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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1호 "인왕 제색도', 실제로 보니 "웅장함이 압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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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1호 "인왕 제색도', 실제로 보니 "웅장함이 압도하네",

국립중앙박물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청동기부터 조선까지 각 시대 명품 엄선,
"'이건희컬렉션' 성격 보여주고자 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일 모습을 드러낸 ‘이건희컬렉션’에서 단연 제일 눈길을 끈 건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다. 

76세의 정선은 긴 장맛비가 갠 후의 인왕산 모습을 가로 138㎝, 세로 79.2㎝의 커다란 화폭에 담았다.

장맛비로 물기를 머금은 산은 평소보다 더욱 묵직해 보이고 수성동과 청풍계에는 작은 폭포가 생겨나기도 했다.

힘찬 필법이 보는 사람을 한번에 압도하는 웅장함을 가지면서도 그림 곳곳의 세세한 표현법은 인왕산에 대한 정선의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과연 왜 겸재 정선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지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특히 ‘인왕제색도’는 이 회장이 ‘이건희컬렉션’중 가장 처음으로 수집한 작품으로 알려져 의미를 더한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21일부터 2층 서화실에서 특별전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명품전’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회장이 박물관에 기증한 ‘이건희컬렉션’을 선보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 216 호), 종이에 먹,  79.2x130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기증받은 2만 1693점 중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 77점(45건)으로, 국보가 12건·보물이 16건을 포함한다.

전시를 하루 앞두고 20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수경 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상화돼야 문화강국이 된다고 생전 말했던 이 회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잘 알려진 유물들의 진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며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 유물들을 선보이는 만큼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유물은 없다.

다만 이 회장이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연구가 많이 되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대표작들을 이미 만큼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유물은 없다.

하지만 여러 시대를 포괄해 각 시대의 대표 유물을 알아본 이 회장의 안목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방울’(국보 제255호)는 기술혁신과 디자인을 중시한 이 회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6세기 삼국시대에 제작된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는 손가락 크기 만한 작은 청동에 화려한 불꽃 무늬를 치밀하게 새겨 넣어 성스럽고 고결한 느낌을 느낌을 준다.   

또 조선 백자로 넉넉한 기형화 문양이 조화로운 ‘백자 청화 산수 무늬 병’(보물 제1390)은 강세황의 ‘계산허정도’와 어우러져 18세기 문인의 여유로움과 취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한다.

현존 유일 ‘천수관음도’(보물 제2015호)와 특유희 섬세함을 자랑하는 ‘수월관음도’도 등 고려불화 2점도 모습을 드러냈다. 

700년의 세월이 있는만큼 ‘천수관음도’와 ‘수월관음도’의 화면은 어둡고, 빛에 의한 변색이 심한 회화의 특성상 전시장 조도도 낮아 육안으로는 두 작품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대신 박물관은 전시장 한켠에 적외선과 X선 촬영 사진을 터치 스크린 영상으로 제시한다.

고려  14 세기 제작 ‘천수관음보살도’, 비단에 색,  93.8X51.2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영상으로 확대해보면 ‘천수관음도’ 광배 뒤에 빼곡히 그려진 1000개의 눈과 손을 자세히 볼 수 있을 뿐더러 보살이 쓰고 있는 보관의 11개 머리도 볼 수 있다.

유수란 학예연구사는 “확대 사진을 보면 두 작품 모두 안료의 탈락이나 보수한 부분이 거의 없어 보존상태가 뛰어남을 알 수 있다”며 “다만 ‘수월관음도’ 왼쪽 하단에 있어야 할 선재동자가 존재하지 않고, 발이나 파도도 애매하게 잘려있어 것을 봐서는 원래 작품은 훨씬 크기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단원 김홍도(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한글과 우니라나 전적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석보상절 권11’(보물 제523-3호), ‘월인석보 권11·12’(보물 제935호) 등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6세기 제작 ‘일광삼존상’, 청동에 금도금, 높이  8.8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한다.

