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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국내)

노무현 전 대통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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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2

포괄적 뇌물수수 정리,

0. 검찰 수사 착수 : "세종증권 매각과 휴켐스 인수 비리 의혹".... 주연 : 박연차

1. 초기에,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서 노건평의 물증이 드러남 → 노무현으로 수사가 확대 되고... 이후, 증거 확보와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

2. 노무현 사저 신축비 15억원 박연차에게서 입금된 것이 확인... 검찰 수사 박차.

3. 박연차... 노무현의 조카사위에게 500만달러 송금 포착... → 500만 달러는 노무현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고, 노무현 조카사위에게 전달된 것... (조연 : 노무현 조카사위, 찬조출연 : 노무현 정도...) → 이 후로... 갑자기 수사가 박연차 게이트에서 노무현 게이트인처럼 분위기 반전.., (추후, 모든 언론이 스스로 반성 내용을 기사로 게재할 정도로... 노무현 게이트로 분위기가 바뀜)

4. 노건평 사건과 조카사위 사건, 15억까지, 노무현이 불리한 위치였으나... 2009년 4월(아래)부터 분위기반전.

5. 노무현 사저 신축비 15억에 대해서는 채무관계에 의해, 차용증이 나타나면서... 무혐의 확인.

6. 500만 달러의 댓가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이게 만약, 댓가로 전혀 관계없는 사업거래였다면 명백하게 무죄인데, → 이 조카사위... 박연차와 체결한 사업계획서를 검찰에 증거물로 제출... (실상, 게임 끝?)

7. 박연차 : 베트남 정부가 화력발전소 건설의 입찰을 태광실업으로 확정한다는 공문을 검찰에 제출.(쐐기?)

8.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측근 의혹에서 발생한 거래는 모두 실명계좌로 거래하고, 투자액 외의 잔고는 계좌에 그대로 남아있었음. → 여기까지 나오면서, 당시, 언론에서도 "노무현의 반격"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

9. 그러나, 이 증거물들이 보도된 직 후 터진 시계... 다시, 분위기 반전...  → 조선일보 기사에, 노무현 부인이 집에서 언급한 내용이 기사로 실리면서, 사택 도청설도 제기되면서 사건 일파만파... → 그러나 검찰은 이 시계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사과... 500만달러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시계라면, 뇌물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액인데, 검찰이 증거로 잡지못한건 실체가 없다는 의미?

10. 이후, 박연차와 사과박스(?)를 주고받은 천신일 조사과정에서, 시작과 동시에 살짝 턴게, 이명박 대선자금 300억원의 의혹... → 이 때, 검찰의 그 유명한 발언이 나옴... "선거법은 수사대상이 아니다"... 3000만 달러는 선거법으로 몰아가기...? 그 외, 연루된 의혹을 받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줄줄이 나옴...

3~10. 검찰은 노무현에게 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하였으나... 무려 2달이 넘는 기간동안 영장 청구를 못함. → 영장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이것이 어떤 의미일 건지 알 것임. → 또한, 노건평은 쉽게 영장이 발부되고 기소를 했는데 반해, 노무현은 영장부터 기소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

11. 이 이후... 노무현이 여론에서 역전 분위기 갈수록 고조 → 몇 주 후, 사망, → 타살설이 나온 이유 중의 하나가... 처음에는 불리했지만, 수사의 방향에서 검찰이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 즉, 노무현 측에서는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데, 자살이 어이가 없다는 반응과 또한, 천신일 쪽으로 넘어가면서, 이명박 쪽에서, 노무현과는 스케일이 다른 금액이 나오자 무마시키 위한 것이라는 의혹...

13. 검찰...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이 없어 수사 종결...

14. 이후 알려진 사실 : 사건 당일, 노무현 시신을 조사하기 위해 국과수가 급파되었지만, 검찰의 요구가 없어서... 국과수 그냥 상경.

15. 노무현 측근은 문화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 특이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닌,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로 소송을 제기... : 명예훼손은 사실도 해당되지만, 정정 보도 요청은 당시 "기사내용=검찰발표"라는 의미가 있기때문에 법원판결의 의미가 있다? → 문화일보 변호인 측이... 검찰을 발언을 인용했기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내세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고, 또한, 정정보도 요구이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위해 검찰의 수사 자료가 법원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작전? → 법원 판결 : 노무현 승... 그리고, 노무현은 부인이 아니라, 형이 다 말아먹었음...

