 잡귀가 놀라서 도망친다고 믿었다.


밤새기

14일 밤에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되거나 눈썹이 희어진다고 해서 잠을 못 자게 했다. 

이는 14일 밤에 당산제 등 그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가 많기 때문에 근신하면서 밤을 지새우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여겨진다.


당산제

대부분의 마을에서 14일 밤에 당산제를 모신다. 당산은 마을신으로서 매우 엄격하게 제의가 치러진다.

화순읍 연양리 양촌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 자시()에 지낸다. 


열 나흗날 밤에 달의 위치를 보고 12시를 가늠해서 지내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바뀌어 열 나흗날 밤 11시~12시 사이에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의 북쪽 중앙에 있는 ‘당산 마당’ 인데, 여기에는 당산 할아버지[혹은 천룡]와 당산 할머니로 모시는 큰 느티나무가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은 마을의 동쪽으로 당산나무가 있고, 주변에 일곱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 앞에 정자가 있어서 따로 제단을 만들지 않으며, 정자에 제물을 차려놓고 열 나흗날 밤 10시가 넘어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 때는 당산 외에 마을 뒤편 산중에 있는 천룡에서 먼저 제를 지내는데, 천룡은 ‘마을의 천룡’을 모신 곳이라고 하며, 그 신체는 흙을 쌓아둔 것으로 모양이 마치 봉분 같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의 당산은 마을 앞 중앙의 너른 마당 가운데에 심어진 느티나무이다. 

이를 ‘당산 할머니’라고 부르며, 열 나흗날 밤 10시가 넘어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이 매년 정해져 있지만,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거나 하여 깨끗하지 못하면 제를 지내지 못한다. 

만약 정월 대보름 전에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나거나 초상이 나면 정월에는 지내지 않고 미뤘다가 다시 깨끗한 날을 받아서 지낸다.


보름차례

정월 대보름에는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고, 또 나물과 약밥만을 큰방 윗목이나 창고에 차려 놓는 경우도 있다. 

차례를 지내는 집은 15일 새벽에 당산제가 끝나야만 상을 차릴 수 있다.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대보름날 아침에 설하고 똑같이 차례를 지낸다. 

다만 설처럼 푸짐하게 제물을 장만하지는 않고, 나물과 찰밥, 김쌈 정도만 상에 차려서 올린다.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은 대보름날 새벽에 차례 상을 차린다. 

차례 상에는 찰밥과 나물·김쌈·술을 올린다. 

차례 상 외에 성주 상도 차린다.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은 열 나흗날 밤 10시 넘어 12시 무렵에 차례 상을 차린다. 

차례 상은 조상과 성주에 차리는데, 제물로는 찰밥·두부·어물()[말린 생선]·꼬막·김·나물 등을 올리며, ‘노적’이라고 하여 찰밥을 김으로 싸서 찰밥 그릇 위에 얹어놓는다.


무 먹기

15일 새벽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 무 한 조각씩을 먹는다. 

무를 먹으면서 ‘무사태팽’[무사태평]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그해 더위를 타지 않고 모든 일이 잘되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오곡밥과 해우 밥

오곡밥은 다섯 가지의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보통은 집에 있는 잡곡을 넣으므로 그 종류는 일정치 않다. 

보름에는 찰밥을 해서 그것을 해우[김]에 싸서 장독대나 창고 등 집안 곳곳에 놔둔다. 

이는 곡식이 잘 여물라는 축원의 의미다. 

아이들이 이 해우 밥을 복()이라고 해서 찾아서 먹는데, 성씨가 다른 세 집 이상의 것을 얻어먹으면 좋다고 한다.


까치밥 주기

까치밥은 대보름 새벽에 바구니에 찰밥과 나물을 넣어서 담장 위나, 지붕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길조로 여기는 까치에게 주는 밥인데, 항상 까치가 자기 집에서 울어 좋은 소식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소 여물점

챙이[키]에다 나물과 밥을 놓고 외양간에 있는 소에게 준다. 

이때 소가 어떤 것을 먼저 먹는가를 가지고 그 해의 풍·흉년을 알아보는 것이다. 

