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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풍속 민속놀이등, 각종기타,

숭배(崇拜,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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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이나 사람, 또는 물체 등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숭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자연 숭배.

'천(天)'은 고대(高大)하고 원유(遠幽)한 거리와 그 불변성(不變性)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신성(信誠)의 대상이 되어 있다. 신성의 대상이 되면 천은 거리감각 때문에 사람과 혼합될 수 없으며 사람과 통할 수 없는 천기(天機)를 가진 존재가 된다. 그 천기는 첫째로, "하늘이 낳으신바 알이 화하여 성군(聖君)이 되니…"이나 "금색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그 궤짝을 열어 보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했다는 설화에도 보이듯이 민중에게 있어서 인간생명을 간직하고 그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천은 단군신화가 보여주듯이 농사·생명·형벌·선악이나 인간 360여 일들을 모두 주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저히 침해할 수 없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런 신성이 사람들에게 침해당할 때에 기상의 변화나 동물·조류 등의 갑작스러운 출현 등 이변적(異變的)인 방법을 써서 사람들의 자책을 바란다. 이런 천이기는 하나 지성(至誠)에 감천(感天)하는 천(天)이다. 덕을 쌓거나 치성을 다하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또 천은 도교나 불교와 같은 외래 종교신앙의 영향을 받아 36천이니 33천이니 하거나 혹은 상천(上天)·중천(中天)·하천(下天)이라 하여 계층화된다.

 

일월성신,

궂은 것을 기피하고 양달진 것을 찾는 마음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월성신에 투사되어 그것들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일월성신은 '둥근 해를 품에 품어 성종의 어머니 한씨가 성종을 잉태하였다'는 기록에 보이는 바와 같이 수태하는 주력(呪力)을 갖고 있으며, 무경(巫經)에서는 일월성신의 빛을 간직한 사람은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연중(年中)에 하는 일에 실패를 보지 않는다.

 

무당은 일월명도(日月明圖)란 신경(神鏡)을 갖고 있는데 태아의 이목구비를 그 거울로써 조정하여 바르게 한다. 아이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일월명도의 신경이 잘못 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이목구비는 일월성신 중의 별성신(別星神)에게 부탁하여 그 들고 있는 신경을 다시 비춰 주면 조정된다. 그것을 빌기 위해서 새벽 해가 뜨기 전에 하늘 별을 향해서 정화수를 떠놓고 경배한다. 그리고 아들의 장수(長壽)를 위해서 어머니는 신장(神將)에게 '일월성신 소림(昭臨)하여 연년(延年) 익수다호년(益壽多好年)'이라고 말하면서 빈다.

 

일월(日月)은 성신(聖神)인데 모두 남자이며, 일신(日神)의 비(妃)를 일아지씨(日阿只氏), 월신의 비를 월아지씨(月阿只氏)라고 부른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때 동해에 연오랑(延烏郞)·세오녀(細烏女)의 부부가 있었는데 일(日)의 정(精)과 월(月)의 정이었다. 이들이 없으면 세계는 암흑이 되었다. 또 햇빛은 수태(受胎)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고구려의 유화(柳花)라는 여인은 방에 갇힌 몸인데도 햇빛이 들어와서 여인이 피하면 피하는 곳을 따라가 비추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잉태케 하여 알을 낳게 하였는데 그 알 속에서 주몽(朱夢)이라는 활을 잘 쏘는 아이가 출생하였다.

 

강원도의 옛 풍속에 후산(後産)이 없을 때는 콩(大豆) 한 알을 두 개로 잘라 한 쪽에 일(日)자를 쓰고 또 한 쪽에 월(月)자를 쓴 다음 그 콩을 산부(産婦)에게 먹이면 후산을 한다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일월의 결합에 의해서 주력(呪力)을 전도(傳導)하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고려조는 태일성(太一星)·토요성(土曜星)·남북두성과 12궁성(十二宮星)에 초제(醮祭)를 올렸다. 이와 같이 별은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졌다.

 

고산대천,

산숭배

옛 기록에 의하면 높은 산은 태령산(胎靈山)으로서 민간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었다. 오늘날에는 신산(神山)으로 불리는데 산에는 수혈(隧穴)이 있게 마련이다. 강화도의 마니산에 혈구(穴口)가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도 신을 맞이하는 수혈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신산(神山)의 동쪽 양달에는 구멍이 있어서 여기에 산신이 내려왔다 하늘로 올라간다. 평양의 기린굴도 산신이 내리는 것을 맞이하는 곳이다. 묘향산의 금강굴, 의성(義城)에 있는 성산(聖山)의 빙혈(氷穴) 등은 모두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인 동시에 산신의 거처이다.

 

경주의 석굴암도 본래 부부봉(夫婦峰)의 석굴로서 좌우의 산줄기가 땅에 이르러 서로 맞닿는 곳에 굴이 있는 것이다. 또 고산(高山)은 노고(老姑)·성모(聖母)·신모(神母)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여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지리산에 천왕봉성모(天王峰聖母), 경주의 서술성모(西述聖母)·치술성모나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등이 있다. 이렇게 산이 여성으로 상징되는 것은 민간신앙에서는 산이 하나의 젖(乳房)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산 중에서 다섯 산을 골라 신산으로 믿기도 하였다.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중앙의 삼각산, 서쪽의 송악산, 북의 장백산 등 5악(五嶽)이 신산이었고, 오늘날에도 한 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있는 다섯 산을 신산으로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 또 3산(三山), 즉 백두산·지리산·한라산이 신산이다. 이 3산의 와전으로인지 신산을 산신(産神)이라 하여 아이를 베풀어 주는 산으로 삼기도 한다.

 

신라 경종(景宗) 때에 3산 5악신(三山五嶽神)에 제(祭)하였다. 3산신으로 중국식에 따라 봉래산·방장산·영주산을 정하고, 5악신으로서는 동쪽은 토암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은 북악(北岳:大岳)으로 정했다. 고려는 덕적산·백악·송악·목멱산의 산신에 매년 춘추에 봄 가을에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제사했다. 이조에 와서는 4악신(岳神)으로서 지리산·삼각산·송악산·미백산이 정해졌다.

 

나라에서 제사한 치악산·죽령산·주흘산·금성산·우이산·마니산·한라산·감악산·백두산·의관령 등에 단을 만들고 사흘 동안 사당을 짓고 신위(神位)를 두었다. 신좌(神座)는 북남향으로 하고 중춘·중추로 두 번 나라에서 백성의 한재·수재·병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각 주읍에 진산(鎭山)을 정하고 산신당을 지어 진호신(鎭護神)을 모시고 춘추와 정초에 제사하였다.

 

개성의 덕물산(德物山)과 나주(羅州)의 금성산(錦城山)은 남자신이 좌정(座定)하고 있기 때문에 토민(土民)들은 민간에게 처녀를 구하여 산신에게 공헌(貢獻)하는 향풍(鄕風)이 있었다. 처녀를 신령과 교구케 해서 산신을 위안하고 그 덕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신산(神山)에 신인(新人)이 있어서 신인끼리 서로 날아서 왕래하거나 산신령이 산꼭대기에서 춤을 추거나 또는 산신·지백·급간이 나타나서 산신가를 부르기도 했다. 산신은 때때로 왕장(王將)이나 영웅 또는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인격화되거나, 때로는 호랑이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산신당 내에 모셔지고 있는 신위는 도포를 입고 범을 타고 있거나 깔고 앉아 있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의 화상(畵像)이다. 범도 산군(山君)이란 이명(異名)을 갖고 있으며 산신의 사자(使者)로 알려지고 산신도 된다.

물숭배

물은 강이나 바다·연못·우물과 상통되어서 숭배되었고 오늘날도 역시 숭신(崇信)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은 물귀신 또는 수구 혹은 수옹(水翁)으로 호칭되는 외에 용왕·용신·용궁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물은 생명수로서 위력과 주력을 갖는데 특히 약수가 그렇다. 여름이나 가을에 약수터에서 약수(神水라고 부름)로써 쌀을 씻어서 제솥(祭釜)에 넣어 마시고 음식을 수구에 바치며 치병장수(治病長壽)를 기원한다. 무격(巫覡)에서의 무조전설 중에 바리공주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공주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약수를 구하여 위독한 병에 걸린 부왕과 어머니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병으로부터 구제하였다. 치병으로서의 물은 오늘날 정화수(井華水)신앙을 일으켰다. 또 물은 아기를 저장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양수로 믿어지기도 했다.

