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당 , Basilica of St. Peter.
산 바티칸) 대성당
San Pietro in Vaticano.
로마(바티칸)에 있는 로마 ∙
가톨릭의 총본부.
32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 베드로의 묘 위에 오랑식(五廊植)의 바실리카를 건립한 후 15세기 말까지 존재했다.
이를 성 베드로 구(舊) 성당이라 부름.
1502년 브라만테의 안(案)에 따라 집중식의 신성당이 기공되었으나 설계상의 미비로 인하여 중단하고, 줄리아노 ∙ 다 ∙ 상갈로가 교회의 요망에 응해 장당식(長堂式)으로 변경했다.
프라 조콘도와 라파엘, 페르치, 안토니오 다 상갈로도 각기 안을 제시했으나 모두 채택되지 못하고 1546년 주임건축가가 된 미켈란젤로가 다시 집중식의 안을 설계하여 공사에 착수, 비뇨라가 소(小) 돔을 부가함.
미켈란젤로 설계의 대(大) 돔은 1587년~89년에 델라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가 건조했다.
17세기 초두, 교황 파울루스 5세(Paulus V, 재위 1605~21)가 다시 장당화(長堂化)를 명해 1607년 설계공모에 의해 마데르나의 정면안(正面案)이 당선,
1614년까지 거의 완성함.
1624년에 신랑부(身廊部)도 완성되고 헌당식을 거행 그후 1656~67년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성당 앞면의 광장을 에워싼 장대한 콜로네이드를 건조, 일세기 반에 걸친 공사를 완성했다.
면적 약 1만 6600㎡, 정면의 폭 71m, 오더의 높이 34m, 입구에서 아프시스까지 183m, 대 돔의 내경 42m, 바닥에서 내각 정상부까지 104m, 지반면에서 돔 정점의 십자가까지 138m로서 세계 최대 최호화 성당건축이라 알려진 이탈리아 ∙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임.
내부에는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조각작품 『피에타』(1498~1499/1500)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대천개)가 있음.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국 제12왕조의 것임.
권력을 내뿜는 건축물이 있다.
가톨릭의 총본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의 주교좌 교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톨릭 교회 그 자체도 아니다.
가톨릭의 진원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 국가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은 우아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미켈란젤로는 156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건물에 매달렸으며, 그 뒤 1593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마침내 완공되었다.
관광객들은 일단 132.5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는 등을 둘러싼 외부 갤러리로 오르게 된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가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그야말로 굉장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바실리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네이브는 그 길이가 21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베르니니의 바로크풍 실내는 수많은 신성한 걸작들로 가득하며 제단 위에 드리운 발다친 혹은 휘장(1633년)은 정말로 멋지다.
성 베드로의 의자(1666년)는 베르니니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제작한 작품이자 하이 바로크 예술의 축도이다.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인 동쪽 면은 다소 딱딱하고 엄숙하지만 중앙 발코니에서 교황이 강론과 축복을 내리는 배경으로는 잘 어울린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산 피에트로 광장은, 로마는 완전히 배제하는 동시에 광장을 에워싼 열주(1656년에서 1667년 사이에 세워졌다)로 신앙심 깊은 순례객들을 끌어안는 '열쇠구멍' 설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천재의 작품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 깊이가 1.2미터인 열주는 몇 겹으로 늘어선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로는 바로크풍 인물상들이 서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기원전 1년에 이집트에서 한 덩이리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기둥이 서 있는데, 1585년 이곳에 세워졌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어머어마한 규모, 엄숙한 구성, 그리고 강력한 권위는 세계 곳곳의 대형 교회와 정부 건물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of St. Peter]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산피에트로 대성당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국에 있는 가톨릭의 총본산 교회. 르네상스를 바탕으로 베르니니가 건축 주임을 맡았다.
성베드로대성당 또는 성베드로대성전·베드로대성전·바티칸대성당·바티칸대성전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차례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舊堂)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하여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브라만테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會堂部)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발다사레 페루치(Baldassare Peruzzi)의 손을 거쳐 안토니오 다 상갈로(Antonio daSangallo)에게로 넘어갔다.
상갈로 역시 궁륭(穹窿)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造營)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 17세기 초기 신랑(身廊)의 전면(前面)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서쪽 정면)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
헌당식(獻堂式)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Bernini)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카를로 마데르나(Carlo Maderna)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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