보통은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행해지는 줄다리기는 암·수줄 2개를 만드는 곳과 외줄로 놀이를 하는 곳이 모두 있다.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대보름날 일찍부터 집집마다 짚을 걷어 줄을 꼬는데, 이를 ‘짚줄’이라고 한다. 


줄을 꼬는데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이며, 보름날 저녁이나 되어야 잡아당긴다. 

짚줄은 왼쪽으로 꼬는데, 고를 만들지 않고 길게 한 줄로 꼬며, 두께는 20㎝가 넘는다. 

그런 다음 ‘젖줄’이라고 하여, 원줄 옆으로 작은 줄을 매달아 그 줄을 잡아당긴다. 

줄을 당길 때는 남녀로 편을 나누어 당기는 데, 여자 편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하여 대개 여자 편이 이긴다.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은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각 집에서 짚을 걷어 줄을 다린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줄을 걷으러 다니고 어른들이 줄을 다리는데, 줄을 다릴 때는 왼쪽으로 꼬며 지름 20㎝정도로 만든다. 

줄은 하나만 길게 만들며 반나절 이상 걸린다. 줄을 만들어 두고 보름이 넘도록 며칠씩 줄다리기를 하는데, 그 장소는 일정하지 않다. 

줄을 모두 매면 이를 떠메고 가며, 줄다리기 전후에 술과 음식을 장만한다. 

예전에는 마을의 도랑을 기준으로 위아래 더미로 편을 나누었는데, 그 후에는 남녀로 편을 나눈다.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짚을 걷어 꼬아서 줄다리기를 한다. 

줄은 한 줄만 꼬는데, 지름이 20㎝정도 된다. 

남녀로 편을 나누는데, 여자 편이 이기면 좋다고 하여 남자들이 일부러 져준다.


달집태우기

달집은 대나무나 솔가지 등을 이용하여 만드는데,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에서는 높이 10여m에 둘레가 남자 보통 걸음으로 20걸음 정도로 크게 만든다. 

이 또한 풍점을 기원하는 성격을 가졌고, 달집이 쓰러진 쪽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대나무가 탈 때 나는 소리에 귀신들이 도망간다고 믿었으며, 마을의 안녕을 함께 기원했다.


연날리기

연은 음력 12월경부터 날리기 시작하여 정초에 성행하다가 대보름 전후에 액막이 연날리기로 끝을 맺는다. 

화순 지역에서는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주로 날렸다.

연을 가지고 연싸움을 많이 했는데, 상대방의 연줄을 끊기 위해 연줄에 사기 조각이나 유리 조각의 가루 등을 발랐다.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는 정초에 연날리기를 많이 하는데, 보름이 지나면 하지 않는다. 

보름날 연줄을 끊어서 멀리 날려버리거나 불에 태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화순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크게 쇘는데, 당산제나 줄다리기 등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였고, 무 먹기나 오곡밥 등을 통해 개인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아울러 소 여물점 등을 통해 한 해의 풍·흉을 미리 점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놀이와 행위 등을 통해 한 해가 무탈하기를 기원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개인과 공동체 구성원이 한 해 동안 무탈할 것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지금은 많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오곡밥과 나물의 조화,


설날과 추석이 되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고속도로 교통량만 살펴봐도 이 때 전국을 오가는 차량의 숫자는 평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올해 설날 당일에는 총 485만 대가, 지난해 추석 당일에는 516만 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매년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교통량 최대치를 경신한다.


조선시대에는 설날, 추석 이외에 한식과 단오를 넣어서 ‘4대 명절’로 꼽았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대부분의 세시풍속이 사라졌다. 

조상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하던 한식도,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던 단오도 사라졌다.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을 만나는 기회를 주는 설날과 추석 이외에 또 하나의 명절이 살아남아서 전통적인 풍습을 지키게 해준다. ‘정월대보름’이다.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달력이다. 달은 29.5일을 기준으로 차고 기울면서 모습이 변한다. 

음력에서는 달이 기울어 전혀 보이지 않는 날을 ‘초하루’ 즉 1일로 정한다. 

