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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mathematics, 數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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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mathematics, 數學]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여 수량과 도형 및 그것들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

 

외국어 표기

Mathematik(독일어), Mathématiques(프랑스어), (한자)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수()·양()에 관한 학문이다. 다른학문의 기초가 되기도 하며,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발달해 온 학문이다.

 

학은 철학 ·천문학 ·약학 등과 같이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옛날부터 발달해 내려온 학문으로서 현시점에서도 활발히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그 발전상은 눈부시다. 수학은 인간의 사유()에 의하여 구성된 추상적인 과학으로, 추론()의 전제()로 삼는 공리()라 일컫는 일군의 명제()를 가정하여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채택하는 공리를 달리하면 결론도 달라진다.

 

수학(, mathematics)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학의 개념과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수학을 ‘수와 크기의 과학(, science)’이라고 했으나, 현재 수학은 수와 크기라는 말로는 함의할 수 없는 고도의 추상적인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수학은 수, 크기, 꼴에 대한 사고로부터 유래한 추상적인 대상들을 다루는 학문으로,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여 이러한 대상들과 대상들의 관계를 공리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개념들이 언제부터 자연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려우나, 선사시대에 이미 수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발견된 이리 뼈와 같은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학의 어원에 대해서 살펴보면, ‘mathematics’는 ‘학습하다’는 뜻을 갖는 ‘μανθάνω(manthano)’에서 파생한 그리스어 ‘μάθημα(máthēma)’에서 유래한다.

동양에서 수학은 본래 산학으로 불려왔으나, 1853년 서양의 수학책을 중국어로 번역한 『수학계몽()』에서 처음으로 현재와 같은 의미로 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클리드(Euclid, BC 330년 경~BC 275년 경)의 원론은 공리적 방법으로 기하 관련 명제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서이다.

공리적 방법은 적절하게 공리와 정의를 정하고 이로부터 엄밀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수학적 명제들의 진위를 가리는 것으로 데이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에 의해 정교화되었다.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수학은 물리학(, physics), 생물학(, biology) 등의 자연과학(, natural science)과 경제학(, economics), 사회학(, sociology) 등의 사회과학(, social science), 전자기학(, electromagnetics) 등의 공학(, engineering) 등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 우주론(cosmology)과 같은 최신 물리학 등을 탐구할 수 있는 주요한 도구로도 활용된다.

수학은 수천 년에 걸쳐 많은 수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에 의해 발전해왔다. 바빌로니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은 경제 활동에 필요한 계산을 위해 그리고 농경 생활을 위한 천문 관찰 및 측량 등을 그들의 삶을 위해 산술, 대수, 그리고 기하를 활용하면서 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스 시대에 수학은 학문 또는 과학으로 자리 잡았고 삶에서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닌 사유를 위한 대상이었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아폴로니오스(Apollonios) 등이 수학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경 유럽은 과학혁명(科學革命, scientific revolution)을 겪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그리스-아랍의 과학전통에서 근대과학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BC 212)

이 시기에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등이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 physics), 천문학(, astronomy), 철학(, philosophy)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며 각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좌표평면을 포함하여 해석기하학(, analytic geometry)을 창시하였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대수 문제로 바꾸려고 시도하였다. 뉴턴은 『프린키피아(principia)』(1687)와 『광학(opticks)』(1704) 등의 저서를 발표하면서 학문의 발달을 이끌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독립적으로 미적분학(微積分學, calculus)을 창시하여 현재 해석학(, analysis)의 시발점을 만드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수학은 해석학, 대수학(, algebra), 기하학(, geometry), 위상수학(, topology), 응용수학(, applied mathematics), 이산수학, 확률론 등으로 구분된다. 현재는 이러한 각 분야들이 더 세분화되고 연결되어 다양한 하위분야들과 새로운 분야들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해석학은 실해석학, 복소해석학, 다변수함수론 등으로 다시 구분되며, 미분기하학(微分幾何學, differential geometry)과 같은 최신 분야들도 등장하였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역사 와 발전

수학적 개념의 징조는 인류보다 몇 백만 년이나 앞선 생명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류는 그 시작부터 수학적 개념들을 그들의 삶에 이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고대 유물들을 통해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에도 기하학적 무늬나 셈을 다루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는 약 7만 년 전에 만들어진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약 3만 년 전에 만들어진 55개의 깊은 칼자국이 있는 어린 늑대 뼈가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칼자국들은 5개씩으로 묶여져 있는데 이는 이미 당시에 수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벨기에의 장 드 브라우코르가 1960년 콩고에서 발견한 이상고 뼈는 약 기원전 2만 년 사이에 제작된 골각기로 계산에 사용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즉, 이미 기원전 2만 년에 수의 연산에 대한 초기 개념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수학

기원전 5000~3000년 사이에 아열대와 그 근처 지역의 큰 강 주변에서 크게 발달된 사회들이 등장하였다. 위의 지역은 비옥한 토지를 얻기 쉬웠으며, 홍수를 통제하고 물 공급을 위한 기술을 발달을 통해 농업의 발달이 가능하였다. 발달된 농업을 바탕으로 사회 계급이 발달하고 확립되었다. 이러한 지역 중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수와 기하를 중심으로 하는 수학이 발달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수학에 대한 근거는 주로 점토판에 기록된 쐐기문자를 해독한 것이고 이집트 수학에 대한 근거는 주로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된 것을 해독한 것이다. 농업을 위한 측량과 수확물 관리, 세금 징수 등을 위한 실용 산술이 우선적으로 발달하였다. 이집트 수학에 관한 주된 정보들은 기원전 1850년 경의 모스크바 파피루스와 기원전 1650년의 린드 파피루스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이집트인은 십진 기수법을 사용하였고, 분수의 계산을 다루었다. 분수를 단위분수의 합으로 표현하였고, 각 단위분수는 수 위에 기호를 붙여 나타내었다. 또한 측량에 관한 기하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었는데 삼각형의 넓이를 밑변과 높이의 곱의 반이라는 것으로 구하였고 지름이 d인 원의 넓이는 

으로 구하였다.1) 또한 정사각뿔대의 부피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는 데 이들이 사용한 공식은 

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은 이집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2100년까지로 추정되는 문헌에서는 상당히 발달된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은 60진법을 사용하였고 위치적 기수법(記數法, numeral system)도 사용하였다. 기원전 185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쐐기 문자 문헌에는 산술이 대수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있다. 이 시기의 바빌로니아인들은 미지수가 1개인 2차 방정식뿐만 아니라 미지수가 2개인 2차 방정식과 3차·4차 방정식까지 풀 수 있었다.

또한, 산술적·대수적 특징을 지닌 기하학적 문제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기원전 2000년 경 대수학이 발달한 주된 이유는 바빌로니아인이 대수를 다루기에 적절한 표의문자인 고대 수메르의 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오리엔트의 수학이 이와 같이 수와 기하에 대해서 상당히 발달된 논의를 포함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증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시도하지 않았다.

 

2) 그리스의 수학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학과 이집트의 수학을 모두 접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수학은 탈레스(Thalēs)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그는 기원전 6세기 경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를 방문하였다. 탈레스는 오리엔트 수학의 특징인 “어떻게?”라는 것에서 나아가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고자 하였다. 그는 직각삼각형의 비례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넓이를 구하였으며, “원은 지름에 의해 이등분 된다.”, “이등변삼각형의 밑변의 두 각은 같다.” 등등의 정리를 발견하고 증명하였다. 또한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를 신비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주의 영원한 법칙을 수를 통해 탐구하고자 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산술적 비율(2b=a+c), 기하적 비율(b2=ac), 조화비율

을 구분하여 다루었고, 정다각형과 정다면체의 성질을 알고 있었으며, 선분의 통약불가능성(通約不可能性, incommensurability)을 통하여 ‘무리수(irrational number)’를 발견하였다.

그리스 수학의 정수는 유클리드의 13권의 원론(Stoicheia)에서 잘 드러난다. 유클리드는 그 당시의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인 비율에 관한 에우독소스(Eudoxos)의 정리, 무리수에 관한 테아이테투스의 정리, 플라톤(Plato)의 우주론에서의 정다면체의 이론을 포함하여 책을 구성하였다. 원론은 원론에 포함된 내용보다 이를 전개한 방법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유클리드는 일련의 정의, 공준, 공리에서 출발하여 엄격하게 논리적인 연역에 기초하여 명제를 전개해 나가는 공리적 방법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공리적 방법은 이후 현대수학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유클리드 이후 적분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원뿔곡선에 대해서 논의한 아폴로니우스 등도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수학자였다.

3) 기원 후~16세기까지의 수학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1170~1250)

이 시기의 수학에 대해서는 주요 수학자별 업적으로 그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는 대집전(Great Collection)에서 0.5°간격으로 증가하는 각에 대한 현의 길이를 표로 제시하였고, 사인공식과 코사인공식 등에 대한 시초를 볼 수 있으며 한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에 대한 정리를 볼 수 있다. 디오판토스(Diophantos)는 그의 책 『산학』에서 다양한 대수적 문제들을 다루었는데 부정방정식과 연립 부정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을 포함하였고, 비록 축약적으로 사용한 것이기는 하나 미지수, 빼기, 역수 등에 대해서 특정한 기호를 사용하는 등 대수기호를 체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4세기 경 파푸스(Papus)는 그의 저서 『수학집성』에서 그리스 기하학의 기존의 정리와 증명에 대하여 주석을 포함하여 정리하였다. 고대 저자의 많은 업적들이 파푸스에 의해 정리된 형태로 남아 있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는 오리엔트를 여행하고 이 때 수집한 산술과 대수 지식을 모아 『산반서』(1202)와 『실용 기하학』(1220)을 기술하였다.

16세기에는 3차 방정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였다. 페로는 3차 방정식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니콜로 타르탈리아(Niccolo Tartaglia)에 의해 1535년에 페로의 방법이 재발견되었다. 타르탈리아는 지롤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에게 그 방법을 전해주었고 카르다노의 『위대한 술법』이라는 저서에 이 방법이 기록되어 남겨졌다. 16세기 후반의 수학자 프랑수아 비에트(François Vièe)는 3차 방정식에 대한 카르다노의 해를 삼각법적인 해로 환원하였고, 최초로 미지수가 아닌 기지수에도 문자를 사용하였다. 대수학의 발전을 기호 발달의 측면으로 구분할 때, 비에트는 현대적인 기호 사용의 시작을 알린 학자였다. 16세기의 몇몇 수학자는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를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루었고, 특히 존 네이피어(John Napier)는 『놀라운 로그 체계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1614년에 발간하면서 로그를 도입하였다.

4) 17세기의 수학

17세기 수학이 발달은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요한 케플러(Johannes Kepler)의 법칙으로 유명한 독일의 천문학자는 『포도주통 입체 기하』라는 저서에서 축을 따라 원뿔곡선을 회전시켰을 때 얻어지는 입체의 부피를 계산하였는데, 이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엄밀성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리레이(Galileo Galilei)는 그의 이론에 수학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였고, 이는 『역학과 부분 운동으로서의 두 과학』(1638)이라는 저서에서 잘 나타나 있다. 프란체스코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Francesco Bonaventura Cavalieri)는 선을 실과 같이 아주 좁은 선으로 보고 선을 축적하여 넓이를 얻는다는 아이디어로, 동일한 높이에서 절단된 면의 넓이가 항상 같은 두 입체는 동일한 부피를 갖는다는 카발리에리의 원리를 도출하였다.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 1667~1748)

17세기 수학의 가장 대단한 업적 중 하나는 미적분학(, calculus)의 발견이었다. 미적분의 일반적 방법은 대수적 방법과 기하적 방법을 모두 통달하여 미분과 적분 사이의 관계를 파악해야 발견할 수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곡선에 접선을 긋는 문제로부터 발달한 미분학(, differential calculus)과 곡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넓이를 구하는 적분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미적분학을 전개하였다.

