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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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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訓民正音.

우리 민족의 보물이자 인류의 보물 인류의 문명은 문자를 만들면서부터 획기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저장하여 다른 지역이나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거나 확산될 수 있게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문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나 인류 문명의 중흥지에는 예외 없이 문자가 발달하거나 문자가 발달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문자의 기능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 문자사에서 가장 발달한 문자 혹은 세계 문자사의 발달 단계를 한 단계를 높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

이 문자를 우리는 한글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60여 년 전에 세종()이 만든 것이다.

세종은 이 문자를 만든 후 그 배경과 제자() 원리 등을 설명한 책을 신하들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는데 이것의 이름 역시 '훈민정음()'이다.

문헌 『훈민정음』은 문자 '훈민정음'을 설명한 책이 되는데, 문자를 만든 과정이나 원리를 설명한 책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상 유일한 것이다.

현 지구 상의 전체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의 기원은 대략 세 가지가 된다.

서유럽과 미주 대륙 등에서 사용되는 로마 문자와 옛 소련 지역에서 사용되는 키릴 문자 그리고 서남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사용되는 아랍문자, 인도 문자, 동남아시아의 제 국가에서 사용하는 문자 등은 모두 이집트 문자에서 기원하는 문자다.

이집트 문명과 함께 발생한 이집트 문자가 인근 지역에 차용되어 변형을 일으키고, 이것을 다시 다른 민족이 차용하여 변형을 일으키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오늘의 문자에 이른 것이다.

문자의 또 다른 기원 하나는 중국 문자이다.

중국 대륙 및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는 문자는 한자 혹은 이에 기원하는 문자이다.

마지막 하나는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한글이 있다.

이러한 문자들 중 문자를 만든 원리와 과정에 대해 설명이 있는 문자는 한글뿐이다.

인류가 사용하거나 사용했던 수백의 문자 중에서 그 기원과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문자는 한글이고, 또 그 기원과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유일한 책이 『훈민정음』인 것이다.

훈민정음의 구성,

훈민정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와 목적을 밝힌 '예의()' 그리고 창제의 과정과 원리 및 실제적인 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해례()', 끝으로 이 문자의 우수성과 창제자의 우수성을 서술하는 '정인 지서(鄭麟趾序)' 등이 그것이다.

'예의'에서는 창제의 동기와 목적을 밝힌 다음, 새로운 문자를 제시하고 그 음가를 한자의 예로써 설명하며,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합하여 음절을 구성하는 방법 그리고 당시 국어의 성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해례'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 해(中聲解),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 등 6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자해에서는 문자의 제자 원리, 제자 기준, 초성인 자음 체계, 중성인 모음 체계, 음상 등에 관하여 중국 음운학과 송학()

2)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초성해와 중성 해에 대한 설명 및 중성 표기에 쓰일 수 있는 모음 문자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종성 해에서는 종성인 음절 말 자음의 본질과 종류를 '8 종성'으로 그리고 성조(調) 즉, 4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합자해에서는 초성, 중성, 종성의 문자를 합하여 표기하는 예로 25개 단어를 제시하고, 당시의 성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끝으로 용자례에서는 초성, 중성, 종성 별로 당시 국어의 예를 94개의 단어로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정인 지서'는 훈민정음해례의 뒷부분에 특별한 제목 없이 이어서 실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훈민정음 창제의 취지와 이유, 훈민정음의 우수성,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를 쓰게 된 배경과 세종대왕의 우수성에 대해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해례본'의 편찬자와 편찬일 등을 명기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내용

예의의 서문에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표기 수단을 갖지 못한 백성들에게 표기 수단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우리나라의 어음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로는 서로 소통이 어렵다.