완전히 둥근 모습으로 빛나는 15일은 ‘보름날’이라 부르며 다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을 한 달의 마지막인 ‘그믐날’이라 한다. 

정월 대보름은 정월에 맞이하는 보름날, 즉 음력 1월 15일이며 1년 중 가장 중요한 대보름날이다.

둥글게 가득 찬 보름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정월 대보름은 새로운 해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보름날이니 특별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갖가지 민속놀이와 풍속을 즐긴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 제사 지내기, 달맞이 소원 빌기, 더위 팔기, 다리 밟기, 액막이 연 날리기, 달집 태우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등이다.


독특한 음식도 빠질 수 없다. 

정월 대보름에는 다섯 가지 곡식으로 오곡밥을 지어먹고 열 가지 나물로 반찬을 만들며 단단한 견과류를 입에 넣고 부럼 깨물기를 한다. 

차가운 술을 남녀노소가 함께 마시는 귀밝이술, 솔잎을 깔고 떡을 쪄먹는 솔떡도 대보름 음식이다.


오곡밥은 지역마다, 계층마다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했다.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찹쌀, 팥, 콩, 차조, 수수를 넣었고 다른 곳에서는 멥쌀이나 보리쌀로 대체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곡식만 넣었지만 재력이 있는 집에서는 밤, 대추, 곶감, 꿀을 넣기도 했다. 여기에 간장을 넣어 색깔만 입히면 곧바로 약밥이 된다. 

두 음식은 찹쌀을 쓰고 색깔이 거무스름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대보름날에 이처럼 어두운 색의 밥을 지어먹는 이유는 까마귀의 전설 때문이다. 

고려시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비처왕 또는 소지왕이라 불린 신라 21대 왕이 까마귀를 따라갔다가 연못 속에서 나타난 신령한 사람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전해주는 편지를 열어보니 “가야금을 담아두는 상자를 활로 쏘라”고만 돼 있었다. 


궁궐로 돌아온 왕은 가야금 상자에 화살을 쏘았고 그 안에서 몰래 바람을 피우던 왕비와 중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결국 두 사람은 사형에 처해졌고 왕은 까마귀를 만난 음력 1월 15일이 되면 거뭇거뭇한 찰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에게 행동을 조심히 하라고 명했다.

오곡밥이나 약밥 같은 찰밥을 짓는 이유는 전설이 아닌 생활에서도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평소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을 지어 바침으로써 의례에 엄중함을 더하고 행사 후에는 다 같이 나눠먹어 그동안 부족했던 영양분을 정기적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여러 곡식이 어우러진 오곡밥은 영양면에서도 뛰어난 음식이다. 

팥은 칼륨이 풍부해 붓기를 빼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 

콩은 비타민과 철분뿐만 아니라 이소플라본이라는 단백질이 풍부한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구조로 돼 있어 유사한 작용을 한다. 

우울증, 골다공증,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심장병과 고혈압의 위험을 낮춘다. 


차조는 이뇨작용으로 소변 배출을 돕고 쌀로는 채우지 못하는 무기질을 제공한다. 

수수는 프로안토시아니딘이 많아 방광의 면역기능을 높이고 타닌과 페놀이 항산화 작용을 일으킨다. 

찹쌀은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서 노약자가 음식을 섭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곡밥과 함께 먹는 나물반찬도 건강에 좋은 음식이다. 


정조 때 홍석모가 우리나라의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는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꼭지, 가지껍질과 같은 각종 채소를 말려둔 것을 진채() 즉 ‘묵은 나물’이라 하며, 정월 대보름에 삶아서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설명해 놓았다. 

지역에 따라 나물의 종류가 달라지지만 보통 9가지 또는 10가지의 나물을 준비한다. 


취나물, 고추나물, 삿갓나물과 같은 산에서 채취하는 나물뿐만 아니라 시래기, 무청, 호박잎 등 채소를 말린 것도 쓴다. 

묵은 나물은 아니지만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포함시키기도 하며 바닷가에서는 해초를 함께 섞기도 한다.


음식이 충분치 않은 한겨울에 먹는 ‘진채식’은 평소 저장음식을 부지런히 마련해두는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점검하는 효과가 있다. 

