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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식물.나무. (자연).

동의보감. [ 대한민국 의료 보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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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주갑인자본, 『동의보감』, 허준 편찬, 활자본, 


1610년(광해군 2) 허준()이 지은 의서(). 보물 제1085-2호, 장서각.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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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에 허준이 왕명을 받고 편찬을 시작하여 25권 25책. 체계화를 이룬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의학의 총집성과 더불어 민족의학을 정립시키는 대역사()에 착수하였다. 


착수 1년 후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는 곡절이 있었지만, 허준은 이를 자신의 일생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결심하고 집념으로 저술에 임하였다. 



실사구시()의 실증적 학구의 자세와 명민한 관찰력 그리고 고전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토대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살려 기본학리가 임상에 직결되기까지 일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의술의 구체화를 이룩하였다. 그 결과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 8월 6일 마침내 25권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완성되었고, 《동의보감》이라 이름하여 1613년 11월에 개주갑인자로 인쇄,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감교관()은 내의원 직장() 이희헌(), 부봉사() 윤지미()였으며, 서문은 이정구()가 썼다. 


이 책에 인용된 의서()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의 《향약집성방()》, 《의방유취()》와 선조 때의 《의림촬요()》를 비롯해 중국의 한()·당()나라 이래 명()나라까지의 의방서가 인용되었다. 이 책은 내과에 관계되는 내경편() 4권, 외과에 관한 외형편() 4권, 유행성병·급성병·부인과·소아과 등을 합한 잡병편 11권, 약제학·약물학에 관한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목차편 2권, 계 25권으로 되어 있다.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였으며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단독으로 편찬할 것과 함께 더욱 시급한 의학 책인 『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언해두창집요()』 등 3종을 우선 지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의학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허준 선생(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이지요. 이 책은 선조 임금의 지시에 따라 임진왜란(1592~1598) 중인 159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 전국에 보급하려 했어요. 이러한 임금의 뜻을 받들어 어의로 있던 허준은 왕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학서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의서를 완성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에요. 


≪동의보감≫이 다른 의학 서적에 비하여 돋보이는 점은 여럿 있어요. 이 세 책은 그 해에 지어서 바쳐졌으나, 『동의보감』 편찬에는 허준이 공무()로 틈을 내지 못하여 1608년이 되도록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이해 선조가 승하하자 그 책임을 물어 허준은 의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허준은 의서 편찬에 전념했다. 1609년 말 허준은 귀양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와 이듬해인 1610년 8월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 바쳤다. 


광해군은 허준이 선왕의 유업을 완수했다고 하여 그에게 좋은 말 1필을 상으로 내렸다. 전란 직후라 출판할 사정이 좋지 않아 인출본은 3년이 지난 후인 1613년에 내의원의 개주갑인자() 목활자를 사용하여 출판되었다. 



『동의보감』의 주요 서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우리나라 간본: 내의원 훈련도감활자 초간본(1611∼1613), 호남관찰영 전주장본(), 영남관찰영 대구장본, 갑술 내의원 교정 영영개간본(, 순조 14, 1814), 갑술 내의원 교정 완영중간본() 등이 있다. 1991년에 이 중 보존상태가 뛰어난 초간본 3종(국립도서관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서울대 규장각 소장품)을 보물(1085, 1085-1, 1085-2)로 지정하였고, 2008년에 각각 보물 제1085-1호, 보물 제1085-2호, 보물 제1085-3호로 변경하였다. 


이후 동의보감 초간본 3종의 문헌사적, 서지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각기 국보 제319-1호, 국보 제319-2호, 국보 제319-3호로 승격 지정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국보 제319-1호)은 1614년(광해군 6) 2월에 오대산사고()에 내사()한 것이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국보 제319-2호)은 25권 25책 완질본으로 무주 적상산사고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본(국보 제319-3호)은 2종이 지정되었는데, 모두 1613년에 간행된 초간본이다.「규귀() 1933」본은 전체 25책 중 1책(권6)이 결본된 영본()이고, 「규() 3553」본은 17책만 남아 있다. ② 중국 간본:『동의보감』(1763년 초간본), 『동의보감』(1796년 재간본,  ), 『동의보감』(1890년 복간본)과 민국상해석인본·대만영인본 등이 있다. 