② 일반 대중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글자로]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③ 내[세종]가 이를 딱하게 여겨서 새로 28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쓰는 데 편하도록 하고자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창제 이유에 이어서 창제한 글자를 소개하는데, 초성은 'ㄱ·ㅋ·ㅇ,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 ㄹ, ' 등 17자이고 중성의 창제자는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등 11자이며, 종성은 초성 글자를 다시 쓰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제한 문자를 기반으로 연서하여 순경음(ㅸ)을 만들 수 있으며, 병서하여 사용할 수도(ㄲ, ㅺ 등)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초성과 중성을 합하여 음절을 구성하는 방법 그리고 당시 국어에 존재했던 성조의 유형인 평성, 상성, 거성, 입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해례'는 '예의'에서 설명한 대강의 내용을 제자해·초성해·중성 해·종성해·합자해로 나누어 다시 자세히 설명하고, 용자례에서 구체적인 고유어의 표기 예를 94개의 단어로 제시하고 있다.

제자혜의 첫머리에는 새로운 문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제자의 원리가 설명되고 있다.

먼저 훈민정음 창제의 학문적 배경은 중국 음운학과 송학이었으므로 새로운 문자에 대한 설명도 이에 맞추어하였다.

즉, 음양과 오행 그리고 태극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원리이기 때문에, 인간의 소리나 문자 역시 음양과 오행 그리고 태극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의 이치와 소리의 이치는 동일하고 소리의 이치를 살펴서 문자를 제자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다음으로는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와 실제가 상형()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정음이 십팔자(正音二十八字) 각상 기형이 제지(各象其形而制之)", 즉 "정음 28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먼저 자음은 조음 위치별로 '아()', '설()', '순()', '치()', '후()'의 음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위치에서 기본이 되는 글자를 조음기관을 본 따 상형한 다음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하거나 이체자를 만들어 17글자의 창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음 위치에 의한 자음 분류,

음성 분류

 

기본자

상형()의 내용

가획자()

이체자()

아()
상 설근 폐 후 지형(象舌根閉喉之形)
설()
상설 부상 악지형(象舌附上腭之形)
ㄷㅌ
순()
 
 상구형()
 
ㅂㅍ
 
치()
 
 상치형()
 
ㅈㅊ
후()
 
 상후형()
 
ㆆㅎ
 
                                                불려()                                                                               려()

이어, 오행설로 오성()을 만물의 구성요소인 오행, 존재의 시간축인 사시(), 음악의 오음(), 존재의 공간 축인 오방()과 결부하여 설명하였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성 관련표,

초성 관련표

오성()

오행()
목()
화()
토()
금()
수()
 
오시()
 
춘()
 
하()
계하()
추()
동()
오음()
각()
치()
궁()
상()
우()
오방()
동()
남()
중앙()
서(西)
북()

자음의 음상과 성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아음(연구개음)은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으로는 목()이다.

소리는 후음과 유사하나 실질적이다.

이것은 나무가 물에서 나지만 형체를 가지는 것과 같다.

 

② 설음은 날카롭고 움직여서 오행으로는 불이다.

소리는 구르고 날리는데, 이것은 불이 번져서 잘 타오르는 것과 같다.

③ 순음은 모나고 합해져서, 오행으로는 흙이다.

소리는 머금고 넓은데, 이것은 땅이 만물을 함축해서 넓고 큰 것과 같다.

④ 이는 단단하고 다른 물질을 절단시킨다.

그래서 치음 소리는 부스러지고 걸리는데, 이것은 쇠가 부스러지고 단련되는 것과 같다.

⑤ 후음은 입의 안쪽에 있고 물기가 있어, 오행으로는 물이다.

소리는 공허하고 통한다.

이것은 물이 실체가 없고 맑아서 흘러 통하는 것과 같다.

조음 방법에 의한 자음의 분류를 중국의 운서에 평행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리는 청탁의 구분이 있다.