 

물과 관련이 있는 강물은 때로는 재앙을 떨어버리는 불계의 주력을 갖는다.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가 된 알영이 계룡(鷄龍)의 옆구리로부터 나올 때 닭부리의 입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멱을 감기니 부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 가을 발천(撥川)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계로서의 강물은, 단오날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부인은 일 년 내내 재앙을 피하는 등 주력(呪力)을 준다.

 

웅진(熊津)·덕진(德津)·압록강·두만강은 생명을 주는 물이고 재앙을 떨어주는 물이었다. 물은 또 비와 관련이 있어서 대천(大川)이나 연못이 기우제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이조 때에는 물과 관련이 있는 신으로서 천신(天神)·3해신(三海神)·7독신(七瀆神)이 있었다. 그리고 물에는 용왕이 있었다. 백제의 무왕(武王)은 어머니가 남지(南池)에서 살고 있을 때 지룡(池龍)과 교구해서 낳은 아들이다. 신라의 탈해왕(脫解王)도 용왕과 교구한 동해여국(東海女國)의 여신의 아들이었다.

 

오늘날 물은 신흥종교에서 생명수로 믿어지고 음복(飮福)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주력으로 신봉된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물로 세례를 주어 속죄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도 한다. 어부들이 출범(出帆)에 앞서 바다의 용왕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해안 도서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인데 바다는 용왕의 지배세계로 되어 있다.

동물 숭배

동물 중에서 곰·범·뱀·용·지렁이·말·닭은 남녀와 똑같은 성력(性力)의 존재가 된다. 이것들이 다른 동물보다는 호색적이고 정력이 강한 탓인지 그 특수한 힘은 민간신앙자들에게 창생력(創生力)으로 비친다. 곰은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 있듯이 사람으로 화해서 아이를 낳았고, 범도 '금현감호(金現感虎)' 설화에서와 같이 여성으로서의 창생력을 가진 민간신앙의 대상이다. 서울 인왕산의 신은 호랑이로 상징되는데 그 호랑이는 임진왜란 때에 서산대사로 변시하여 왜적을 막았던 인신(人身)이기도 했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견훤(甄萱)은 광주 북촌에 살고 있던 여성이 밤마다 지렁이와 함께 자고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었다. 지렁이의 모양이 남자의 음경과 비슷하기에 성력적인 것이며 영물(靈物)로 간주된다는 설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식물 숭배

식물 중에서 쑥·마늘·콩·창포는 주초(呪草)나 서초(瑞草)가 되어 창생체(創生體)가 된다. 쑥과 마늘은 단군신화에서 곰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생명의 서초였고, 쑥은 오월 단오란 특별한 날에 쑥범을 만드는 데에 쓰여 악귀를 쫓는 주초가 된다. 창포도 염병을 물리치는 주초인 것이다. 콩국은 동지날에 대문판자에 뿌려서 악귀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불상(不祥)을 막거나 쫓는 주초이다. 또 동쪽에서 해님의 빛을 받고 자란 복숭아나무 가지는 악귀를 쫓는데 오늘날에도 무당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방망이로 귀신들린 사람(病者)에게서 악귀를 쫓는다. 익모초(益母草)는 약에 쓰일 뿐더러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걸어 놓으면 대추의 열매가 많이 달리는 가수(嫁樹)적인 주술의 힘을 갖고 있다. 향(香)과 차(茶)는 인간을 신선으로 만드는 약초이고 주초인 것이다.

수목 숭배

사라수(沙羅樹)는 옛적에 원효(元曉)를 낳았고 오늘날에는 신당목(神堂木)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하나의 신목(神木)으로서 마을을 지키고 악귀가 마을로 침입하는 것을 막아 마을 전체를 보호한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신흥사 입구에 늙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의 가지에 찢겨진 여자의 속옷 헝겊이나 앞치마의 떨어진 조각에 밥 덩어리를 돌돌 말아서 싼 것이 걸려 있다. 이 나무에 빌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이의 수명이 보장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라수는 마을마다 발견되는데, 그 나무는 대부분 상록수이다.

 

수목은 대체로 생명의 유지력과 수태시키는 힘 때문에 남성으로 상징되고, 그 꼿꼿한 외모가 남근이 발기한 모양과 비슷한 탓으로 의인화(擬人化)된다. 수목은 민간신앙에서 수정적(授精的)인 생명체이다. 지팡이도 나무와 같이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며 대개 남근의 수정으로 신앙된다.

 

지팡이는 수목의 일부로서 뚫고 들어가는 힘을 상징하고 병마를 쫓고 생명을 원상대로 복귀하는 창생력(創生力)을 가진다. 이 창생력은 남성의 창정력(創精力)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궤는 여성의 음문을 상징하고 남근을 담는 그릇이 된다. 궤 속에 생명의 비밀이 있고 그 내부는 신성한 것 중에서도 신성한 것이며 생명의 저장소이다. 요사이에는 궤에 관한 신앙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으나 <삼국유사>에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효공이 밤에 월성서리를 지나다가 얼핏 보니 채색 구름이 하늘에서 드리우고 구름 가운데에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궤 속에 동자가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이 아이에게서 장차 신라인들이 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황금궤가 남근인 나뭇가지에 걸렸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금갑(射琴匣) 이야기도 남녀가 합일하였다는 신앙에서 비롯된다. 당목(堂木)·성황목(城隍木)이나 무당이 사용하는 신대도 모두 나뭇가지이다. 이와 같이 사람에 이로운 성목(聖木)도 있으나 오얏꽃은 "42대 흥덕왕 8년 10월에 오얏꽃이 피었는데 백성들이 몹쓸병에 걸렸다"고 한 것과 같이 재앙을 몰고 오는 흑주력(黑呪力)도 가지고 있다. 흑주력을 막기 위해서 문 바깥 양쪽에 황토를 쌓고 소나무 가지를 세우고 기도를 올린다. 소나무 가지를 문 앞 또는 실내에 세워서 마누라(痘神)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소나무의 상록(常綠)인 위력에 의지하고 있는 신앙이다.

 

무당굿에서의 성조맞이(成造迎)에서 소나무 가지를 세워 성조신의 강림을 기대한다. 신간(神竿)은 보통은 소나무이지만 그 밖의 나무로 된 것도 있는데 소위 천하대장군은 소나무 뿌리를 사용한 신간이다. 이것은 마을을 지켜 주는 보호신이다.

 

성황목·귀신목·고사목은 당목(堂木)으로 통칭되는데 이것들은 성수(聖樹)이고 제주도에 있는 서귀포와 신효리의 이렛당(七日堂)은 신수(神藪) 또는 총사(叢祠)라고 일컬어지는 성림(聖林)이다. 소나무나 대나무는 수령(樹齡)이 길다는 것과 상록(常綠)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장수를 뜻한다. 신라는 계림과 나정의 숲으로 인해서 국호가 계림(鷄林)·구림(鳩林)·시림(始林) 등으로 불렸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박달나무도 신목이다. 수목숭배는 오늘날에도 어디서든지 발견된다.

암석 숭배

암석(岩石) 중에서 음순(陰脣) 모양의 특수한 바위는 아이를 낳게 하는 바위로 신앙된다. 그 명칭은 지방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기자바위(祈子岩)로서는 건들바위·사망바위·아들바위·딸바위·옥동자바위 등이 있고, 장군바위·마당바위 등은 출산암(出産岩)인데 아이들의 수명이 바위와 같이 단단하고 길다는 의미가 부여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들의 이름으로 돌쇠·수바우·암이(岩伊) 등이 시골에서 별명으로 쓰이고 있다.

