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년기념물, 문화재,(국보급,관리국 or ,관할지자체,소속)

우리 문화재, [cultural properties, 文化財],

728x90

우리 문화재, [cultural properties, 文化財],

1995년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로 분류된다. 유형문화재는 건조물 ·전적(典籍) ·서적(書蹟)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를 말한다. 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기념물은 조개더미 ·고분 ·성지 ·궁지 ·요지(窯址) ·유물포함층 등의 사적지로서 역사상 ·학술상 가치가 큰 것과, 명승지로서 예술상 ·관상상(觀賞上) 가치가 큰 것, 그리고 동물 ·식물 ·광물 ·동굴로서 학술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민속자료는 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 및 습관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 ·구가옥(舊家屋) 등으로서 민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문화재는 종류와 가치에 따라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보호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이러한 문화재는 조사와 발굴뿐만 아니라 복원과 복구, 올바른 관리와 보호, 그리고 전시 등을 통한 홍보와 국민교육 등이 필요하다.

고고학 ·선사학 ·역사학 ·문학 ·예술 ·과학 ·종교 ·민속 ·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所産).

문화재, 불상,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金銅 延嘉七年銘 如來立像)'은 구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佛像)으로 1963년에 경상남도 의령지방에서 발견됐다. 이 불상의 광배(光背) 뒷면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539년(기미년)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불교를 널리 퍼뜨리고자 만든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으로, 전체 높이는 16.2㎝이다.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년명(紀年銘, 명문에 제작 연호·연대를 밝힌 글)이 있는 고구려 불상으로, 옛 신라땅이었던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밖 도로공사 현장에서 만들어진지 1424년만에 발견되고, 1964년에 국보로 지정하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이 불상은 광배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도금까지도 완전히 남아 있는 희귀한 불상으로, 6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고구려 불상이다.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은 고구려 땅이었던 평양 동사(東寺)에서 만들어진 뒤 1424년 뒤 신라 땅이었던 경남 의령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됐다,

승려 40인이 발원한 불상(국보 제119호) 안내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은 승려 40인이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발원의 목적으로 조성한 천불(千佛) 중 29번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승려 법영(法潁)이 공양했다,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의 광배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의 앞과 뒷면., <사진; 문화재청>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 (金銅 延嘉七年銘 如來立像)

종목; 국보 제119호 | 분류; 유물/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 | 수량; 1구 | 1964. 03. 30.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시대; 삼국시대(고구려 6세기) | 소유자; 국유

​고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옛 신라 지역인 경상남도 의령지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광배(光背) 뒷면에 남아있는 글에 따르면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으로, 전체 높이는 16.2㎝이다.

머리는 삼국시대 불상으로는 유례가 드물게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작은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 미소를 풍기고 있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부분에서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게 하여 아래로 내리고 있다. 왼손의 세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유난히 두꺼운 옷에 싸인 신체는 굴곡의 표현이 없지만, 전체적인 체구와 약간 보이는 어깨의 골격 등에서 강인한 힘을 느끼게 한다. 새의 날개깃 모양의 옷자락은 좌우로 힘차게 뻗쳐 있는데, 날카롭고 힘있는 모습이 중국 북위 이래의 양식을 보여준다. 불상과 함께 붙여서 만든 광배는 앞면에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불꽃무늬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광배의 일부분이 손상되었으나 도금까지도 완전히 남아 있는 희귀한 불상으로, 광배 뒷면에 남아있는 글과 강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 방법 등으로 볼 때 6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고구려 불상으로 보인다. <출처; 문화재청>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 <사진; 문화재청>

국보 제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의 옆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주꾸미도 '청자'를 찾는데···우연히 길가서 발견한 '것'이 국보라면 <출처; 경향신문 / 2020. 01. 28.>

* 1963년 날품팔이 하던 주민이 도로공사 중 발견한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국보 제119호) 고구려 불상이 왜 가야 혹은 신라지역에서 발견되었는지 의문이다. 당시 발견자는 2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응? 이게 웬 불상이지?” 1963년 7월 16일 경남 의령 대의면 하촌리 마을밖 도로공사에 품팔이를 나온 마을주민 강갑순씨(40)와 큰아들 전병철군(17)이 야산 비탈의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얼마쯤 파내려 갔을까. 두사람은 깜짝 놀랐다. 걸리적 거리던 잡석 하나를 곡괭이 끝으로 제치자 네모반듯한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누워있던 금빛 찬란한 불상을 보았다. 전문가들은 신고된 불상을 친견하고는 경악했다.