ㄱㄷㅂㅈㅅㆆ 등은 전청(), 즉 맑은 소리이고 ㅋㅌㅍㅊㅎ 등은 차청(次淸), 즉 버금 맑은 소리이며 ㄲㄸㅃㅉㅆㆅ등은 전탁(), 즉 흐린 소리이고 ㅇㄴㅁㆁㄹㅿ 등은 불청 불 탁(不淸不濁), 즉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소리이다.

중성 글자 역시 상형 문자이다.

자음과 달리 우주 만물의 기본적인 세 요소인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형한 것이다.

이로써 'ㆍ, ㅡ, ㅣ' 등의 기본 모음을 만들고 이들의 소리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ㆍ'는 하늘이 둥근 것을 상형 하였는데, 이것을 발음할 때 혀는 움츠러든다.

그래서 소리가 깊다. 제자의 순서가 가장 앞인 것인 하늘이 자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② 'ㅡ'는 땅이 평평한 것을 상형 하였는데, 이것을 발음할 때 혀는 조금 움츠러든다.

그래서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다.

제자의 순서가 두 번째인 것은 땅이 축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③ 'ㅣ'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상형 하였는데, 이것을 발음할 때 혀는 움츠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리는 얕다.

제자의 순서가 세 번째인 것은 사람이 인시에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 세 기본 글자에서 소리들의 관계를 인식하여 모음 4자를 만들었는데 그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ㅗ'는 'ㆍ'와 조음 되는 위치가 같은데, 입이 오므라든다.

글자의 모양은 'ㆍ'와 'ㅡ'를 합친 것이고, 음가는 원순 성을 띄게 된다.

음양을 따지면 양이다.

② 'ㅏ'는 'ㆍ'와 조음 되는 위치가 같은데, 입이 펴진다.

글자의 모양은 'ㅣ'와 'ㆍ'를 합친 것이고, 음가는 원순 성을 띄지 않는다.

음양을 따지면 양이다.

③ 'ㅜ'는 'ㅡ'와 조음 되는 위치가 같은데, 입은 오므라든다.

글자의 모양은 'ㅡ'와 'ㆍ'를 합친 것이고, 음가는 원순 성을 띠게 된다.

음양을 따지면 음이다.

④ 'ㅓ'는 'ㅡ'와 조음 되는 위치가 같은데, 입은 펴진다.

글자의 모양은 'ㆍ'와 'ㅣ'를 합친 것이고, 음가는 원순 성을 띠지 않는다.

음양을 따지면 음이다. 

이런 관계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입을 오므림 [口蹙]    ㅜ        ㅗ

                                ↑         ↑

기본모음                   ㅡ        ㆍ

                                ↓         ↓

입을 폄[]           ㅓ        ㅏ

그리고 '이'에서 시작하는 'ㅛ, ㅑ, ㅠ, ㅕ' 등을 제자하여 모음 창제자 11자를 완성하게 된다.

다음으로 제자해에서는 '합성()'과 '종성의 제자'가 남는다.

우선 합성에서는, 초성과 중성과 종성이 합해져서 소리가 이루어진다는 설명과 더불어 각각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성에서 발동하고, 종성에서 끝나며, 중성은 운의 중심이 된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종성의 제자를 설명하고 있다. 종성의 문자는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을 다시 쓰는데 이것은 국어의 단어가 실제 운용될 때에 음절의 초성이 종성이 되기도 하고, 종성이 초성이 되기도 하는 현실을 그대로 제자에 반영한 것이다.

 

초성해

"훈민정음의 초성은 곧 운서()에서 말하는 자모()에 해당된다"라고 하여 음절에서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23 초성 체계에 있는 자모의 음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중성 해

중성 해에서는 "중성이라는 것은 글자 운의 중심이다"라고 하여 그 개념과, "초성, 종성과 합하여 소리를 이룬다"라고 하여 그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구체적인 음가를 한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탄()은 'ㅌㆍㄴ', 즉()은 'ㅈㅡㄱ', 침()은 'ㅊㅣㅁ'으로 실례로 들어가며 'ㆍ, ㅡ, ㅣ' 등의 중성 음가를 설명하고, 나머지 글자 역시 홍()은 'ㅗ', 담()은 'ㅏ', 군()은 'ㅜ', 업()은 'ㅓ', 욕()은 'ㅛ', 양()은 'ㅑ', 수()는 'ㅠ', 별()은 'ㅕ' 등으로 그 음가를 설명하고 있다.