 

상사바위(想思岩)는 사람들에게 연정을 일으키는 것이고 고바우도 그렇다. 성기암(性器岩)으로서는 처자바위·처녀바위가 있는데 그 속에 아이가 될 정(精)이 거처하는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또 사물의 생산과 관계되는 바위로서는 쌀바위, 쌀 나오는 구멍 또는 돌샘(石泉) 등이 있는데 바위의 구멍에서 쌀이 나오는 것으로 믿어진다.

 

사모바위와 할미바위는 그릇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바위이고 베틀바위도 그렇다. 서울 인왕산의 부부바위(선돌:立石)는 아이를 주는 바위로서, 제주시외의 동서 양쪽에 서 있는 미륵의 돌 상(像)은 아이 낳게 하는 바위로 신봉된다. 부석사(浮石寺) 내에 있는 부석도 출산을 베푸는 바위이다. 지금은 도로 확장으로 없어졌으나 얼마 전까지는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자하문 밖)에 그 동명이 연유된 붙임바위가 있었다. 이것이 있었을 때에는 지나가던 사람이나 소풍객들이 그 바위 앞에서 소원을 아뢰고 길쭉한 돌을 던져 바위에 얹히게 하거나 바위 위를 콩콩 찍어서 구멍을 내어 소원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뾰족한 돌이 바위벽에 올라앉으면 소원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런 암석숭배는 고대로부터 계승되어 오는 관습이며 신라 금어산에 산아당(産兒堂)이 있었고, 국토에 해를 끼쳤다는 표암(瓢巖)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신명 숭배

신명(神明)에 포함될 수 있는 신들을 <삼국유사>의 범위 안에서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천왕

천왕은 하늘에서 태백산 마루 단목 아래에 내려와서 인간의 일 360여 사를 모두 주관했고, 곰을 인간으로 변하게 하고 사람으로 변한 곰과 합환(合歡)해서 아들을 낳았다. <성종실록(成宗實錄)>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세 사람, 즉 환인·환웅·단군을 모두 천왕(天王)으로 칭했다. 천제(天帝)가 북부여 흘승골성(訖升骨城)에 5용차(龍車)를 타고 내려와서 도읍을 세우고 스스로 해모수(解慕漱)라 하였다. 그 뒤에 해모수는 상제(上帝)의 어명에 의해서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이 기록에 의하면 상제가 땅에 보낸 자가 천제이고 천제는 곧 땅의 왕이다.

 

상제란 용어는 중국의 상탕(商湯) 때에 쓰인 황상제(皇上帝)가 있고 주대에 들어와서는 호천상제(昊天上帝)라 하였으며 한대(漢代) 초에 단지 상제라 하고 상제를 태을(太乙)이라고도 부르며 나중에 황천상제(皇天上帝)라고도 했었는데 그 상제가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제사자를 삼한(三韓)에서 천군(天君)이라 하고 상제를 천신(天神)이라고 일컬었다. 그 천신이 백제에서는 한(漢)나라 초기와 같이 황천상제라고 불리었다.

 

이 황천상제의 칭호는 가락국(駕洛國)에서도 쓰였다. 그런데 상제에 제사를 올리던 천군이 제사를 받는 대상이 되어 산정(山頂)의 신사(神祠)에 좌정(座定)한다. 이것을 천왕 또는 선왕(仙王)이라고 부른다. 이런 성격의 신이 곧 부족의 조신(祖神)들이다. 고구려의 부여신(夫餘神)이니 등고신(登高神)이니 하는 신(神)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그리고 이런 부족의 조신은 거의 모두가 목제(木製)로 된 우상신(偶像神)이라는 것이 조신의 특징이다. 오늘날 민간에서의 신이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이다.

별신

이것은 상제에까지 오를 수 없는 층의 신령들이다. 말하자면 주신(主神)에 대한 분신(分神)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가택신(家宅神)에 성주신·제석신·성조신·토주신·조상신·조왕신·업왕(業王)신이 있는 따위이다. 이런 별신에 속하는 것으로서 방백신(方伯神)·사방대력신(四方大力神)·방위의 6신 등이 있다.

신인

신인은 고구려 보장왕 때의 사람들이 믿었는데 마령(馬嶺)의 꼭대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신인은 백제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산과 산 사이를 날아다닌다고 믿어졌다.

영혼 숭배

사람은 육체 외에 영혼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여 영혼은 대개 육체로부터 떠나서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신봉된다. 그리고 그 영혼은 육체가 죽으면 현세에서 떠돌아다니거나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믿어진다. 우리 나라의 민간신앙에서 '영(靈)'은 밝고 견고하며 보이지 않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이는 '생령(生靈)'과 '사령(死靈)'으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살아 있는 사람 속에 있는 영을 가리키며, 후자는 죽은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와 다르지 않으며, 몸에서 떠난 것이 아니라 영을 담을 몸을 갖지 못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영은 보통 혼신(魂身)을 가지고 있으며, 살아생전의 모습과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살아생전의 영이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거나, 살아 있을 때는 밝은 영이었다가 죽음을 통해 음(陰)한 백(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생령과 사령은 육체의 생과 사에 따른 구분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영은 생전과의 관계 때문에 몸으로부터 유리(遊離)하였으되 일정한 거처에 안주하여야 한다. 그 거처는 묘이다. 영은 생존자로부터 제(祭)를 받아야 살 수 있고, 제를 받지 못할 때에는 원한을 품게 된다.

 

영(魂身을 갖고 있는 존재)은 생전에 품고 있던 원한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생존자가 제를 올리고 사죄할 때에는 그 원을 풀어준다. 또 그것은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욕구는 죽은 뒤에도 충족되지 않으면 끝내 요동한다. 그리고 영은 김유신 장군이 죽어서 위령(慰靈)이 되었듯이 생존시의 모습과 지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위령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영웅적인 권세를 가진 사령이라고 할 수 있다. 영중의 선령(仙靈)은 산꼭대기에 내려와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데, 흔히 선령이 나타나면 그 주변에는 향기가 풍긴다고 한다.

정령 숭배

인간 이외에 거처하는 영(靈)을 정령(精靈)이라고 하며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 즉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정령이 거처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믿는다. 이 정령숭배의 분포 범위는 넓다. 정령도 앞에서 본 영과 같이 거처한 곳에서 떠나 행동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사람을 지켜주기도 한다. 따라서 정령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으면 재앙이나 질병을 일으킨 정령을 구축(驅逐)할 수도 있다.

 

'눈(雪)은 오곡의 정(精)'이란 말이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농촌에서는 겨울 섣달이나 정월에 큰 옹기에 눈을 잔뜩 넣고 땅 속에 묻어서 얼지 않도록 그 위에 짚을 덮고 빗물이 들지 않도록 막는다. 씨를 뿌릴 때 씨앗을 이 눈물(雪水)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세 번 되풀이한 다음에 씨를 뿌리면 곡식의 결실이 많아진다고 하는 설정신앙(雪精信仰)이 농민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정(精)은 한 사물에 이입(移入)함으로써 존재하고 그 사물이 소멸함과 동시에 정도 사라져 없어지는 것으로 믿어진다.

귀신

귀신은 대체로 앞에서 본 영들과는 달리 원체를 갖추지 못하고 아무 것에도 종속하지 않는 고립된 존재이다. 이 점에서 귀신은 영(靈體)이며 정(精) 또는 신명과 구별되나 원체관념이 흐려지면 정이나 영이나 신명과 혼합된다. 귀신은 허리 이하가 장지(張紙) 옷이고 발은 말라 여위어서 마치 아교와 같고 뼈만 남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죽을 신세를 지닌 것이고 신명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세력이 약한 존재이며, 힘센 사람이 노려보면 점점 작아져서 없어지는 존재이다.

 

사람이 주는 음식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 귀신 중에도 짓궂은 것이 있다. 귀신은 낮에는 이리저리 공중에 떠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궂은 곳을 찾아 몸을 쉬기도 한다. 대체로 오래된 고목(古木)이 귀신의 거처가 된다. 또 인가(人家)를 찾아드는 때가 있는데 그때에는 귀신들이 싫어하는 방편을 써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소금을 뿌린다든지 콩을 뿌리거나 한다. 그 거처는 덤불 숲·땅 속·못·우물가 등이고 궂은 곳이나 어디에나 드나들 수 있다.