홈페이지에서 상설전시 예약과 별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전시 도록은 발간하지 않고 대신 전시품 이미지와 자료를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전시는 9월 26일 까지.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고요한 달밤의 정취

회화와 도자의 만남 - 옛 그림을 담은 도자기

넓은 화창 속에 펼쳐진 산수를 담고 있는 이 청화백자 산수무늬 항아리()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다.   

이 시기에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다량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청화백자는 여전히 귀한 것으로 취급되어 대부분이 관요()인 분원() 가마에서 만들어졌으며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또한 궁중의 도화서에 속한 전문 화가들인 화원이 직접 내려가서 그림으로써 당시의 회화 화풍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동정추월), 조선 18세기, 높이 38.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요() 분원()의 의미는 왕의 식사와 궁궐내의 연회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인 사옹원의 분원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며 경기도 광주 일대에 10년을 단위로 옮겨 가며 운영되었고 1752년부터는 경기도 광주 분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편 도화서는 조선시대에 어진을 제작하거나 지도와 각종 궁중 행사를 그리는 일을 맡아 보았던 관청을 말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대부 문인들이 즐겨 완상하던 묵죽과 묵매, 묵란, 묵국의 사군자와 묵포도 등이 시문되었다.

성종 17년(1486)에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광주목 토산조에는 “자기()는 매년 사옹원의 관리가 화원을 거느리고 와서 어용지기(-왕이 쓰는 그릇)를 감조()했다”라고 적고 있어 화원이 분원에서 생산되는 백자의 그림을 그렸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작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마치 백자의 하얀 면에 한 폭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이 옛 그림을 도자기 위에 담고 있다.

항아리의 전후 양면에 커다란 능화형을 두고 그 안에 소상팔경() 중의 하나인 동정추월()과 산시청람()의 정경을 그렸으며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끼워 넣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 상세(좌)와 옥전(玉田)필 산수도(우), 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된다.

회화의 화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강()과 상강()이 합쳐지는 곳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원래는 중국 당대 이후의 시에 주로 나타나다가 송대 이후로 회화에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수용되어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회화의 주제로 꾸준히 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점차 이상적인 경치를 상징하는 관념화된 소상팔경도를 그렸다.

조선시대 18세기 이후에는 그림의 화목을 넘어 청화백자의 문양에도 자주 등장하게 되고 19세기가 되면 청화백자 병이나 연적 등에 일정하게 도식화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호가 옥전()인 사람에 의해 그려진 18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회화 작품은 우뚝 선 바위 위의 누각, 호수 위에 떠 있는 배 등의 모티브에서 동정추월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된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청화백자에는 소상팔경문을 필두로 한 누각산수문 계열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진경산수화와 남종 문인화가 유행하는 등 회화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적 상황과도 일치한다.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도자기 위 그림의 공간감과 입체감,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뒷면의 산시청람 부분. 

원경의 산과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어울림이 아름답다.

산시청람은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마을을 그린 것으로 능화형 안의 왼쪽에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배치되었으며 원경의 산 위로는 달이 걸려 있다.

산시청람의 주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인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길게 뻗어 나온 근경의 바위 위에 배치하여 산시청람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두 장면 모두 평면의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무한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둥근 항아리의 기형을 잘 응용하여 표현하였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대나무 부분(좌)와 매화나무 부분(우)

이 소상팔경문 외에도 동정추월과 산시청람으로 채운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끼워 넣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주 화제()였던 사군자도 도자기에 많이 그려져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도자기 문양의 단골 소재였다.

회화의 소재가 도자기에 담겨진 예는 이 외에도 많아서 신사임당의 병풍으로 익히 알고 있는 초충()의 소재를 다룬 초충도(), 새해에 벽사의 용도로 그려졌던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한 호작도(), 장생불사한다는 열 가지 사물을 그린 십장생도()가 그려진 도자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 백자에 담긴 문양을 통해 옛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산수문이 담긴 이 항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달빛이 고요히 비친 호수에 있는 듯한 가을 밤의 정취가 전해져 오는 듯하다.