이들 인본 가운데 1890년의 광서복간본()은 건륭판()이나 가경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본 간본에 의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③ 일본 간본: 『동의보감』(, 1724년 초간본), 『동의보감』(1799), 『원원통()』(, 1799년 훈점() 재간본)이 있다. 이 간본들은 일본 에도시대() 의가()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방서()로서 널리 전포()되었다.



『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병났을 때의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중국에서 별개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의학과 양생의 전통을 하나로 합쳐냈다. 병의 치료와 예방, 건강도모를 같은 수준에서 헤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중국의 한나라에서 명나라에 이르는 200여 종의 문헌과 『의방유취』·『향약집성방()』·『의림촬요()』와 같은 수 종()의 조선의서를 참고한 내용을 자신의 학식과 경륜에 결합하여 『동의보감』 안에 녹여내었고, 의학의 경전인 『영추()』와 『소문()』의 정신에 따라 의학의 줄기와 가지를 잡고, 다양한 학설과 처방을 병의 증상·진단·예후·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오늘날 백과사전의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참고한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힘으로써 원() 저작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인용 대목이 갈리는 곳은 ‘O’를 쳐서 구별하고, 제목과 본문 내용을 큰 활자와 작은 활자를 써서 쉽게 구별하도록 하였다. 


『동의보감』은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내경편()」(6권)·「외형편()」(4권)·「잡병편()」(11권)·「탕액편()」(3권)·「침구편()」(1권)이다. 우선 이 책은 신체에 관한 내용을 안팎으로 나누어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내경편」에,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 두었다. 


신체 관련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병 이론과 구체적인 병 내용은 「잡병편」에 묶였다. 


「탕액편」은 가장 주요한 치료수단인 약에 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을 실었고, 


「침구편」은 또 하나의 치료수단인 침·뜸의 이론과 실재를 다뤘다. 각 편의 구체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내경편」에는 신형()·정()·기()·신()·혈()·몽()·성음()·언어()·진액()·담음()·오장육부()·포()·충()·대소변() 등 내과에 딸린 질병과 함께 수양·양로병들과 목록이 부기되어 있다. 


「외형편」에는 두()·면()·이()·비()·구설()·치아()·인후()·두항()·배()에서 흉()·복()·요()·협() 및 사지()·피()·육()·골근()·모발()·전후음() 등에 이르는 외과적 질병이 기록되어 있다. 


「잡병편」에는 천지운기()·심병()·변증()·진맥()·용약() 등 진단법으로부터 풍()·한()·서()·조()·화()·내상()·허로()·곽란()·구토()·해수()·적취()·부종()·창만(滿)·소갈()·황달()·온역()·괴질() 등 내과질환과 옹저()·제창()·제상() 등 외과질환들이 혼잡()되어 있고, 그 밖에 부인과()·소아과()가 따로 첨부되어 있어 각 병상들을 그 증후에 따라 배열하였다. 


「탕액편」에는 탕액서례()로서 채약법()·건약법()·삼품약성()·수제법()·제약법·탕산환법()·자약법()·복약법·오미약성()·기미승강() 등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그 다음에는 전 약물을 수부() 35종, 토부() 18종, 곡부() 107종 등 140여 부로 나누어, 그 약명() 아래에 대개는 우리의 속명을 붙이고 그 다음에 약성()·약미()·약독()의 유무 및 약효()와 채취 시기 등에 관한 본초학적 지식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침구편」에는 구침제법()에서 연침법()·화침법()·점혈법()·제애법()·구법()·침보사법() 등과 같이 서설적 논제() 등을 들고, 그 다음에 십이경맥()의 유()·주()·수혈() 들의 소재 부위를 자세히 적었다.