 

귀신은 일단 사람의 집에 들어가면 음식 제공을 받고서야 그곳을 떠나고 백주에 돌멩이를 던지는 난동을 부리며 때로는 사냥개 소리를 내거나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세찬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밤에는 길 가는 행인을 괴롭히고 불장난도 한다. 이 불을 도깨비불이라고도 말하며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귀신은 때로는 영리하여 한 나라나 한 가족의 멸망을 예언하여 경고도 하고 잊은 물건의 소재를 잘 알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귀신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보다 세력이 있는 것에 쫓기는 몸인 것이다. 귀신 중에서 강한 귀신은 약한 귀신을 살해하기도 하고 처용(處容)과 같은 강한 인물을 그린 부적이나 글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쫓겨 나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신명도 머물 처소를 갖지 못하거나 생존자로부터 제물을 받지 못하면 귀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생기 신앙

생기신앙은 땅 속에 흐르고 있는 생기에 의뢰하여 그 힘으로써 일상생활의 재앙을 제거하여 행복을 누려 보려는 민간에 깊이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 민간신앙이다.

 

생기란 천지만물을 생육(生育)하는 힘이고 이 생기를 받는 다과(多寡)에 따라 사람의 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氣)란 관념은 유가(儒家)의 이기(理氣)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문화가 상당히 진보된 후에 형성된 생각이다. 그 이전에는 땅의 마나(mana)적 힘이 신앙되었을 것이다. 즉 지력(地力)에 의뢰하는 지력신앙이 있어 그 지력을 기로 바꾸게 된 것이므로 생기신앙의 밑바닥에는 지력신앙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땅은 인간이 정착생활을 이룩한 후부터 상당히 귀중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땅은 사람이 죽은 뒤에 흙에 파묻혀 되돌아가는 길목인 동시에 생명(또는 생산)을 제공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땅의 힘(地力)에 대한 신앙은 정착지를 바꾸어 보자는, 즉 토지를 개량하려는 관념에 의거했다.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신력(神力)에 의해서 변화시켜 보려는 것이다. 이 요구에 따라서 하나의 제사가 생겨났으니 이것이 천신(天神)에 대한 사직신(社稷神)의 관념이다. 이러한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처에 옮겨지게 되는데 이것이 또 생기신앙의 특색 중 하나이다. 이상과 같은 관념에 따라 만물을 조작하는 생기가 땅속에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흐르는 활동상태 여하에 따라서 땅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기의 집합상태가 좋으면 그 땅은 좋고 또 그 땅은 사람의 운명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나쁜 땅은 그것과 반대의 영향을 가져온다. 그런데 좋은 땅이란 어떤 모양의 땅이고 또 나쁜 땅이라면 어떻게 하여 좋은 땅이 되도록 하느냐 하는 해결책을 생각하게 된다.

 

생기는 만물을 조성하기 때문에, 거꾸로 말하면 만물은 생기에서 나오기에 만물은 생기를 받아 존재하는 것이다. 그 생기를 받는 것을 감응(感應)이라고 한다. 이 감응은 땅과 만물, 만물과 만물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즉 만물과 만물은 서로 감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감응작용은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이룩된다. 천지에 충만한 기(氣)의 정(精)이 생기인데 인간도 생기의 한 현상이다. 그 생기에서 생긴 인간의 기가 응집(凝集)한 것이 곧 인간의 기이고 그 기의 정이 바로 뼈이다. 부모의 정인 뼈는 천지의 기의 정인 생기와 감응하고, 또 부모의 정인 뼈는 자손의 뼈와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생기신앙에는 풍수설·음양오행설이 포함된다.

풍수 신앙

첫째로 풍수설은 분묘·사찰·도관·주거 마을 또는 도성(都城)을 축조하는 데 있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지상(地相)을 생각하는 데에 신앙의 중심이 있다. 이것을 감여(堪輿)라 하고 감(堪)은 천도(天道), 여(轝)는 지도(地道) 또는 지리(地理)라고 하며, 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사람을 감여가·지리가·음양가·풍수가라고 한다. 풍수의 목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도 외의 후생(厚生)의 요구에 의해 생기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인간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내면적인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기에 의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리하여 생기를 받으려고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생겨났는데 그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장풍득수

이런 땅을 국(局)이라 하고 이 국에는 국을 구성하는 필요 조건으로서 사신사(四神砂)란 것이 있다. 이것은 북쪽이 현무(玄武), 남쪽은 주작(朱雀), 동쪽이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를 말함인데 산수(山水)의 형세가 알맞아야 한다. 즉, 북쪽에 산이 있고(이것을 來龍이라 함). 이 산 양쪽에 청룡과 백호 형의 산줄기가 있으며, 남쪽에 북쪽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생기를 멈추게 하는 주작의 강물이 있고, 이 강물의 안팎에도 적당한 산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형이 장풍득수의 국을 구성하는 기본 조건이다. 서울은 현무로서 백악산(白岳山), 청룡(동쪽편의 산)으로서 낙타산(駱馱山), 백호(서쪽의 산)로서 인왕산(仁旺山)이 있고 남쪽의 주작인 강으로서는 한강이 있으며, 그 앞에 남산(南山)이 있고 그 뒤에는 관악산(冠岳山)으로 되어 있는 장풍득수의 땅이며 명당지이다.

설심부

지가서(地家書)에, 민족이 멸하고 한 집안이 망하는 것은 모두 산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물이 곧지 못하여 이리저리 굽이치기 때문이라고 하는 문구가 있다. 풍수신앙가들은, 이 문구를 그대로 믿고, 장풍득수의 땅 자리를 찾아다니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집터가 나쁘다 하여 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곤 한다.

 

그 풍수신앙가들이 가장 싫어하고 기피하는 땅에 세 가지가 있다. 인마(人馬)의 왕래가 끊임없는 시끄러운 곳(路鉗)과 동네의 멀고 가까운 또는 가늘고 큰 개울이 한데 모여 흘러 내려가는 곳(水鉗)과 마을 양편 쪽의 산이 합쳐 있는 골짜기(山鉗)의 세 지형의 땅이다. 이런 땅은 사람 목에 칼을 씌울 악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음양 · 오행신앙

음양·오행신앙의 근본은 음양설에 두고 있는데 이 설은 하늘과 땅의 변역(變易)을 설명하는 자연의 발전법칙이나 발전원리를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행설은 하늘과 땅의 원소(元素)나 내용면의 원리를 따져 어떤 것에 의해서 천지가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변역은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은 실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설은 천지의 현상을 형식적으로 논하고, 오행설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협조되어서 형식적 내용을 갖춘 천지운행의 원리가 설명된다.

 

이 설에 의하면 천지는 음양의 변역, 즉 증진감퇴(增進減退)의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것이다. 증진하는 것이 양(陽)이고 감퇴하는 것이(陰)이다. 그런데 음과 양이 서로 협조하여 갈 때에 천지는 옳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음과 양의 협조를 충화(沖和)라고 하며 그러한 곳이 생기가 충실한 길지(吉地)이다. 산수에 적용하면 산은 음이고 수(水)는 양이다. 그러므로 음인 산의 세찬 내리받이 기운을 조용한 양인 물이 막으면 그곳에 음과 양의 충화가 나타나고 거기에 생기가 활동한다는 것이다. 양이 오면 음이 받고, 음이 오면 양이 받는 국(局)을 이루느냐의 여부에 따라 길과 흉은 나뉜다. 이 음양설은 남녀간의 궁합에도 적용된다.

도참 · 신도신앙

길지(吉地)도 오래되면 생기가 쇠망해지므로 다른 길지를 택해야 한다는 도참신앙이 중세 고려왕조 때 유행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서울의 지세가 노쇠함에 따라 왕기(王氣)도 따라서 잃어가게 되었으므로 한양을 버리고 교하(파주군)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편 국도가 쇠한다 하여 그것을 보강하기 위하여 국도 외의 다른 명당자리에 궁을 짓고, 왕이 가끔 머물면 국도의 지덕(地德)이 보강되고 국운이 연장된다는 신앙이 유행되어 고려조에는 삼소(三蘇)·삼경(三京) 제도가 있었다.