기본자 3개, 초출자() 4개, 제출자(再出字) 4개 등 창제자 11자 외에 다음과 같이 여러 모음자가 합용되어 쓰일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기본자                     ㆍ ㅡ ㅣ

초출자                     ㅗ ㅏ ㅜ ㅓ

제출자                     ㅛ ㅑ ㅠ ㅕ

합용자 2자합용자     ㅘ ㅝ ㆇ ㆊ

이() ㅣ상합자        ㆎ ㅢ ㅚ ㅐ ㅟ ㅔ

                               ㆉ ㅒ ㆌ ㅖ

                               ㅙ ㅞ ㆈ ㆋ

이자 합용자(二字合用字)

원리는 "동출이 위류(同出而爲類)"라 하여 같은 계열끼리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고, ㅣ모음과 결합된 중모음들은 ㅣ모음이 "혀를 펴서 발음하여 소리가 얕아서 입을 벌리기에 편하다"라고 설명하였다.
'결'에서는 8행으로 된 칠언시로 읊었다.

 

종성해

종성 해에서는 종성의 위치와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즉, "종성은 초성과 중성 다음에 발생하여 글자의 운을 이룬다"라고 한다.

즉()은 'ㅈㅡㄱ', 홍()은 'ㆅㅗㆁ'으로 이루어졌음을 예로 들어 'ㄱ'과 'ㆁ'과 같은 종성의 음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절에 대한 삼분법적인 인식인데, "종성 자승 초중 이성 자운(終聲者承初中而成字韻)" - 종성은 초성과 중성에 이어져서 글자의 운을 이룬다 -이라는 기술에서 추출해 보면, 중국 사람들이 하나의 소리를 성과 운으로 나누던 2분법 인식과는 달리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기의 '성자운()'은 하나의 음절로 된 글자의 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에는 입성과 비 입성을 종성의 종류, 즉 음절 말 자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 - 완() - 평 상거(平上去) - 불청 불 탁지자(不淸不濁之字)

→ 불려()

성() - 급() - 입() - 전청 차 청전 탁지자(全淸次淸全濁之字)

→ 려()

음절 말 자음의 종류에 따라 소리에는 느리고 빠른 것이 있는데, 평성·상승·거성 등에는 소리가 세지 않은 불청불탁인 ㄴ, ㅁ, ㆁ 등의 소리가 종성에 사용되고, 입성에는 소리가 센 전청·차청·전탁의 소리가 종성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ㄱㅇ ㄷㄴ ㅂ ㅁ ㅅ ㄹ 등 8자로 능히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여 음절 말 자음으로 실제 실현되는 것은 8개뿐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ㅅ, ㅈ, ㅿ, ㅊ' 등이 'ㅅ'자 하나로 통용될 수 있음을 말하였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팔 종성 법(八終聲法)'이다.

이어서 국어에서는 'ㆁ' 종성을 첨가하지 않아도 중성이 음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학자들은 중국 성운학의 영향을 받아 운미, 즉 종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인식은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는 음성운()에서도 'ㆁ'글자를 종성음으로 첨가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성해 첫머리에서 예로 든 'ㄱ', 'ㆁ'을 제외한 나머지들, 즉 'ㄷ, ㄴ, ㅂ, ㅁ, ㅅ, ㄹ'의 예를 든 다음, 5음의 종성을 역시 짝을 이루는 완급으로 설명하였다.

