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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물러난 20년,,,!? 아프간 여성들이 이룬 '더디지만 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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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물러난 20년,,,!? 아프간 여성들이 이룬 '더디지만 큰 변화',,,

2001년 미군 침공으로 탈레반 물러나자,

직후 최초의 여성 부총리·대선후보 나와,

억울한 죽음엔 거리에서 저항하는 변화,

탈레반 잔당의 살해 위협·가부장제 속,

탈레반 재집권에 피켓 시위하는 여성들도,

다시 탈레반이 왔고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은 후퇴 위기에 놓였다.

탈레반은 집권 당시(1996~2001년) 여성의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고, 이동의 자유를 빼앗았으며 만 8세 이상 여성의 교육을 금지했다.

탈레반 조직원들과의 강제 결혼이라는 인권 유린도 서슴지 않았다.

탈레반은 17일(현지시간)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날 북부 타하르주에선 한 여성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 조직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는 20년 동안 여성들이 힘겨운 노력으로 일궈낸 변화가 스러짐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2015 년 3월   24 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 시위자들이 얼굴에 붉은색 페인트를 칠한 채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붉은색 페인트는 피투성이가 된 파르쿤다의 얼굴을 상징한다. 카불= AFP  

 

"탈레반 물러나자... 최초의 여성부총리·대선후보 나와,,,!?

누구에게나 타인의 삶을 파괴할 권리는 없고 세상에 마땅한 전쟁은 없다.

다만 미국의 침공은 결과적으로 2001년 말 탈레반을 물러나게 했고, 여성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프간 여성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은 이듬해인 2002년이었다.

2002 년 3월   25 일 탈레반 집권 이후 6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도 다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됐다. 사진은 한국일보의 '아프간 소녀들 감격의 첫 수업' 기사.

1996년 탈레반 집권 이후 6년 만의 등교였다.

거듭된 내전으로 교육 시스템이 마비된 데 더해 탈레반은 여성의 배움을 차단했다.

남성에게도 이슬람 교리만을 가르쳤다. 그해 아프간 성인 남녀의 문맹률은 각각 70%, 90%였다.

히잡을 쓴 여성 방송 진행자는 여성 '복권'의 상징과도 같았다.

과도 정부 내각에선 최초의 여성 부총리가 탄생했다.

강제 퇴역당했던 카톨 무하마드자이는 원대복귀와 함께 준장으로 진급했다.

그렇게 첫 여성 공군 장성이 됐다.

탈레반 이후 첫 대선(2004년)에선 최초의 여성 후보가 등장했다.

문제는 다수 여성들의 참정권 행사였다.

내전 이전인   1940 년대부터   1960 년대까지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 세 번째 사진까지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 네 번째 사진부터는 디자이너 사피아 타지의   1969 년도 작업물들.   AFP·' 아프가니스탄골든이어즈( afghanistansgoldenyears )' 홈페이지 캡처

탈레반 잔당들이 "투표소에 가는 여성을 우선 살해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선 '여성이 집 밖에서 죽는 것은 가족의 수치이자 모욕'으로 생각했던 탓에 여성들은 섣불리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탈레반 잔당·가부장제...'여권 신장' 지연시킨 장애물들,

탈레반이 물러난 후 치른 첫 대선에서 여성들은 "투표소에 가면 살해하겠다"는 탈레반 잔당의 협박에 시달렸다. 사진은   2004 년   10 월 7일자 한국일보 '아프간 여성 목숨 건 투표' 기사.

탈레반의 위협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아프간 여성 인권 회복을 막는 제1의 장애물이었다. 

2008년 고위 여성 경찰관이 탈레반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이듬해엔 여성 배우의 배우자가 피살됐다.

탈레반은 비슷한 시기 여학생과 교사 11명의 얼굴에 염산 테러를 했고, 다른 여학교에도 테러 공격을 하겠다고 공개 협박했다. 

2009년 대선에선 손가락이 잘린 여성 유권자도 있었다.

여성 인권을 지연시킨 것은 탈레반뿐만이 아니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도 큰 걸림돌이었다.