뉴턴은 물리에서 운동학적 접근에서 미적분학을 발견하였는데 뉴턴은 이를 ‘유율론’이라고 불렀다. 유량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모든 양을 뜻하고 유율은 움직임에 따라 각각의 유량이 변화하는 속도를 뜻하는 것으로 이를 이용하여 운동과 관련된 속도와 가속도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다루었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지식을 습득하고 발명하며 우주의 본질적인 공통성을 이해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에 대해 탐구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은 변화와 운동에 대한 보편 언어를 탐구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미적분학에서 사용하는 다수의 기호와 그 체계가 라이프니츠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미분과 적분’, ‘함수’, ‘좌표’ 등의 명칭 또한 라이프니츠에서 시작되었다.

 

5) 18세기의 수학

18세기의 수학은 미적분학과 이를 역학(, mechanics)에 응용하는 것에 집중하여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베르누이 일가(-家族, Bernoullis)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등이 해당된다. 베르누이 일가에서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의 아들인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는 현의 진동문제를 다루면서 편미분방정식의 이론을 유도하였고 삼각급수의 역할도 도입하였다.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1700~1782)

오일러는 18세기 수학자 중 가장 중심적인 인물로 그는 대수학, 위상수학, 해석학 등에 걸쳐 대단히 많은 업적을 만들어냈다. 오일러는 771편의 연구업적과 수많은 교재를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735년 한쪽 눈을 실명하고 1766년에 다른 한 쪽 눈마저 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의 도움을 받아 1770년 대수 입문서를 출간할 만큼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오일러는 『무한소 해석』(1748)에서 ex, sinx, cosx를 포함한 무한급수를 다루었고 eix=cosx+isinx의 관계를 제시하였으며 곡선과 평면에 대해서 탐구하였다. 또한, 제타 함수와 소수 이론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풍부한 업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간결한 논리 전개와 현대적 기호 사용으로 유명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는 이 당시의 오일러의 기호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8세기의 또 다른 유명학자인 조지프 루이스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 변분법, 방정식의 대수화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특히, 방정식의 대수적 해에 대한 고찰에서 4차 이하의 방정식에 대한 해법이 왜 5차 이상인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는지에 대해 다루면서 군 이론(group theory)에 기여하였다. 18세기 후반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준 라플라스는 특히 확률론에 대해서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라플라스는 그의 저서에서 기하적 확률, 베르누이 정리(Bernoulli’s theorem), 베르누이의 정리와 정규적분의 관계, 앙드리앵 마리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 최소제곱법(method of least squares) 등을 다루었다.

6) 19세기와 그 이후의 수학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

19세기와 그 이후에는 수학의 많은 분야에 있어서 대단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19세기의 수학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가우스는 실수를 계수로 갖는 n차 방정식은 복소수 범위에서 n개의 해를 갖는다는 것을 엄밀하게 증명한 대수학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로 유명하다. 또한, 천문학, 측지학(, geodesy), 대수학, 기하학 등 많은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쏟아내었다. 자와 콤파스로 정17각형에 대한 작도법을 발견하였고, 이에 대해서 일반화하였다. 정수론(整數論, number theory)에서 2차 상호법칙을 증명하였고 측지학 연구에서 곡률, 곡면, 등각사상 등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이는 미분기하학의 시초가 되었다.

19세기와 그 이후의 수학을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군론(theory of groups), 리만가설(Riemann hypothesis), 집합론(set theory), 비유클리드 기하학(, non-Euclidean geometry), 수학기초론(foundations of mathematics)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는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다루어지는 군의 개념을 도입하여 군론의 시대를 열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라는 소수정리와 ‘리만 제타 함수가 0이 되는 자명하지 않은 복소수 근의 실수부는 

이다.’라는 리만가설을 제안하였다. 소수정리(prime number theorem)는 1896년 자크 살로몬 아다마르(Jacques-Salomon Hadamard)와 푸생이 증명하였지만 리만가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리만가설은 소수의 규칙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합론은 술어논리학(, predicate logic)과 함께 수학기초론(foundations of mathematics) 중 하나로 게오르크 퍼디낸드 루드비히 칸토어(Georg Ferdinand Ludwing Cantor)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현대수학을 논리적으로 지탱하는 이론으로 존재하며, 자연수를 공리적으로 도입한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의 공리계 또한 집합론에 속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 Euclidian geometry)의 평행선 공준을 부정한 기하학이다.

볼리아이(Bolyai)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로바체프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ii) 그리고 가우스가 이에 기여하였는데, 비유클리드 기하학에는 타원기하학과 쌍곡기하학(, hyperbolic geometry)이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은 2000년 간 지속되었던 유클리드 공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것으로써 대단히 중요하였다. 특히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의 기초가 되었으며 수학기초론에 대한 발전을 이끌어 힐베르트와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의 연구로 이어졌다.

 

접근방법 및 주요 연구영역

1) 접근방법

수학적 접근방법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유클리드의 원론에서 제안된 공리적 방법이다. 공리적 방법은 무언의 용어에 대한 정의와 몇 가지 공리를 기초로 명제의 참과 거짓을 밝혀내며 연역적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다. 수학 발달의 역사를 볼 때, 그 당시의 수학적 대상들에 대한 거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주요 정의, 개념, 공리 등을 추려 공리적 방법을 활용하여 엄밀한 수학적 체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공리적 방법을 근간으로 수학의 다양한 영역은 그 영역에서의 주요 정리들을 활용하여 각 세부 학문 영역의 주제들을 탐구한다. 오늘날에는 기하학에서의 방법을 대수학에서 활용하거나 대수학에서의 방법을 기하학에서 활용하거나 하는 등 영역 간의 접촉 및 접목을 통해 수학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2) 주요 연구영역

수학은 대수학, 해석학, 기하학, 위상수학, 응용수학, 수학기초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학의 각 영역들은 서로 다른 기원으로부터 발달하였고, 과거에는 각 영역이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현대로 오면서 각 영역의 연구방법들을 함께 사용하거나, 한 영역의 대상을 다른 영역의 도구로 분석하는 등 영역 간의 연계성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예로는 해석기하학, 대수기하학(, algebraic geometry), 미분기하학, 대수적 위상수학 등이 있다.

 

(1) 대수학

대수학은 수 대신 문자를 사용하여 방정식의 풀이 방법이나 대수적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수학은 방정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19세기 이후 군, 환, 가군 등 대수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으로 발달하였다. 현재 대수학에는 선형대수학(, linear algebra), 추상대수학(, abstract algebra), 정수론, 대수기하학 등이 세부영역으로 다루어진다.

선형대수학은 벡터공간과 선형변환 등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추상대수학은 군(group), 환(ring), 가군(module) 등 대수적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보통 추상대수학을 대학에서 가르칠 때, 이와 같은 대수적 구조들을 공리로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대수적 구조들은 방정식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된 여러 개념들에서 얻은 공통적인 부분들을 다듬고 추상화하여 얻어졌다. 예를 들어 환은 4차 이상의 방정식에 대한 연구에서 유도된 것인데, 가군(module)은 벡터공간의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벡터공간에서 스칼라를 임의의 환으로 확장한 것으로 정의된다.

표현론은 대수적 구조를 벡터공간 위의 선형사상으로 나타내어 그 대수적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영역이다. 정수론은 수의 성질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대수학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원 후 5세기 중국 문명의 수학책인 『손자산경』에는 중국인의 나머지정리가 수록되어 있다. 19세기 이후 정수론은 해석적 수론, 대수적 수론 등으로 구분되어 발전하는데, 골드바흐의 추측, 리만가설 등 유명한 문제가 해석적 수론에 속한다. 대수적 수론은 주로 아이디얼과 잉여류 등을 다룬다.

대수학은 자연과학, 공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선형대수학은 컴퓨터 과학의 LU-분해·QR-분해 등 행렬 분해, 전기회로에서 특정 지점의 전류 측정 방법, 경제에서의 선형계획법(linear programming) 등에서 활용되며 현대대수학에서의 군론과 군표현론 등은 물리학, 화학, 컴퓨터 공학(-, computer engineering) 등의 다양한 분야의 대상을 정의하고 그 성질을 연구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2) 해석학

해석학은 미적분학을 포함하여 이로부터 비롯된 극한, 급수, 연속성, 미분, 적분, 측도 등의 개념을 다루며 이를 활용하여 함수들의 성질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체계적으로 미적분학의 내용과 방법을 정리하면서 현대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바론 어거스틴 루이 코시(Baron Augustin Louis Cauchy), 카를 테오도르 윌리엄 바이어슈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등의 주요 학자들의 업적에 의해서 해석학의 엄밀함이 갖추어졌다. 특히, 바이어슈트라스는 입실론-델타 방식으로 미적분을 산술화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한편 해석학은 자연과학의 논의들과 더불어 발달하였는데, 자연과학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해석학적 개념 등이 생겨났고 해석학에서 발전된 개념과 논의들이 다시 자연과학에서의 문제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해석학은 극한, 급수, 미분, 적분, 측도 등을 어떤 대상에 대해서 다루어지는가에 따라 그 하위 분야를 구분할 수 있다. 실함수를 대상으로 하는 실해석학, 복소함수를 대상으로 하는 복소해석학, 벡터공간과 연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함수해석학 등이 해석학의 하위분야에 속한다. 또한,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와 변환 및 응용에 대한 조화해석학, 해석학에서의 문제들에 대해 근삿값을 구하거나 그 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수치해석학 등도 해석학의 분야에 해당된다.

해석학은 유체역학(, hydrodynamics),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전자기학 등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해석학에서 다루어지는 미분방정식은 자연과학과 공학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수학적 수단 중 하나이다. 양자론에서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 전자기학에서의 맥스웰 방정식, 열역학(, thermodynamics)에서의 열방정식, 진동 현상에 대한 파동방정식 등은 모두 미분방정식의 논의를 활용한다. 유체역학에서 고체의 열전도와 흐름 해석을 위해서는 수치해석학적 방법인 차분법(difference method) 유한요소법(finite elements method) 등이 활용된다. 최근에는 자연과학의 분야 이외에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도 해석학의 개념 및 논의가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3) 기하학

기하학은 선과 면 그리고 도형 등 기하학적 대상의 모양, 크기, 상대적인 위치 그리고 공간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하학은 정수론과 더불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수학의 한 분야로 선사시대 유물에서 그 흔적이 이미 존재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건축과 농경 생활을 위하여 실용적인 지식으로 활용되었으며, 그리스에서는 사유를 위한 탐구의 대상이었으며, 유클리드에 의하여 집대성되었다. 유클리드의 원론에서의 정의와 공리에 기초한 연역적 방법은 수학의 근간이 되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방법이다.

19세기 이후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으로 공리적 체계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으며, 다양한 학문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평행선 공준을 포함하는 유클리드 기하학,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그리고 다중선형대수학을 이용하는 미분기하학, 사영변환(projective transformation) 속에서 불변하는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사영기하학(, projective geometry), 칸토어의 집합론을 이용해 기하학의 원리를 공리적으로 탐구하는 공리적 기하학 등이 대표적인 기하학의 세부 분야이다. 최근에는 대수 다양체를 연구하는 대수기하학이 정수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기본적인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기하학은 그 탄생부터 다양한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활용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증강현실 기술, 사진의 파노라마 구현, 로봇의 물체인식 등에 사영기하학이 활용되고 있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고전역학(, classical mechanics), 전자기학, 일반상대성이론, 끈 이론(string theory) 등 공간과 공간에서의 물체를 다루는 대다수의 영역에서도 미분기하학을 포함한 기하학의 다양한 논의들이 활용되고 있다.