 

이런 신앙과 연관되어 신도(新都)신앙이 생겼고 오늘날에도 일부 신흥종교나 민간신앙도들에 계승되어 있다. 신도 신앙은 국운을 개역(改易)하려는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왕(國王)의 운수는 일정한 연수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기의 말기에는 역세(易世)할 인물이 신도(新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천지 개벽 신앙

풍수·도참신앙과 관련해서 천지개벽신앙이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왔다. 이것은 역수(曆數)사상을 토대로 신명관(神明觀)과 혼합한 신앙이다. 이 신앙의 공통된 줄거리는 산천의 영기(靈氣)가 순차적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렇게 영기가 옮아가고 왕이 바뀔 때마다 전례 없는 천지이변과 병화민요(兵火民擾) 등의 화란(禍亂)이 닥친다는 것으로 그때 그 화란에서 벗어나 남게 될 방도를 찾는다. 그 말세적 이변상(異變相)은 검은 구름이 3일 동안 진동하고 혜성(慧星)이 머리에서 나와 북두성에 들어갔다가 자미(紫微)와 두미(斗尾)에 옮겨지고 두성(斗星)에 이르렀다가 남두(南斗)에 가서 끝나는 하늘의 이변으로 나타나며, 왕궁이나 책우(冊宇) 등이 불타서 상하 국민들이 걱정하고 동요하여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예절이 사라지며 재산이 소멸된다. 또 곳곳에 사람이 죽은 시체가 산과 같이 쌓이고 길가에 사람의 그림자가 없으며, 닭이나 개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유혈이 강을 이룬다.

 

말세에는 백성들이 나무껍질을 먹고 연명하며 반년에 인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또한 자연은 강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다. 이런 것 등이 말세때의 이변이다. 이런 때를 당해서는 부귀나 벼슬에 대한 집념을 버리고 피난처인 십승지(十勝地)를 찾아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옷을 짜서 입으면서 가난을 참고 견디어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 목숨을 건진다고 하며 때가 와서 개벽이 된 후에는 태평시운(泰平時運)이 계속된다고 한다. 이 천지개벽신앙에 신인신앙이 겹쳐져서 말세가 되고 후천(後天)세계가 열리려는 무렵에 하늘 사람 정도령(正道令)이 나타나서 새로운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고 하는데 그러한 개벽의 시기는 천지(天地)·일월(日月)이 합덕(合德, 또는 合宮으로 표현함)하여 음과 양이 완전히 조화일치될 때이다. 이 일치의 세계가 우주의 최후 목적을 이룩한 세계이며 빈한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

심령 개벽 신앙

앞에서의 된다고 한다.

 

서력 19세기의 종반 무렵에는 미국 개신교계의 이른 바 ‘근본주의자’들이 나름대로 세계선교에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고, 그러한 분위기에 감명을 받아 세계선교에 자원하여 나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추세는 서력 20세기 초엽에도 이어졌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근본주의자들로서, 개신교 근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전천년왕국설’의 신봉자들이었다.  이 점은 그들 중의 상당수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의 장본인들인 플리머스 형제단과 밀접한 친분을 갖고 있었던 무디(Dwight L. Moody)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선교사들의 이런 특징이 여과없이 일방적으로 피선교 지역에 심어진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당시 우리 민족의 상황이 또한 새로운 메시지를 절실히 갈구하는 상황이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들리던 국권이 차츰차츰 외세의 손아귀에 들어가 일본 군인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19세기 초엽이래의 궁핍한 민생은 끝내 회복되지 않고 있었으며, 각 가문에서는 ‘국가사직이 망하는 판에 선조를 모시는 사당만을 보존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하여 가묘(家廟)를 철거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반응형태로는 전통문화에 더욱 매달리는 경향을 띠거나, 문화접촉 상대방의 문화요소를 도입하고 배우려는 경향을 띠거나, 아니면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실현한 적이 없는 이상향을 지향하는 등의 세 가지가 있을 수 있었다.  실제로, 첫 번째의 경향을 보인 반응으로서 일부 유림의 위정척사 운동과 김백렴, 나철, 등에 의한 단군신앙 부흥운동이 있었고, 두 번째의 경향을 보인 움직임으로서는 대다수 지주계층의 친일적 처신, 등이 있었으며, 세 번째 경향을 보인 반응 중에는 후천개벽신앙 움직임이나 개신교의 천년왕국대망신앙 수용 움직임, 등도 있었다.


천년왕국대망신앙을 수용하는 움직임이 개신교 수용 자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던 점은 1907년 이래 우리 개신교계의 대표적 부흥사였던 길선주의 사상이 종말론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는 데서도 뚜렷해진다.  후술될 1903-1904년 당시 원산에서의 심령부흥과 1907년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심령부흥의 불길이 모두 천년왕국적 비전을 내포한 것이었다는 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상천국건설을 이상(理想)하는 천도교,

동학을 바탕으로 발전…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

천도교(天道敎)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대신사에 의해 1860년에 창립된 한국의 신종교로서 동학(東學)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대신사는 1860년 4월5일 경북 경주 용담(龍潭)에서 동학을 창도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외세에 의해 진압된 뒤, 제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신사가 처형되자 도통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성사에게 전수되었다. 3대 교주인 의암성사가 1905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해 성립시켰다. 1908년엔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상사가 4대 교주가 되어 대를 이었다.

 

의암성사는 초기에 정치와 종교 간의 불가분리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실패하고, 도리어 일제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정교(政敎)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였다.

 

천주(天主) 즉 한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을 이상으로 하며 성(誠)·경(敬)·신(信)을 도덕의 근본으로 하고 시천주(侍天主)와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윤리 그리고 오관(五款: 주문·청수·시일·성미·기도) 등의 수행 방법이 있다. 동학·동학교 또는 성도교(聖道敎)라고도 했다. 전제정치의 폭압에 대한 대신사의 강력한 개혁의지 활동 이래 동학·천도교는 동학혁명, 개화운동, 3·1독립운동, 신문화운동 등 사회개혁과 민족자주력 배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증산도 진리를 알고 사상 신앙을 하라,

道紀 135년 7월 13일, 증산도 울산옥동도장,

 

[말씀요약] 상제님 진리는 ‘가을이 되면 물질문명, 정신문명이 합일이 돼서 결실문화가 열리는 우주원리’로서 기존문화권과는 판이 다른 자연섭리다. 그러므로 신앙을 하려면 사상 신앙을 해야지, 진리에서 벗어난 제 중심의 기복신앙을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천지의 질서가 바꿔지는 하추(夏秋)가 교역하는 때이고 사람농사를 지어서 인종 씨를 추리는 때이므로 상제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주변화원리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 증산도 신앙인이라고 할 것 같으면 천지 이치를 믿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 이치에 순종을 해라. 앞으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결실문화가 열린다. 가을에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하나인 합일문화로 결실된 문화, 열매기 문화, 통일된 문화, 성숙된 문화가 열린다. 그

래서 이 증산도 종도사가 가끔 “증산도는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또한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인이 합일하는 결실문화는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천지이법이라 하는 것은 묶어서 춘생추살(春生秋殺)밖에 없다. 우리가 생존하는 바로 이 시점은 불행히도 죽이는 때이면서 결실을 하는 때이다. 결실이라는 것은 묶어서 제 모습을 찾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각색 혈통이 결실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사람농사의 추수도 사람이 한다. 사람이 천지의 대역자(大役者) 노릇을 하는 것이다. 증산도를 신앙하는 우리 신도들이 천지에 역사를 하는 사람들, 천지의 대역자이다. 천지이법이 여름과 가을이 바뀔 때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데, 우리 증산도 성도들은 사람을 많이 살려서 천지에 공을 쌓아야 한다. 지금은 천지에 공을 쌓아야 한다. 내가 세상을 위해 공 쌓는 것만큼 복을 받게 되어져 있다.