 2014년 형법 개정안이 한 예다. 

의회는 그해 가정폭력 사건에서 친척들의 증언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대부분은 가정 내에서 이뤄졌고, 이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는 친척들의 증언이었는데도 말이다.

다행히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형법 개정안의 수정을 명령했다.

당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 뒤엔 아프간 인권단체들의 전방위 로비도 존재했다.

2010 년 8월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는 탈레반에 의해 코 일부와 두 귀가 잘린 아이샤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AP 통신

타임지 '코 없는 여인' 표지 논란,

2010년 미국 주간 '타임'지의 표지에 코가 잘린 아프가니스탄 여성 비비 아이샤(18)의 사진이 실렸다.

아이샤는 남편과 시댁의 학대에 못 이겨 달아나다가 탈레반 규율에 따라 코 일부와 두 귀를 잘렸다고 한다.

그런데 타임지가 사진에 '미군이 철수했을 때 아프간에서 벌어질 일'이라고 제목을 달면서, 미군의 주둔을 강요하는 '감정 협박'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이는 '미군 주둔이 정말 아프간 여성 해방에 결정적인 요소였는지'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파르쿤다의 억울한 죽음에 거리로 나선 여성들,

지난해   10 월   15 일자 한국일보 '헬스장 다니는 아프간 여성들... 탈레반 가만히 있을까' 기사.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시에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문을 열었다.

칸다하르시는 2000년대 초반까지 탈레반의 심장부였다. 

이듬해인 2015년 인권을 부르짖는 여성의 목소리들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파르쿤다라는 여성이 '코란을 불태웠다'는 누명을 쓰고 수백 명에게 몰매를 맞아 숨졌다.

경찰 13명이 폭행을 방관한 것으로 조사돼 혐오 살인이라는 공감대가 더욱 형성됐다.

탈레반이 물러난 지 14년이 지난 시기였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공부와 취업이 가능했고, 혼자서는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도 여전히 존중받지 못했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은 파르쿤다의 시신을 직접 운구하며 아프간 사회에 몸소 저항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당시 시위는 파격적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소수였지만 남성들이 동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여성들과 인권단체의 노력에 더뎠지만 변화는 있었다.

2014년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이 36%를 달성했고, 2017년엔 아프간 10대 여성들이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로봇 경진대회에 참가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18 일 어깨에 소총을 멘 한 탈레반 병사가 여성 모델들의 사진이 훼손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카불= AFP

지난해엔 2000년대 초까지 탈레반의 심장부였던 남부 칸다하르에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문을 열었다.

탈레반도 외관상의 변화는 보였다. 

2012년 탈레반의 고위 성직자가 "여자아이도 남자아이처럼 배울 권리가 있다"며 탈레반 거점 로가르주에서 여자아이들을 직접 가르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9년엔 "미국과의 평화 협상에 복수의 여성이 탈레반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아프간 여성들,

랑기나 하미디 교육부장관, 자리파 가파리 메이단 샨 시장 등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자국에 남아 현지 상황을 알리거나 탈레반 집권을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재집권과 동시에 여성이 살해되면서 겉모습만 바뀌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탈레반은 지난달 칸다하르에서 9명의 여성 은행원을 강제 퇴사시킨 데 이어, 최근 아프간 국영TV 여성 직원들도 무기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스페인 마드리드·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스위스 제네바 등지서도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트위터·유튜브 캡처 ·EPA   ·AP

아프간 여성들은 서서히 쟁취해 온 삶을 쉽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의 하미드 모하마드 샤 통신원은 17일 무장한 남성들 사이에서 4명의 여성이 탈레반 집권에 항의하는 영상을 올렸다.

여성인 랑기나 하미디 교육부 장관, 자리파 가파리 메이단 샨 시장도 모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해외 언론에 현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도 맞서는 용기는 20년 세월이 만들어 낸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명령 6시간 만에 아프간으로 날아간 日 자위대, 난민 실어오나,,,?!