이 책은『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원래 1596년  (선조 29)에 태의() 허준이 왕명 을받아  시작되어 14년 후인 1610년에 완수되었다. 처음에는 허준을 비롯한 5인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나, 허준은 왕명을 받아 당시의 뛰어난 의원을 망라해 의서() 편찬작업을 시작했다.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하였으며, 내장방서()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하였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이렇게 많은 의관()와 의원()들이 모여서 의서 편찬에 투입된 사례는 세종 때 10인이 참여한 『의방유취()』 편찬 밖에 없었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의 지대한 관심에 따라 대규모로 기획되었다. 초창기에 이 책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이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당연히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수히 많은 처방들의 요점만을 간추린다.”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책이 매우 많았는데, 이 책은 이렇게 말하고 저 책은 저렇게 말하는 등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 수 있도록 약초 이름에 조선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 


시골에는 약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나는 약을 써야하는데, 그게 어떤 약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시골사람이 부르는 약초 이름을 쓴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차례가 겨우 정해졌을 때, 1597년(정유년) 1월 일본군이 다시 쳐들어오는 정유재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서 참여한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려 『동의보감』을 편찬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책의 제목은 ‘동의()’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이란 뜻을 지닌다. 사업 초반 사정이 생겨 허준이 단독으로 집필하여 책을 완성했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어의인 양예수()·이명원()·김응탁()·정예남() 등 4인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의() 정작()이 그들이다. 


양예수는 허준보다 선배 세대의 어의로 신의()로 평가받은 인물이고, 정작은 어의는 아니지만 민간에서 형 정렴()과 함께 도교적 양생술의 대가로서 의학에 밝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이명원은 침술에 밝았으며, 김응탁·정예남은 신예 어의였다. 


『동의보감』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나, 중국 의서 가운데 『동의보감』과 성격이 비슷한 종합의서로서 『동의보감』보다 많이 찍은 책은 불과 수 종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우리 산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어요. 임진왜란으로 전염병이 번지며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선조 임금은 당시 최고의 의사였던 허준에게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하게 했어요. 임금님의 지시를 받은 허준은 이날부터 중국과 조선의 여러 의서들을 연구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의서를 만들어 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에요. 


둘째, 약재 이름을 의원들이 쓰는 전문 이름과 시중에서 민간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한글 이름으로 함께 기재해 놓아 누구라도 쉽게 약재를 찾을 수 있게 했어요. 세계 최초로 예방 의학을 강조했어요. 병들어 몸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병이 나기 전에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을 강조하여 세계 보건 기구가 중시하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 건강과 안녕’이라는 이념을 이미 400여 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어요. 


중국·일본·대만 등지에 번역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어요. 『동의보감』이 완성되자 허준은 조선의 의학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의보감』의 권1 「집례」에서 허준은 중국과 조선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의학권을 동원()의 북의()와 단계()의 남의()그리고 조선의 동의()로 구분하였다. 


허준 당대의 조선 의학이 중국의 그것에 버금가는 하나의 로컬리티(locality)를 구축했다는 자부심이었다. 이미 여말선초에 신유학과 함께 수입된 금원사대가와 명나라 초기의 의학이 양예수의 『의림촬요』 등을 통해 허준에게 전해졌으며 그 바탕 위에서 허준은 새로운 의학 지식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분류·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16세기 중후반 조선에 새롭게 도입되고 있었던 명대()의 의학은 누군가에 의하여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조선 전기의 『의방류취』나 『향약집성방』 이후 가장 큰 업적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서적은 이와 같이 『동의보감』은 국내 및 국제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2009년 7월 제9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바베이도스)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오대산사고본, 25권25책, 36.6×22.0㎝)은 1614년 오대산사고()에 보관된 책이며, 1991년 9월 30일 보물 제1085-1호로 지정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적성산사고본, 25권25책, 36.6×22.0㎝),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동의보감(태백산사고본, 24권24책과 17권17책 2종류, 36.6×22.0cm)은 2008년 8월 28일 각각 보물 제1085-2호, 제1085-3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이 담은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하여 1613년 허준이 간행에 직접 관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성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선조 임금이 처음 책 만들기를 지시했을 때는 임진왜란 중으로, 일본과 명나라가 휴전 협정을 맺어 잠시 전쟁을 중단하고 있던 때였어요. 이 시기에 임금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의서를 편찬하라고 왕실의 의사들에게 지시하여, 의사들은 대표 의사인 양예수를 중심으로 6명이 공동으로 1596년부터 의서 만들기에 들어갔어요.  