이번에는 가을철이 돼서 춘생추살로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듯하게 다 죽이는 때다. 이 때에 천하창생의 생사가 상제님을 믿는 우리 신도들 손에 매여 있다. 증산도는 이 상제님의 진리, 우주변화원리를 집행해서 상제님 진리를 가지고 개벽하는 세상에 나도 살고, 나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그래서 새 세상을 건설하는 곳이다. 그래서 증산도는 지나간 세상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으로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다. 그러면 다음 세상의 틀은 어떻게 되느냐? 군사부(君師父)가 된다. 상제님 진리로 도성덕립이 되니 상제님이 자동적으로 옥황상제이고, 군주이고, 황제이고, 임금님이다. 또 상제님 진리로써 살았으니 상제님이 부모가 된다. 또 상제님 진리를 믿으니 상제님이 스승도 되신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하나로 합일된 결실문화권이 열리고 현실선경(現實仙境), 지상선경(地上仙境)이 펼쳐진다.

 

상제님을 믿는 우리 신도들은 우주변화원리를 앎으로써 상제님을 알고, 사상 신앙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밑천은 시공(時空)을 통한 일심(一心)이라야 한다. 전부를 다 바치는 그런 신앙을 해라. 그리고 신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서 신앙하는 것이다. 증산도 신앙은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가장 비전 많은 신앙이고 후천 오만 년 복을 받는 신앙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맹성대오(猛省大悟)를 해서 한마음, 한 뜻으로 전부를 다 바쳐서 사람을 살리는 신앙을 해라.

 


사상 신앙을 하라

오늘 이 시간에 내가 울산옥동 도장에 와서 울산 신도들을 대상으로 해서 전하고 싶은 것이, 신앙은 사상 신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 신앙! 신앙이라 하는 것은 사상 신앙을 해야지, 기복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천지신명들에게 다 바쳐서 신앙을 잘 할 것 같으면 신명들의 감화를 받아서 복도 받을 테지만, 진리를 상품화시켜서 기복신앙을 한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존문화권에서도 불교를 믿으려 할 것 같으면 석가모니 진리를 믿는 것이지, 석가모니의 진리를 업고서 “내게 복을 주십시오.” 하는 게 아니다. 또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진리를 믿는 것이고, 유교를 믿으면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오륜삼강(五倫三綱) 등 인간의 윤리 도덕을 신앙하는 것이다. 증산도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기존문화권은 ‘도통을 한다, 사랑을 해야 한다, 인간은 윤리도덕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하는 제한된 도덕률에 그쳤지만, 상제님 진리는 한마디로 ‘가을이 되면 물질문명, 정신문명이 합일이 돼서 결실문화가 열리는 우주원리’다. 기존문화권과는 판이 다른 자연섭리다. 다시 상제님 진리로 묶어서 말을 하면,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고 열매가 여무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번에는 생사(生死)를 판단하는 때다.”라는 것이다.

 

1년 춘하추동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 하는 것은 가을에 열매 하나 맺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만일 가을에 결실을 못 한다고 할 것 같으면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있어야 한 푼어치도 필요치 않은 과정이다. 1년이라 하는 것은 다만 가을에 결실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다. 지구년에 초목농사를 짓는 것도 그렇고, 우주년에 사람농사를 짓는 것도 그렇다. 가을에 결실, 통일, 알캥이, 열매 하나를 얻기 위해서 생장염장,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지구년도 우주년도 둥글어 가는 것이다.

 

지금은 인간개벽을 하는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바로 금화교역(金火交易)기, 하추(夏秋)가 교역하는, 천지의 질서가 바꿔지는 때다. 지구 1년으로 말하면 여름과 가을이 바꿔져서 바로 알캥이, 열매를 맺는 때이고, 우주년으로 말하면 사람농사를 지어서 인종 씨를 추리는 때다, 인종 씨!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여러 천 년 동안 각색 혈통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르게 살았느냐, 내 이득을 위해서 못되게 살았느냐, 그걸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쓸 종자, 바르게 산 종자, 그 씨를 추리는 때다.

 

예컨대 1년에 초목농사를 지어서 여름철에 잘 못 큰 것은 알캥이를 못 맺는다. 빈 쭉정이, 태세가 되고 만다. 집만 짓고 말기도 하고, 한 7홉 여물기도 하고.

이번에는 천지의 이치가 바꿔지는 때가 돼서, 상제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주변화원리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가 우주변화원리다. 우주변화원리에 의해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가 돼서, 상제님이 오셔서 인간 씨종자를 추리는 사람 개벽을 하신다. 상제님은 선천 세상에 천지에서 사람농사 짓는 역사 과정에서 발생한 것을 전부 다 걸러서 매듭을 짓고 새 세상을 열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주변화 법칙을 알아야 상제님 진리를 알고 사상 신앙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기복신앙을 하는 사람은 매듭을 짓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려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진리에서 벗어난 제 중심의 시한부 신앙이다.

 

상제님 진리는, 신명 조화정부에서 천지공사로 이 세상이 둥글어가는 틀, 시간표 이정표를 짜 놓았기 때문에 그 시간표 이정표에 의해 인간 세상에 역사로 표출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알려면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 이념을 알아야 한다. 또 그 상제님 진리의 틀을 알려면 우주변화 법칙을 알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자연섭리, 천지이법이 어떻게 되어져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천지이법을 믿는 것이다. 천지이법이라는 것은 절대로 거짓이 없다. 천지 이치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나. 천지 이치를 믿으면서 자기가 시한부를 설정해 놓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천지이법이 자기 생각에 의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만유의 생명은 천지 자연섭리에 의해 왔다 가는 것이다.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천리를 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라’, 하늘 이치를 순하게 좇아서 순리대로 사는 사람은 흥하고 하늘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멸망한다, 죽는다!


증산도 신앙은 천지 이치를 믿는 것

지나간 봄여름 세상은 상극(相克)의 세상이었다.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었다. 상극이 사배(四配)해서 그 세상에 왔던 사람 쳐놓고 제 몸뚱이를 가지고 제 생각대로 살다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 세상을 제 맘대로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기존 역사 과정에서 왔다 간 사람들은 그 신명들이 전부 철천지한을 맺고 역신(逆神), 원신(寃神)이 됐다. 그래서 그 신명을 해원을 시키지 않고서는 좋은 세상이 이뤄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이 신명세계를 조직해서, 거기에서 앞 세상 둥글어 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셨다. 그걸 천지공사(天地公事)라고 한다.

 

묶어서 상제님 말씀이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쳤다.”, “물샐틈없이 도수(度數)를 굳게 짜 놓았다.”고 하셨다. 도수라는 것이 이정표다. 시공을 통해 둥글어 가는 이정표. 그 이정표에 의해 인간 세상에 역사로 표출이 된다.

지구 1년도 둥글어가는 법이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로 돌아간다. 절후라 하는 것은 보름 만에 한 절후씩, 한 달이면 두 절후, 1년 열두 달이면 24 절후다.

 

그렇게 시간과 더불어 익어나가는 것이지, 천지이법을 자기가 베풀 설 자, 정할 정 자, 설정(設定)을 해 놓는다? ‘언제까지!’ 하고. 그건 천지이법 보고 자기 생각에 맞춰 달라는 소리다.

그런 망령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인도 아니고, 그건 자살행위다. 차라리 신앙을 하지 않는 턱도 안 된다.

상제님 진리, 증산도 신앙인이라고 할 것 같으면 천지 이치를 믿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가 자연섭리이고 자연섭리가 상제님 진리다. 그러니 천지 이치에 순종을 해라.


결실문화가 열린다

앞으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결실문화가 열린다.

알아듣기 쉬웁게, 상제님 진리는 열매기 진리다. 그 동안 열매 하나를 여물기 위해서 많은 문화권들이 나왔잖은가.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등. 상제님 진리는 그 많은 역사적인 문화권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그 진수를 뽑아 알캥이를 맺는 그런 진리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 번 묶어서 말하거니와, 가을에 초목의 열매가 여물듯, 가을에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하나인 합일문화로 결실된 문화, 열매기 문화, 통일된 문화, 성숙된 문화가 열린다. 그래서 이 증산도 종도사가 가끔 “증산도는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또한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유형문화, 무형문화 다시 말해서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하나인 문화권으로 합일된, 신인이 합일하는 결실문화가 열린다. 그게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앞 세상은 군사부 문화의 틀 속에서 후천 오만 년 세상을 살게 된다.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 하면, 이번에 천지이법이 금화교역, 하추가 교역하는 때는 개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좋건 싫건, 알건 모르건 개벽이 일어난다. 그게 무슨 말인가?