판사 재임 시절에도 노건평의 금품수수 때문에... 판사직도 그만 두고, 대통령 때도 노건평의 금품수수가 불리한 여건을 계속 조성함... 부인이 뭔가 받았다는 내용은 거의 없고, 시계마저도 검사의 사과에 의해 해프닝으로 끝남

노무현이 뇌물받았단 증거좀? 이런것도???

가족 박연차 시계 부인, 다 집어치우고 노무현 '본인'이 직접 돈을 탐내서 받았단 증거 있으면 보여주세요, 쓸때없는 잡소리, 물타기, 날조는 선동질이 실패할까봐 훼방을 놓는 빨갱이 간첩으로 취급하겠습니다, 

네네치킨, 故노무현 대통령 합성사진 게재 사과,

네네치킨이 페이스북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싣고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자 이를 사과했다.

네네치킨은 2일 홈페이지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 합성사진 페이스북 게재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상처받은 유족과 노무현 재단 관계자들에게 찾아가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글에 따르면 네네치킨 경기서부지사장은 전날 저녁 오후 6시30분 네네치킨 경기서부지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닭다리로 싸우지 마세요, 닭다리는 사랑입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이 커다란 닭다리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삭제 조치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며 "고인을 조롱하는 의도가 있다", "일베에서 만든 사진이다"는 등 누리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이어 경기서부지사는 페이스북에 "본 사진은 네네치킨과 무관하고 경위를 파악중"이라는 1차 사과문을 올린 뒤 글을 올린 직원과 연락을 시도했다.

네네치킨은 이 직원이 지난해 10월 경기서부지사에 입사했고 현재 해외에 체류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직원은 "비하의 의도는 없었고, 서민 대통령과 서민 치킨이 어울릴 것 같아 인터넷상에 떠도는 사진을 올렸다"고 말했다.

누리꾼 김 모씨는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깎아 먹었다"고 말했고, 박 모씨는 "어제 저녁에 글을 올린 직원이 어떻게 하루만에 해외로 휴가를 갈 수 있나"는 등의 댓글을 달며 회사 측에 책임을 물었다. 남 부끄런 사진은 no 안 올렸읍니다,

조은글퍼옴!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 장철영. 그가 미공개 사진과 함께 끝내 부치지 못한 52통의 편지를 엮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에는 사무치게 그리운 ‘님’의 모습이 그득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흠모하는 ‘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한 사람, 장철영 사진사의 기억과 그리움이 배어있다. 그의 회상 속에서 되살아난 사진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인간 노무현이 거쳐 온 시간과 그 안에서 단단해진 진심, 대통령 노무현이 짊어졌던 고뇌와 지키려 했던 원칙들이 되살아난다.

장철영의 눈에 비친 노무현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받아들이려는 열린 생각,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 “잠들어 있는 시민을 깨어나게 한” 대통령이었다. “지식 너머에 있는 지혜가 세상에 올곧게 쓰이도록”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자신을 ‘행복한 사진사’로 만들어준 주인공이었다. ‘님’이라는 정갈한 부름 속에는 그 아름다웠던 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겨있다.

어쩌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는 ‘노무현의 재발견’이 아닐지도 모른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보여줬던 그의 모습,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노무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노무현의 재발견’이 될 지도 모른다. 가식 없는 그의 언행을 두고 ‘대통령으로서 체통을 지키라’며 비난했던 사람이라면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가 고개를 숙일 때 그 앞에는 시민이 있었으며, 그가 키를 낮출 때 그 앞에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그가 날 선 말을 내뱉을 때 그 앞에는 사법 권력이 있었고, 그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때 그 앞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저는 뼛속까지 ‘친노’예요!

52통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궁금해요. 행복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프셨을 것 같기도 해요.