 

조선19세기 도자기그림 -백자 청화 산수문 사각병,

백자 청화 산수문 사각병

- 조선 19세기

- 호림박물관

- 자연이주는 울림 '공 명 '전시회

네 면에 강가에 서 있는 누각과 초옥, 늘어진 버드나무, 강 따라 노저어 가는 배,

멀리 보이는 산, 둥근 보름달등이 운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산수 모티브는 소상팔경시의 유형과 더불어 시화일률 이념을 잘 드러 내었기에 널리 애호 되었다.

사각병의 연원은 유럽의 유리제 사가병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쟈 있다.

<호림박물관 작품 설명서>

백자 청화 산수문 사각병 - 조선19세기,

 도자기 한점에 산수화 네점을 감상할수 있는 일타사피 도자기 그림이다

마치 네폭짜리 화첩 한편을 감상하는것 같다

'한가할때 창가에 앉아 한 번 펴 보니, 황홀히 나를 동정호 물가에 앉힌다'

-강석덕(1395~1459) '비해당 소상팔경서첩' /호림박물관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은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과 겸재 정선의 그림 26점직접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인왕제색도, 김정희 편지,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에 담긴 비밀스러운 이야기,

 

아이템 1.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1751년 작품,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갠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빗물을 머금고 쭉쭉 뻗어나가는 폭포 하며,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기운찬 풍경이 정말 인상적이죠.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니다.

여러분, 정선이 그린 조선 최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엔 숨겨진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전설이 된 두 사람의 만남,

바로 6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한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 이자,

자신의 재능을 딱! 알아보고  예술계의 톱스타로 이끌어준 프로듀사() 이병연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


사천 이병연은  조선 영조 때 최고의 시인이면서 중국의 유명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컬렉터였어요.

한마디로 '원조 컬렉터'라고 할까요?

친구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이병연에게 있었던 거죠. 이병연의 지원을 받아 정선은 당대 최고 화가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이병연은 친구 정선의 그림을 사고팔아 중국의 고서적을 무려 1500권이나 수집했답니다.

<인왕제색도-폭포·바위, 정자 확대 모습>

그런데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시기가 1751년. 정선의 나이 76세, 그의 친구 이병연이 81세 때였죠.

여든이 넘은 베프가 삶의 끝자락에서 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시기,

정선은 폭우가 쏟아지다 막 갠 인왕산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정선은 폭우 뒤의 인왕산의 풍경처럼, 병중인 친구가 깨끗하게 건강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왕산의 맑게 갠 풍경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의 전설적인 만남이 담겨있는 <인왕제색도>의 보다 많은 이야기,

 

▶ 배우 김수로가 소개하는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천상의 컬렉션>

▶ <인왕제색도> 더 알아보기 클릭!

인왕제색도

[BY KBS 천상의 컬렉션] <인왕제색도>는 조선 영조대 화가였던 겸재 정선이 서울 인왕산을 그린 ...

 

아이템 2. 김정희 편지,

! 어서 와, 덕질의 세계는 처음이지?’ (feat. 방탄소년단 쩔어’)
 
19세기, 추사 김정희를 너무도 좋아했던 한 남성 팬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김정희를 좋아했던지 인사동 거리를 누비며 그의 글씨, 그림을 쓸어 모았구요. 

심지어 김정희의 자택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었다고 해요.

또 무덤에 찾아가 묘비를 세웠고요. 이때,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도 득템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가 모은 작품들은 하나의 컬렉션로 완성이 됩니다. 

현대 아이돌 팬에 버금가는 덕질력을 소유한 이 남자의 이름은 후지쓰카 지카시
    
후지쓰카는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동양 철학자였어요. 

그는 청나라 학문을 연구하던 중 당대 슈스(슈퍼스타), 추사 김정희를 알게 됩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은 열렬한 팬심으로 자리 잡게 되죠.

후지쓰카가 팬심으로 하나둘 모아 수집하고 분류한 보물, <김정희 편지>!

<김정희 편지>

<김정희 편지>

예술에 대한 애정이 담긴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에서부터, 제주 유배 시절 말년의 쓸쓸함까지 고스란히 담긴 추사의 편지를 보며, 추사의 팬이었던 후지쓰카는 서서히 스승 추사 김정희의 모습을  하나둘 닮아갔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모았던 추사의 편지들, 전쟁의 화염 속에서도 방공호에 고이 숨겨놓았던 <김정희 편지>, 과연 후지쓰카는 자신이 모았던 <김정희 편지>를 어떻게 보관했을까요?