증산도 신앙인은 천지의 대역자

가을에는 천지이법이 결실을 해 놓고서 다 죽여 버린다. 천지이법이라 하는 것은 묶어서 춘생추살(春生秋殺)밖에 없다.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린다. 더도 덜도 없다. 작년에도 그랬고 금년에도 그럴 게고. 십년 전도 백년 전도 천년 전도 그랬을 것이고, 또한 천년 후도 만년 후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생존하는 바로 이 시점은 불행히도 죽이는 때다. 죽인다고 하면 참 엄청난 비극인데 결실을 한다. 결실을 하고서 없어져 버린다. 다시 말하면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된다. 결실이라는 것은 묶어서 제 모습을 찾는 것이다. 봄에 곡식종자를 치면 가을에 가서는 제 모습을 찾는다. 콩은 콩을 여무니 제 모습을 찾는 것이고, 팥은 팥을 여무니 제 모습을 찾는 것이다. 그러고서 죽어버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각색 혈통이 결실을 한다. 결실을 못 하는 사람은 다 끝장난다. 춘생추살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람농사 지은 것을 누가 추수하느냐? 일 년에 천지에서 초목농사를 지으면 사람이 추수를 하듯이 사람농사 추수도 사람이 한다.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것을 추수하는데, 사람이 천지의 대역자(大役者) 노릇을 하는 것이다. 대신 대 자, 역사 역 자, 대역자. 사람이 주역이 된다는 말이다. 천지의 역군이 된다. 다시 말해서 부릴 사 자를 붙여서 사람이 천지의 사역자가 된다. 증산도를 신앙하는 우리 신도들이 천지에 역사를 하는 사람들, 천지의 대역자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살려서 천지에 공을 쌓아야

원칙적으로 천지이법이라는 게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다 죽여 버려서 한 사람도 못 살게 되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께서 사람 씨종자 추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지나간 성자들이 천지를 통치하는 절대자, 하느님, 옥황상제가 직접 오신다고 했다.

 

석가모니도 ‘내 도법만 가지고서는 소용이 없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고 그 아들보고도 ‘3천년 후에 미륵부처가 오는데 너는 그 미륵부처님, 그 참 하나님, 추수하러 오시는 그분을 좇아라’ 했다.

 

예수도 ‘내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을 말했고, 유가 도가에서도 옥황상제를 말했다. 그 바른 칭호, 존칭이 옥황상제다. 그 옥황상제님이 바로 강증산 상제님으로 화신하셨다. 그런 건 『도전』을 통해서도 너무 잘 아니까 내가 다시 설명할 것도 없다.

 

그래서 천지이법이 여름과 가을이 바뀔 때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데, 그럼 우리 증산도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상제님 말씀에 “너희들이 나를 믿어서 사니, 너희가 사는 그 성스러운 진리로써 남도 살려 주어라.” 하셨다. 또 “우리 일은 나 살고 남 산 뒷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남을 살려줬으니 천지에 공을 쌓는 것이다. 세상을 위해 봉사한 만큼 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천지에 공을 쌓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상제님 신앙은 사상 신앙을 해야 한다. 이건 천지법도를 집행하는 신앙이다.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것은 내 이기주의, 개인주의 같은 것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지나간 세상 얘기다. 내가 천지에 공을 쌓아야, 남에게 좋게 해줘야 천지의 공이 되어서 내가 잘 될 수 있지, 나는 세상에 조금도 혜택을 베풀지 않고서 나만 위해 달라? 그러면 천지가 저 위해서 생겼나? 당최 그런 진리는 있지도 않다.

 

지금은 천지에 공을 쌓아야 한다. 세상을 위해서 한 돈어치 공을 쌓으면 한 돈어치 복을 받고, 한 냥어치 공을 쌓으면 한 냥어치 복을 받는다. 내가 세상을 위해 공 쌓는 것만큼 복을 받게 되어져 있다.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또 지나간 세상에도 성자(聖者)라 하면 세상을 위해서 봉사한 사람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살면서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에게 못된 짓을 하면 그건 죄만 짓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한 사람이 봉사한 것만큼 복을 받는 것이다.

 

내가 결론부터 말을 하면, 상제님이 오죽하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듯하게 다 죽이는 때라도 씨 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이 그런 때다. 누가 죽이는 게 아니라 가을철이 돼서, 춘생추살로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듯하게 다 죽이는 때다. 그래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다.

 

또 다시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 하셨다. 천하창생이라면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이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상제님 위치에서 “나를 믿는 내 신도들, 너희들이 잘 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구나!” 그런 절규(絶叫), 끊어질 절 자, 부르짖을 규 자, 그런 절규를 하셨다. “너희들이 나를 잘 믿어서, 내 진리를 잘 집행해서 사람을 좀 많이 살려라!” 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증산도는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생명의 다리

그러니까 우리는 상제님 진리를 알고서 사상 신앙을 해야 한다. 왜 가을철에는 개벽이 오느냐? 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셨느냐? 옥황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이유, 증산도가 있게 된 존재 이유를 알고서 신앙을 해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우주변화원리다. 증산도는 이 상제님의 진리, 우주변화원리를 집행해서 상제님 진리를 가지고 개벽하는 세상에 나도 살고, 나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그래서 새 세상을 건설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상제님 진리권을 타고서만 후천 다음 세상을 가게 되어져 있다. 그래서 증산도는 지나간 세상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으로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다! 내가 그렇게 규정을 하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이건 권력 있는 사람이건, 남자건 여자건,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증산도에 수용을 당해서 증산도라는 생명을 다리를 타고서만 다음 세상을 갈 수가 있다.


천지이법으로 정해진 군사부의 틀

그러면 다음 세상의 틀은 어떻게 되느냐? 군사부(君師父)가 된다. 군주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고, 무정부주의도 아니다. 군사부. 천지의 틀이 그렇게 된다.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

 

상제님 진리로써 산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이 이뤄지니 상제님 진리로 도성덕립이 되는 것 아닌가. 다음 세상은 상제님 진리로써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상제님 진리로써 살기 때문에. 그러니까 상제님이 자동적으로 옥황상제이고, 군주이고, 황제이고, 임금님이다. 또 상제님 진리로써 살았으니 상제님이 부모가 된다. 또 상제님 진리를 믿으니 상제님이 스승도 되신다. 또 이 자리에 앉은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들 역시 그 사람들을 살려줬기 때문에 우리 신도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의 뿌리가 된다. 뭐 부모라고 해도 좋고 스승이라고 해도 좋다.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는 어버이와 자식 마냥 절대적인 관계가 된다.

 

천지의 이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아무런 방법이 없이 그렇게만 되어진다. 그 세상에 가서는 역적도 없고, 더 바랄 것이 없다.


유형·무형이 합일되는 결실문화

그리고 그 세상에는 인간의 문화권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오늘도 몇 번 말을 했지만,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하나로 합일된 문화권, 결실문화권이 열린다. 지금 물질문명이라는 것이 아주 극치로 발전돼 있다. 누구도 컴퓨터를 두드리면 환하게 안다. 또 휴대폰은 저 위성으로 연결돼서, 번호만 누르면 호주나 뉴질랜드나 남미나 영국 같은 데 있는 사람과 같이 앉아서 대화하는 것하고 똑같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기계문명, 물질문명, 과학문명이라는게 그렇게 극치의 문명을 했다. 했으나 그것은 기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천년 전 사람과 똑같다. 그러니 절름발이 문화다. 그런 물질문명이 있는가 하면 정신문명이 있다. 지금 정신문명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앞 세상은 정신문명이 열린다. 다시 말하면 신인(神人)이 합일(合一)이 된다. 사람과 신명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알기 쉬웁게 사람은 육신만 가지고는 100프로 사람이 아니다. 육신의 주인이 정신이다. 나의 심령. 자기 심령이 오늘 여기 가자고 해서 다들 여기 와서 앉아 있는 것이다. 육신은 내 신명, 내 정신, 내 심령의 노예다. 내 심령이 ‘아이, 소변 보고 싶어’ 하면 화장실에 가야 하고, 목마르다고 하면 물도 먹여야 하고, 분하면 누구와 싸움도 해야 되고, 좋으면 웃기도 해야 한다. 아니 좋은 일 생기면 ‘하하하하하하’ 이렇게 웃어줘야 한단 말이다. 정신이 50프로이고, 육신이 50프로이다.