연속으로 세 통 정도 쓰고 나면 쓰기 싫었어요. 마음이 힘들어서요. 편지라는 게 감정이 확 올라와야 되는데 어느 날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힘들어서 쓰기도 싫은 거예요. 마음도 머리도 차가울 때는 새벽에 조용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어요. 그러다가 또 한 통을 쓰고... 사실 책에 적지 못한 이야기도 많아요. 사진과 매치되는 편지를 실어야 하니까, 적어놓고 나서 ‘이 사진이 있었나?’하고 찾아야 될 때도 있었어요.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 일하시면서 찍으신 사진이 50만장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이번 책에는 50여 장의 미공개 사진이 수록됐는데요. 사진을 선정하시는 것도 쉽지 않으셨겠어요.

연속 사진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뽑아낸 거거든요. 지금까지는 결과물(사진)만 보여졌지, 중간의 준비 과정은 아무도 몰랐잖아요. 이번 책에서는 그 과정을 기록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이런 과정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됐을 텐데, 그렇게 알리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사진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볼 때는 ‘이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을까’ 궁금해 하는데 사진은 보고서 그냥 ‘좋다’ 하고 끝이잖아요. 사진도 문화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이 나와야 사진이 값어치가 있다는 거예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을 법한 책이에요. 판매량을 생각하면 대중들의 입맛을 두루 만족시키는 편이 유리할 텐데, 그럴 의도는 없으셨던 것 같아요.

네, 그런 부분은 신경 안 썼어요.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아요. 노무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게 되면 더 좋고요.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과연 어땠을까’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보시겠죠. 노무현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소장하겠다고 할 거고요.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책에 쓰신 것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처음 노무현 대통령에게 끌린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유가 있으셨어요?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도 보면 2000년 부산 북ㆍ강서을에 출마하셨잖아요. 그때 다 미친놈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박수 쳤어요. 저런 분이 나와야 된다고요. 경상도에서 진보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으로 출마한 걸 보고 감동 안 받을 수가 없었어요. 워낙 핍박을 당했었으니까요. 저런 사람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저 사람이 영웅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너무 멋있는 거죠. 기분이 되게 상쾌했어요.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그때부터 ‘노사모’라는 게 시작이 됐어요. 저 같은 사람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거예요. 경상도에서 울분을 당했던 사람들이 토해낼 데가 없었는데 노무현으로 토해낸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로 일하게 되셨을 때, 엄청 기쁘셨겠네요.

‘이제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근무하게 됐으니까요. 예전에는 인터뷰 할 때나 행사할 때만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는 매일 찍을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양한 사진을 찍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좋기도 했지만 부담감도 컸어요.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을 찍는데, 남들보다 사진이 더 좋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보도사진도 더 좋아야 되고요. 그런데 행복했어요. 행복한 부담감, 행복한 긴장감, 그런 마음이었죠. 즐거우니까요.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대통령이 직접 “장철영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를 내리셨다고요. “‘기록’이 ‘역사’가 된다는 믿음” 때문에 그러셨겠지만,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는 성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피곤하실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어떤 정치인은 자기 비밀, 자기 과거를 감추려고 하잖아요. 그 분은 그런 게 없으셨어요. 그냥 하라고 하셨죠.

자신이 남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크게 개의치 않으셨던 것 같아요.

한 번도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신 적도 없거든요. 똑같은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은 볼 테고 싫어하는 사람은 안 보겠지’, ‘(사진사가) 나를 좋아하니까 잘 찍겠지, (내가) 미우면 이상하게 찍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웃음). 명쾌한 사람이에요. 명쾌한 답이었고, 저는 행동으로 답을 봤어요. 책에 쓴 것처럼 저는 ‘청와대학교’를 다녔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정치 사진과 지도자에 대한 학문까지도 배운 거예요. 그래서 더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보고 ‘친노’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뼛속까지 친노야’라고 말해요(웃음).

노무현 대통령, 한 인간으로서 완벽했어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예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신 적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완벽했어요. 누군가를 완벽하다고 말하는 게 선뜻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요.

아뇨, 완벽했어요. 한 인간으로서 완벽했어요. 돌아가실 때 마음이 되게 아팠는데, 3년이 지나고 나서 ‘아, 우리를 살리셨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살려고 하신 게 아니라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자기 몸을 던지신 거구나, 대단하신 분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냥 완벽했던 것 같아요. ‘살아계셨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죠. 그런데 그 때 몸을 던지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노무현을 공부했고 ‘내가 노무현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 점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봐요.