1597년에 전쟁(정유재란)이 다시 시작되어 정국이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자, 의서 편찬 작업은 잠시 중단되었어요. 이후 1598년에 왜란이 완전히 끝나며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선조 임금은 대중 의학서 편찬을 재차 지시하였고, 이때부터 책은 허준이 단독으로 집필해요. 


1610년에 완성된 ≪동의보감≫은 처음에는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만들다가 중간부터 허준 단독으로 만들어 완성한 책이에요. 『동의보감()』의 전체 구성은 모두 다섯 편으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이 그것이다. 


내경편은 『동의보감』 전편의 의학론을 정리한 부분으로 허준의 의학론과 철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의보감』 편술의 원칙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기존의 의학서들이 필적하지 못하는 『동의보감』의 장점이었다. 이른바 '양생론()'으로 통칭하는 수양의 방법이다. 이밖에 내경편에는 주로 오늘날의 내과 질환에 해당하는 병증들을 수록하였다. 다음 외형편 4권은 몸 외부에 생기는 질병과 이비인후과, 안과의 질병, 피부과, 비뇨기과 등의 질환이 기술되어 있다. 


잡병편 11권은 진찰법, 병의 원인과 내경편과 외형편에서 언급하지 않은 여러 가지 내과적 질병들에 대하여 그 질병의 병론()과 그 병증()에 대한 처방들을 수록하였다. 이른바 병리·진단학에서부터 구급, 부인, 소아과 그리고 전염병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기록하였다. 


잡병편에는 구급, 부인, 소아의 질병 등을 별도로 기술해 놓고 있어서 후일 『동의보감』의 전체적인 구성에 혼란과 중복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여기에는 허준()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한편, 탕액편 3권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했던 약물 1천여 종에 대한 효능, 적용 증세, 채취법, 가공방법, 산지 등을 밝혀놓았으며, 나아가 가능한 경우에는 약물의 이름 밑에 민간에서 부르는 향명()을 한글로 달아놓기도 했다. 


이른바 조선시대 전기의 향약론으로 총칭되는 임상약물학 혹은 본초학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탕액편은 내경편과 함께 『동의보감』의 가치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침구편 1권에는 침과 뜸을 놓는 방법과 장소, 즉 혈()의 위치나 적용 증상 등을 기술해놓았다. 이러한 독자적인 정리와 편집을 가능케 하며 나아가 자부심마저도 가지게 된 요인은 어디 있었던 것일까? 허준은 가장 먼저 조선의 의학 전통을 들고 있다. 


중국과 함께 조선의 경우도 예부터 사승관계()를 통한 의학·의술의 전수가 이어져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고려시대 말엽부터 지속되어온 향약 사용의 전통과 계승이다. 향약 사용을 중심으로 한 경험방들의 수집과 전수는 조선 의학의 독자성을 담보하는 실증의 자연학이라 일컬을 만한 것이었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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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탕액편에 보이는 수많은 '속방()' 기사들은 바로 전통적인 약물학의 지식으로서 당시 조선에 분포하는 동·식물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가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맥락에서 허준은 '조선의 동의'를 정립하고 계승시켜야 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리된 의서의 내용이 만물의 변화를 비추어 밝혀내는 것이라면, 중국에서 '보감'이라고 하듯이 조선에서도 역시 보감이라고 할 만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편찬한 의서를 '동의의 보물'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이다. 


