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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 西王母. xiwan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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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 西母.


중국의 신화, 전설 등에 등장하는 여신. 서극(西)의 땅에 산다고 하며, 기록에 나타난 것은 전국시대에 들어온 이후이다. 

『이아()』에 서황(西)의 하나로서 서왕모를 든 것에서 서방의 이역의 지명ㆍ국명에 유래한다고도 하며 『장자』에는 이미 도를 얻은 신인으로서 서왕모의 이름이 보인다. 

전한시대 말년에 서왕모 신앙이 폭발적으로 유행했다는 것이 『한서』에 기록되고, 아마 그 이후 서왕모는 널리 민중의 신앙을 모으는 신이 되었을 것이다. 

서왕모의 화상이 화상석이나 거울의 문양, 명문 위에 출현하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서왕모와 쌍을 이루고 동방의 남성신, 동왕공도 후한시대에 등장한다.


위진남북조시대, 초창기의 도교교단은 서왕모를 선신의 하나로서 보고, 도교 수행자에게 서왕모가 강림해서 가르침이나 교전을 받았다는 도교전설도 형성되었는데 한의 무제하에 서왕모가 강림한 것을 언급하는 소설 『한무제 내전』도 이런 도교절서를 기초로 한 것이다. 


도교 교리중에서 서왕모는 구령태묘귀산금모, 태호구광귀대금모원군 등으로 불리며, 여선들의 통괄자가 되었다. 


시대가 내려가는 동시에 서왕모는 전통의 도교보다도 민간신앙 중에서 불로불사의 여신으로서 숭신을 모으고, 왕모랑랑이라고도 불렸다. 


3000년에 한 번만 열매를 맺는 반도()가 익을 때 신선들이 모여서 서왕모의 장수를 축하하는 반도회가 열렸다는 전설은 『서유기』 등의 소설이나 희곡 중에 도입되어 있으며, 현재의 민간전설에서도 견우직녀의 이야기에도 보이듯이 천계의 지배자로서 큰 권력을 휘둘렀다.


《산해경》에 따르면 서방 쿤룬산에 사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 표범의 털을 가진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불사의 약을 가진 선녀라고 전해진다. 
한대에 서왕모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졌다.

산해경()》에서는 서방의 쿤룬산[]에 사는 인면() ·호치() ·표미()의 신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불사()의 약을 가지고 있는 선녀라고 전해진다. 

목천자전()》에 의하면 서주(西) 전기의 목왕이 서방에 순수()하여 쿤룬산에서 서왕모를 만나 즐기다가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고 전해진다. 

한대()에는 서왕모의 이야기가 민간에 퍼졌던 것은 틀림없는 일로, 그와 더불어 동왕부(: 서왕모의 배우자)의 이야기도 보태진 듯하다.


선계의 성스러운 어머니.

서왕모의 궁전은 곤륜산() 꼭대기에 있다. 

그곳은 천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쉽게 길을 더듬어 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궁전 왼쪽으로는 요지()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취수(), 산밑에는 약수()라는 강이 흐르는데, 수만 미터에 이르는 높은 파도가 친다고 한다. 

서왕모가 사는 궁전은 대단히 넓고 크며, 황금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서 눈부시게 아름답다.


서왕모는 절세 미녀로 알려져 있다. 

크게 틀어올린 머리 위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금빛 나는 비단옷에 봉황을 수놓은 가죽신을 신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원시천존에게 받은 만능의 부적으로 알려져 있다. 

『산해경()』

『산해경』 : (중국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지리서. 낙양(洛陽) 부근을 중심으로 산과 하천, 산물(産物), 신과 제의 등을 기록한 「오장산경(五藏山經)」과 그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가사의한 나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해외경(海外經)」과 「해내경(海內經)」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어느 한 시점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 각 시대마다 내용이 추가된 형태로 전해내려 오다가 후대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고대 부분인 「오장산경」은 전국 시대(B.C. 403∼B.C. 221) 이전에 기록된 것이다.) -참고./

에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보석 비녀를 꽂은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절세 미녀와 산발한 요괴,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양쪽 모두 서왕모의 실제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서왕모는 다른 신들과 달리 여성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처럼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반대인 요괴 같은 공포스러운 면도 지니고 있는 서왕모의 이중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서왕모는 신선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신선들은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려야만 했다. 