종성해

종성해
 

종성해 끝에서는 반설음 'ㄹ'이 국어 한자음에서는 '별()'로 읽히고 있는데, 이러한 발음은 중국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한국 한자음이 'ㄹ'로 발음되는 것은 'ㄷ'이 가볍게 된 것이며, 'ㄹ'은 입성의 운미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국 한자음 'ㄹ'은 일 년 뒤에 완성된 『동국정운』에서는 소위 '이영보래() ㅭ'로 규정이 바뀌어 종성이 모두 'ㅭ'으로 표기된다.

 

합자해

합자하는 글자를 합하여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음절의 구성에 대해서, 즉 초·중·종의 삼성이 합하여 음절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성과 중성을 합하여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모음은 초성의 옆에 쓰고, 어떤 글자는 초성의 밑에 쓰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초성 옆에 쓰는 중성 글자 : ㅣ ㅏ ㅑ ㅓ ㅕ

초성 아래 쓰는 중성 글자 : ㆍ ㅡ ㅗ ㅛ ㅜ ㅠ

종성은 초성과 중성의 아래에 쓴다고 규정하고 그 예로는 '구' 아래에 'ㄴ'을 쓰면 '군()'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어 초성을 두 자 혹은 석 자를 합용 하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합용 병서 : ㅼ, ㅶ, ㅴ

각자병서 : ㆅ, ㆀ, ㅆ

합용 병서는 그 종류 즉 'ㅅ'계, 'ㅂ'계 'ㅄ' 등이 있음을 제시한 것이고, 각자병서는 국어의 표기에서 실제 두루 사용된 세 예를 제시한 것이다.

다음에는 중성 합용에 관한 것인데, 중성을 두 자 혹은 석 자 합용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두 자 합용 : ㅘ(과)

석 자 합용 : ㅙ(홰)

이어 종성을 두 자 혹은 석 자 합용한 '종성 합용'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두 자 합용 : ㄺ, ㄳ

석 자 합용 : ㄺㅅ

이들은 당시에 실제 발음된 예들만 제시한 것으로 짐작된다.

즉 당시의 종성에는 'ㄺㅅ' 등과 같은 세 개의 자음이 실제 조음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와 훈민정음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을 잡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때는 한자의 음에 따라 중성으로 조음 되기도 하고 종성으로 조음 되기도 함을 표시하고 있다.

중성 조음 : 

종성 조음 : 魯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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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음이 모음으로 끝났지만, 'ㅣ'가 결합하여 하향성 이중모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ㅣ'가 중성으로 조음 되는 것이고, 모음으로 끝난 소리에 자음이 결합할 경우에는 그 자음이 종성으로 조음 된다는 것을 예시한 것이다.

그다음에는 점을 더하여 성조를 표시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점 : 거성

2점 : 상성

무덤 : 평성

점도 문자의 하나로 인식했기 때문에, 합용 하는 예에 포함된 것으로 짐작된다.

성조를 설명한 후 입성을 포함한 사성의 음상을 설명한 뒤 사계절과 관련지어 말하고 있다.

그밖에 초성의 'ㆆ'은 초성의 'ㅇ'과 통용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이어 반설음에는 가벼운 음과 무거운 음이 있으며 만약 사용한다면 순경음처럼 'ㅇ'을 아래에 이어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순경음 : ㅸ

반설 경음 : ᄛ

끝으로 국어의 모음 합자 중 당시에 통용되지는 않지만, 아동의 언어나 지방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소리에 다음의 두 종류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즉, 'ㅣ'와 'ㆍ'를 아래 위로 이어서 쓴 글자 및 'ㅣ'와 'ㅡ'를 아래 위로 이어서 쓴 글자 등이다.

 

용자례

용자례에서는 낱글자를 사용하는 예를 고유어로 제시한 것인데, 초성의 예로는 창제한 글자 17자 중 'ㆆ'을 제외하고, 연서자 'ㅸ'을 포함하여 17개의 문자에 대해 두 단어씩을 제시하고 있다.