금동불상은 둥근 연꽃 대좌 위에 중생의 고통을 풀어주는 수인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 소용돌이 치는 불꽃 모양의 배모양 광배와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높이 16.2㎝에 불과하지만 광배 뒷면에 새겨져있는 ‘연가7년 고려국낙랑’(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浪)으로 시작되는 4행 17자의 명문이 불상의 가치를 높였다.

 '금동 연가 7년명 7년명 여럐입상’. 이 불상은 제작연대(기미년·539년)가 있는 가장 오래된 금동불이다

이 불상은 ‘기미년(539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있는 가장 오래된 ‘기년명 금동불’이다. 이 불상은 중국 북위 시대의 양식을 받아들여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으로 재해석한 ‘한국적 조형미의 선구작’으로 꼽힌다. 불상은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의 이름으로 국보(제119호)로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불상을 발견 신고한 강갑순씨 모자와 땅 임자(전모씨·55)에게 각각 20만원씩의 보상금을 나눠주었다.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제17조와 21조 등)과 ‘유실물법’(제13조) 등에 따르면 ‘유물 발견신고는 7일 이내에 해야 하며, 발견자와 신고자, 토지 및 건물소유자에게 보상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1963년 쌀값(80㎏ 한가마니·2800원)과 요즘 쌀값(20만원 가량)을 비교할 때 1963년 20만원이면 요즘의 1400만원에 해당된다.(한국은행 자료) 날품팔이로 근근히 살고 있던 강씨 모자는 물론이고 토지 소유자도 국보 문화재를 발견한 덕에 뜻밖에 보상금을 받은 셈이다.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을 발견한 강갑순씨, 보상금을 타기 위해 상경,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을 발견한 강갑순씨가 보상금을 타기 위해 상경해서 국립박물관에 진열된 불상을 바라보고 있다. 전답 1평 없이 70이 넘은 시어머니와 5남매를 키워야 했던 강씨는 당시 “보상금으로 빚을 갚고 전답을 사는데 사용하겠다”면서도 “시어머니에게 고기 한근 사드리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1964년 12월16일자

발견자 강갑순씨와 토지소유자가 이듬해 12월 보상금을 받기위해 상경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64년 12월 16일자) 강갑순씨는 국립박물관을 방문해서 자신이 발견한 ‘금동연가7년명…’ 불상을 친견했고 문화재관리국 직원들의 안내로 5대궁을 관람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강씨가 농토라곤 가진 것 없이 70고령의 시어머니와 5남매의 참혹한 살림을 이끌어왔다”고 소개했다. 강갑순씨는 “빚진 5000원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전답을 사야겠다”면서 “단 한푼도 헛되이 쓸 수는 없는 돈이지만 시어머니에게 고기 한 근이라도 사다 드려야겠다”고 밝혔다. <출처; 경향신문 / 2020. 01. 28.>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산40 발견(1963년), 고구려 539년, 국보 119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연히 발견된 이 작품은 높이 16.2cm의 소형이지만 한국 고대 조각사의 기준작이자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발휘된 최초의 불상으로 손꼽힌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국보 제119호)'을 만났던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전展

전시명;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전시기간; 2015-05-22~2015-08-02

담당부서; 미술부 신소연 (02-2077-9483)

​특별전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는 불교문화의 중심에 있던 후원자들의 역할과 염원을 살펴봄으로써 종교미술 속에 나타난 후원자들의 신앙, 권력, 신분, 경제적 지위 등의 상호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발원의 의미> 발원發願이란 불사를 일으켜 공덕을 쌓으며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미술을 통해 발원의 의미를 살펴보고 고대 국가에서 사찰 건립을 비롯한 불사의 가장 큰 후원자가 국가와 왕실이었음을 살펴봅니다. 대표 전시품인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구>, <황룡사 찰주본기(보물 1870호)> 등이 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2015년 5월 31일 국립중앙박물관 "發願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展에서

6세기 고구려 불상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국보 제119호)

또다른 문화재,

종목별 / 지역 / 시대별 / 분류별   

순천 팔마비: 전남 순천시 영동.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6호. 승평부사 최석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이다.

나주 만봉리 석조여래입상: 전남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64호. 고려시대. 전체높이 2.3m. 만봉리 저수지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산록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전북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통일신라시대. 보물 제41호.

대비사 대웅전: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대비사. 보물 제834호. 신라시대.

기림사 대적광전: 경북 경주시 양북면 기림사. 조선시대. 보물 제833호. 공포 및 내부의 가구 수법이 17세기 초의 다포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금산사 대장전 용마루 석조: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보물 제827호.