인간적인 모습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정책 같은 부분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쪽 학문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그 당시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부분에 있어서는요. 이라크 파병 문제만 봐도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오해했다가 판단을 보고 감탄했어요. 미국과 UN의 압박으로 무조건 파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전투병 보내라고 했는데 그걸 우회적으로 비전투병을 보냈어요. 현명한 판단이었죠. 대한민국의 군인들, 젊은이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하면서도 세계적인 명분은 생기도록 파병을 한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일부가 아니라 전부 다 그랬죠.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그랬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당시 언론이 이야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에 대해 책에서 시원하게 일갈하셨더라고요. “그들이 말하는 권위와 위엄은 특권의식일 뿐”이라고요.

신뢰라는 게 내가 얻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남이 나를 신뢰해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내가 리더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리더라는 걸 (남들이) 인정할 수 있도록 계속 귀를 열고 대화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 분을 나의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겠구나’라고 판단했던 거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답답한 마음이 드실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건 저 사람 의견이지’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라거나 돈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정말 화가 나죠.

가장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든 건 무엇이었나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촬영하면서 즐겁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울었어요. 너무 힘들었고요. 제가 그 분을 알기 시작했던 게 북ㆍ강서을에 출마하셨을 때인데, 그 영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너무 애틋해지는 거죠. 그래서 애착을 갖고 시작하게 된 거고, 생각했던 걸 풀어헤치기 시작했던 거예요.

서거 이후에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나요?

돌아가시고 나서 3일 만에 죄송한 마음에 비공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청와대에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이랬어’ 하고 공개한 건데, 그게 난리가 났었어요. 그걸 보고 ‘이제야 이 분의 진정성을 알아봐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화에 계실 때의 모습 그대로,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으면 청와대에서의 모습이었거든요. 그때부터 3주기 때 출간할 책을 준비했었고, 그게 『노무현입니다』였어요. 그 책도 처음에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와 같은 형식으로 기획했던 건데 대선 준비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아쉬움이 남았었고, 10주기 때 다시 준비하려고 하다가 이번에 책으로 내게 된 거죠.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에 다시 본 사진은 이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보기 싫었죠. 한참 뒤에 다시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사람들한테 알려줄 수 있을까,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죄송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죠. ‘어르신(노무현 대통령)께도 한 번도 안 보여드렸는데, 보내드리면서 내가 마무리를 해야겠다’라는 중압감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이 사진을 가지고 매듭은 짓고 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이 역사를 모를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했던 거죠.

책에는 흔들린 사진도 실려 있어요. 전문가 입장에서 보시기에 그냥 B컷일 뿐일 텐데, 차마 지울 수는 없으셨겠죠.?

못 지우죠. 양치하시는 모습은 빠른 속도로 찍는데 (인물이) 흔들리니까 사진이 그렇게 나왔고요. 여사님과 같이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거든요. 그 모습에서 세파에 흔들렸던 5년이 보이는 것 같은 거예요. 여사님께서 기대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아마 두 분은 사진 찍는 줄도 모르셨을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을 촬영하면서 슬프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고 적으셨죠. 항상 그랬어요.

가장 가슴이 아프실 때는 언제였나요?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였나요?

청와대를 떠나실 때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 같아요.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외로우셨는데 또 다른 무거운 걸 들고 가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봉화마을로) 따라가지 못하는 제 마음이 또 무거웠고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어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절대 안 찍을 거예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1년 동안 청와대에 머무르셨어요. 참여정부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던가요?

완전 다르죠. 완전 달라요. 참여정부 때는 다 노무현을 바라봤다면 MB정부 때는 MB를 바라본 게 아니죠. 파벌이 조금 심했어요. 저도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정치 사진을 찍으면서 귀가 열려있고 분위기도 알고 있잖아요. 말하는 워딩이라든가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 사람 대통령을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바라보는 게) 돈이구나’라는 게 보이죠. 참여정부는 사람들이 되게 젊었어요. 그리고 하나같이 노무현만 쳐다봤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자체 단체장을 맡고 있는 것도 젊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청와대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시면 내부의 분위기가 간파되시겠어요. 그렇죠.