서왕모가 신선이 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장생()을 담당하는 반도( : 3천 년에 한 번 열린다, 신성한 복숭아)의 소유자이며, 많은 신선들이 이 불가사의한 열매 덕분에 신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왕모는 신선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신선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신성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제후들에게 선술()을 가르쳐준 서왕모.

서왕모에게 도움을 받은 황제나 면회를 허락받은 황제가 몇 명 있다. 

삼황오제 중 하나인 황제()가 천하를 통일할 때 탁록(涿鹿 : 현재 하북성 탁록현)에서 치우()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이 싸움에서 황제가 불리하게 되자 서왕모는 즉시 부하인 구천현녀()를 보내 그를 돕게 하고, 황제를 선계로 인도해왔다('구천현녀' 항목 참조).

춘추오패( : 춘추 시대에, 덕이 아닌 무력으로 신하와 백성들을 통치했던 다섯 제후를 일컫는 말-옮긴이) 중 한 사람으로 용맹 과감했던 주나라의 목왕(, ?~B.C. 621)은 곤륜산 부근을 순시하던 중에 서왕모에게 면회를 허락받았다. 

목왕은 여덟 필의 명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서 겨우 서왕모가 사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서왕모는 어렵게 찾아온 목왕을 위해 요지() 옆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목왕은 너무나 즐거워서 그만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려 자신의 나라가 혼란에 빠진 줄도 몰랐다(천계의 하루는 인간계의 1년에 해당한다). 

서왕모는 목왕이 돌아갈 때 '불로장생의 비법을 알고 싶으면 다시 한 번 이곳을 방문하라'는 의미가 담긴 시를 전해주었지만, 목왕은 두 번 다시 천계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한()의 무제(, B.C. 156~B.C. 87)도 불로장생을 염원한 황제였다. 

서왕모는 많은 신선들을 이끌고 기원전 110년 7월 7일 무제의 궁전으로 내려갔다. 

무제는 서왕모 일행을 크게 환영하면서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불로장생의 길을 물었다. 

서왕모는,

"너는 지금껏 음란하고 잔학한 일을 일삼았다. 앞으로도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결코 장생하지 못하리라. 

너의 정성을 보아 용서하고, 원시천존에게 받은 호부()와 구전서( : 구두로 전해진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줄 터이니, 앞으로 행동을 삼가고 열심히 가르침을 따르면 지선( : 지위가 낮은 신선)에는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긴 채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신비의 복숭아

서왕모는 천계에 반도원()이라는 '신비한 복숭아[]'가 열리는 과수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도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서왕모는 모든 신선들을 초대해서 반도회라는 연회를 베푸는 관례가 있었다.

『서유기』에는 이 불가사의한 복숭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반도원의 복숭아는 3천 6백 그루다. 

입구 쪽에 있는 1천 2백 그루는 3천 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데, 크기는 작지만 먹으면 몸이 가벼워져 신선이 될 수 있다. 

가운데 있는 1천 2백 그루는 여덟 겹으로 된 꽃이 피는데, 열매가 아주 달콤하고 6천 년에 한 번 열린다. 

이것을 먹으면 이내(산속에 생기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옮긴이)를 타고 날아다닐 수 있으며, 불로장생할 수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1천 2백 그루는 자줏빛 반점이 있는 것으로, 비록 씨는 작지만 9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 

인간이 이 복숭아를 먹으면 하늘과 땅, 태양, 달만큼이나 오래오래 살 수 있다.

서왕모는 무제를 처음 찾아갔을 때 일곱 개의 반도를 가지고 가서 네 개를 주었다고 한다. 

무제가 먹고 남은 복숭아씨를 나중에 심으려고 몰래 뒤로 감추는 것을 보고 서왕모는 크게 웃었다. 

이 복숭아는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그 열매를 얻을 때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반도를 네 개나 먹은 무제도 일흔 살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왜 신선이 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고 수행을 쌓으라"는 서왕모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제는 이전과 변함없이 무절제하게 음주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많은 후궁들과 음란한 생활을 지속하고, 전쟁을 일삼았다. 

게다가 서왕모가 준 구전서마저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장생을 가져다준다는 반도도 무제에게는 아무 효험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