겨우내 부족했던 식이섬유와 무기질을 섭취함으로써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한 새해맞이 행사용 음식으로 적합하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문다. 

동국세시기에는 “날밤, 호두, 은행, 잣, 무를 깨물면서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며 이를 튼튼히 하려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구절이 있다. 


부럼 깨물기는 한자로 ‘작절()’이라 하는데 ‘부스럼을 깨문다’는 뜻이다. 

부스럼은 종기를 비롯한 피부질환을 가리킨다. 부럼으로 쓰이는 견과류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이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생겨난 풍습이다. 

견과류를 깨무는 것은 소홀히 하기 쉬운 치아 건강을 점검하는 효과가 있다.


정월 대보름에 먹는 음식에는 천 년 넘게 내려오는 전통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농업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풍습 그리고 건강을 점검하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가 모두 담겨 있다. 

버려야 할 옛날의 풍습이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다. 

올해 2015년의 정월 대보름은 3월 5일이다. 

오곡밥, 나물반찬, 부럼 등 전통적으로 즐겨왔던 음식을 만들어 온가족이 함께 나눠먹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는 게???.


보름차례,

정의

정월 대보름날 지내는 명절 제사. 정월 대보름 새벽이나 아침에 명절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천신례().

내용

우리 고유의 조상 숭배 의식과 중국에서 들어온 『가례()』의 영향을 받아 그 형식과 절차가 다양하다. 

차례 음식으로는 찰밥(오곡밥·약밥)과 나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찰밥 제사에 관한 것은 신라 21대 소지왕 때 정월 대보름(또는 16일)을 오기일()로 정하고 약밥(찰밥·오곡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이는 지금의 대보름 차례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찰밥(오곡밥)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대보름 차례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무속 신앙의 조상 숭배의식과 삼국시대에 들어온 유교의 의식이 혼합되었으며, 16세기 이후에는 『가례』가 민간에 알려지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절차나 형식이 축원 의례에서 『가례』에 정한 제례 형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설과 추석이 국가공식휴일로 지정(1985. 1. 21.)되면서 설과 추석의 차례는 성대하게 치르는 반면,

 대보름 차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이미 사라진 지역이 대부분이다. 

대보름 차례는 설차례 이후 15일 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설차례에 흡수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와 전남의 일부 지방에서는 유교식 제례 순서에 따라 남자가 차례를 지내고, 강원도·경상도·전남 해안 마을에서는 주부()가 새벽에 대보름 음식을 차려놓고 비손으로 축원 의례를 행한다. 

유교식 차례는 진설(), 강신(), 참신(), 단헌(), 헌다(), 사신()의 순서로 축()없이 잔을 한 번 올린다. 

주부가 올리는 경우는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원을 하면서 비손을 하는 것이다. 

음식은 메밥과 일반 제사 음식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고, 산나물, 채소, 햇미역, 해산물 등과 오곡밥에 숟가락 일곱 개를 꽂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지역사례

강원도·경상도 해안 지역에서는 주부가 거처하는 안방 시렁에 조상 고리를 모시고 동제가 끝나면 동네 우물물을 다른 집보다 먼저 길어와 오곡밥이나 찰밥을 하여 성주·터주·조왕·우물 등 다른 가신제와 함께 대보름 차례를 지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메밥으로 설차례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 지역은 남성들이 동제에 참여하는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로 가정에서 주부들이 차례를 올린다. 

조상 제사를 지낼 때 유식 절차보다는 “할배 할매, 큰아부지 큰어매, 아부지 어무이, 아들 아부지 그리고 웃대 조상님네요, 이 해는 조상님에 햇시더. 

오늘 보름날이께네, 옛날 어무이 사실 적에 어무이 했던 양으로 했니더. 있는 것은 적고 없는 것은 많고 하이께네 웃대 조상 아릇대 어른 마이 드시소. 

그저 아들 며느리 손자 잘 되거러 해 주소.” 하고 빈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직산리에서는 “시증조부모님,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아이들 아버지 그리고 윗대 조상님이시여, 올해는 조상님이 주관하는 해입니다. 