박근혜 정부의 분위기는 어떤 것 같으세요?

경직되어 있어요. 전혀 자연스러움이 없어요. 짜여진 틀이 굳어져 있고, 그 틀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에요. 집무실에서 사인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통령 혼자 앉아서 사인하고 있고 옆에 (참모진이) 도열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잖아요. 어떤 사진사도 그런 사진을 찍으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가 이런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사가 됐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겠네요(웃음)

네(웃음). 사진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고 싶죠. 다 준비된 상태에서 찍으라고 한다거나 ‘그렇게 찍지 말고 이렇게 찍어’라고 하면서 검사를 하면 좋아하지 않죠.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은) 딱 검사 받은 사진이에요.

이번 책에 실린 사진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진은 무엇인가요?

노무현 대통령이 손녀랑 자전거 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어요. 청와대 안에서의 모습인데요. 손녀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시면서 엉덩이 아프지 말라고 수건을 깔아주셨었어요. 그건 대통령이 아닌 그냥 할아버지의 모습이잖아요. 이 분은 그냥 내 이웃이고 내 옆에 계셨던 분인 거지, 그 모습을 권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패권주의는 말도 안 되고요. 봉화에 가셨을 때도 똑같은 행동을 하셨어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었죠. 그런데 청와대에서부터 그랬다는 건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이 사진을 조금 더 일찍, 목숨 걸고 공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공개했다면 아마 ‘일은 안 하고 손녀하고 자전거 타고 놀러 다닌다’고 했을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손녀와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장 좋아하셨다고요. 손녀에게 과자를 주려다가 본인 입으로 가져가시면서 놀리시는 순간을 포착하신 거죠? 네, 그 사진밖에 안 보여드렸어요. 유일하게 보신 사진이었나요?

그 사진하고 첫 친손녀, 첫 외손녀 둘이 한복 입고 잔디밭에 앉아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그 사진을 좋아하셨었죠.

노무현 대통령과 마지막 촬영을 한다면, 어떤 모습을 찍고 싶으세요? 마지막 촬영인 걸 알고 있다면 안 찍습니다. 절대. 차마 못 찍으실까요? 절대 못 찍죠. 그걸 어떻게 찍어요? 마지막 모습인 걸 안다면 못 가시게 막았겠죠, 어떻게 해서든지. 촬영이 문제가 아닐 것 같아요. 사진에만 욕심이 있다면 찍겠죠.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안 찍어요. 미공개 사진을 공개하시고 책으로 엮으시면서 사진의 의미, 사진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셨을 것 같아요.

기록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대통령님에 대한 기록이거든요. 잘 찍고 못 찍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으로써 그때 그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 실린 사진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은 거예요. 누구나 제 위치에 와서 카메라를 들었다면 찍었을 거예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느낌을 전달하는 거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거죠. 제가 찍은 건 흔히 말하는 역사 기록 사진이에요. 옛날의 서울 모습을 찍은 사진처럼 대통령의 그 당시 모습을 찍은 거죠. 역사 기록 사진이라는 건 그때 그 느낌을 그대로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울산 공장 건설 일용직 시절/ 사진=노무현 사료관

님은 성공한 대통령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으신 사진은 북한 백화원 초대소에서 촬영한 것뿐인가요? 네. (그 외에는) 없어요. 제가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다른 사람 사진에 찍힌 것 말고는요. 심지어 대통령님 손도 한 번 못 잡아봤어요.

악수를 청하신 적도 있었을 텐데요.>??? 다들 악수는 했죠.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을 찍기 바빴죠. 한 번도 대통령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사진 찍고 나서 악수 한 번 했을 것 같은데요, 그냥 ‘잘 찍혔나’ 하시면 ‘잘 찍힌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그러면 대통령님이 ‘어, 됐네’ 하고 끝이에요. 이게 경상도예요(웃음). 사진을 같이 찍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찍힌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 같이 사진 한 번 못 찍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영광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가끔 농담처럼 하셨던 말이 있었다고요. ‘별 걸 다 찍네, 이런 것도 찍나’ 하고요.