중성의 예로는 창제한 글자 11개의 각각에 대해 4개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종성 해에서는 종성에서 실제 발음되는 8 종성에 대해 두 예씩 제시하고 있다.

 

정인 지서

이 글은 '훈민정음해례'의 '용자례' 뒤에 특별한 제목 없이 이어서 실려 있는 글이다.

정인지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인지 서' 혹은 '정인지 서문'이라고 하는데, 책의 뒷부분에 실려 있기 때문에 책의 앞부분에 있는 세종대왕의 서문과 구별한다는 의미에서 '정인지 후서'라고 하기도 한다.

이 글은 『세종실록』 113권의 세종 28년 9월 조에도 실려 있어서, 1940년 『훈민정음』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그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내용 중 "상형이 자방 고전(象形而字倣古篆)", 즉 "모양을 본떴는데, 글자는 고전과 유사하다"라는 문구는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첫 부분에서는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내지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기술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훈민정음해례를 쓰게 된 배경과 세종대왕의 위대성을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글자가 없다.

한자를 변용한 '이두'가 있기는 하지만 사용하기에 대단히 불편하다.

둘째, 세종 28년에 세종이 문자를 만들었는데, 그 문자는 이치가 묘하고 전환이 무궁해서 표기하지 못할 소리가 없는데, 배우기는 아주 쉽다.

셋째, 세종의 명에 의해 훈민정음해례를 작성했는데, 문자의 깊은 이치는 신하들이 깨우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

그리고 이 문자에 의해 우리 민족은 '개물성무()'의 큰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문자 '훈민정음'은 세종이 창제하였는가?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일이고, 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과연 세종이 문자를 창제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한 답은 『세종실록』에 있다. 결론만 간단하게 제시하면, 세종이 집현전 학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창제하였다는 것이다.

 

2. 문자 '훈민정음'은 세계의 문자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세계의 문자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6,000년 전에 상형문자로 출발한다.

이 상형문자는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뜻글자였다.

이것이 음절 문자로 발전하고, 이어 음소문자로 발전하게 된다.

문자 훈민정음은 음소 문자의 단계를 넘어서서 조음의 위치와 조음의 방식이 문자 모양에 반영되어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인류 문자사의 단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3. 문헌 『훈민정음』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문헌 훈민정음은 인류의 문자 발달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지구 상의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 중 만들어진 연대나 경과가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는 문자는 훈민정음뿐이다.

이것은 문헌 『훈민정음』에 의해 알 수 있는 일이다.

문헌 훈민정음은 인류의 문자사에서 유일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훈민정음』 '예의'와 '정인 지서'는 『훈민정음』에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해례의 앞부분에 있기 때문에 '예의'라 하고, 정인지가 글을 썼기 때문에 '정인 지서'라고 칭한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다른 표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정인 지서'는 '정인지 후서'라 하기도 한다.

송학이란 송(宋) 나라시대에 일어난 학술·사상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신유학(新儒學)·도학(道學)이라고도 하는데, 당시에 일어난 형이상학을 주로 지칭한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11세기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 12세기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주희의 주자학(朱子學)이 대표적이다.

이 학문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이(理)를 규명하고, 본래의 성(性)을 다하여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실천 윤리를 확립하는 데 있었다.

실천 윤리를 확립하는 것은 도(道)의 이념을 확립하는 것과 통하는데, '도'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를 둔 것이며,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이법(理法)에 합치한다는 것이 이론 전개의 밑바탕이 된다.