오늘 보름날을 맞아 시어머님 살아 계실 때와 같이 차렸습니다. 

있는 대로 차렸으니 많이 드시고 아들 며느리 손자들 잘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축원 의례를 한다.
이때 함지나 큰 그릇에 숟가락을 꽂고 차례를 올린다.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는 증조부·조부·부의 3대 조상 여섯 분과 남편을 합해 일곱 개를 꽂게 된다. 

주부의 대를 포함하여 4대 조상을 지내므로 돌아가신 조상의 수에 따라 숟가락을 한 개에서 일곱 개까지 꽂는다.

경남 하동·남해·통영 지역에서는 시루에 숟가락 일곱 개를 꽂고 지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밥상을 조상마다 따로 차리는 집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2대의 조상 수대로 따로 오곡밥을 차려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전남 여천·보성·순천 지역에서는 선령상과 조부모·부모상 따로 차려 차례를 올린다. 

선령상은 증조부 이상 선조를 위한 차례상이다. 

한 그릇에 숟가락 하나만 꽂고 여러 가지 나물·채소와 어물로 상을 차린다. 


부모와 조부모는 따로 상을 마련하고 각각의 수대로 오곡밥을 준비하고 다른 제물은 한 가지씩만 준비한다. 

이 지역에서는 나물·채소를 최소한 다섯 가지 이상을 홀수로 준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보름을 ‘나물명절’이라 한다. 

차례 음식은 오곡밥의 숫자 5와 나물과 기타 음식의 가지 수(홀수)와 특별한 음식 한 가지를 더 준비하여 그 합이 홀수가 되게 준비한다. 이때, 오곡밥에는 숟가락 하나를 비스듬히 꽂거나 밥그릇에 걸쳐놓고 지낸다.



정의

정월 열나흗날인 14일을 일컫는 말. 소망일()이라고도 한다. 정월 15일을 대보름이라고 하는 것에 비해서 14일은 소보름·작은보름·까치보름이라고도 한다. 

누더름날이라고도 하는데, 누더름이란 늦여름이라는 뜻이다. 

정월 보름을 전후한 날을 흔히 사계절에 비유하여 생각해 왔는데, 정월 13일은 춘절(), 14일은 하절(), 15일은 추절(), 16일은 동절()로 생각하여 14일을 여름과 관련지어 누더름날(늦여름날)이라 불렀다.

내용

정월 열나흗날은 사실상 대보름과 같이 여겨 이날에는 많은 풍속이 행해지는데, 이 중에는 계절과 관련된 금기들이 많다. 

작은보름에는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다른 성()의 세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지만, 식수()만은 남에게 주지 않고 남의 집에 가서 물을 먹지도 않는데, 특히 찬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만일 남에게 물을 줄 경우에는 여름에 김매는 날이나 장마 때 폭우가 내려 논둑이 무너지고 전답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농사와 물이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풍습이다.

지역사례

경기도 구리에서는 이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전날 밤부터 잠을 자지 않기도 한다. 

이날 아침에는 키가 작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키가 큰 사람이 먼저 들어와야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른 아침에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귀밝이술을 먹기도 하고,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하여 부럼을 깨기도 한다. 


이날은 바늘을 만지면 생손을 앓고, 바[]를 보면 뱀한테 물린다고 하여 여자는 바느질 기구를 보지 않고 남자는 농기구를 보지 않는다.

복을 맞이하기 위해서 날이 어둡기 전부터 보름날 아침 밝을 때까지 방·부엌·외양간 등 집안 곳곳에 불을 켜 놓는다. 

쥐불놀이나 달맞이, 과일나무시집보내기 등을 행하기도 하며,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달불이·호불이와 같은 풍속을 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들이다.

이날에는 김치를 먹지 않으며 특히 동치미 국물을 먹지 않는 곳도 있다. 

서울 지역에서는 열나흗날 밤에 잣불을 켜는데 바늘에 잣을 꿰어서 불을 붙여 타는 모양을 보고 일년 동안의 신수를 점치기도 한다. 

머슴은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 잘 먹고 일도 하지 않고 노는데, 열나흗날은 명절의 끝이라서 머슴을 대접하는 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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