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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대. [醬─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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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대. [醬─臺]

장류가 담긴 독과 항아리 등을 놓아 두는 곳.

옛한국 가정의 필수적 설비로서 대체로 햇볕이 잘 드는 동편에 마련하는데, 대지가 넓은 집은 뒷마당에 만들고, 좁은 집에서는 앞마당에 만든다. (옛 가정에 없이는 안되는물건) 우리 장독의 역사는 음식 보관의 역사와 함께한다. 채집과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잉여 곡식과 부식을 저장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분을 증발시켜 건조하는 방법에서 소금으로 절이고 발효시키는 저장법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것을 담는 용기인 옹기도 함께 생겨났다.

오늘날 패스트푸드에 반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슬로푸드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의 김치, 고추장, 된장, 젓갈, 장아찌 등이야말로 여기에 걸맞은 음식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서양의 치즈, 요구르트에 뒤지지 않는 발효식품의 종주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옹기의 발달 덕이다.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으나 서민들의 친근한 벗은 역시 옹기였다. 돌을 2∼3층 쌓아서 1∼2평의 높다란 대(臺)를 만들고, 맨 뒷줄에는 큰독, 중간에는 중들이, 앞줄에는 항아리를 늘어놓는다. 가장 큰 독은 장독으로 쓰고, 중들이에는 된장·막장 등을 담아 두며 앞줄의 작은 항아리에는 고추장류·장아찌류를 담는다.

고추장 항아리는 대개 키가 작고 복부(腹部)가 위아래보다 크며, 구경이 넓어서 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집안 살림의 규모가 클수록 장독대의 규모도 커서 한 줄에 4∼5개씩 놓기도 하는데 주부들의 살림 솜씨를 장독대를 보고 평가하기도 한다.

장독대,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지방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음식 맛이 나는 건 만드는 사람의 손맛에서 오는 차이이다. 그러나 그 손맛이 장맛의 차이라는 것을, 그 장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어머니와 할머니가 정성스레 닦고 관리했던 장독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맛을 알고 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지방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음식 맛이 나는 건 만드는 사람의 손맛에서 오는 차이이다. 그러나 그 손맛이 장맛의 차이라는 것을, 그 장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어머니와 할머니가 정성스레 닦고 관리했던 장독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맛을 알고 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들은 양지바른 곳에 놓인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쓸고 닦고 주변을 치장하여 정갈하고 아름답게 지켜왔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이제 옛날 일이 되었고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현대 생활에서 어머니의 손맛은 그리움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장독은 짐스런 존재가 되어, 김치냉장고로 그나마 전통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집안의 식탁을 책임지는 장독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은 독을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모름지기 겨울에 구운 독을 이른 봄에 사야 좋다고 했다. 오뉴월은 장마철이라 굽기 전 독이 잘 마르지 않은 상태이며 가마도 마르지 않은 상태라 아무리 고온으로 구워도 그 속에 있는 습기를 걷어내지 못해 장을 담그면 쉬 상해버리고 만다

집안의 식탁을 책임지는 장독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은 독을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모름지기 겨울에 구운 독을 이른 봄에 사야 좋다고 했다. 오뉴월은 장마철이라 굽기 전 독이 잘 마르지 않은 상태이며 가마도 마르지 않은 상태라 아무리 고온으로 구워도 그 속에 있는 습기를 걷어내지 못해 장을 담그면 쉬 상해버리고 만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구운 독이라도 장을 담가두었을 때 소금쩍이 겉으로 배어 나와야 좋은 독이며 이를 가리켜 ‘독이 숨 쉰다’고 하였다. 장독의 좋고 나쁨은 눈으로 보거나 두드려 보아서도 알았다. 좋은 독은 가벼운 편이고 색이 노리끼리하며 불그스름한 게 예쁘고 쇳소리가 나야 한다.

 

어느 시흥동 빌라 뒷 마당에서 본 옛 김치냉장고 - 장독650X442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가지런하고 균형이 맞아야 한다. 옹기장이가 신명나게 물레를 차면서 돌린 옹기는 장인의 신바람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예품이었다. 장 자체가 시간이 만들어내는 음식이듯이 무던한 옹기도 만들어지는 과정이 느리다. 점토를 구해서 2~3개월 건조하고 흙을 부수고 반죽하여 적당한 크기의 가래로 만든다. 여기에 물레질과 유약 처리를 거쳐 건조시키고 가마에서 구워내는 긴 과정을 거치며 장인의 수많은 상념들이 옹기에 스며든다. 이 모든 것들이 장맛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장독의 선택은 매우 중요했다.