스타 추사를 흠모하다 못해 아예 닮아져간 팬이자 제자 후지쓰카 지카시, 그의 추사 사랑,,,

 

▶ 영화감독 방은희가 소개하는 <김정희 편지>

추사 김정희 편지 <천상의 컬렉션>

아이템 3.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명품 컬렉터 특집의 마지막 주인공, 조금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친근한 월급쟁이 컬렉터 수정 박병래 선생입니다.

40년 넘게 백자를 수집했던 선생은, 월급쟁이 컬렉터였기 때문에 늘 좋은 보물과 부족한 지갑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병래 컬렉션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연적 류의 보물이 많은데요.

그런 박병래 컬렉션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보물! 바로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입니다.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하던 산수화, 중국 소상팔경 중 2개의 그림이 양쪽에 그려져있고요.

두 그림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그려져있습니다. 

푸른 안료로 그려진 그림은 지금 봐도 정교합니다.

입체적인 도자기 위에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 하나의 보물에 두 가지 예술품이 담겨 있는 실용성에 아마 월급쟁이였던 수정 선생은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를 구입하고 매우 만족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죠!

선생이 덕질을 하던 시기는 1930년대. 바로 일제강점기 경성은 그야말로 골동품 전성시대였습니다.

내로라하는 근대의 수장가들이 이때 등장했는데요. 

특히 이들은 때론 조력하고, 때론 경쟁하며 자신들의 컬렉션을 늘려갔습니다. 

또 다른 유명 컬렉터, 장택상 사랑방에 모여 밤이 새는 줄 모르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어요. 

그렇게 밤을 새우다 출출해지면 단팥죽과 설렁탕으로 허기를 달랬는데요. 

1930년대 사랑방의 풍경, 오늘날 덕후들의 동호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죠?

백자를 닮은 컬렉터, 수정 박병래 선생의 삶과 그의 대표 컬렉션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의 선공개 영상을 플레이 해보세요!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백자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

 

백자 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白磁靑畵山水文壺-국박)

시기: 18세기 후반

크기: 높이 38.1cm, 입지름 13.6cm, 바닥지름 14.5cm, 몸통지름 31cm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 상세(좌)와 옥전(玉田)필 산수도(우), 저본담채.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조선 왕실 자기를 굽던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몸체 양쪽 면에 능화 모양의 창을 만들고 산수화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가을 밤 절벽 위에 인물과 멀리 둥팅 호(洞庭湖)에 떠오른 둥근 달을 그렸는데, 이러한 소상팔경이 능화모양 창 안에 한 폭의 산수화로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이며, 특히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에서 많이 나타난다.

백자 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白磁靑畵山水文壺-국박)

백자 청화 산수 무늬 항아리(白磁靑畵山水文壺-국박)

넓은 화창 속에 펼쳐진 산수를 담고 있는 이 청화백자 산수무늬 항아리[靑畫白磁山水文壺]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다량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청화백자는 여전히 귀한 것으로 취급되어 대부분이 관요(官窯)인 분원(分院) 가마에서 만들어졌으며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또한 궁중의 도화서에 속한 전문 화가들인 화원이 직접 내려가서 그림으로써 당시의 회화 화풍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앞면, 동정추월), 조선 18세기, 높이 38.1 ㎝

관요(官窯) 분원(分院)의 의미는 왕의 식사와 궁궐내의 연회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인 사옹원의 분원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며 경기도 광주 일대에 10년을 단위로 옮겨 가며 운영되었고 1752년부터는 경기도 광주 분원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도화서는 조선시대에 어진을 제작하거나 지도와 각종 궁중 행사를 그리는 일을 맡아 보았던 관청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대부 문인들이 즐겨 완상하던 묵죽과 묵매, 묵란, 묵국의 사군자와 묵포도 등이 시문되었습니다.