허준은 동의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인간사회의 보편적 질서인 인륜의 차원으로까지 연계시키려 했다. 다시 말해서 인륜에 바탕을 둔 자연학, 즉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관인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우주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의철학()을 도출해낸 것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서두를 한 장의 도판으로 시작한다.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른바 「신형장부도()」가 그것이다. 혹자는 인체 내부의 장기 및 그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뭐 대단하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허준이 거질의 『동의보감』에서 서술하려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도형과 논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을 상징하는 머리와 땅을 나타내는 몸, 그리고 이 둘을 인체의 척추가 연결하여 하늘과 땅의 선천적 기운에 인체의 후천적 기운을 소통·순환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자연을 닮은 인간',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대단히 심오하고 정치적이었다.국가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의서 『동의보감』의 역할이었다. 이 책은 인간을 자연의 모사품인 소우주로 규정함으로써 자연의 질서를 인간사회의 질서, 즉 당연()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인간론은 다음의 「신형장부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영귀한 존재이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진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하늘에 사시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다. 하늘에 오행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는 육극()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다. 하늘에 팔풍()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팔절()이 있다. 하늘에 구성()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구규()가 있다. 


하늘에 12시()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12경맥이 있다. 하늘에 24기()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24유()가 있다. 하늘에 365도()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365골절이 있다. 하늘에 일월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안목이 있다. 하늘에 주야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오매()가 있다. 하늘에 뇌전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희로()가 있고, 하늘에 우로()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한열()이 있고 땅에 천수()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으며 땅에 초목과 금석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사대(), 오상()이 묘하고 아름답게 조화되어 성립된 것이다. 


15·16세기 조선 의학은 상당히 주술적이고 구복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고려시대 이후 널리 행해졌던 수경()풍습은 도교의 주술이 의학의 담론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다. 도교에서는 삼시충()이 사람의 몸속에 있다가 경신일 밤에 상제에게 올라가 인간의 죄과()를 고발한다고 보았다. 


삼시는 3마리의 벌레로 몸 안의 위치에 따라 상시(), 중시(), 하시()로 구분되었는데,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이 타락하는 것을 바랐다. 때문에 장생불사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삼시충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수경의 풍습이 발생하였다. 


경신일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환하게 불을 켜놓아 삼시충이 상제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불교와 습합되어 수경신()을 하면서 『원각경()』을 낭송하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동양 의학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세계 최초의 일반인을 위한 의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유네스코는 ≪동의보감≫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세계 기록 유산으로 ≪동의보감≫을 등재했어요.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 유산은 약 200여 점에 달하는데, 이 중에서 의학 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하다고 해요. 이런 특징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아 출간 직후부터 『동의보감』은 조선을 대표하는 의서로 자리잡았으며, 18세기 이후 『동의보감』은 국제적인 책이 되었다. 


동의보감은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하여 지금까지 의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동의보감 초간본(목활자본)은 전본이 드물어 희소성이 있으며 한국의학사와 임난 이후 도서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에 밤새도록 풍악을 울리고 잔치하며 술 마시는 떠들썩한 수경신 풍속이 왕실로부터 민중들 사이에 널리 행해졌다. 그리고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많은 학자들이 삼시의 풍속을 노래하였다. 불교 역시 구복적인 도덕관의 한 차원으로 받아들여졌다. 


15·16세기 가장 널리 읽히고 전파되었던 『장수경()』은 의학과 연관된 불교의 담론을 잘 보여준다. 장수와 멸죄를 구하는 한 우바새의 질문에 석가모니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불경이다. 사람들은 악업을 멸하고 장수를 위한 방편으로 『장수경』을 필사하여 전파하거나 향을 사르고 지성으로 기도했다. 


그밖에도 장수를 위해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부모가 될 줄 알면서도 성교를 하여 아이를 잉태하거나 출산 시 피를 땅에 흘려 지신()을 쫓아내거나, 아이의 배꼽을 충실히 마감하지 못하여 독충이 들어오거나, 아이의 입 안에 있는 나쁜 기운을 솜으로 잘 닦아주지 못하거나 임신이나 출산 도중 부정한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아이가 병들었다면 어미의 젖을 짜 허공에 뿌려 원귀들에게 제공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장수경을 독송하면 병이 낫는다고 보았다. 


이처럼 불교의 장수경이나 도교의 수경 풍속은 여전히 인간의 행복과 장수를 기복적 차원에서 구원하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마땅히 지켜야 할 장수의 방법과 건강한 삶을 위한 지침들이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세계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은 도교와 불교의 주술적이고 구복적인 차원의 인체론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인체과학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기왕의 불교와 도교의 내용을 배제하지 않고 이를 포섭하는 결과물이 필요했다. 