나란히 장독1280X960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옹기) 직거래960X720본링크로 이동하기

서운암..장독밭1024X768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과 나락단지550X412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 옮기기1280X960본링크로 이동하기

.통도사 서운암 장독550X339본링크로 이동하기

☆ 장독 ☆550X422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548X425본링크로 이동하기

전라도 장독550X412본링크로 이동하기

설경 속 장독이 장관인 명재고택-

장독 항아리 단지650X866본링크로 이동하기

대형장독 고항아리 전통장독960X540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 이야기900X675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과 장닭548X435본링크로 이동하기

독이 마련되면 짚에 불을 붙여 장독을 엎어놓고 잡냄새와 잡균을 제거했다. 연기가 나는 구멍은 먼저 된장을 담가 자연스레 메운 후 장을 담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음력 정월 말[馬(마)]날인 오일(午日) 아니면 그믐 손 없는 날에 담가야 장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낳은 것처럼 장 담그고 삼일까지는 외인의 출입을 삼가게 하고 특히 부정한 사람은 절대로 오지 못하게 하며 남의 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지 못하게 하였다.

 

장독450X304본링크로 이동하기

장독 항아리960X720본링크로 이동하기

장 담그는 날에는 메주 한 덩이, 붉은 고추, 소금을 소반에 놓고 고사를 지낸 후 장 담글 때 같이 넣기도 하고 숯을 달궈 띄우기도 하였다. 잡귀나 도깨비가 먼저 맛을 보면 장맛이 변한다고 하여 금줄인 왼새끼를 꼬아 독 어깨에 매고 붉은 고추와 숯을 장독에 넣거나 청솔가지와 함께 매달기도 했다. 또 잡귀나 도깨비가 싫어하는 적색과 청색을 독에 매달거나 장에 넣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종이로 하얀 버선본을 오려 거꾸로 붙여 놓기도 하는데, 장맛이 변했더라도 다시 제맛으로 돌아오라는 의미이다.

장독 항아리 ~480X687본링크로 이동하기

만사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주변의 환경에 민감했던 어머니들의 정성과 기도는 집안의 구석구석 중에서도 특히 장독대에 가장 많이 배어 있었다. 장독 관리는 어머니의 출타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였다. 볕 좋은 날 장독을 열어 두었다가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릴라 치면 장독 뚜껑을 닫는 손이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름달이 뜨면 으레 정안수를 떠놓고 대처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건강과 출세를 위한 기도로 대신하곤 했다. 시어머니의 박대와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소래기에 물을 받아 박을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며 노래하는 것으로 달래었다.

집안의 평안함과 재앙을 떨치는 연중행사로 성주님과 삼신은 물론, 장독대에도 빠트리지 않고 고사를 지냈다. 고사는 시월상달 초사흘에 지내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5, 6월을 제외한 매월 초사흘마다 장독대에 고사를 지내며 장이 변하지 않고 항상 맛있게 해달라고 염원했다. 

 

이러한 소망은 일반 여염집에서만이 아니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친 동궐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수백 개의 장독을 보관하는 구역이 따로 서너 군데 마련되어 있다. 장독대 옆의 기와집에서 생각시 두세 명을 데리고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을 관리하는 상궁이 따로 있었는데 ‘장꼬마 마님’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예우가 좋았다고 한다. 날이 밝으면 목욕재계한 후 이 독 저 독을 반들반들하게 닦고 살피는 게 임무였다. 궁중의 장은 불로 달이지 않았음에도 오래 묵혀 조청처럼 끈적끈적하고 달짝지근한 진미였다고 하니 장을 관리하는 상궁의 정성이 임금을 모시는 마음이었으리라.

옛날에는 장독대의 자리가 좋으며 장독이 번듯하고 가지런하면 그 집안이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했으며, 이사할 때도 장독대부터 옮겨 놓았다. 부엌과 가까운 뒤뜰 높직한 곳에 있게 마련이지만, 뒤뜰이 마땅치 않은 곳에선 물가와 가까우면서 높고 깨끗하고 바람이 잘 통하며 양지바른 곳에 놓기도 하였다. 벌레가 범접하지 않도록 돌로 단을 쌓아 높게 만들고, 다시 굄돌로 사방을 받치거나 네모반듯한 벽돌로 장독 받침을 따로 만들었다.

일반 여염집 규모의 장독대에는 보통 제일 뒤쪽으로 너덧 개의 큰 대독을 한 줄로 두고, 그 앞에는 조금 작은 중두리 네다섯 개, 그 앞에는 좀 더 작은 독을 일고여덟 개 놓은 후 맨 앞에 작은 항아리들을 놓았다. 간장, 된장 등이 맨 뒤를 차지하고 중간에는 고추장이나 장아찌, 맨 앞줄은 계절별 김치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시집갈 규수를 보러온 매파나 시집 식구들은 장독대를 보고 집안의 규모와 안주인의 사람됨을 알아본 뒤 혼사를 결정하기도 했다. 때문에 매일 정성으로 장독대 주변을 정갈하게 하고 화초로 꾸미고 장독을 깨끗이 닦아 윤이 나게 했다.