 

(4) 위상수학

위상수학은 위치와 형상 그리고 위치와 형상에 대한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물들 사이에 변하지 않는 공통된 성질, 즉 연속함수에 의해 보존되는 기하학적 불변성에 대한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위상공간은 수렴, 연결, 연속 등과 같은 위상수학의 개념을 형식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위상수학에서의 구조이다. 위상공간은 하나의 집합과 이에 관한 3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부분집합의 모임을 의미하며 이 때, 그 모임을 위상이라고 하고 그 모임에 있는 부분집합을 열린 집합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위상공간의 정의로부터 기하학에서 필요한 정확한 위치 혹은 크기와 같은 특성들에서 벗어나 더 일반적인 성질들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칸토어, 바이어슈트라스, 프레셰 등에 의해 위상수학의 기초 내용 체계가 갖추어졌으며, 리이츠(Lietz)는 거리 개념을 배제하고 위상수학에 대한 새로운 공리적 접근을 제안하였다. 펠릭스 하우스도르프(Felix Housdorff)는 거리 개념을 확장시켜 네 개의 공리로 근방을 정의하였는데, 이로부터 더 일반화된 추상적 위상공간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상수학의 하위 분야로는 유클리드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위상공간의 집합에 대해서 논의하는 일반위상수학, 연속사상에 대해 위상동형에 대한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함수자라는 것을 통해 대수적 성질로부터 위상적 성질을 다루고자 하는 대수적위상수학(, algebraic topology), 미분다양체를 다루는 미분위상수학, 다양체와 다양체를 다른 다양체로 보내는 사상에 대해 연구하는 기하위상수학 등이 있다. 위상수학은 양자장 이론, 우주론, 초끈이론 등의 최신물리학과 로봇이 움직이는 공간과 위치를 다루는 것과 관련된 로봇공학(-, robotics) 등에서 주로 활용된다.

 

3) 관련 응용 분야(1) 자연과학 분야

수학은 자연과학에서 당연하게 사용되는 언어 및 방법이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과학의 대다수의 공식은 수학적 기호와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로 뉴턴의 운동법칙(Newton’s laws of motion) 중 하나인 F=ma라는 공식은 수학적 기호로 표현되어 있으며 수식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현대 최신 이론물리학(, theoretical physics)에서 수학은 이론물리학에서의 추상적 대상을 연구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양자역학에서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 공간론, 작용소의 이론, 군의 표현, 함수해석학 등이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푸리에 급수, 변환, 해석은 공학에서 특히 잘 활용된다. 수치해석학적 방법인 차분법과 유한요소법 등은 유체역학에서 열전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된다. 최근에는 생물학에 수학과 통계적 기법을 도입하는 수리생물학(, mathematical biology)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가령 최근에 집단유전학(, population genetics)에서 미분방정식 혹은 확률미분방정식을 이용한 이론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고 있다.

 

(2) 사회과학 분야

사회과학 분야에 수학이 응용되는 대표적은 분야는 경제학이다. 경제학에서는 주로 미적분학과 통계학(, statistics)이 활용된다. 최근에는 금융수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분야가 생길만큼 경제 분야에서 수학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주식, 채권, 외환의 거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이들에 대한 예측은 상미분방정식을 포함한 고전적 방정식의 해로 표시되지 않는다. 최근에 확률미분방정식에 의해 엄밀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런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움직임에 대한 국소적인 구조를 기술함으로써 주식, 채권, 외환에 대한 예측을 다루었다. 유명한 이론으로는 1973년 블랙과 슐즈의 옵션가격결정이론(option pricing)이 있다. 최근 한국의 몇몇 대학에서도 금융수학을 전공하는 학과가 개설될 만큼 경제 분야에 대한 수학의 응용이 주목받고 있다.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미분: 어떤 함수의 미분계수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적분: 어떤 함수가 주어졌을 때, 그 함수를 미분하면 그 주어진 함수가 되는 함수를 말한다.

유클리드(Euclid) 원론: 공리적 방법으로 기하 관련 명제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서이다.

과학혁명: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로 어떠한 한 학문 분야의 지배적이었던 하나의 패러다임이 예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말한다.

파피루스: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자라는 사초과의 다년생 초목이다. 파피루스는 종이의 원료로도 사용되며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한 가장 오래된 종이이기도 하다.

• 정수론: 수의 성질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며 대수학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문 분야이다.

 

2) 관련 직업군

• 교직(대학, 초중고, 학원)
• 연구원(연구소, 대학원)
• 금융권(보험, 증권, 은행)
• 전산직(컴퓨터, 통신, 정보통신)
• 계리사
• 원가 계산 관련 종사자 등

구장술해조선 말기 남병길이 지은 수학책. 규장각도서.

예를 들면,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지만, 한편 어떤 비()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2직각보다 크게 되거나, 또는 2직각보다 작게도 된다. 수학은 그 본질적인 추상성() 때문에 전제로 삼은 공리에 보다 적합한 구체적인 현상을 적용시키면 이 공리에서 이끌어낸 결론이 그 구체적인 현상을 선명하게 해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학을 ‘과학의 언어’라고도 말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에는 물론, 사회 ·인문 ·군사 등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학은 국어, 영어와 함께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배울 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과목이야. 수학은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수(number)와 도형(shape)을 중심으로 공부, 

숫자 - 하나, 둘, 셋,,…

용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학은 숫자(numbers)에 관한 학문이야. 수에는 크게 1, 2, 3과 같은 크기를 나타내는 기수(cardinals)가 있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같은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ordinals)가 있어. 그럼 기수부터 살펴볼까?

 

기수,

0
zero

 

 

 

 

1
one

2
two

3
three

4
four

5
five

6
six

7
seven

8
eight

9
nine

10
ten

11
eleven

12
twelve

13
thirteen

14
fourteen

15
fifteen

16
sixteen

17
seventeen

18
eighteen

19
nineteen

20
twenty

30
thirty

40
forty

50
fifty

60
sixty

70
seventy

80
eighty

90
ninety

100
one hundred

1,000
one thousand

10,000
ten thousand

100,000
one hundred thousand

1,000,000
one million

10,000,000
ten million

1,000,000,000
one billion

 

서수는 다음과 같은데, first, second, third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수에 -th를 붙여 주는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서수

1st
first

2nd
second

3rd
third

4th
fourth

5th
fifth

6th
sixth

7th
seventh

8th
eighth

9th
ninth

10th
tenth

11th
eleventh

12th
twelfth

13th
thirteenth

14th
fourteenth

15th
fifteenth

16th
sixteenth

17th
seventeenth

18th
eighteenth

19th
nineteenth

20th
twentieth

30th
thirtieth

40th
fortieth

50th
fiftieth

60th
sixtieth

70th
seventieth

다양한 숫자 읽기,

영어에서 긴 숫자는 대부분 세 단위로 끊어서 읽어 줘. 예를 들면, 35,000은 thirty-five thousand가 되고, 350,000은 three-hundred fifty-thousand가 되는 식이지. 그럼 연도는 어떻게 읽을까? 연도는 두 자리씩 끊어 읽는 게 원칙이야. 1995년은 nineteen ninety-five라고 읽지. 하지만, 지금 같은 2000년대 초반은 두 자리씩 끊어 읽으면 어색하니까 일반적으로 읽어 줘. 2002년 월드컵을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Two-thousand two World Cup이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전화번호는? 전화번호는 그냥 숫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읽어 줘. 3252-9962라면 three two five two nine nine six two처럼 말이지. 어렵지 않지?

 

분수 - 1/2, 1/4, …

수학 시간에 분수를 배운 적 있지? 분수는 영어로 fraction이라고 부르고,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앞에서 배운 '분자(기수) → 분모(서수)' 순서로 써 주면 돼. 만약 2/3이라면 two(기수)-thirds(서수)와 같이 말이야. 주의할 점은 분자와 분모 사이에는 -(하이픈, hyphen)을 넣어 주고, 분모가 2 이상일 때는 서수에 꼭 -s를 붙여 줘야 한다,

 

단위 - 내 키는 150㎝인데 너는 5피트라고?

우리나라나 일본, 또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길이나 무게 측정할 때 센티미터(cm), 킬로그램(kg)과 같은 미터법(metric system)을 사용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은 인치(inch), 파운드(pound)와 같은 영국식 단위(British imperial system)를 사용해. 두 단위 체계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아.

 

길이(length)

1 inch = 2.54㎝

1 feet = 30.48㎝

1 yard = 91.44㎝

1 mile = 1.6㎞

무게(weight)

무게(weight)

1 ounce = 28.35g

1 pound = 453.6g

섭씨와 화씨 사이

 I, II, III, … 우리도 숫자예요

"오늘 낮 기온은 섭씨 25도가 되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일기 예보(weather forecast)에서 많이 들어 봤지? 이처럼 우리나라는 섭씨(Celsius)를 기준으로 온도를 표현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화씨(Fahrenheit)를 공식적 단위로 사용하고 있어. 섭씨는 ℃라는 기호로 표시하고, 화씨는 ℉라는 기호로 표시해. 참고로, 섭씨 0도는 화씨 32도이고, 물이 끓는 온도는 화씨 212도(섭씨 100℃), 화씨 100도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섭씨 37.8도야. I, II, III, … 우리도 숫자예요

로마 숫자( Roman   numerals )

우리는 흔히 1, 2, 3과 같은 아라비아 숫자(Arabic numerals)를 쓰지만, 일부에서는 Ⅰ, Ⅱ, Ⅲ과 같은 로마 숫자(Roman numerals)를 쓰기도 해.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아.

로마 숫자(Roman numerals)

1

2

3

4

5

6

7

8

ⅩⅩ

ⅩL

L

C

D

M

9

10

20

40

50

100

500

1000

수학의 종류,

수학 하면 한 가지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음과 같은 분야로 좀 더 구분할 수 있어.

algebra(대수학)
숫자 대신 문자를 사용하여 수의 관계, 법칙 등을 연구하는 학문

geometry(기하학)
길이, 넓이와 같은 공간의 수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

trigonometry(삼각법)
삼각형의 특징을 기초로 하여 도형의 양적 관계, 측량 등을 연구하는 학문

calculus(미적분학)
연속 함수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

 

수학은 인간의 사유()에 의한 추상적인 과학으로서, 공리()라고 하는 일군의 명제()들을 가정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학문이다. 수학은 본질적인 것만을 파악하여 기호로 표현함으로써 ‘과학의 언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자연과학의 이론·기술의 발전에는 물론 사회·인물·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공헌하는 기초학문이다.

 

수학의 역사는 오래되어 고대 인도·중국·이집트·바빌로니아 등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나,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그리스문화에서부터이다.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시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Euclid)는 그 이전의 저서와 연구를 집대성하여 ≪기하학원본 Stoicheia≫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유클리드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학을 논리적으로 정리, 체계화하였다.

 

제1권은 수직·평행·평행사변형에서 피타고라스(Pytagoras)의 정리까지, 제2권은 2차방정식의 면적에 의한 해법, 제3권은 원과 호, 호에 관한 각, 제4권은 내·외접 정다각형, 제5권은 비례론, 제6권은 비례론의 도형에의 응용, 제7권에서 9권까지는 정수론(), 제10권은 무리수론(), 제11권에서 13권까지는 입체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다.