(임기) 마지막에 남북정상회담 때만 해도 많이 바뀌었어요.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더라, 찍으라’, ‘우리 사진사 어디 있노, 찍어 봐라’ 하셔서 계속 기념사진 찍었어요.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보신다면 같은 말을 하시지 않을까요? ‘별 걸 다 찍었네’라고요(웃음). ‘고놈, 참’이라고 이야기하셨을 것 같아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겠죠?

경상도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에요. 긴 말 필요 없고, 칭찬한다고 길게 말 할 필요도 없고 ‘고놈, 참’ 하고 씩 웃는 거죠. 그게 끝이에요. 결국은 ‘열심히 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이거든요. 웃으면서 ‘고놈, 참’ 하고 말씀하시면 그게 다인 것 같아요. 딱 그 분이 말할 수 있는 워딩인 것 같고요.

많은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적으셨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 대통령의 진면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직까지도 뭔가 씌워놓고 보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모든 게 가식이다, 거짓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보수 쪽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것도 가짜야’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렇게 말해놓고 돌아서면 또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좋다고요. 그게 답답한 거예요. 정치적, 정략적으로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평가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20년 정도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70대~90대 어르신들 가운데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보면, 무조건적인 자존심을 내세우시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게 무너질까 봐 끝까지 고집하시는 거죠. 그런 부분이 꺾여야만 제대로 평가 받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나요. ‘내가 일흔이 됐을 때, 계속 믿어왔던 게 바뀌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가장 힘든 일일 것 같기도 하고요.

현 시국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띕니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모습 같은 것들이에요.

너무 화가 나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단과 등산 갔을 때 사진을 보면 다들 환하게 웃고 있잖아요. 기자들이 농담도 했어요. 용비어천가는 안 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아니잖아요. 질문하는 기자들도 긴장을 하고 있고, 뭔가 주눅이 들어있어요. ‘이상하다, 왜 저렇게 하지?’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촛불집회 이야기를 해보면, 집회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 때 나오셨던 분들도 상당수 있어요. 그 분들이 지금은 탄핵 찬성을 외치고 있어요.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그리고 지금 모든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기록과 비교하잖아요. 그러니까 시국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밖에 없었죠.

촛불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와 꿈꿨던 세상을 발견하기도 하셨나요?

시민들이 깨어있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발적으로 나와서 평화 집회를 하고 있잖아요. 그게 가장 원했던 거였거든요. 평화적으로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하고, 조금 힘들더라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저도 11월부터 시작해서 지난주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하고 감탄했어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의 독자들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꿈을 꾸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 분들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실 때 뉴스에서 이야기했던 명제가 있잖아요. 이 책에는 그게 아닌 진실을 담았으니까, 그걸 떳떳하게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라 승리하신 분이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에도 썼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에요.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에요.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돼요.

실패한 대통령이란 어떤 대통령일까요?

더 이상 내 입에 올리기 싫은 사람이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봐요. 사진가 장철영이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

책 36쪽 2007년 4월 28일 대관령 휴양림,

 

49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138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본관 앞,
149쪽 2007년 2월 23일 본관 집무실,
153쪽 2007년 9월 13일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
199쪽 2006년 2월 26일 출입기자단과 북악산에서,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장철영 저 | 이상media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미공개 사진과 함께 쓴 52통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전속 사진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하지 못한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퍼온글- end,

노무현 대통령 연극-탄핵안 가결 후 '활짝 웃던' 朴대통령,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12년 전 박 대통령의 모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4년 8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관람하며 박장대소했다. '환생경제'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노가리", "육X헐 놈", "개X놈"이라고 비하하는 등 원색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됐던 연극이다. 여기에는 주성영, 나경원, 송영선, 주호영, 심재철, 이혜훈, 정두언,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4명이 출연했다. 박 대통령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졌다.