G7 앞두고 "일본도 뭔가 해야"

자위대원, 무기도 휴대,,

탈레반, Taleban,

일본 정부가 항공자위대 소속 C-2 수송기 1대가 23일 저녁 아프간으로 출발했고, 24일에는 C-130 수송기 2대가 현지로 향한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자국민과 현지 대사관 직원 대피를 위해 자위대 수송기 3대를 파견한다.

2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긴박한 아프간 상황을 감안해 신속하게 이뤄졌다.

23일 오전 총리관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자위대 수송기 지원이 결정됐고, 정오쯤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이 자위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이후 6시간 만인 오후 6시 25분쯤 C-2 수송기가 사이타마(埼玉)현 이루마(入間) 공군기지에서 이륙했다.

이번에 아프간 현지 직원과 그 가족을 대피시키면 외국인을 수송기에 태우는 첫 사례가 된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이라크에서 일본 언론 관계자 10명을 인근 국가인 쿠웨이트로 피난시키는 등, 이 법에 따라 총 4번 자위대 수송기를 외국에 보냈다.

23일 일본 자위대원들이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이루마(入間) 공군기지에서 아프간으로 향하는 항공자위대 C-2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교도]

수송기 파견은 자위대법 84조에 규정된 '재외 일본인 등의 수송'에 근거를 두고 있다.

 

G7 앞두고 "일본도 뭔가 해야",,,!?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는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대사관 일본인 직원 12명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이동시켰다.

자위대는 일단 치안이 안정된 인접 국가에 거점을 설치하고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대피 대상자를 인접국으로 연이어 수송한다는 계획이다.

현지에 남은 일본인과 일본대사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에서 근무한 현지인 직원 및 가족이 주 대상으로, 대상자는 500명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고 외무성은 밝혔다.

하지만 아프간인 직원들은 현지에 남아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구조를 요청했다.

19일 자민당 외교부회에서는 "일본인 직원들만 대피하고 현지인 직원들을 남긴 것은 너무 냉정한 처사"라는 비판도 나왔다.

또 24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온라인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정부 내에서 "여러 나라가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데, 일본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외무성 간부)라는 조바심도 있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 20일 미군들이 아프간 카불 공항 인근 도로의 철조망 너머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

 

자위대원, 무기도 휴대,,

하지만 현지인들이 자위대 수송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공항까지 자력으로 와야 하는 등 수송 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23일 브리핑에서 "실제 탑승 대상자들이 얼마나 공항에 집결해 올지 불확실하다.

또 경우에 따라 다른 나라로부터 요청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일본과 관계 없는 아프간 민간인들도 탑승시킬 가능성을 열어뒀다.     

현지 상황이 혼란스러운 만큼 이번에 파견되는 300여명의 자위대는 무기를 휴대한다.

일본인 구출 훈련 경험이 있는 전문 부대도 동행한다.

2017년 일본 항공자위대가 사이타마현 이루마 기지에서 해외 체류 일본인 구출 훈련을 하고 있다. [교도]

자위대 수송기가 난민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항공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현지인들을 인접국으로 대피시킨 후 본인 의사에 따라 제3국으로의 출국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들의 상당수가 일본 행을 원할 가능성도 있어서다.

또 G7 논의에서 아프간 난민을 일본 내 미군기지에 수용하는 방안 등이 결정될 경우, 항공자위대 수송기 활용 여부도 새롭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Taleban,

아프가니스탄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근본주의 집단.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출신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아프가니스탄에 출현, 1996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여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이후 비이슬람문화에 대한 배격과 문화유물·유적의 파괴, 여성인권의 극단적 제한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었다.

이후 근거지 인근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이면서 미국과 무력 긴장상태를 계속하다가 2020년 2월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으나 4월의 포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장 충돌이 계속되었다.

2021년 미군의 철수 계획 발표 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으며, 8월 15일 카불 입성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밝힘으로써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황탈레반 정권 축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여러 정파가 연합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탈레반은 남부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지역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 탈레반 세력과 무력으로 대립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국지적, 산발적으로 지속되었으나 2020년 2월 29일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4월에 있었던 포로 협상이 결렬된 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무력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평화협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추진하자 탈레반 세력의 지역 점거가 계속되었고, 2021년 8월 31일 목표로 미군의 철수가 진행되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전 지역을 장악했다.