금산사 대장전: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조선시대. 보물 제827호.

귀신사 대적광전 다포계 공포: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의 본당. 보물 제826호. 조선시대 추정.

창덕궁 희정당: 서울 종로구 와룡동. 보물 제815호. 대조전 남쪽에 있으며 침전에 딸린 경전으로 평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고종은 경복궁이 완성되기까지 머물렀고 순종이 끝까지 이곳에 있었다.

창덕궁 선정전: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보물 제814호. 창덕궁 외전의 편전으로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이다. 조선 후기에 희정당이 편전으로 이용되면서 별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당초에는 조계청이라는 건물이었는데 1461년(세조 7)에 선정전으로 개명하였다.

정혜사 대웅전: 전남 순천시 서면 청소리 정혜사. 보물 제804호. 16세기.

고령향교 명륜당: 경북 고령군 고령읍 연조동. 경북문화재자료 제229호. 조선시대.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후 1676년에 중건하였다. 1702년 현감 구문유가 당시의 향교위치가 불길하다 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향교에 사찰에서 사용한 석재가 많은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순천향교 명륜당: 전남 순천시 금곡동.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며 양 툇간에 방이 있고 맞배지붕이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전남 광양시 성황동. 전남유형문화재 제5호. 고려시대.

원주 보문사 청석탑: 강원도 원주시. 강원유형문화재 제103호. 고려전기. 청석탑은 점판암으로 건조된 것으로 신라말기에 비롯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유행한바, 현재 해인사, 금산사 등 몇 곳에만 있는 희귀한 탑이다.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명동종: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경기유형문화재 제158호.

보광사 대웅전: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경기유형문화재 제83호. 조선시대의 사찰 건축물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본당이다. 대웅전의 건축 양식은 전통 목조건축 양식인 다포계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

독립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사적 제32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전북 고창군 아산면. 보물 제1200호.

경주 마동사지 삼층석탑: 경북 경주시 마동. 보물 제912호. 신라시대.

관천대: 서울 종로구 창경궁. 보물 제851호. 조선시대. 천문관측대.

영산 만년교; 경남 창녕군 영산면. 보물 제564호. 너비 3m, 길이 13.5m, 홍예 높이 5m인 석조다리.

용문사 정지국사 승탑: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보물 제531호. 승탑 높이 2.15 m. 비 높이 1.2 m. 부도는 화강암, 비는 점판암이다.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경남 창녕군 창녕읍. 고려시대. 보물 제519호. 높이 1.1m의 불상.

해인사 원당암 석등: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보물 제518호. 통일신라. 전판암 석등.

칠곡 기성동 삼층석탑: 경북 칠곡군 동명면. 보물 제510호. 통일신라시대. 기단부에 안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리사 석탑;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동. 보물 제470호,

나주 철천리 석불입상: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보물 제462호. 고려시대. 높이 5.38m. 얼굴과 신체의 중량감과 옷주름의 형식적인 처리 등에서 고려 초부터 성행한 거불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미륵사를 창건하여 이 석불을 봉안하고 있다.

거창 상동석조관음입상:  경남 거창군 거창읍. 보물 제378호. 고려시대. 이 불상은 팔각연화좌 위에 직립한 보살상,

거창 상동석조관음입상: 경남 거창군 거창읍. 보물 제378호. 고려시대. 이 불상은 팔각연화좌 위에 직립한 보살상으로 오른손은 몸에 붙여 정병을 잡고,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연꽃송이를 쥔 모습이다.

운문사 석조여래좌상: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고려시대. 보물 제317호.

서울 숭례문종목국보 제1호분류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소재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남대문로4가)

  •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종목국보 제2호분류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소재서울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 (지번)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2번지 탑골공원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종목국보 제5호분류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소재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 법주사 (사내리)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종목국보 제6호분류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소재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참조항목

국보기념물명승문화재보호법보물사적유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천연기념물

역참조항목

고성농요금렵구기지시 줄다리기다뉴세문경문화유산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카테고리

출처 & 참고자료,

[국립중앙박물관

[경향신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문화재 [cultural properties, 文化財]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재 [cultural properties, 文化財] (두산백과)

[doopedia.co.kr

[문화재] 승려 40인이 발원한 불상(佛像)_국보 제119호|작성자 엽토51

테그 > #문화재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국보제119호 #국립중앙박물관 #평양동사 #고구려불상 #도로공사중발견한국보 #문화재답사 #발원_간절한바람을담다 #승려40인이발원한불산 #비구니_법영 #불상 #탑 #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