이는 각각 연구개음, 설단음, 순음, 치음, 후음을 가리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以聲音淸濁而言之 ㄱㄷㅂㅈㅅㆆ爲全淸 ㄱㅌㅍㅊㅎ爲次淸 ㄲㄸㅃㅉㅆㆅ爲全濁 ㅇㄴㅁㆁㄹㅿ爲不淸不濁 이들의 한자음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자음과 차이가 나는데, 훈민정음에 사용된 한자음은 동국정운식 한자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글자를 합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ㅗ'와 'ㅏ'를 합하여 'ㅘ'를 만드는 것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 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 예의 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 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해례(정인지 서문 등 3 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박팽년(신숙주(성삼문(최항(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동() 이한걸 가(李漢杰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 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 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 된 이유는 연산군의 언문 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 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은 6·25 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 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에는 세종 28년(1446)에 나온 초간본인 원본으로 훈민정음해례본(解例本)이 있고, 이를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이 있다.

 

현존하는 언해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서강대 소장 언해본 : 세조 5년(1459)에 간행한 것이다. 

② 고려대 소장 언해본 : 단행본으로 여러 부분을 보사()하였다. 

③ 서울대 소장 언해본 : 필사본으로 서강대 소장본 내용과 같음. 본래 일본 궁내성 소장본이었다. 

④ 세종대왕 기념관 소장 언해본 :

선조 원년(1568) 판각, 희방사 소장 복각본이다.

위 언해본 가운데 가장 완벽한 것이 서강대 소장본인데, 이것은 단행본이 아니고 월인석보(1459) 제1권에 실린 것으로 책이름을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  )이라고 하였으며, 목판으로 간행한 목판본이다. 

책의 한글 글꼴 가운데 큰 글자는 해례본의 글자보다 부드럽게 나타냈다.

즉 큰 글자의 서선의 굵기에 변화를 주었고, 서선의 운필 방향도 수평. 수직. 대칭 사향이 아닌 다양한 각도로 나타내어 마치 붓으로 직접 쓴 듯한 느낌을 풍긴다.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예의의 첫머리에 있는 한문으로 된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흔히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른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무척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도 실려 있어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해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정본이 1940년에야 발견되었다.

그것이 이 『훈민정음해례본』이다.

드디어 해례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훈민정음해례본』이 대중에게, 그리고 한글학회 간부들에게 공개된 것은 해방 후에 이르러서였다.

한글학자들도 해례본이 없었기 때문에 창제의 원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 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것들은 일제강점기의 일본 어용학자들의 주장이었다. 

1937년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고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후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전장을 태평양 너머까지 확장시켰다.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식량배급제가 강화되고 일제의 수탈은 혹독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우리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라고 배웠다

내선일체, 황국신민, 창씨개명, 일선 동조론, 신사 참배 등 방법도 다양했지만 문제는 그 질이 불량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악랄했던 정책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 정책이었다.

1942년 12월 일본어 사용에 반하여 한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의 임원 33인을 투옥시킨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한다.

이때 이윤재, 한징과 같은 사람은 옥사하기까지 했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정신을 담는 그릇은 바로 그들의 언어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즉 세계관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일제는 진정으로 우리말과 글이 사라지길 바랐다.

18세기 조선의 실학 연구자들은 중국의 중화 사관으로부터 탈피하여 우리 고유의 문물과 사상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이때 실학자들의 학문적 성과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본의 발견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일제는 18세기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등 언해본 자체의 진위를 허구로 몰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해례본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해례본을 없앤다면 조선초까지 소급되는 세종조의 한글 창제의 신화는 물거품이 될 수 있으며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의 뿌리와 기원을 허구화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40년대 초기에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에 이름이 알려진 대수장가였다.

간송은 김태준이라는 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국문학자로부터 해례본의 실존 소식을 접한다.

당시 일제는 조선에서 발생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견은 일제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간송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명사였고 김태준 역시 일제로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사회주의자였다.

이 둘이 만난다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송은 위험을 무릅쓰고 『훈민정음해례본』을 찾는 데 사활을 걸었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훈민정음해례본』의 실체가 간송의 품으로 왔으며 비밀리에 지켜오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불러 한글 연구를 위해 영인본을 만들며 세상에 공개된다.