『동의보감』은 불교와 도교의 인간학을 모두 포섭하면서 새로운 인간과학의 정당성을 주술이나 구복의 세계가 아닌 하늘의 법칙으로부터 가져왔다. '자연을 닮은 인간'은 당연히 '자연의 원리'를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 


춘하추동의 순리, 밤과 낮의 질서, 음과 양의 조화, 인륜의 구현, 이 모두는 당연한 인간의 삶이 정초해야 하는 자연의 원리였다. 『동의보감』의 양생학은 바로 이를 구현한 인륜의 의학에 다름 아니다. 자연스러운 삶이 곧 인간의 마땅한 도리요, 인륜의 마땅함을 지키는 일이 건강의 지름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학을 중심으로 불교 혹은 도교를 회통하려는 철학은 16세기 중·후반 서울과 한강 이북의 경기도 일대의 철학자들로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허준의 스승인 양예수 그리고 『동의보감』 편찬의 기초를 설계했던 유의() 정작 등에게서 나타나는 유학과 도가 및 불교를 넘나드는 회통의 사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을 시원으로 하는 동양 의학은 시작에서부터 양생 등 도가철학에 근거하고 있었다. 중국 최고의 의서인 『내경()』의 첫머리에서 자연에 조응하는 양생의 도를 설명한 이후, 전통적으로 의학은 자연을 따르는 양생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동의보감』의 경우도 이러한 철학을 뼈대로 조선 의학의 전통을 정리하였다. 『동의보감』의 서문격인 「집례」를 보면 "도()는 정()을 얻고 의()는 조()를 얻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때의 '도'는 단지 도가에서 말하는 '도'의 개념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유학의 체계 내에서 도·불을 절충하는 삼교회통의 맥락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16세기 중·후반 조선 사상계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허준이 이루어낸 새로운 인체과학, 즉 『동의보감』의 양생학이다. 


『동의보감』은 인체가 소우주임을 천명함으로써 소우주 인간과 대우주 자연의 상응을 증명하였다. 그럼으로써 인간 사회의 '당연함의 질서'를 '자연의 법칙'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윤리로 자연스럽게 내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동의보감』이 유학자들과의 합동 작업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것들의 목록, 즉 유학자들이 주장하는 많은 도덕의 항목들이 '자연의 법칙'이 된 것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전해온 독자적인 향약()의학, 그리고 양예수의 스승인 장한웅()과 정작() 등으로부터 이어진 도교와 불교 및 유학을 회통하고 나아가 명나라의 새로운 의학을 통합한 16세기 후반의 조선 의학의 일대 결정판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동의보감』의 인간과학이야말로 도교와 불교를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유교의 윤리적 삶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을 통해 의술은 유교의 통치술이 되었고 유교는 과학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인체를 포섭한 새로운 인체과학은 인륜의 정당성을 자연의 법칙에서 구함으로써 그것이 매우 근원적이고 비판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동의()란 무엇인가? 나라가 동쪽에 있으므로 '동()'이라 한 것이다. 옛날에 이동원()이 십서()를 지어 북의()로서 강소() 등 남쪽에서 행해졌고, 주단계()가 심법()을 지어 남의()로서 관중()의 북쪽 지방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니 지금 양평군 허준이 궁벽한 외번()의 나라에서 저술하여 능히 중국[]에 행해졌으니 족히 전할 만한 것이라면 지역의 한계를 두지 않는 법이다. 


보감()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햇빛이 구멍을 비추어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고 살결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책을 한번 열어보면 일목요연하여 환한 것이 보감이라 할 만하였다. 예전에도 위생보감(), 고금의감() 등의 서명이 있었으니 동의보감이라 한다고 해서 과장되거나 혐의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동의보감』의 지성사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과 인간을 완전하게 이어준 '신형장부론'의 과학,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유학의 이데올로기를 인체에 투영한 인간과학이다. 유학자들은, 부당한 삶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인 동시에 양생에도 적합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삶의 기초이자 윤리적 삶의 전제라고 여겼다. 