성종 17년(1486)에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광주목 토산조에는 “자기(磁器)는 매년 사옹원의 관리가 화원을 거느리고 와서 어용지기(御用之器-왕이 쓰는 그릇)를 감조(監造)했다”라고 적고 있어 화원이 분원에서 생산되는 백자의 그림을 그렸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작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마치 백자의 하얀 면에 한 폭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이 옛 그림을 도자기 위에 담고 있습니다.

항아리의 전후 양면에 커다란 능화형을 두고 그 안에 소상팔경(瀟湘八景) 중의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과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정경을 그렸으며 화창과동정추월도는 능화형 안에 악양루(岳陽樓-중국 호남성 동정호 주변에 위치한 누각으로, 소상팔경 중 동정추월에 등장하는 모티브)로 보이는 누각을 화면 오른쪽 아래에 배치하였고 원경에는 물결에 휩싸인 봉우리와 달을 뚜렷이 그려 넣어 동정추월도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 상세(좌)와 옥전(玉田)필 산수도(우), 저본담채.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회화의 화목(畫目)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강(溯江)과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곳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원래는 중국 당대 이후의 시에 주로 나타나다가 송대 이후로 회화에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수용되어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회화의 주제로 꾸준히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점차 이상적인 경치를 상징하는 관념화된 소상팔경도를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18세기 이후에는 그림의 화목을 넘어 청화백자의 문양에도 자주 등장하게 되고 19세기가 되면 청화백자 병이나 연적 등에 일정하게 도식화되어 그려지기도 합니다.

호가 옥전(玉田)인 사람에 의해 그려진 18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회화 작품은 우뚝 선 바위 위의 누각, 호수 위에 떠 있는 배 등의 모티브에서 동정추월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청화백자에는 소상팔경문을 필두로 한 누각산수문 계열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진경산수화와 남종 문인화가 유행하는 등 회화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적 상황과도 일치합니다.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도자기 위 그림의 공간감과 입체감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뒷면의 산시청람 부분. 원경의 산과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산시청람은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마을을 그린 것으로 능화형 안의 왼쪽에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배치되었으며 원경의 산 위로는 달이 걸려 있습니다.

산시청람의 주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인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길게 뻗어 나온 근경의 바위 위에 배치하여 산시청람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평면의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무한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둥근 항아리의 기형을 잘 응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대나무 부분(좌)와 매화나무 부분(우)

이 소상팔경문 외에도 동정추월과 산시청람으로 채운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끼워 넣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주 화제(畫題)였던 사군자도 도자기에 많이 그려져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도자기 문양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회화의 소재가 도자기에 담겨진 예는 이 외에도 많아서 신사임당의 병풍으로 익히 알고 있는 초충(草蟲)의 소재를 다룬 초충도(草蟲圖), 새해에 벽사의 용도로 그려졌던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한 호작도(虎鵲圖), 장생불사한다는 열 가지 사물을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가 그려진 도자기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백자에 담긴 문양을 통해 옛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산수문이 담긴 이 항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달빛이 고요히 비친 호수에 있는 듯한 가을 밤의 정취가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푸른빛의 아름다움, ‘청화백자’

순백자에 푸른색 안료로 각종 문양이 그려진 청화백자는 중국 원나라에서 시작돼 한국, 일본, 유럽까지 전파됐다.

15세기 초 조선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청화백자를 제작했다.

당시 조선 청화백자는 다른 백자와 달리 ‘왕실’ 전용이었다.

푸른 문양을 만들기 위해 쓰이던 코발트 안료는 중동의 페르시아 지역에서 생산돼 중국을 거쳐 수입됐으므로 금값보다도 비쌌다.

따라서 왕족과 사대부들이 제한적으로 향유했던 청화백자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인 도화서 화원들이 백자 위에 문양을 그려 왕실의 품격과 취향을 오롯이 보여준다.

