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검. 四寅劍 .
통상 이 장검은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시종이 별도로 들고 지휘자의 뒤를 따랐다.
사인검은 시기적으로 매 12년마다 제작할 수 있었으나 제작에 많은물력(物力)과 인력(人力)이 수개월 간 소용되므로 흉년 등에는 제작하지 않았다.
사인검은 검신(劍身)의 한면에 <사인검>을 포함한 27자의 한자가 금(金)상감 되어 있고, 다른 한 면에는 191개의 별로 된 성좌(星座)가 역시 금상감 되어있는 보검 중의 보검이다.
사인검은 표면에 사인검을 설명하는 한자 27자가 순금으로 새겨져 있다.
사인검의 제원은 전장 82.5cm, 칼날길이 63.7cm, 손잡이길이 18.8cm, 칼날폭 3.3cm, 칼집길이 67.5cm, 칼집폭 4cm 이다.
도신 :
칠성문 금상감. 裏면 - 사인검을 위시한 범어 금상감. 병부 : 부적문, 범어와 병부중앙 전후에 8판화가 칠부되었고 병부첨단에는 연봉형이 있으며 중앙에는 8판화와 주위에 성좌가 금상감.
연(年)•월(月)•일(日)•시(時)가 모두 인(寅)인 때에 만드는 칼.
정원에 전교하기를, “…공장은 다른 일은 별로 없고, 다만 별조궁과 사인검을 만드는 일이어서 장인의 숫자가 많을 것이다.
지금 같은 흉년에 정지하라고 명하는 것은 곤란하지는 않으나, 별조궁은 여느 때에 변방의 장수와 수령에게 상사하는 것이므로 군무의 일이기에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다.<
사인검은 해마다 주조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년에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조종 때의 옛일이며, 올해가 마침 인년이므로 주조하라고 명하였다.…” 하였다. ;
傳于政院曰…工匠則別無他役 只於別造弓四寅劍造成之事 匠人數多矣 如此凶年 命停不難 而別造弓 則常時賞賜戍邊將士及守令 故軍務之事 不得已爲之<…> 四寅劒則非年年所鑄 必於寅年爲之 此祖宗朝故事也 今年適寅年 故命鑄之… [중종실록 권제98, 12장 뒤쪽, 중종 37년 4월 18일(무진)]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짐
여의(如意)는 승려가 경을 읽거나 설법할 때 지니는 도구로, 강론하는 스님이 글을 기록하여 두고 참고하는데 쓰는 것이라고도 하며 등의 가려운 데를 긁는 기구로 쓰였다고도 한다.
불교 전래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여의(如意)란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의 단어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여의는 여의가 가진 단어적 의미 그대로를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다.
보통 미술품에 나타나는 여의는 의장적 요소가 강한 여의의 머리부분[여의두]이 주로 장식되며 여의 전체를 그린 그림에서는 영지나 불로초와 유사하게 그려진다.
여의가 그림이나 문양, 장식으로 쓰일 때는 다른 길상 상징형과 결합하여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평안여의(平安如意), 사사여의(事事如意), 만사여의(萬事如意)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화평, 평안을 의미하는 화병(花甁)에 꽂힌 여의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검은 육군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사인검을 복제한 것으로 “사인검(四寅劒)”이라는 명문과 북두칠성(北斗七星) 문양이 상감(象嵌)되어 있다.
조선시대 일반무기류 중에서 창검류가 차지하는 전술상의 지위는 전체적으로 저하되었지만 근접전에 있어서는 그 기능과 역할은 무시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주요한 무기 중의 하나이자 도검류 중의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환도였다.
조선시대 일반무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공격무기]
도검류로는 이인검, 삼인검, 사인검, 이진검, 삼진검, 사진검 등의 검과 패검, 운검, 별운검 등의 환도류, 장도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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