 

이번에는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신 신명 조화정부의 조직체와 인간 세상의 조직체가 합일이 된다. 상제님 신앙을 하는 조직체와 하나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은 사람을 만나야 성공을 하고,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한다. 신명은 육신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하고,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되고. 그렇게 해서 다 도통을 한다. 일반 국민도 국민 노릇할 만한 도통을 한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니 영세만년토록 만사지 문화를 여신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하는 주문과 같이, 그런 세상이 온다. 상제님 문화가 바로 그런 문화다.

 

그래서 그 세상은 알캥이 문화, 통일된 문화,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하나가 된 결실문화다. 사람도 부정모혈(父精母血)이라고,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가 합해서 생겨나는 것처럼, 이번에는 천지의 가을이 돼서 인류문화라는 것이 그렇게 돼 버린다.

 

그 세상은 현실선경(現實仙境), 지상선경(地上仙境)이다. 먹는 것 입을 것이 전혀 걱정이 안 되는 세상이다. 지구상에 조경을 해서 꽃나무를 심고, 산에는 도적이 없는 평화낙원이 된다. 앞으로 그런 세상을 사는 것이다.


사상 신앙의 밑천은 일심(一心)

그러니 상제님을 믿는 우리 신도들은 하늘땅 생긴 이후로 가장 비전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 상제님 진리를 자꾸 파고들어라.

 

이 우주원리를 교육시키는 데는 지구상에서 여기밖에 없다. 이 우주원리를 통투(通透)까지는 못해도 어지간히 알면 이 지구상의 유명대학을 다 다니는 것보다도 낫고, 이 세상의 박사 몇 백 개 얻은 것보다도 낫다. 우주변화원리를 앎으로써 상제님을 알고, 우주변화 원리를 앎으로써 사상 신앙을 할 수가 있다. 하니까 사상 신앙을 해라!

 

그런데 그 밑천은 일심(一心)이라야 한다, 일심. 시공(時空)을 통한 일심! 옛날 충신열사들이 말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죽어져서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수 이시랴.” 하는 일심! 또 여자들로 얘기하면, 남편이 죽으면 잘못될까봐 자기 코를 벤다. 남자들이 자꾸 쳐다볼까봐서. 코를 베면 얼마나 흉하겠는가. 그렇게 자기 생명을 다 바쳐 절개를 지키고 가정을 지켜서 아들딸을 잘 키워 혈통을 이어주는 일편단심!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여기 들어올 필요도 없다. 두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세상만사라 하는 것은 일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것이다. 전부를 다 바쳐라! 이번에는 그런 신앙을 해야지, 그렇지 않고 그냥 남의 팔매에 밤이나 주워 먹고, 기복신앙하는 사람들은 꿈도 꿀 게 없다. 내가 상제님 말씀으로 매듭짓고 말 테니 들어 보아라.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血食千秋 道德君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혈식천추 도덕군자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의 혈식을 받을 수가 있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그 모든 신명들이 ‘일심에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한다.” 일심!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천하의 복록을 내가 맡았으나 일심 가진 자가 적어서 전해 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라. 누구도 일심을 가지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고루 전해준다.”


신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는 것

그리고 신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서 신앙하는 것 아닌가.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상제님 진리보다, 우주원리보다 더 큰 진리는 없잖은가.

 

증산도 신앙은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가장 비전 많은 신앙이다. 이건 후천 오만 년 복을 받는 신앙이다. 자연섭리! 천지의 이법! 천도를 신앙하는 것이다. 그 이상이 어디에 있나, 세상천지. 그리고 천지 이치라는 게 가을이 됐으니 개벽은 필연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아니 방법만 있으면 세상사람 하나도 죽지 말고 다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개벽이 없어야지 개벽을 바라는 것은 심사가 틀려먹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벽이 안 올 리도 없지만, 이치가 그렇잖은가. 남 죽기만 바란다면 그건 정신이 삐꾸러진 사람이지, 어떻게 나만 살고 딴 사람은 다 죽어야 되는가?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은 맹성대오(猛省大悟)를 해서 한마음, 한 뜻으로 전부를 다 바쳐서 사람을 살리는 신앙을 해라. 그리고 믿음은 잘성찰해서 믿음을갓기를바랍니다,!

 

대순 진리회의 신앙대상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이다.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상도(常道)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道)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佛)과 보살(菩薩)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했다. 이에 상제께서는 광구천하(匡救天下)하기 위하여 서양 대법국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전북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 미륵금불에 이르러 30년을 머물렀다. 1871년 9월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씨 가문에 인간의 모습을 빌어 강세(降世)하니 존호(尊號)는 증산(甑山)이다.

강증산(일순一淳) 성사(聖師)가 40년간 대순한 진리를 천지공사(天地公事)로 인세(人世)에 선포하고 화천(化天·타계)하니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이다. 여기서 구천(九天)이라 함은 상제께서 삼계를 통찰하여 건곤(乾坤)을 조리(調理)하고 운화(運化)를 조련(調鍊)하고 계시는 가장 높은 위(位)임을 뜻함이며, 응원(應元)이라 함은 모든 천체(天體)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이 다 천명(天命)에 응(應)하지 않고 생성(生成)됨이 없음을 뜻함이며, 뇌성(雷聲)이라 함은 천령(天令)이며 인성(仁聲)인 것이다.

뇌(雷)는 음양이기(陰陽二氣)의 결합으로써 성뢰(成雷)된다. 뇌는 성(聲)의 체(體)요, 성은 뇌의 용(用)으로서 천지를 나누고 동정진퇴(動靜進退)의 변화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승강(昇降)케 하며 만물을 생장(生長)케 하고 생성변화(生成變化), 지배자양(支配滋養)함을 뜻한다.

 

보화(普化)라 함은 우주의 만유(萬有)가 유형(有形)·무형(無形)으로 화성(化成)됨이 천존(天尊)의 덕화(德化)임을 뜻함이며, 천존이라 함은 군생만물(群生萬物)을 뇌성(雷聲)으로 보화만방(普化萬方)하시는 지대지성(至大至聖)한 삼계(三界)의 지존(至尊)임을 뜻한다. 강성상제(姜聖上帝)라 함은 우주 삼라만상을 삼계대권(三界大權)으로 주재(主宰) 관령(管領)하며 관감만천(觀鑑萬天)하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존칭임을 뜻한다.

  • 숭배 [崇拜], 원불교대사전

  • 간음 [姦淫]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섬김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순종 [順從]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숭경 [崇敬]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숭상 [崇尙]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우상 [偶像]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우상 숭배 [偶像 崇拜]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음행 [淫行]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 샤머니즘교회용어사전 : 교리 및 신앙

숭배 [崇拜] 라는 글을 쓰다보니 신앙을 쓰게되어 쓸까말까 하다가 ???!!!,,, 교가 꼭 나빠서가 아니다. 간혹 나쁜 종교도 있으니까요??? 믿음은 개개인의 자유이며 심사숙고 해야합니다,

"혹여 이글을보고 피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글로서 만 참고 하세요,!

출처 ^ 참고문헌,

[숭배 [崇拜, worship, cult]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2013. 9. 16., 가스펠서브)

[증산도 홈페이지 월간개벽 도기144년 7월호

[증산도 ⁠진리를 알고 사상 신앙을 하라

[인존(人尊)시대’를 열어가는 상생의 대순진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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