지역에 따라, 담을 내용물에 따라 장독들의 생김새와 이름도 다양했다. 장독 이름을 거론하자면 시루, 약탕관, 물버지기, 툭사래기, 소줏고리, 두멍, 귀대접, 귀대야, 물두무, 자배기, 뚝배기, 중두리 등 천차만별이었다. 경기·서울의 독들은 밑과 입의 지름이 거의 같고 홀쭉하며 특히 서울 독의 경우 연꽃봉오리 형태의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다. 전라도의 장독은 배가 불룩하고 크며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나 소래기 또는 소래라 불리는 큰 자배기 형태의 뚜껑을 사용했다. 충청도 독은 목이 좁고 길고 밖으로 약간 벌려진 형태가 많고 전체적으로 투박하나 견고한 모습이다. 경상도 독은 입부분이 좁으며 어깨가 각진 것과 각이 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둥근형, 두 가지가 있다.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들이 달라 저장법과 기간 등을 고려한 형태이다.

『경상도 장독은 아주 복스럽게 생겼다. 전라도 장독은 아랫도리를 훌치면서 내려가는 곡선이 아름답고, 경기도 서울 장독은 늘씬하니 뻗은 현대적 세련미의 형태감을 자랑함에 반하며 경상도 장독의 탱탱한 포만감은 삶의 윤택이 야멸치게 반영되어 풍요의 감정이 일어나 더욱 좋다.』

각 지역의 지형이 지역 사람들의 심성을 형성하고 장독마저 그 지형과 심성을 표현해내는 건, 지역성의 보전이 다양함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이라 여겨진다. 지역에 따라 집의 모양이 달랐듯이 장독대 모양도 다를진대, 지금은 지역구분 없이 생산되는 공예품들이 같은 모양,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모두 획일화되어 재미가 없다. 성형하여 말린 옹기에 잿물을 입히고 두 손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환친다’고 하는데 난, 죽엽, 용수철, 지그재그, 매듭, 운문, 대칭초화문, 나비문, 곡식문 등 수화문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서울 독에 주로 쓰이던 난문양이 일반화되고 유약조차 광명단을 사용하여 독성 강한 장독이 생산되기도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가 주 생활공간이 되고 김치냉장고가 저장고 역할을 대신하면서 음식용기의 재질도 플라스틱과 유리로 대체되어, 많은 장독들이 방치되거나 깨지고 사라져버렸다. 고단한 옹기 제조과정과 생활고로 인해 옹기장이들은 장인으로서의 삶과 옛 제조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옥을 지으면서 생겨난 마당을 장식하려는 이나, 건강한 먹을거리를 고민하며 제대로 만들어진 장독을 구하려는 이들은 전국의 골동품 가게를 헤매고 다닌다. 이젠 제대로 된 장독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호사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옛사람들이 살면서 관리하는 장독대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외로이 살지만 대처의 자식들에게 보낼 요량으로 장독을 가득 채웠으리라.!??

제주도에서는 장항굽, 이북에서는 장독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 부엌 뒷문에 가까운 뒤꼍 공간에 두지만, 격조 있는 집에서는 대청의 주축선과 연결시킨 정결한 자리에 배치한다. ㄱ자집에서는 안채의 옆공간인 뒤뜰에 놓기도 한다.

남해안과 서해안의 작은 집과 뒤꼍이 넉넉하지 못한 산골짜기나 섬의 집들은 부엌 앞 양지바른 마당에 자리잡기도 한다. 때로는 부엌을 넓게 하고 부엌 한귀퉁이에 장독들을 세워놓기도 한다.

장독대는 배수가 잘되도록 약간 높은 곳, 혹은 지면에서 20∼30㎝ 정도 높이로 호박돌과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여러 개의 판석을 깔아 만든다. 그러나 요즈음은 판석 대신 석회를 써서 마감하기도 한다. 모양은 긴네모꼴이 많으며 보통집의 용마루방향과 같게 놓인다. 크기는 2×3m, 3×4m, 혹은 2×4. 5m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이 큰 장독대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의 기본식품인 간장·된장·고추장 및 빈 항아리를 나열한다. 드물게는 고춧가루·김치·깨·소금 등의 부식을 담은 작은 항아리를 두기도 한다. 장독들은 두 줄 또는 석 줄로 잘 정렬하여 배치하는바, 큰 독을 뒤쪽에 두고 작은 독은 앞쪽에 놓는다. 장독의 숫자는 지방에 따라 일정하지 않지만 큰 것이 4∼6개 정도, 중간크기의 것이 4, 5개 정도이다. 작은 것은 대중이 없기는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으며 전체의 숫자는 대충 15개 내외이다. 그러나 살림이 풍족하지 않은 산간지대에서는 큰 독이 3, 4개, 작은 항아리가 3개 내외 정도이다. 특이하게 제주도에서는 둥근 모양의 장독대를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도 4, 5개의 장독을 놓아두는데, 이것은 육지의 산간지대와 같은 현상으로 장독대에는 장류만 저장하고 기타 부식품은 집안에 두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지방의 일부에서는 장독대를 안마당에 두는 대신 주위에 나지막한 담장을 예쁘게 두르고 지붕을 해달아서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장독대에는 성주가 모셔져 있는 수가 많다.

출처 &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주거민속지(住居民俗誌)』(민음사, 1988)

[장독대 [醬─臺] (두산백과)

[장독대 (한옥 전통에서 현대로(한옥의 구성요소), 2008..,)

[장독대 [醬─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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