 

디오판토스(Diophantos)가 기호를 사용하여 대수문제를 풀기는 하였으나 매우 예외적이며, 그리스 수학 전반은 이론에는 뛰어나지만 수와 계산에서는 큰 진전이 없는 형편이었다.

 

기호를 사용하는 대수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에서 발달하여 알게브라(Algebra, )라는 이름과 함께 유럽에 전해졌으며,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타르탈리아(Tartaglia,N.)와 카르다노(Cardano,G.)가 3차방정식을 해결함으로써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말경 비에트(Vi0x8045te,F.)에 의하여 대수는 미지수를 구하는 방법에서 탈피하여 체계적인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로 불리는 수의 체계가 발명된 것은 7세기경 인도에서이다. 17세기에 들어와 유럽은 철학·천문학·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과학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케플러(Kepler,J.)·네이피어(Napier,J.)·페르마(Fermat,P.)·데카르트(Descartes,R.)·파스칼(Pascal,B.)·뉴턴(Newton,I.)·라이프니츠(Leibniz,G.W.) 등에 의하여 수학의 현저한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은 해석기하학의 효시로서, 기하학을 대수학과 결부시키는 대수학적 방법을 창설함으로써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근세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운동의 속도나 곡선의 접선, 도형의 넓이·부피를 구하는 문제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미적분학의 발달이 이의 해결을 도왔다.

 

18세기와 19세기는 17세기에 이루어진 수학이론의 발전시대로서 당시의 유명한 수학자로는 베르누이(Bernoulli,J.)·오일러(Euler,L.)·라플라스(Laplace,P.S.)·가우스(Gauss,K.F.)·리만(Riemann,G.F.B.)·힐베르트(Hilbert,D.)·코시(Cauchy,A.L.)·볼리아이(Bolyai,J.) 등이 있어서, 현대수학의 발달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대수학은 힐베르트의 ≪기하학기초론 ≫에서 비롯된다고도 하고, 혹은 1930년대부터의 새로운 대수계() 이론의 발전에서부터라고도 하며, 또 부르바키(Bourbaki)에 의하여 대표되는 수학적 구조()의 명확한 등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수학의 다른 부분도 공리화되었는데, 오늘날의 대수학은 인도나 아라비아의 전통을 따르는 계산기술뿐만 아니라 군()·환()·체()·속() 등의 대수계에 대해서 논하는 추상대수학이 되었다.

각 대수계는 그 각각의 공리계에 의하여 규정되며, 무정의원소()가 무엇이든 간에 모두 허용됨으로써 광대한 범위에 걸쳐 응용되게 되었다.

 

그 구성의 기초수단으로는 칸토어(Cantor,G.)가 창시한 집합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과, 집합론이 제기한 역리()의 해결을 위해서 수학 기초론의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 수학이 도입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수학의 활용은 매우 유서 깊다. 우리 나라 전통수학은 중국 수학을 원형으로 삼은 동양수학이라는 기반 위에 있으면서도, 문화의 차이만큼이나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특색을 지녔다.

 

첫째, 우리 나라는 중국 수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지만 중국 수학의 흐름에 그때마다 발맞추어 온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선 세종대(1419∼1450)는 수학을 비롯한 과학이 급성장한 시기였으나, 당시의 중국은 명대의 수학 쇠퇴기에 해당된다.

 

둘째, 우리 나라의 전통수학은 크게 나누어 사대부의 교양으로서 다분히 관념적인 수학과, 재정회계 등 행정상의 실무와 관련된 실용수학의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앞의 형이상학적인 기본관념과 뒤의 실천적인 기능은 거의 이질적인 영역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 있었던 민간수학 또는 민간수학자는 우리 나라의 전통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거의 예외없이 관료수학자였다.

 

행정조직 속에서 수학 지식을 다루는 하급 기능직 관리 사이에서 차츰 일종의 길드조직이 형성되었으며, 산사제도()가 줄곧 이어졌던 조선시대에는 세습화된 중인 산학자들 사이에 폐쇄적인 유대가 이루어졌다.

조선 초기의 사대부 수학과 중인 수학은 서로 병행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말기에는 합류함으로써 수학 자체의 내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같은 우리 나라의 전통수학의 특징은 특유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제약, 그리고 이러한 문화현상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속에서 가꾸어진 우리의 의식구조를 반영한 것임을 보여 준다.

 

중국 산학의 발달

중국에서 수학은 상수학()을 뜻하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은 수(), 산수(), 수술(), 산술(), 산법(), 산학() 등으로 불렀다.『구장산술』이래 초기 산서들은 모두 산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후에 "산술"은 "산경()"으로 바뀌고, 13세기경부터 산학과 수학을 혼용하였다.애리스매틱(arithmetic)의 번역을 산수, 산술이라 하는데, 위에서 사용한 용어의 영어 번역은 매스매틱스(mathematics)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산서들에서 취급하고 있는 내용은 대수학, 기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5, 6천년 전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발굴된 도기에 원을 포함하는 도형이 나타난 것을 보면 기하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였을 것이다. 컴퍼스(compass)와 직각자인 규구()는 후에 표준, 규범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에 수에 대한 것도 결승(), 각목()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나타내기 시작하여 숫자를 나타내는 기호가 3, 4천년 전에 이미 나타나고, 간지()가 도입된다.

 

주대()에 들어와 노예제도와 경제문화가 진일보하므로 수학과 측량기술이 발전되어 구고술이 발전하여 산학이 한 분야로 정립되어 귀족 교육을 위한 과목으로 육예( -      )가 도입되었다. 이 때 수는 구수( - 방전(), 속미(), 차분(), 소광(), 상공(), 균수(), 영부족(), 방정(), 방요())를 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7세기경 이미 산대를 이용한 계산법이 일반화되었다. 묵자, 장자 등에 의하여 논리, 무한 등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진시황의 분서와 유가의 득세로 이들은 더 이상 수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기원전 186년에 조성된 무덤에서 죽간 산서인 『산수서』가 1983수식입니다.SIM 1984년에 출토되어 『구장산술』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전한대에 『구장산술』이 완성된다.

 

『구장산술』은 오랜 기간의 산학을 집대성한 것인데 전술한 구수에서 차분은 최분(), 방요는 구고()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 체계를 유리수체로 제한하여 수학을 전개한 『구장산술』은 양의 분수의 사칙연산과 순서를 「방전」에서, 반비례를 포함하는 비례와 비례배분을 「속미」, 「차분」, 「균수」에서, 평면 도형의 넓이와 입체도형의 부피를 「방전」과 「상공」에서 다룬다. 2원 연립1차방정식과 이중가정법을 「영부족」에서, 일반 연립1차방정식은 「방정」에서 다룬다. 이 때 연립방정식은 행렬로 나타내는데 현재 사용하는 방정식의 행렬의 전치행렬을 사용한다. 방정식의 해법은 가우스 조던 소거법으로 알려진 행렬의 소거를 사용하는데, 이 때 나타나는 음수와 그 연산을 도입하여 「방정」은 항상 “방정정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또 음의 유리수를 포함하는 유리수체가 확정된다.

 

원둘레는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둘레를 근삿값으로 하여 원주율 수식입니다.pi 는 3이 되었다. 한 변 수식입니다.a인 정삼각형의 넓이는 수식입니다.{sqrt {3} a ^{2}} over {4}이고 수식입니다.sqrt {3}은 무리수이므로 원의 넓이는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넓이를 근삿값으로 택할 수 없었다. 원의 한 호와 현으로 이루어지는 도형을 호전()이라 하는데 이 때 현과 수직인 지름과 호전이 이루는 선분의 길이를 시()라 부르고, 현을 아랫변, 시를 윗변과 높이로 하는 사다리꼴의 넓이를 호전의 넓이로 정하였다. 반원을 호전으로 보고 위의 근삿값을 택하면 지름이 수식입니다.d인 원의 넓이는 수식입니다.{3d ^{2}} over {4}이 되어 수식입니다.pi `=`3일 때 현재 원의 넓이가 된다. 지름이 수식입니다.d인 구의 부피는 수식입니다.{9d ^{3}} over {16}으로 하는데「소광」에서 다루었다.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은「소광」에서 다루는데 이의 확장으로 원의 넓이와 구의 부피를 주고 지름이나 둘레를 구하는 개원()과 함께 다루었다. 기본 도형의 부피를 먼저 논하고 다면체의 부피는 이들의 분할로 구한다. 직각삼각형의 풀이를 다룬 것이「구고」이다. 기하적 문제를 대수적으로 해결하고, 또 측량에 응용한다.

 

『구장산술』은 금유() 형태의 문장제()를 제시하고 답과 답을 얻는 과정을 술이라 하여 설명한다. 문제의 배열을 보면 『구장산술』은 수학적 구조와 응용을 함께 연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구장산술』 이후의 모든 산서가 택하고, 또 다루는 내용도 이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장산술』은 중국수학에서 서양수학의 유클리드의 『원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

 

『구장산술』 이후의 산서는 『구장산술』보다 발전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중국의 모든 학문이 원전에 주를 다는 방법으로 발전한 것과 같이 전한대의 『구장산술』은 죽간 형태로 기술되어 답을 얻어내는 과정만 들어있는데, 이에 대한 주를 유휘가 첨가하여 완전한 수학서가 되었다. 「방전」에서 도입된 원의 넓이의 근삿값의 오차가 큰 것에 착안하여, 원에 내접하는 정수식입니다.6k각형의 넓이로 근사시켜 수식입니다.pi 의 근삿값으로 수식입니다.{157} over {50} `(수식입니다.=`3.14)을 구하고 원의 넓이를 수식입니다.{d} over {2} TIMES {l} over {2}(수식입니다.= pi r ^{2} ``,```수식입니다.d,``l은 원의 지름과 둘레)로 구한다.

 

유휘는 『구장산술』의 주를 마친 후에 『해도산경』을 첨가한다. 두 개의 직각삼각형과 닮은꼴을 이용한 그의 측량법은 유휘의 기하가 매우 뛰어남을 보인다. 조충지()는 수식입니다.pi 의 근삿값으로 3.1415926을 구하였는데 이의 근삿값으로 수식입니다.{355} over {113} ,`` {22} over {7}를 사용하였다. 산대를 이용한 계산과 도량형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손자산경』은 5세기 초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한다. 연립1차합동식을 다룬 그의 해법은 서양수학에서 중국 나머지정리(Chinese Remainder Theorem)로 알려져 있다. 5세기 중엽 이후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구건산경』은 백계문제로 알려진 1차부정방정식을 다룬다. 『구장산술』은 「방정」에서 부정방정식을 다루지만 상수항이 모두 0인 경우이고 한 해만 구한 것에 반하여 장구건은 양의 해를 모두 구하였다. 수식입니다.x ^{n} `=`a 형태가 아닌 일반 2차방정식은 『구장산술』의「구고」에 한 문제가 들어있다.