이 실체는 우리의 언어가 인체 발음기관을 상형 화한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1937년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고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후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전장을 태평양 너머까지 확장시켰다.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식량배급제가 강화되고 일제의 수탈은 혹독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우리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라고 배웠다.

내선일체, 황국신민, 창씨개명, 일선 동조론, 신사 참배 등 방법도 다양했지만 문제는 그 질이 불량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악랄했던 정책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 정책이었다.

1942년 12월 일본어 사용에 반하여 한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의 임원 33인을 투옥시킨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한다.

이때 이윤재, 한징과 같은 사람은 옥사하기까지 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견은 일제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간송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명사였고 김태준 역시 일제로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사회주의자였다.

이 둘이 만난다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송은 위험을 무릅쓰고 『훈민정음해례본』을 찾는 데 사활을 걸었다.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 전권 33장 1 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1446년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의 8 학자가 집필하였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실체가 간송의 품으로 왔으며 비밀리에 지켜오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불러 한글 연구를 위해 영인본을 만들며 세상에 공개된다.

이 실체는 우리의 언어가 인체 발음기관을 상형 화한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백성을 위해서 기획적으로 언어를 창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특히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최초의 언어로 기록된다.

언어가 그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세계관을 동시에 밝히면서 제작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진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62년 12월 해례본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다.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한문 해설서. 책이름을 글자 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집필자들은 정인지·신숙주()·성삼문()·최항()·박팽년()·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의 8 학자이다.

전권 33장 1 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1446년 9월 상한(:초하루에서 초열흘까지의 기간)에 완성되었다.

현존본은 1940년경 경상북도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고() 전형필() 소장본(현 간송 문고 소장)이며, 전권 33장 1 책의 목판본으로 아직까지는 국내 유일본이다.

광곽()은 가로 16.8㎝, 세로 23.3㎝이고, 본문(예의) 부분은 4장 7면으로 면마다 7행에 매행 11자, 해례 부분은 26장 51면 3행으로 면마다 8행에 매행 13자, 정인지의 서문은 3장 6면에 한 자씩 낮추어서 매행 12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끝에는 ‘정통 11년(1446) 9월 상한’이라는 반포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도 발견 당시 완전한 것은 아니고, 처음 2장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 넣었던 것인데, 적을 때 실수하여 세종 어제 서문의 끝 자 ‘이()’가 ‘의()’로 되는 등 오자가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구성 내용을 약술하면 아래와 같다.

1) 본문(예의) 

① 어제 서문(훈민정음 창제 목적을 밝혔다.) 

② 예의(새 글자의 음가, 운용법을 설명하였다.)

 

2) 해례 

① 제자해(제자원리, 제자 기준, 자음 체계, 모음 체계, 음상 등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② 초성해(초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였다.) 

③ 중성 해(중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고, 중성 글자의 합 용법을 제시하였다.) 

④ 종성해(종성의 본질과 사성 등을 설명하였다.) 

⑤ 합자해(초성·중성·종성 글자가 합해져서 음절 단위로 표기되는 보기를 보이고, 중세국어의 성조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⑥ 용자례(단어의 표기례를 제시였다.)

 

3) 정인지 서문"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 창제자, 훈민정음의 우수성, 이 책의 편찬자, 편찬 연월일을 분명히 밝혔다.

 

다음으로 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예의)

어제 서문" 세종어제 서문에서는, 표기 수단을 가지지 못한 비 지식층 백성들에게 표기 수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 목적이 밝혀져 있다.

예의 어제 이용하여 새로 만든 훈민정음(글자)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초성 23 자모 체계는, 비록 전래 자음을 가지고 음가를 설명하기는 하였으나, 중국 36 자모 체계의 영향을 받은 체계였으며, 인위적인 개신() 의도를 가지고 정리하였던 『동국정운()』 23 자모 체계와도 일치하여, 15세기 중세국어의 초성 체계와 부합되지 않는 면도 조금 있다.

[표 1] 훈민정음 23자 모표,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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