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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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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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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계절에 따라 가일() 또는 가절()이라 하여서 좋은 날을 택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는데,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절이 된 것이다.

<농가월령가 >에 의하면, 하우 씨() 오백 년은 인월()인 1월을 설로 삼았고, 주()나라 팔백 년은 자월()인 11월을 설로 하였으니 지금 우리의 설은 하우 씨의 역법을 계승한 것이다.

추석()인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 때에 7월 보름부터 왕녀를 대표로 하여 성안의 여자들이 두 패로 갈라져 삼 삼기를 해서 성적을 보아 주식을 장만하여 가무와 유희를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권1)에 전한다.

대개 명절로는 정월의 설날과 대보름, 이월의 한식(), 사월의 초파일, 오월의 단오(), 유월의 유두(), 칠월의 백중(), 팔월의 추석, 십일월의 동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제삿날 외에 철을 따라 사당이나 선영에 차례를 지내는 설날·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 따위를 속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밖에도 시월은 상달이라 하여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말날[]과 강신일()이 있었으며, 십이월에는 납향날[]과 그믐날에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다. 이러한 명절은 대부분 보름마다 한번씩 있는 절기()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계절에 따라 의미 있는 날을 택하여 정하여진 것이다.

먼저 설날에 대해 알아보면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다. 따라서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맞았다. 이 날에는 추원보본()의 뜻으로 차례를 지냈으며, 차례 뒤에는 세배와 성묘를 하였다. 또한 한해의 운수가 그 해의 첫날인 설과 관계가 있다고 믿어, 한해의 운수를 점치고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대보름은 상원()이라고도 하며, 새해에 첫 만월(滿)이 드는 날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이 달과 관계가 깊었던 옛날에는 이날을 기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가졌다.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어 마당에 버림으로써 일년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기를 빌었으며, 귀밝이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또한 오곡밥과 말려 두었던 나물들을 무쳐서 먹었다.

지신밟기를 함으로써 집안의 제신()을 위로하였으며, 동신()에게 제사를 올려 마을의 안녕함과 농사가 잘되기를 빌기도 하였다. 이월의 한식날은 계절상으로 초목을 옮겨 심어도 죽지 않고 잘 사는 때이므로 나무를 심거나 조상의 산소에 사초()를 하였다. 그리고 더운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

사월의 초파일은 불교문화의 영향 아래 생겨난 명절로 뒤에 연등()의 풍속이 널리 전파되었다. 오월의 단오는 일년 중에서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날로 여름의 질병과 더위에 대처하기 위하여 쑥과 익모초를 뜯어 약으로 썼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비녀를 삼아 꽂기도 하였으며, 단오선()이라 하여 부채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여인네는 그네를 뛰고 남자는 씨름을 즐겼다.

유월의 유두날에는 도시나 농촌을 불문하고 일손을 놓고 산이나 계곡 또는 약수터를 찾아 청유( : 속되지 않고 아담하게 노는 놀이)를 하였다. 그리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 하여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칠월의 백중날은 백종일()이라고도 하는데, 절에서는 해마다 이날에는 재()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한다. 한편 농촌에서는 ‘호미씻이’라 하여 불필요한 농기구를 씻어두고, 농군들에게 술과 밥을 대접하며 농사의 수고로움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추석은 가배일() 또는 가윗날이라고도 하는데, 일년 중 삼대명절의 하나로 곡식이 익어서 수확이 멀지 않기에 가장 풍요로운 시기이다.

집집마다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햇과일과 함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성묘를 한다. 또한 씨름을 즐겼으며, 지방에 따라 여인네는 달밤에 <강강술래>를 하고, 남자는 <거북놀이>나 <소놀이> 등을 하며 하루를 즐겼다.

십일월의 동짓날은 24절기에도 포함되는 날로 일명 ‘작은 설’이라고도 한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서 가묘()에 차례를 지내고 이것을 먹었다.

옛날에는 액막이라 하여 팥죽을 집의 입구나 문짝 등에 뿌리기도 하였다. 동지팥죽에는 또한 팥죽 속에 반드시 새알심이라 하여 찹쌀가루로 새알 같은 단자를 만들어 넣어 먹었다. 한편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설도 있다.

지금은 명절로서의 의미를 거의 상실한 시월의 말 날과 십이월의 납향과 그믐날에 거행하는 행사는 다음과 같다. 시월은 상달이라 하여 집집마다 연례에 따라 길일을 가려 햇곡식으로 떡과 술을 빚어 가택신()에게 집안의 평안함을 빌며 제사를 지내는데, 그 길일이 바로 말날이다.

특히 무오일()을 가장 좋은 날로 여겼으며, 집안에 따라 무당을 불러 신사()를 성대하게 베풀기도 하였다. 납향은 동짓날부터 세 번 째 미일()로 정하여, 이날에는 종묘·사직에서 대향사()를 거행했다. 이것을 연종제() 또는 납향이라 하였다.

납일에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며, 납일에 온 눈은 약이 된다는 속설도 있다.

십이월의 그믐날은 대 그믐날이라 하며, 이 날 밤은 제야()라 하여 각 가정에서는 집안에 있는 묵은 것을 쓸어내어 정하게 하고, 나라에서는 나례()를 했다.

또한 연중의 거래관계는 대 청산을 행하게 되는데, 이 날 밤 11시까지 받지 못한 빚은 정월의 상순까지는 독촉하지 않았다. 밤에는 집집마다 집 안팎 구석구석에 불을 밝힌 채 밤을 새우며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상의 명절 가운데 지금은 정월의 설과 대보름, 그리고 팔월의 추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명절이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옴에 따라 생겨난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서구의 기독교의 확산에 따라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등이 새로운 명절로 자리잡으면서 야기된 풍속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추석/권선희   (명절을 되새기며???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재?

글캤재?

 

-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출처 & 참고문헌

[명절 [名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한국의 세시풍속』(홍인문화사, 1969)

『한국세시풍속』(서문당, 1972)

『한국의 세시풍속』(명문당, 1987)

민족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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