 

3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을 처음 다룬 것은 7세기에 출판된 왕효통의 『집고산경』이다. 방정식을 얻어내는 과정과 방정식의 해법이 생략되어 읽혀지지 못하였다. 당대에 이순풍(602수식입니다.SIM 670)은 국자감에서 사용할 교과서와 산원들을 뽑는 시험과목으로 10개의 산서를 모아 『산경십서』를 출판한다. 이미 실전된 산서도 포함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비산경』, 『구장산술』, 『해도산경』, 『손자산경』, 『오조산경』, 『하후양산경』, 『장구건산경』, 『오경산술』, 『집고산경』을 비롯하여, 『철술』(실전) 혹은 『산술습유』(실전)가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송대에 이르러 다시 산서가 출판된다. 심괄(1031수식입니다.SIM 1095)의 『몽계필담』에 심괄의 급수의 합을 구하는 법이 들어있다. 11세기부터 13세기 초에 방정식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유리식 수식입니다.sum _{k=0} ^{n} a _{k} x ^{k} + sum _{l=1} ^{m} b _{l} x ^{-l}을 나타내는 방법과 연산법으로 천원술이 도입되고 이를 이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고, 이의 확장으로 이원술, 삼원술도 도입되었다.

 

『구장산술』의 「소광」의 제곱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에서 다항방정식의 해법으로 조립제법을 사용하는 증승개방법이 도입되었다. 이들은 모두 실전되고, 13세기 이야의 『측원해경』, 『익고연단』, 주세걸의 『산학계몽』, 『사원옥감』 등을 통하여 천원술이 전달되고 진구소의 『수서구장』, 양휘의 『전무비류첩법』, 주세걸의 『산학계몽』 등으로 증승개방법이 전달되었다.

 

한편 주세걸은 『사원옥감』에서 사원술을 도입하여 4원 연립고차방정식을 구성하고, 이와 함께 유한급수론을 정립한다. 계차수열과 삼각타계열의 급수의 관계는 유작 의 황극력, 일행의 대연력, 서앙의 선명력, 왕순과 곽수경의 수시력에 들어있어서 천문학과 수학을 연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구소는 손자문제의 일반 경우의 해법을 다루고, 주세걸과 함께 『집고산경』의 생략된 부분을 채웠지만 이들은 명대에 크게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다만 송, 원대의 산학 중에 양휘의 업적만 오경, 왕문소, 정대위 등에 의하여 전달되어 천원술은 잊히게 되고 중국의 수학이 일시적으로 퇴보된다.

 

명나라 말에 리치(Ricci)를 시작으로 여러 신부들이 중국에 들어와 서양 천문학을 전달한다. 이 때 필요한 서양수학도 함께 들여오는데 리치는 서광계와 함께 유클리드의 『원론』의 처음 6권을 번역하여 『기하원론』으로 출판하고, 이지조와 함께 『동문산지』를 출판하고 이어서 구면삼각법을 포함하는 삼각함수와 대수(), 측량법 등이 출판되고, 서양 역법과 함께 이들 산서를 종합하여『숭정역서(1634)』가 출판되고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을 사용하게 된다.

 

이후 서양수학은 매문정에 의하여 동서양의 수학이 함께 연구되었다. 강희제의 지휘아래 『역상고성』, 『율려정의』, 『수리정온』으로 이루어진 『율력연원』이 출판된다. 옹정()부터 서양수학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미적분을 포함하는 서양수학은 19세기 중엽까지 중국에 전달되지 않았다. 18세기 말 송, 원대의 수학이 다시 연구되고 19세기에 주세걸의 『사원옥감세초』와 함께 조선에서 중간된 『산학계몽』이 중국에 들어가면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이선란과 와일리(Wylie)는 유클리드의 『원론』 7권부터 나머지를 번역하여 1857년에 출판하고 드모르간(De Morgan)의

『대수학 원론』의 번역본 『대수학』과 루미스(Loomis)의 『해석기하, 미적분학 원론』의 번역본 『대미적습급』을 출판하여 대수학과 미적분학을 최초로 동양에 전달한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하여 서양교육 제도가 도입되어 19세기 말 중국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삼국시대의 수학

통일신라 이전의 고구려·백제·신라의 수학에 관해서 직접 알려주는 문헌은 없으며, 다만 간접적인 자료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고구려에서는 373년(소수림왕 3) 중국의 제도를 본뜬 율령정치가 성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과세가 실시되었고 왕실의 출납을 관리하는 주부(簿)라는 관직도 있었다. 또 소박하나마 과세를 위한 농지측량도 실시되었다.

 

중국적인 관료조직 아래서의 이러한 행정상의 실무와 관련, 계산업무에 종사하는 관리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고, 이들은 중국 수학책을 통해 다소나마 체계적인 계산지식을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중의 114년(태조왕 62) 이래 554년(양원왕 10)까지의 사이에 있는 11번의 일식기사는 역 계산을 포함한 조직적인 천문관측활동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따라서 역법과 관련 있는 분야에서도 수학지식이 필요하였을 것으

로 믿어진다.

 

백제는 제8대 고이왕 당시 이미 중국식의 관제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즉, 260년(고이왕 27) 봄 4월에 재정회계와 창고를 각각 담당하는 관리가 임명되었다.

 

이 밖에 수학지식을 필요로 하는 관서로 점성 외에 역 계산의 업무를 포함하는 일관부()와 시장의 관리 및 도량형의 통제를 관장하는 도시부()가 있었다.

 

≪삼국사기≫는 기원전 13년(온조왕 6) 이래 592년(위덕왕 39)까지 26회에 걸쳐 백제의 일식기사를 싣고 있다. 중국의 문헌인 ≪신당서 ≫와 ≪주서 ≫에도 백제 역법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인다. “백제는 서적을 갖추고 있으며, 중국인처럼 역을 엮었다.”, “송나라의 원가력을 사용하여 1월을 연초로 삼는다.”

 

간접적이나마 보다 자세한 백제의 수학을 짐작할 수 있는 일본의 문헌인 ≪일본서기 ≫에 의하면 일본 긴메이천황() 14년(553)에 일본의 요청에 의하여 백제가 역서와 역의 천문학자를 파견한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비롯하여 ≪일본서기≫에 실린 당시의 기사는 고대 일본의 역법과 수학이 백제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어 701년(효소왕 10)의 대보령(), 718년(성덕왕 17)의 양로령()이 반포되어 중국의 율령제도를 정식으로 수용하게 되는데, 여기에 포함된 산학제도()가 당나라 명산과()의 내용을 반영하게 된 것은 당연하지만 수학교과서의 내용은 중국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때의 일본 산학의 교과서는 ≪손자산경 ≫·≪오조산경 ≫·≪구장산술 ≫·≪육장 ≫·≪철술 ≫·≪삼개중차 ≫·≪주비산경 ≫·≪구사 ≫로 되어 있으며, 이 중에는 당나라의 명산과에 없는 ≪육장≫·≪삼개≫·≪구사≫가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수학책을 재편집한 것으로 보이는 위의 세 교과서 중, ≪육장≫과 ≪삼개≫의 이름은 그 뒤 통일신라의 산학제도에도 나타난다.

 

고대 일본의 야마토왕조()는 산학을 국학()에 소속시키고, 천문·역법을 음양료()에서 교수하는 등 형식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 제도의 운영이 백제계 귀화인 및 그 후손들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중국제도에 없는 수학교과서의 출현은 백제 수학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있는 “점해이사금 5년(251) 정월에 왕은 한지부()의 부도()라는 사람이 빈한함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아첨함이 없고 공()·서()·산()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므로 아찬()의 관직을 주어 창고직을 맡게 하였다.”라는 기사가 삼국통일 이전의 신라에 관한 유일한 수학관계 문헌이다.

 

그러나 공물·조세를 담당하는 조부(調)가 584년(진평왕 6), 그리고 조세와 창고를 맡는 창부()가 651년(진덕여왕 6)에 설립되었고, 이보다 일찍이 5세기 말(490)에 시장의 관리기관인 시전()이 설치되었으며, 이 관서가 도량형의 제정을 비롯한 물가의 통제 및 매매에 따르는 세금징수를 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의 관료조직 속에 계산에 능한 기술자가 배치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실제로 최근 1933년 일본의 쇼소원()에서 발견된 신라의 민정문서()에는 4개 촌락에 관한 주위 사방의 거리·호수·인구·전답면적·가축수·뽕나무수 등이 기록되어 있어 회계관리의 업무내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가 산학제도를 가지게 된 것은 한반도 통일 이후의 일이며, 원시적인 셈이 아닌 체계적인 수학지식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게 된 것은 중국계의 율령정치와 관련된 정치산술로서였다.

 

고대삼국이 중국의 정치체제를 본뜬 행정조직을 도입하면서 수학지식에 관해서도 그 나름의 흡수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겠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수학책이 도입되었으며 그것들이 어떤 계층에서 어떻게 연구되었고, 또 어느 정도 보급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적어도 ≪구장산술≫ 정도는 이 시기에 이미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수학

≪삼국사기≫에 의하면 682년(신문왕 2)에 당나라의 국자감을 본뜬 국학이 설치되었는데, 이 교육기관의 한 분야로서 산학이 있었다. ≪삼국사기≫ 권38 잡지() 제7에 다음의 기록이 나타난다.

 

“산학박사 또는 조교 한 사람을 두어 ≪철경 ≫·≪삼개≫·≪구장≫·≪육장≫을 교수한다. 모든 학생은 대사(:중앙관서의 17위계 중 제12위)로부터 관직이 없는 자에 이르기까지 지위에 관계없으며 그 연령은 15세 이상 30세 이하까지를 원칙으로 한다.

 

재학연령은 9년으로 하고 만약 우둔하여 학업을 계속할 가망이 없는 자는 중도에서 퇴학시키고, 미숙한 데가 있으나 능력을 인정받은 자는 9년을 넘는 일이 있어도 계속 재학할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대나마(제10위) 또는 나마(:제11위)의 관직을 준다.”

 

신라의 이 산학제도를 당나라 및 일본과 비교해 보면 신라 산학의 독특한 성격을 알 수 있다.

 

〔표 1〕에서 신라 산학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신라는 당나라나 일본과 비교하여 교과목의 수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국가행정의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관수용() 수리기술에 치중한 현실주의 편제와 관련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이 사실과 관련해서 볼 때 교수요목 중에 ≪철술≫, 곧 ≪철경≫이 들어 있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중국의 수학자들도 외면하였던 고도로 다듬어진 이 책의 내용이 현실주의에 뿌리박은 신라의 관영과학의 하나인 산학에서 곧이곧대로 다루어졌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아마 그 중의 측량·역법 등과 관련이 있는 초등적인 산법 정도를 소개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천문학분야에서도 수학지식은 필요하다. 749년(경덕왕 8)에 누각박사()와 천문박사 등을 임명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들 교수직 밑에 누각생()·천문역생()을 둔 천문제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교육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산경십서() 중의 하나이며 동양천문학자들의 필독서이기도 하였던 ≪주비산경≫은 고대 일본의 수학 및 역법의 교과서로 쓰여졌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당연히 역생의 양성과정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주비산경≫ 중 구고법(), 즉 직각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정리는 당시 천문학자들의 상식에 속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기사 중 적어도 789년(원성왕 3) 이후 911년(효공왕 15)까지의 10회의 기록은 이러한 신라 천문학의 성과임에 틀림없다.

 

수학의 응용과 관련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신라의 건축이 기하학적 구도의 방법을 이용하였다는 것인데, 건조물에 쓰인 수학지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망덕사지() : ① 격자형()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정수·분수 전개(지면 분할과 탑과의 관계에서 20:10:5:3:1),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사각형과 정삼각형.

(2) 천군리사지() : ① 격자형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분수비례(지면 분할과 석탑과의 관계),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사각형과 정삼각형.

(3) 천군리사지 쌍탑 : ① 기본단위와 정수·분수, ② 등차급수적인 점차감소, ③ 정사각형과 대각선, ④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길이.