자연을 닮는 행위 그것은 첫째로 인륜을 알고 지키는 것이요, 둘째로는 수양이었다. 조선의 양생학이 외단()보다 수양과 절제를 강조하는 내단()으로 침잠한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동의보감』의 양생학이 그랬듯이 양생이란 자연에서 기원하는 당연의 질서와 문화의 절제를 인체에 투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준이 자신의 의학을 '동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18세기 중반 청나라에서 『동의보감』이 출판될 때 능어()가 지은 서문을 참고하여 생각해보자.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강조한 조선 의학의 전통, 즉 향약()이란 무엇인가? 특히 선조 임금이 본초에 향명()을 부기하도록 명한 이유와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자연을 닮은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인간과 자연을 합일시키는 의미에서 오늘날 생태주의나 친환경주의와 같은 자연주의와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유학에서 말하는 천인합일()은 자연의 가치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의 입장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이 담은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하여 1613년 허준이 간행에 직접 관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성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2015년 6월 22일 동의보감 세 본은 각각 국보 제319-1호, 제319-2호, 제319-3호로 승격·지정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완질이지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두 종류는 일부가 빠져나간 결락본()이다. 해당 소장본 중 24권24책은 잡병편 권6의 1책이 결본이고, 17권17책은 8책이 결본이다. 다만 24권24책에서는 빠져 있는 잡병편()이 제17권17책에는 포함되어 있다. 


중간요약"동의보감』은 선조 30년(1597) 임금의 병과 건강을 돌보는 어의 허준(1546∼1615)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에 착수하여 광해군 3년(1611)에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에 간행한 의학 서적이다. 이는 총 25권 25책으로 목활자로 발행하였다. 


허준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동의보감의 첫 장에 기록된 신형장부도..사람들은 흔히 허준이 인체를 해부하여 그린 것이라 알고 있다. 과연 그 시대에 해부가 가능했을까? 신형장부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낱낱이 알아보도록 하자. 


1)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이었던 이동원(李東垣)은 중국의 북부에서, 또 다른 인물인 주단계(朱丹溪)는 중국 남부에서 주로 활약하며 자신의 학설을 펼쳐나갔다. 이를 빗대어 동쪽의 조선에서 허준의 동의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2) 중국의 금원시대(金元時代)에 한의학이 융성하였는데 특히 당대 유명한 의사 4명의 대가를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라고 한다. 유하간(劉河間), 장자화(張子和), 이동원(李東垣), 주단계(朱丹溪)이다. 


3) 자연이라는 의미로 원래는 사물을 가리킨다. 


4) 인위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법률, 습관, 관습, 방법, 태도들이 그러하다. 


5) 인문이란 '인간의 문화'이며, 보통 세상에서 지켜야 할 도덕률들을 의미한다. 


6) 경신일을 지킨다는 의미로 밤을 세워 삼시충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풍속이다. 


7) 마음의 수양보다는 약물의 섭취 등 외부적인 방법으로 장생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8) 외단과는 반대로, 수양에 치중하는 섭생방법이다.


≪동의보감≫은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총 25권의 책에 담고 있어요. 


〈내경〉편 -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인 오장육부에 관한 사항을 담아 놨어요. 


〈외형〉편 - 눈에 보이는 몸의 각 부위에 관한 기능과 질병을 써 놓았어요.

 

〈잡병〉편 - 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병의 원인과 증상을 적고, 이에 따른 기본적인 치료 방법을 써 놓았어요. 


〈탕액〉편 - 약재를 쉽게 구하는 방법과 처방하는 요령을 적어 놨어요. 


〈침구〉편 - 침과 뜸에 관한 이론과 시술 방법을 기록했어요. 2015년 6월 22일 동의보감 세 본은 각각 국보 제319-1호, 제319-2호, 제319-3호로 승격·지정되었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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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2일 동의보감 세 본은 각각 국보 제319-1호, 제319-2호, 제319-3호로 승격·지정되었다.




또 다른 볼거리.(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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