이에 앞서 같은해 3월12일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박 대통령은 해맑게 웃기도 했다. YTN이 공개한 '돌발영상'에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막으려는 열린우리당과 표결에 부치려는 야당 의원들의 몸싸움 등 아수라장이 된 국회 모습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상황과 대조적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당시 사진과 영상에 대해 "거친 욕설 쓰며 노무현 비난했던 한나라당 극단이 박근혜·최순실은 어떻게 비난할지 궁금하다" "12년 뒤 뒤바꾼 운명" "박근혜 탄핵되는 날 세상 떠나가게 웃어주겠다" "탄핵으로 흥한 자 탄핵으로 망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영화 '변호인'과 얼마나 닮았나?, (부림사건)

흥행 돌풍·예매취소 사태까지… 영화와 '회고록' 전격비교,

영화 '변호인'이 개봉 5일차인 22일 175만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변호인'은 1981년 신군부 정권이 22명의 독서모임 회원들을 불법 감금, 고문당한 '부림사건'이 배경이다. 영화 속 변호인 '송우석'(송강호 분)과 노 전 대통령을 비교해봤다.

세금 전문 변호사 노무현, 진짜 변호인이 되다,

영화 속 송우석은 상고 출신으로 아파트 미장이로 일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한 인물로 등장했다. 돼지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낼 돈이 없어 도망쳐나올 정도로 가난했던 것.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됐으나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온 뒤 등기 전문 변호사로 돈을 번 후 요트를 타고 돈 자랑을 하는 등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삶을 산다.

노 전 대통령도 고등학교 시절 자취, 하숙교사, 회사 사무실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는 고생과 설움 속에서 공부하며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출세를 하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벗어나 설움도 갚고 나처럼 고생하며 사는 사람을 도와주리라 다짐하곤 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

또 실제 노 전 대통령도 요트를 탔다. 노 전 대통령은 막상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돈 걱정 따윈 안 해도 되고 알아주는 사람 많고 굽실거리는 사람도 많아 편한대로 생각하면 정말 살 맛이 나는 생활이었다. 그러다보니 출세해서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던 어린 시절의 꿈은 간데온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시큰둥하던 변호인, 법정에서 맹수로 돌변하다,

송우석은 선배 변호사 김상필(정원준 분)에게 국가보안법 사건 변호를 부탁받을 때만 해도 시국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고시공부하던 시절 신세를 졌던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부림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건 변호인을 맡으면서 점차 당시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김광일 변호사에게 부림사건의 변호를 부탁받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다. 그는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 등과 함께 부림사건 변호인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재판 변호인을 맡으면서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회고록을 통해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재판을 맡고서부터 나의 이기적인 삶의 껍질이 균열되기 시작했다. 대공분실에 끌려가 무려 57일간이나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도 못하고 짐승처럼 지내야 했던 청년들, 매를 얼마나 맞았던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버린 몸을 내보이면서도 얼마나 고문에 시달렸던지 변호사마저도 정보기관의 첩자가 아닌가 눈치를 살피던 파리한 몰골의 청년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죽었던 가슴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특히 극중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박진우(임시완 분)와 같은 청년들의 삶을 존경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박진우의 실제 인물인 장상훈씨의 결혼식 주례도 볼 정도로 돈독한 사이로 지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은 손꼽히는 건설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거절하고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후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 군의 추도회를 주도했다는 죄명으로 법정에 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변호인이 판사에게 건넨 변호인 명단에는 해당 재판장에 착석해 있던 99명의 변호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1987년 2월7일 열린 고 박종철군 추모대회때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잦은 구속 끝에 1987년 11월에는 변호사 업무정지 명령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내가 그 자랑스런 역사의 현장에 뜨거운 동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받고 있는 박해를 보상하고도 남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6월 민주항쟁에서 부산 시민들 속에서 '독재 타도' 를 외친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제의로 정치에 입문,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노 전 대통령은 부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학생사건, 노동사건 등의 무료 변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일을 내일처럼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눈멀었던 나의 눈에 화려한 사회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희생과 고통을 똑똑하게 보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아픔이 가슴에 전달되어 오면서 어린 시절 나의 고통과 울분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020년 코르나19 때문에,,,

故 노무현 대통령의 삼계탕 단골집에 가보니…토속촌 삼계탕,

노무현 대통령이 단골로 찾던 삼계탕집, 바로 토속촌 삼계탕이다.

서울 한복판에 보신탕 간판을 내걸고 개장국을 파는 식당은 드물다. 88서울올림픽 때 외국인들 보기 부끄럽다고 보신탕, 개장국 등의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은근히 혐오음식이라는 압박을 주어 뒷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반사이익을 본 것이 삼계탕이었다. 같은 ‘보신’ 계열 음식인 데다 전통음식의 맥을 잇고 있으며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보신탕을 대체해 주었다.