(4) 불국사의 평면도 : ① 격자형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분수비례(지면 분할과 석탑과의 관계),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삼각형과 그 높이, ④ 정사각형과 대각선의 등분, ⑥ 원.

(5) 불국사 다보탑 : ① 기본단위와 정수·분수, ② 등비급수적인 점차감소(1:2:4:8), ③ 정사각형과 대각선의 전개, ④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길이, ⑤ 정팔각형.

(6) 석굴암 평면도 : ① 기본단위, ② 분수 등분할, ③ 정사각형과 대각선의 전개, ④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분할( 의 크기), ⑤ 등차급수적인 점차감소(본존의 형태), ⑥ 정육각형의 일변과 외접원(굴의 입구와 내부의 평면원의 관계), ⑦ 정팔각형과 내접원(본존 대좌의 구성관계), ⑧ 원과 원주율(과 아치형천장 구축관계), ⑨구면(아치형천장), ⑩ 타원(입구천장).

(7) 석굴암 석탑 : ①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 ② 정삼각형과 수선의 길이, ③ 정팔각형과 내접원, ④ 비례중항({{#102}}:2:{{#101}}).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사각형이나 팔각형, 또는 원의 작도 자체보다도 이러한 기법을 써서 전체적인 구성미를 어떻게 창조해 내느냐 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사실이다.

 

≪주비산경≫에 실려 있는 피타고라스정리의 도시〔〕는 동양인이 얼마나 훌륭한 기하학적 직관을 지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중국·한국의 수학에서 도형이 다루어지는 것은 언제나 부피·넓이 등 도형의 측도()에 관한 계산술이 고작이었고 작도의 문제는 수학책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고려시대의 수학

고려의 산학교육과정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문헌은 없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산학의 과거시험인 명산과(명산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명산업은 2일 간에 걸친 시험에서 산서의 내용을 출제하여 답안을 작성하게 한다. 제1일에는 ≪구장≫ 10조, 제2일에는 ≪철술≫ 4조, ≪삼개≫ 3조, ≪사가≫ 3조를 전부 치르게 한다. 또 ≪구장≫ 10권의 내용을 암송하고 그 이치를 설명하는데, 각 시험마다 여섯 문제씩의 질의에 응하여 여섯 번을 치르고 그 중 네 가지를 통과해야 한다. ≪철술≫은 네번에 걸친 암송 중 2회는 질의를, 그리고 ≪삼개≫ 3권에서 2회의 질의를, ≪사가≫ 3회 중 2회의 질의를 각각 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 산학의 중심은 ≪구장산술≫이었고, 당나라의 산학제도에서는 4년의 수업연한을 필요로 하였던 ≪철술≫이 여기에서는 그 비중이 낮아졌다. 그리고 또 ≪구장≫·≪철술≫·≪삼개≫·≪사가≫ 등 명산과의 출제내용이 동시에 산학생 양성에 쓰여진 교과서의 거의 전부였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고려 명산과의 내용이 당·송의 그것과는 같지 않고 신라의 산학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교과과정면에서도 신라 산학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아야 타당하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암기 위주의 시험을 전제로 한 교과 지도의 과정에서 고시과목 이외의 산서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송대에는 많은 수학서적 중 상당량이 수입된 것으로 추측되는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산생()들은 과외 독서로 그 밖의 다른 산서도 물론 읽었을 것이다.

 

명산과의 고시에 관해서는 ≪고려사≫에 “목종 1년(998) 정월에 4인, ……같은 해 3월에 11인 급제”라는 기록이 있다. 〔표 2〕는 산사의 채용이 극히 제한되기는 하였으나 꾸준히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특히, 전국의 조세·물가 그리고 국가재정의 출납회계를 모두 관장하는 최고기관인 삼사()에 가장 많은 산사가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천문관서인 태사국()에는 역 계산을 담당하는 보장정(, 종8품) 1인과 사력(, 종9품) 2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동양천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시력()이 고려에서 시행된 것은 충선왕 때부터이며, 이에 앞서 수시력의 계산법을 먼저 익혔다.

 

≪고려사≫ 열전 권21의 다음 기록은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충선왕이 원에 머물렀을 때 태사원()이 역 계산에 정밀하다는 사실을 알고 천문·역술에 조예가 깊은 최성지()에게 돈 100근을 내주어 스승을 구하여 교수받도록 하였다. 마침내 수시력을 익힌 다음 귀국하여 그 방법을 전하였다.”

 

수시력에는 황도좌표와 적도좌표의 변환에 4차방정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려사≫에는 역관들의 일식계산이 번번이 실패한 기사가 실려 있으나, 그런 가운데에도 1357년(공민왕 6)의 일식기록은 중국이나 일본 어느 쪽의 문헌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독자적인 기록이다.

 

1346년(충목왕 2)에 이미 수시력에 관한 해설서인 강보()의 ≪수시력첩법입성 ≫이 엮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고려 수학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① 산학제도가 통일신라시대의 연장이었다는 것이다. 즉, 당·송의 문물제도를 본받았으나 산학의 내용에 관해서는 통일신라의 것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중국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없다. 신라로부터 계승된 ≪철술≫이 송대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려와 송나라의 산학제도가 서로 무관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② 수학의 위치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국자감에 소속되어 있다. 중기 이후 잡과() 중의 하나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그나마 학문적인 성격을 인정받았던 수학이 순전한 기술로 격하당했음을 뜻한다.

③ 수학이 극히 제한된 특수신분층에서만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산사(산학자)는 민간과의 접촉이 차단된 내무직이자 특수한 전문직이었으며 수적으로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폐쇄된 사회 내에 산사직의 세습화 경향은 수학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즉, 고려는 신라 이래의 산학을 이어받아 간직하였을 뿐 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④ 고려 말기에 중국으로부터 산서를 도입하였다. 산학 고시의 과목 이름 외에 고려에 어떤 수학책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송대의 많은 산서 중 적어도 ≪철술≫을 제외한 산경십서가 전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산학계몽 ≫·≪양휘산법 ≫·≪상명산법 ≫ 등이 들어온 것은 틀림없다. 이를 통해 조선의 수학을 준비하였다는 점에서 고려 수학의 의의를 다소나마 평가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수학

고려가 망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양전(), 즉 농지측량의 제도가 문란하였다는 것이다. 세종대(1419∼1450)에는 이 제도의 확립을 꾀하였고, 이에 따라 통일신라나 고려 초기와 마찬가지로 수학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났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종 25년 11월 17일 세종의 다음 칙유는 이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산학은 비록 한낱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국가의 행정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 최근 농지를 등급별로 측량하는 데 있어서 이순지()·김담() 등의 활약이 없었던들 그 셈을 능히 할 수 있었을까. 널리 산학을 익히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

 

수학에 관한 세종의 열의는 집현전교리 김빈(), 한성참군 우효강() 등 고위의 문관들까지도 이것을 배우게 할 정도였으며(세종 13년 3월 12일), 한편으로는 총명이 뛰어난 사역원의 직원 두 사람을 골라 수학연구차 중국에 유학시켰다(같은 해 3월 2일).

 

1433년(세종 15)에는 경상도감사가 ≪양휘산법≫ 100권을 동활자로 인쇄하여 왕에게 바쳤다. 이보다 일찍이 왕은 부제학 정인지()로부터 ≪산학계몽≫에 관한 강의를 받았다.

 

1438년에 제정된 기술분야 10개 교과, 즉 잡과십학()에 관한 교육과정 중에서 산학의 내용은 ≪상명산법≫·≪양휘산법≫·≪산학계몽≫·≪오조산경≫·≪지산 ≫의 5개 교과로 되어 있으나, 이 중 ≪상명산법≫·≪양휘산법≫·≪산학계몽≫ 등이 나중에 산학 채용고시의 출제교과서로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실렸다.

 

이 밖에 세종은 산법교정소()·역산소() 등을 설치하여 산학의 회복을 위하여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조대(1455∼1468)에는 산학의 제도가 더욱 정비되어 세종대까지 있었던 산학박사 대신에 산학교수(, 종6품) 1인, 별제(, 종6품) 2인, 산사(, 종7품) 1인, 계사(, 종8품) 2인, 산학훈도(, 정9품) 1인 등의 관직을 두었으며,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산학은 6개 중요 행정부서인 육조 중 호조에 속한다. 호조는 호구·농지·조세·부역·공납·정부미 대여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판적사(), 중앙 및 지방에 비축되어 있는 화폐·양식 등에 관한 재고조사의 임무를 맡은 회계사(), 왕실 내의 여러 가지 지출을 담당하는 경비사() 등 국가재정을 다루는 부서들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30인 이상 되는 산원()들이 배치되었다.

 

≪경국대전≫에는 호조에서 양성하는 산생()의 수가 15인으로 정해져 있고, ≪속대전≫에서는 61인으로 대폭 늘어난 점으로 미루어 행정기구의 확대 및 복잡화에 따라서 계산기술을 요하는 업무범위가 확대된 것만은 확실하다.

 

관료조직 내의 기술학에 관한 조선 초기의 십학()은 고려의 제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태조 즉위년(1392)에 의학박사 3인과 조교 2인, 율학박사 2인 및 조교 2인과 함께 산학박사 2인을 두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병()·율()·자()·역()·의학()·산학 등의 육학()을 일반 서민층 출신으로 하여금 배우게 하였다.

 

1406년(태종 6)에는 유학·이학()·음양풍수학·약학의 4과와 더불어 잡과십학의 교육체제가 성립되었다. 그 뒤 1430년에 이르러 십학에 관한 교육과정이 확립됨으로써 교육내용도 한층 충실해졌다. 그러나 세종대에 완성을 본 이 십학의 교육제도는 다음 대인 세조의 집권이 시작되면서부터 벌써 무너지는 징조를 보였다. 즉,1465년(세조 11)에는 천문·풍수·율려·의학·음양학·사학·시학 등의 칠학()이 적극 장려되었지만, 세종 당시 그토록 중요시되었던 산학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산학은 성종 때 다시 의·역·율·음양·산·악·화()·도학() 등 팔학의 하나로 나타나게 된다(≪경국대전≫), 이 중 의·역·율·음양학의 4과에는 정식의 과거제도가 있었지만, 산·화·도·악학의 4과에는 각 부서에서 직접 행하는 채용고시인 취재법()이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전체를 통하여 관료조직 내에 있어서의 산학의 위치 격하는 끝내 개선되지 않았다.

 

≪경국대전≫에 실린 천문제도 중 음양과()의 역산 분야의 채용고시과목으로 ≪칠정산내편≫·≪칠정산외편≫이 들어 있다. ≪칠정산내편≫은 수시력을 우리 사정에 맞추어 재편찬한 것이고, ≪칠정산외편≫은 명·원시대의 회회력()을 해설한 것으로, 수리에 밝은 정초()·정인지·정흠지()·이순지·김담 등에 의하여 엮어졌다.

 

정인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종에게 ≪산학계몽≫을 강의한 바 있으며, 고려의 천문학자들이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조차 몰랐다고 혹평할 만큼 수학에는 자신이 있었다. 또, 이순지와 김담은 역산의 대가로서, 특히 김담은 이 능력 하나만으로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부정(, 종3품)의 벼슬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천문학(역산) 분야에서도 상당 수준의 수학이 다루어졌음이 틀림없다.