조선 청화백자 고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발전과정과 함께, 전통 미감이 현대에 어떻게 응용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 특별전에 전시 중인 조선시대 청화백자.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란 주제로 지난 9월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기획특별전에는 한국 조선시대(1392-1910)의 청화백자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 ‘조선 백자 그리고 청화백자’, 2부 ‘청화백자, 왕실의 예와 권위’, 3부 ‘문인이 사랑한 청화백자’, 4부 ‘청화백자, 만민의 그릇이 되다’,

5부 ‘현대에 살아 숨쉬는 청화백자의 미감’ 등으로 청화백자를 사용하는 계층이 왕실(1·2부)에서 18세기 문관 관료(3부), 19세기 일반 백성(4부)으로 확대돼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임진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 이전에는 청화백자로 감히 만들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세수대야라든지 생활용품들이 (조선 후기부터) 청화백자로 만들어져서 얼마나 생활 전반에 청화 백자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 특별전에 전시 중인 청화백자 대표작품들을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전시된 대표작품들 중에는 매화와 새가 그려진 항아리를 비롯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인 ‘흥녕대부인 묘지’, 궁중 잔치 때 꽃이나 술을 담았던 용무늬항아리 등이 있다.

또한 표주박 모양의 병에 풀꽃이 돋보이는 작품, 팔각형 연적에 중국 산수가 그려진 청화백자 등이 눈길을 끈다.

문인의 취향을 반영한 사군자, 산수, 인물, 동물화를 그려 넣기도 하고, 문인 지식층이 즐겨 키우고 감상했던 분재와 화초들의 모습을 가득 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십장생, 봉황, 호랑이, 박쥐, 복숭아 등 장수와 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청화백자도 비교할 수 있다.

화려한 중국의 청화백자와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이는 일본의 청화백자도 함께 전시된다.

▲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 특별전에 전시 중인 청화백자 그릇.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와 차이점이 있다면 조선청화백자는 ‘여백’을 강조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는다는 게 특징이다.

또 백자의 바탕색과 문양에 사용된 푸른색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든다’ 특별기획전은 11월 16일까지 계속된다.

▲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 특별전.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청화백자병으로 조선 1489년에 제작된 소나무 대나무무늬 항아리.
▲ 조선 15세기의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 중국의 경관을 담은 산수화 ‘소상팔경도’를 그려 넣은 조선 18세기의 백자청화산수무늬항아리.
▲ 조선 19세기의 구름 용무늬 접시.
▲ 조선 19세기의 영지 넝쿨무늬 병.
▲ 조선 19세기 영지 넝쿨무늬 항아리.
▲ 조선 18세기의 풀꽃무늬 항아리(왼쪽)와 19세기 괴석 꽃무늬 병.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1월 16일까지 계속되는 기획특별전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 공식포스터.

청화백자, 靑華白磁,

중국 원대 중기에 처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청화백자가 제작된 것은 조선 초기로 짐작된다.

15세기경 청화백자에는 중국 명대의 문양과 기형 등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청화백자로는 청화백자매조죽문호·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 등이 있다.

16세기에는 한국적인 성격이 강해져 회화적인 필치의 초화·포도·칠보 무늬 등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청화 안료가 부족해 철화백자의 생산이 증가하는데, 이는 청화백자보다 거칠고 태토는 회백색을 띤다.

따라서 청화백자도 태토로 만들어지고 기벽이 얇아졌으며 송하인물무늬가 나타난다.

17세기 중반 이후 다시 청화백자가 증가하여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8~19세기 이후에는 감상용 자기로서 문양의 종류가 화훼·초충·산수·길상 등 다양해졌다.

중국에서는 청화(靑華)로, 일본에서는 청화(靑花)로 많이 쓴다.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는 청화백자와 관련하여 청화(靑花)·화자기(畵磁器)·화사기(畵沙器)·화기(花器)·화기(畵器) 등의 용어가 보인다.

현재는 '푸른색의 무늬'라는 의미에서 청화(靑華·靑畵·靑花) 등의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제작시기에 관해서는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만당(晩唐)에서 송대(宋代)에 발생하여 원대(元代)에 발전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원대 중기에 시작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청화백자가 제작된 것은 조선 초기로 짐작되며 〈효종실록〉 6년(1655)에 태종이 고려의 국자박사(國子博士)로 있을 때 애용했던 청화잔(靑花盞)에 관한 기록이 있어 중국 원대의 청화백자가 적어도 고려말에는 한국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청화백자가 발견되는 가마터로는 오전리(梧田里)·도마리(道馬里)·무갑리(武甲里)·관음리(觀音里)·도수리(陶水里) 요지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청화백자매조죽문호(靑華白磁梅鳥竹紋壺)·청화백자망우대명국충문(靑華白磁忘憂臺銘菊蟲紋)전접시·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靑華白磁弘治銘松竹紋壺)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청화백자도 회백색의 태토로 만들어지고 기벽이 얇아지는 현상을 보이며 송하인물무늬[松下人物紋]가 나타난다.