옛날 서울에서는 통닭과 삼계탕을 함께 팔았다. 종로와 을지로에 이런 ‘닭집’이 많았다. 전기구이 기계가 번지면서 통닭이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프랜차이즈로 번창하면서 통닭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면서 삼계탕만 전문으로 파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서울에는 삼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노포들이 꽤 된다. 다들 강북 중심가에 있다. 음식 가격으로 보아 평소 이 정도의 음식을 끼니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만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서울 사람 입맛 사로잡은 토속촌의 삼계탕,

토속촌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삼계탕집이다. 겨울에도 점심에는 줄을 서야 한다. 여름이면 줄을 선 손님들이 하루종일 장사진을 이룬다. 맛도 있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단골집이라는 것으로 최근 더 인기를 끌었다. 대중의 심리라는 것이 유명인의 단골집이라 하면 특별히 맛있는 줄 여기는 까닭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가끔 들러 삼계탕을 먹었다고 한다.

토속촌은 한옥이다. 마당이 넓고 좌식으로 여러 방이 있다. 여름에 이 식당이 특히 인기가 높은 것은 시원한 느낌의 한옥 덕이 클 것이다.

토속촌의 삼계탕은 국물이 뿌옇다. 일반적으로 닭만으로 국물을 내면 투명한데 토속촌 삼계탕 국물은 불투명하다. 곡물이나 견과류 등을 가루 내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고소한 맛도 닭 국물만의 맛이 아니다. 걸쭉한 질감까지 있다. 삼계탕용 닭이 어린 닭이라 국물 맛이 약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맛을 더한 것이다. 옛날 3개월 이상 키운 ‘진짜 영계’로 진하게 국물 맛을 낸 ‘진짜 삼계탕’은 아니지만 이 토속촌 삼계탕이 서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니 이것이 서울의 대표 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속촌 외에는 중구 서소문동의 고려삼계탕, 태평로2가의 장안삼계탕이 유명하다. 한류를 타고 찾아온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서울의 삼계탕은 맛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닭에 인삼, 대추, 밤 등으로 맛을 내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났다. 쇠고기 국물로 맛을 더하기도 하고 닭발 육수를 첨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곡물이나 견과류의 가루를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입맛도 변하는 것이다.

토속촌은 복날이 아니라도 여름이면 항상 붐빈다,

tip - 주변 산책은 식후경
경복궁과 가깝다. 일본 관광객이 토속촌을 많이 찾는 이유도 경복궁 관광 후 들르기 좋기 때문이다. 토속촌 아래는 효자동이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와대앞길이다.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산책하기 좋다.

이용정보
- 종로구 체부동 85-1 | 02-737-7444
- 영업시간 10:00~22:00, 연중무휴

찾아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입구에서 자하문터널 세검정 방향으로 150m
- 171, 272, 601, 606, 607, 706, 708, 9602, 9703, 9706번 버스 이용 적선동 하차,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는 박정희, 2위 노무현,

역대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12일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소장 백원우 의원)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9~10일 무작위 자동응답방식(RDD)으로 99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출마했을 경우 과반수가 넘는 57.5%의 응답자가 "다시 뽑겠다"고 답했다.

똑같은 질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47.4%로 2위, 김대중 전 대통령이 39.3%로 3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선 "다시 뽑겠다"는 의견이 16.1%, "다시 뽑지 않겠다"는 의견이 72.2%를 기록해 주요 비교대상 가운데 가장 다시 뽑고 싶지 않은 대통령으로 꼽혔다.

이 대통령은 다시 뽑겠다는 의견이 22.0%에 달한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도 지지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통령보다 다시 뽑겠다는 의견이 낮은 대통령은 이승만(14.2%), 김영삼(7.9%), 노태우(3.1%)뿐이었다. 

전·현직 대통령 중 가장 호감가는 인물을 선택하는 단순 호감도 조사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1.9%,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3%, 김대중 전 대통령 19.8%, 이명박 대통령 7.6%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라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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