 

조선 중기의 수학

산학, 즉 왕도정치하의 관수용 수학은 비상 시국이나 정국의 혼란에서 오는 행정기능의 마비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일은 있었지만, 그 실학적 성격 때문에 국정이 안정되면 관리조직 속에 다시 도입되는 경향을 보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부득이 끊긴 산사의 채용이 전란의 소강상태와 함께 곧 부활한 것은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이다.

 

산학시험의 합격자 명단이자 인사기록부이기도 한 〈주학입격안 〉에 나타난 일본의 제2차침략인 정유재란을 전후한 5년간의 공백은 아마 1차침략 때의 타격이 겹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592·1597년의 임진·정유 두 차례의 참화는 산학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산생 양성의 교과서이자 산사 채용고시의 출제 근거이기도 한 ≪산학계몽≫이나 ≪양휘산법≫마저도 침략군의 약탈에 의해서 왕실의 서고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산생의 양성은 물론 산사의 채용시험조차도 거의 형식에 그쳤음을 말해 준다.

 

중국 수학사에 있어서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송·원대의 수학을 흡수, 소화하였던 세종대를 거쳐서 왜란이 시작되기까지의 약 150년 동안에 조선 수학자의 손에 의해 수학책도 저술되는 등 그런 대로 독자적으로 다듬어진 전통수학이 싹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실증하는 문헌은 일체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세종대 이후부터 양란을 전후한 시기가 한국수학사상 실로 공백의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일본측의 입장에서 보면 이 침략전쟁은 한반도로부터 반입해 간 산서가 일본 전통수학의 기초를 이룩하였다는 점만으로도 문화사상 커다란 계기를 만들었다. 〔표 3〕은 이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잡과십학 중 적어도 천문학·산학·의학·역학에 관한 채용고시는 극도로 난맥을 이룬 문·무과의 경우에 비한다면 기술학의 성격상 거의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이 경향은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꾸준히 지켜졌다. 이 중 산학은 채용인원의 수로 미루어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그 규모가 확대된다.

 

조선 중기는 산학의 기술관리직을 독점하는 중인() 산학자의 집단이 형성되는 기틀이 굳어지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수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 후기의 수학제도상으로 본 산학의 위치

이른바 실학기에 접어들면서 산학제도가 정비되었는데, ≪만기요람 ≫ 재용편()에는 산생이 될 자격을 다음과 같이 완화하였다.

 

즉, “구제도에서는 산생이 되기 위해서 국내·국외의 수학책 16종 내외십육파()에 모두 정통한 뒤 비로소 입학을 허락하였으나, 1760년(영조 36) 호조판서 홍봉한()의 건의에 따라 16종 중 12종에 통달한 자를 추천하고 시험에 세 번 실패한 자는 천거에서 제외시키도록 정하였다.”

 

1745년에 공포된 ≪속대전≫에서는 산생의 정원이 종전의 15인으로부터 61인으로 대폭적인 증가를 보인다. 따라서 1808년(순조 8)에 엮은 ≪만기요람≫에는 관료체제 내의 계사() 60인의 업무내용을 〔표 4〕와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영조대에 정비된 것으로 보이며, 실질적인 산학의 팽창은 이미 숙종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학자들의 계몽서 속에 나타난 수학

16세기 전반부터 시작된 중국을 통한 서양과학과의 접촉이 첫 계기가 되어 일어난 실학파운동은 당연한 결과로 우리의 전통적 과학인 천문학·수학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였다. 이 때문에 실학자들의 계몽서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수학에 대한 그 나름의 언급이 있다.

 

이규경()은 60권으로 된 ≪오주연문장전산고≫ 속에서, 이기()·성명()에 치우친 중국계의 형이상적인 학문과 오직 궁리()·측량만을 다루는 서구의 형이하적인 학문을 비교한 데 이어 권9의 기하원본변증설()에서 기하학의 용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우주의 크기를 재고, 해와 달 기타 별들의 고도가 지구의 지름에 비하여 얼마나 되며, 또 산높이, 누각의 높이, 골짜기며 샘의 깊이,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알아보고, 토지며 성곽·궁실 등의 넓이를 헤아린다.”

 

전통적인 성리학의 입장을 탈피하고 경험주의를 주장한 최한기()는 관리채용시 수학을 시험해야 하는 이유로 ≪인정 ≫ 권17 선인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수학에 관한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식견을 재어보고 수학적 사고의 여부에 의하여 합리적 태도의 여하를 통찰할 수 있다.”

 

형 정약전()의 묘비에 “≪기하원본≫을 연구하여 심오한 조예를 지녔다.”고 적었던 정약용()은 도르래〔〕의 역학적 구조에 관한 설명을 스스로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황윤석()과 홍대용() 등은 그들의 전집 속에 수학에 관한 장을 따로 두고 있으며, 최석정()·최한기·남병길() 등은 따로 수학에 관해 저술하였다.

 

요컨대, 실학기라고 불리는 16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계몽활동기에 수학전문가가 아닌 양반지식층이 수학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는 수학은 남병길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종래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초보적인 단계였다.

 

수학자와 수학서

중인 출신 산학자 경선징()의 ≪묵사집 ≫은 ≪산학계몽≫을 본뜬 수학책이며, 내용도 그다지 독자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중인 산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그의 처지로 보아, 조선 산학의 경전이라 할 ≪산학계몽≫의 해설서 이상의 저술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최석정의 ≪구수략 ≫ 속에서 당대 수학의 제1인자로 극찬받고 있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대부 출신 최석정의 수학저서 ≪구수략≫은 주산·격자셈〔〕 등 새로운 계산법을 소개하고는 있으나, 내용은 흡사 유럽의 중세수학을 연상시키는 사대부 수학의 대표적인 예이다.

 

현감·군수를 역임한 임준()은 ≪신편산학계몽주해≫를 엮었는데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산학계몽≫을 해설한 것이다. ≪조선인명사전≫은 그가 수학에 뛰어났으며, 김시진()이 그의 도움으로 파본이 된 ≪산학계몽≫을 어김없이 복원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박율()의 것으로는 ≪주학본원 ≫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원본은 볼 수 없으나, 이 책의 복사판 내지는 수정판이 황윤석의 ≪이수신편 ≫ 중에 ≪산학본원 ≫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인 산학자 홍정하()의 ≪구일집 ≫은 ≪구장산술≫·≪상명산법≫·≪산학계몽≫ 등을 골자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수학책과 다름이 없으나, 흔히 ‘천원술()의 책’으로 알려진 ≪산학계몽≫에 실린 내용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의 천원술 문제가 다루어져 있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구일집≫의 내용을 축소한 꼴로 이루어진 ≪동산 ≫이 있으나 이러한 재편집이 홍정하 자신에 의한 것인지, 혹은 후일 다른 사람의 손으로 엮어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전체의 양이 겨우 27매로 된 ≪동국산서 ≫는 실무용으로 엮어진 듯하다. 1718년(숙종 44)에 일어난 기사가 실린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중엽쯤의 판으로 보인다.

 

유학자로서 대성한 황윤석의 ≪산학입문 ≫과 ≪산학본원≫은 그의 백과사전식 편저 ≪이수신편≫ 중의 일부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학본원≫의 머리말에는 박율의 수학책 ≪주학본원≫을 근거로 삼아 그것을 수정하였다는 단서가 덧붙여져 있다.

 

실학파의 학자 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던 홍대용의 ≪담헌서 ≫ 외집 권4는 수학을 다룬 〈주해수용내편 〉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수학, 주로 ≪산학계몽≫에 ≪수리정온 ≫의 내용을 가미한 수학지식의 일상화·사회화를 꾀하였다.

 

최한기의 ≪습산진벌 ≫ 역시 ≪수리정온≫을 다분히 참조하면서도 내용은 홍대용의 ≪주학수용≫에 비하여 극히 고색이 짙고, 수학수준도 낮다.

 

본격적인 수학활동으로 주목을 끈 것은 남병길·이상혁()의 저술이다. 이조참판·형조판서 등을 지낸 남병길은 여느 양반 지식인과는 달리 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이상혁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당대 최고의 수학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옛 산서에 있는 측량술에 관해서 그림으로 설명을 붙인 ≪측량도해 ≫·≪구고술요도해 ≫, 그리고 ≪구장산술≫을 해설한 ≪구장술해 ≫ 이외에 그의 본격적인 저술인 ≪산학정의 ≫ 상·중·하 3편과 〈무이해 〉 등이 있다.

 

≪산학정의≫는 천원술·대연술() 등의 전통적인 수학과 ≪수리정온≫의 새 수학을 아울러 깊이 다루었으며, 〈무이해〉는 서양의 대수방정식의 해법()과 동양전통의 천원술이 같은 내용의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논문이다. 중인 산학자인 이상혁은 ≪익산 ≫·≪차근방몽구 ≫·≪산술관견 ≫ 등 독자적인 연구를 담은 저술을 하였다. 이상혁이야말로 중국계의 전통수학에 얽매였던 종래 수학자와는 달리 스스로의 경지를 개척한 유일한 우리 나라 수학자였다. 이밖에도 실학기, 특히 후기에 갈수록 많은 수학서가 저술 또는 편저된다. 현재 각 도서관의 고서목록에 있는 필사본들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 실학기의 수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학활동의 발전단계에 관해서는 ① 중인 산학자 사이에서의 의욕적인 수학연구 및 저술활동(예:홍정하의 구일집), ② 실학자 스스로의 수학서 저술(예:홍대용의 주학수용), ③ 이른바 사대부 수학과 중인 수학의 합류(예:남병길과 이상혁의 공동연구 및 저술활동), ④ 유럽수학에의 접근 및 한국수학의 독자적 발전의 계기(예:이상혁의 산술관견)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수학 연구태도의 변화에 관해서는 ① 수학서를 경전시하였던 전통적인 경향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즉, 사대부 수학에 나타난 고전화의 경향은 기실 그 내용을 보면 옛 산서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방법을 제기한다는 형태로 나타났다.

② 백과사전적인 교양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전문적인 독립과학으로서의 수학이 차츰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수학책의 저술이 현저히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경향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개화기의 수학

1895년(고종 32)부터 실시되기 시작한 신제도에 의한 학교교육 속의 산술(또는 수학)은 내용이 전면적으로 유럽식으로 개편되었다.

 

산학은 이제 한국수학사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새로 제정된 〈소학교령〉에 의하면 심상과() 3년, 고등과 2년으로 되어 있으며, 이 중 산술교육의 목표 및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일용계산을 익히고 동시에 사상을 정밀히 하고, 유익한 지식을 주는 것을 요지로 삼는다. 심상과에서는 처음에 10 이하의 수에서 시작하여 1만 이내의 범위에서 가감승제와 통상소수()를 교수하는 것이 가하다. 심상과에서는 필산과 주산을 행하지만 그 병용은 지역의 사정에 의해서 정한다.

 

고등과에서는 필산과 주산을 병용하고 주산에 있어서는 가감승제의 연습, 그리고 필산에서는 도량형·화폐·시각에 관한 계산문제로부터 점진하여 간단한 비례문제와 통상의 분수 및 소수를 교수하지만 수업연한에 따라 더 복잡한 비례문제까지 취급하여도 가하다.

 

산술의 교수는 이해력을 정밀히 하고 운산()에 익숙하여 그것을 자유로이 응용할 수 있도록 힘쓰고, 또 정확한 말로 운산의 방법과 이유를 설명하고, 겸하여 암산에도 숙달하게 함을 요한다.”

 

한국수학사상 이때 비로소 필산과 주산이 교육기관을 통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해에 전통적인 유학교육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성균관()도 교육과정의 개편을 단행하여 이수과목 중에 산술을 두었다.