이러한 청화백자가 출토되는 곳으로는 무갑·관음·대쌍령(大雙嶺)·곤지암(昆池巖)·정지(亭支) 등이 있다.

17세기 중반 이후에 다시 청화백자가 증가하며 이러한 현상은 18세기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17세기말 신대리(新垈里) 가마터에서는 회백색 태토의 철화문이 그려진 백자들이 발견되었다.

18~19세기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갑발에 넣어 정교하게 구우면서 감상용 자기로서의 성격이 강해진다.

제작방법에서도 여러 가능성이 시험되었으며 기물의 종류도 급격히 많아지고 이 가운데 문방구류의 증가는 특히 눈에 띈다.

이러한 사치풍조를 견제하려는 왕실의 노력이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으며 문양의 종류는 화훼(花卉)·초충(草蟲)·산수·길상(吉祥) 등 다양해지고, 청화안료의 사용범위도 단순히 문양을 그리는 것 이외에 다른 안료와 혼용하거나 채색을 하는 등 폭넓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초부터 고급기명이었던 청화백자는 조선 말기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일부 민간에서도 향유하게 되었다.

이 시기 청화백자들이 수습된 가마터로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금사리·분원리 등이 있다.

1717~20년의 오향리(五香里) 가마에서는 담청을 띤 설백색 백자편과 각(角)이 있는 파편들이 발견되는데, 궁평리와 관음리에서는 신대리와 오향리 가마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파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이들 두 가마의 중간 시기에 놓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청화백자의 생산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요업(窯業) 자체가 회복·안정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왕실전용 사기제조장이었던 분원이 왕실상납용뿐만 아니라 일반 판매를 목적으로 사사로이 번조하게 되는 것과도 상관이 있다.

16세기에 들어서면 문양과 기형에서 중국적인 특징들이 차츰 사라지면서 한국적인 성격이 강해져 회화적인 필치의 초화무늬[草花紋]·포도무늬·칠보무늬 등이 나타난다.

17세기 전반경에는 임진왜란 이후 경제적 타격으로 청화 안료가 부족해 철화백자의 생산이 증가하는데 이들은 번조방법에 있어서도 청화백자보다 거칠고 태토 역시 회백색을 띤다.

그러나 언제부터 회청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청화백자를 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수입안료의 구입난으로 세조 때 국산안료인 토청(土靑)을 개발·사용하려는 시도를 했고, 〈예종실록〉에도 토청개발 및 시험번조에 관한 기사가 있으므로 이미 세조 이전에 번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5세기경 청화백자는 주로 중국 명대 청화백자의 문양과 기형 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많은 유사점을 보여준다.

양질의 우수한 백자를 생산하고 있었던 경기도 광주지역의 가마에서는 조선초부터 왕실에서 사용할 사기제조를 위해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번조를 감독하고, 청화백자의 문양을 화원으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

청화백자청화백자매조죽문호(조선 초기), 국보 제170호, 높이 16.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대 징더전[景德鎭] 가마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명(明)의 선덕연간(宣德年間:1426~35)·성화연간(成化年間:1465~87)에는 매우 우수한 청화백자가 생산되었으며 이후 청대까지도 백자의 주류를 이루었다.

산화코발트 계열의 안료는 본래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견되어 사용되었는데 서역 상인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지면서 회청(回靑)·회회청(回回靑)이라 불렸으며, 한국에서도 청화백자 전래 초기에는 그렇게 불렸다.

 

출처 ^ 참고문헌,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 고요한 달밤의 정취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조선19세기 도자기그림 -백자 청화 산수문 사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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