 

사범학교(1895년 설립)와 중학교(1899년)에서는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산술 이외에 대수와 기하를 교수하였다. 당시 쏟아져 나온 수학책(대부분이 교과서) 중 현재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개화 말기의 수학을 엿볼 수 있다.

 

≪정선수학 ≫(1900)은 일본에서 엮어진 유럽계의 ≪신수학≫을 재편집한 것이며, 계산의 사칙부터 기하·삼각법·측량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산술신서 ≫(1900)는 세로쓰기로 된 ≪산술신서≫에 비하면, 수식을 포함하여 모두 가로쓰기 형태로 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만큼 유럽형태에 접근하고 있다.

 

≪신정산술 ≫ 3권은 1895년의 〈소학교령〉에 의하여 엮어진 심상과(3년 과정)의 교과서이며, 아라비아식 기수법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정수(자연수)의 계산사칙과 그 응용을 다루고 있다.

 

≪산학신편 ≫ 상·하권은 대한예수교 발행인 중학교과과정용의 번역판이다. 내용은 도량형·시간·순환소수·비례산·백분율·세금·평방근·입방근·등차 및 등비급수·면적·체적계산·평면기하 등이다.

 

≪산학통편 ≫ 상·하권도 중학교용 교과서로 분수·소수·비례·개방·급수(등차·등비)·구적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증명법을 도외시하는 종래의 계산수학이 여전히 배경에 깔려 있다.

 

≪초등산술교과서≫ 상·하권은 일본에서 인쇄된 양장본이다. 이 책의 저자 유일선()은 우리 나라 최초의 수학잡지

 

≪수리잡지 ≫를 1905년 11월부터 1906년 9월까지 8권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개화기 수학의 특징은

첫째, 겉으로는 유럽계의 수학을 수용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종래의 수학관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리의 증명 따위는 외면한 채 결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 수학의 보급이라는 점이다. 1908년 전국 5,000개 학교에서 20만의 학생을 수용하였다는 통계를 그대로 따른다면, 당시 수십만명이 수학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학교교육 속의 수학이었고, 앞서 말한 남병길·이상혁 등에 의한 진지한 수학연구활동은 이 신식수학에 억눌려 그 후계자를 잃게 되었다.

 

이상 조선 말기까지의 우리 나라 수학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성을 찾아볼 수 있다.

① 수요면에서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 나라 수학은 관영과학이었으며, 민간수학은 거의 싹트지 않았다.

② 수학자의 교양적 배경에 관해서는 다분히 유교적 사상의 지배를 받았으며, 수학을 경전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③ 관영과학의 성격상, 전통적인 형이상적 수리사상()이 공존하였다.

④ 수학이 중인 산학자들의 집단에 의해 거의 독점되었으며, 따라서 학문상의 자극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⑤ 수학의 사회적 효용이 유럽적 의미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라기보다 행정조직 속의 하부관료가 맡는 기술〔〕이었다는 사실은 진지한 수학연구에의 의욕을 둔화시켰다.

 

근대의 수학

조선 후기에 선교사들에 의하여 서양 수학이 잇달아 도입되었으며,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학교가 설립되어 각급 학교에서 수학과목을 교육하였고, 교과서도 1900년에서 1911년 사이에 14종이 나왔다. 이 시기에는 이상설()·이상익() 등이 유명하였고, 일제강점 후에는 최규동()·안일영()·유일선() 등이 교사로서 활약하였다.

 

도입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수학은 민족항일기에서 학교교육을 위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일제하의 우리 나라 수학연구는 1915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서 교육 위주로 명맥을 유지하였고, 1938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설립 정도가 기록될 뿐이다.

 

실제로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서의 교육은 중등교원 양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이춘호()가 첫 한국인 수학교수로 강의를 맡았다.

 

이 때 일본에서 동경제국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최윤식()이 경성광산전문학교 교수로 활약하였으며, 광복 당시에는 장기원()이 연희전문학교에 재직하였다. 이 밖에 다수의 중등교원이 있었다.

 

현대의 수학

1945년 경성대학에 최초로 수학과가 개설되고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하면서 문리대와 사범대에 각각 수학과가 개설되었다. 대구사대(현 경북대 사대)와 연희대학교에 수학과가 개설된 후 차례로 여러 대학에 수학과가 개설되었다. 전술한 일본 유학 출신의 학자들이 교수로 일하고 초기에는 학부를 다니는 상급생이 아래 학년을 가르쳤다.

 

1946년 10월 조선수물학회가 창립되고 초대회장으로 최윤식이 선출되었다. 1948년 조선수물학회는 한국수물학회로 명칭을 바꾸고, 1952년 한국수물학회에서 분리하여 대한수학회가 발족하였다. 1955년 학회 잡지 『수학교육』을 창간하고, 1964년 『수학』, 1967년 『대한수학회지』와 『대한수학회보』로 분리하여 발간하였다. 1986년부터 『대한수학회논문집』이 추가되었다.

 

순수 수학 논문집으로 1958년부터 Kyungpook Mathematical Journal이 출판되고 있다. 1946년 조선수물학회의 수학 부문의 회원은 20여명인데 2010년 회원수는 3,353명으로 이 중에 수학관련 학과 교수 회원은 1,893명이다. 1949년 이임학의 논문(On a problem of Max A. Zorn)이 Bull. of AMS에후 출판된 이래 과학기술논문색인(SCIE)에 들어있는 논문 수로 한국은 2008년 세계에서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부터 10년 동안 각국의 논문 수의 증가는 대체로 50% 증가하는데 중국이 1,126편에서 4,624편으로 한국은 281편에서 864편으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는 1981년 국제수학연맹(IMU)의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진 마지막 등급인 그룹 1 회원으로 가입하고 1993년 그룹 2로 상향한 후 2007년 그룹 4로 국가 등급이 상향되었다. 2단계 상향은 한국이 역사상 유일하며, 이는 국제수학계가 한국 수학의 급속한 발전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이다. 매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수학자대회(ICM)에서 수학의 최고 영예인 필즈메달(Fields Medal)이 수여되는데 2014년 8월 서울에서 국제수학자대회가 개최된다.

 

대한수학회 외에 대한수리논리학회, 대한수학교육학회, 한국산업응용수학회, 한국수학교육학회, 한국수학사학회, 한국여성수리과학회 등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40년부터 출판되는 수학 논문들의 리뷰(review)를 모아 미국수학회에서 출판하는 Mathematical Reviews는 2007년 2,200,000개 이상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면 20세기 후반기에 폭발적인 연구결과가 얻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수학기초론,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 위상수학, 확률 통계와 유한수학 정도로 구분하던 수학이 2010년 미국수학회가 대별한 분야의 수만 62개이다. 복잡한 구조의 분석에 상응하는 수학적 구조를 도입하여 컴퓨터의 도움과 함께 수학의 도구를 사용하여 이들을 풀어내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전통적인 순수 수학보다 이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응용수학의 발전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무한을 포함하는 수학적 구조를 논리적으로 다루는 수학은 인류 문명이 발달하는 것과 함께 발전하여, 미래 문명의 발전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수학은 분야가 세분화 되어 수학자들 사이에도 소통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수학적 구조와 방법으로 얻어내는 결과와 그 과정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으로 수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수학 기호 - 1 더하기 1은?

수학에서는 언어와 상관없이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서, 또 복잡한 개념을 간략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호들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가 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기호들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날카로운 각도, 둔한 각도

plus (더하기) /
positive(양수)

 

minus(빼기) /
negative(음수)

multiplied by
(곱하기)

 

divided by
(나누기)

equals
(~와 같다)

 

is not equal to
(~와 같지 않다)

is greater than
(~보다 크다)

 

is greater than or equals to
(~보다 크거나 같다)

is less than
(~보다 작다)

 

is less than or equals to
(~보다 작거나 같다)

empty set
(공집합)

 

is a subset of
(~의 부분 집합이다)

union of two sets
(두 집합의 합집합)

 

intersection of two sets
(두 집합의 교집합)


도형
 부분에서 자주 나오는 각도(angel)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어.

acute angle(예각)
직각(90도)보다 작은 각도. 끝부분이 뾰족하기 때문에 '날카로운'이라는 뜻의 acute라고 한다.

right angle(직각)
정확히 90도를 이루고 있는 각도. 정확하기 때문에 right라고 한다.

obtuse angle(둔각)
90도 이상이며, 180도(straight angle) 이하인 각도. 뭉툭하기 때문에 '무딘, 뭉툭한'이라는 뜻의 obtuse라고 한다.

수학 시간에는 수를 다양하게 계산(calculation)하는 방법 외에도 도형을 자주 배우게 돼. 도형을 영어로는 어떻게 부를까?

 

다양한 도형들 - 원부터 팔각형까지

 

 

 

circle
(원)

semi-circle
(반원)

oval
(타원)

 

 

 

triangle
(삼각형)

square
(정사각형)

rectangle
(직사각형)

 

 

 

pentagon
(오각형)

hexagon
(육각형)

heptagon
(칠각형)

 

 

octagon
(팔각형)

3차원 도형들

앞서 살펴본 평면(2차원) 도형 외에도 다양한 3차원 도형들이 있어.

 

 

 

 

sphere
(구)

cylinder
(원통)

cone
(원뿔)

cube
(정육면체)

다양한 삼각형

앞서 살펴 본 각도와 마찬가지로 삼각형(triangle)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어.

regular/equilateral triangle(정삼각형)
세 변의 길이가 동일한 삼각형

isosceles triangle
(이등변삼각형)
두 변의 길이가 동일한 삼각형

acute triangle
(예각 삼각형)
세 개의 예각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obtuse triangle
(둔각 삼각형)
하나의 둔각을 포함하고 있는 삼각형

구장술해조선 말기 남병길이 지은 수학책. 규장각도서.

 

 

 

 

참조항목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기하학, 기하학원론, 대수학, 리하르트 데데킨트, 피에르 라플라스, 미적분학,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방정식, 변분학, 사이버네틱스, 아리스토텔레스, 에를랑겐목록, 레온하르트 오일러, 오퍼레이션리서치, 유클리드기하학, 입체기하학, 탈레스, 화법기하학, 프린키피아, 플라톤, 피타고라스, 해석기하학, 해석학

 

역참조항목

공리계, 그람행렬식, 그리스수학, 극대이데알, 근기, 근심, 근평면

 

카테고리

  • 순수과학 > 수학 > 수학일반

     

출처 ^ 참고문헌,

  • [수학 [mathematics, 數學] (두산백과)

  • [수학 [Mathematics] (학문명백과 : 자연과학, 조완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수학의 역사(상, 하)』, 서울: 경문사. (2002)
  • [생각하는 수학–개념으로 읽는 수학역사』, 서울: (주)사이언스북스.
  • [간추린 수학사』, 서울: 경문사. (2002)
  • [두산백과 사이트
  • [위키피디아
  • [과학사사전
  • [사이언스올 과학백과사전
  • [대한수학회소식지
  • [수학 [Mathematics, math, 數學] -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초등영어 개념사전, 20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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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학기술사자료대계』, 수학편 1-10(김용운 편, 여강출판사, 1985)
  • [한국과학기술사자료대계』, 천문학편 1-10(유경로 편, 여강출판사, 1985)
  • [한국과학사』(김용운, 김용국, 과학과 인간사, 1977)
  • [文淵閣四庫全書』, 子部 天文算法類(臺灣 商務印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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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thematics and its History(J. Stillwell, Springer, 1989)
  •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 3(J. Needham, Cambridge Univ. Press, 1959)
  • [수학 [數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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