탈레반 ⓒ Getmilitaryphotos/Shutterstock.com

8월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 점령을 앞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은 다시 탈레반이 장악하게 되었다.

역사'탈레반'이란 이름은 구성원이 대부분 마드라샤에 다니던 학생들인 데서 유래했다.

마드라샤는 1980년대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이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지방에서 질서를 잡는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재빨리 남부 지방을 지배하던 군벌을 몰아냈다.

1996년말 해외에 있는 보수적인 이슬람 분파의 지원과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의 지지에 힘입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각종 사회정책, 여성의 사회활동 억제, 바미안 석불과 같은 비이슬람 종교 유적 파괴,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을 비판했으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인에 대해 테러를 가한 혐의로 기소된 우사마 이븐 라딘과 같은 이슬람 전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시 국방부 건물에 대한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우사마 이븐 라딘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탈레반 정권에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곧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며 전쟁에 돌입했다(→ 9·11 미국 테러 사건).

미국 주도의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세력인 북부동맹이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2001년 11월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다.

그러나 북부의 타지크족, 서부의 우즈베크족, 중부의 하자라족 등 비파슈툰족들은 탈레반에 계속 저항했다.

이들은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레반의 집권이 전통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파슈툰족의 집권 연장이라고 여겼다.

2001년 무렵 탈레반은 일부 북부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장악하고,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1년 3월에는 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으며 이후 비이슬람 문화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를 자행했다.

개요이슬람근본주의 집단.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란 뜻이며 '탈리반(Taliban)'이라고도 한다.

소련군 철수, 공산정권 붕괴, 내전 돌입으로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스러웠던 1990년대 중반에 출현, 이슬람교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2001년 9.11 사태 이후 우사마 이븐 라딘의 인도를 거부하다가 미국의 공격을 받아 정권이 붕괴되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세력을 유지한 채 인근 파키스탄 등에서 산발적인 테러를 벌이면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 무력으로 대립하다가 2020년 2월 말 미국과 전쟁 종식의 협정을 맺었으나, 2021년 미군의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고, 8월 15일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대로면 아프간 경제 붕괴"…!? '궁지 몰린 탈레반, 권력 나누나,,,!?

주요국 정권 인정 안해…IMF 자금 지원 중단·통화 약세 물가 급등 '최악'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붕괴 직전으로 몰리고 있어 탈레반이 다른 정파와 권력을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마자 세계통화기금(IMF)이 자금 지원을 끊어 아프간은 심각한 달러 부족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은행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뿐 아니라 아프간 통화인 '아프가니'도 연일 급락하고 있다.

탈레반 집권이후 아프가니의 가치는 약 10% 급락했다.

통화가 약세를 보이자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오고 있다.

21 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카불의 은행   ATM   앞에 주민들이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AFP =뉴스1 © News1 겹쳐,

주민들은 탈레반 집권 이후 물가가 50% 이상 올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제가 붕괴직전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 정부는 다른 정치세력과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WSJ은 예상했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라바니 정권을 무너트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탈레반의 최초 집권이었다.

당시 탈레반은 환영을 받았다.

오랜 내전을 종식했기 때문이다.

23 일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들이 차량을 타고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   AFP =뉴스1 © News1 겹쳐,

군벌 간의 싸움이 끝나고 경제가 재개됨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당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이웃 국가들은 탈레반을 곧바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국내외적으로 안정이 되자 경제는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국가도 탈레반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탈레반이 경쟁적인 정치 세력을 포함하는 등 보다 포괄적이고 온건한 정부를 구성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웃 국가들은 보다 온건한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탈레반 정권의 승인을 미루고 있다.

탈레반과의 권력 분담을 위해 이번 주 카불로 돌아온 전 재무장관 오마르 자킬왈은 "정치적 타협을 빨리 할수록 심각한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아프간을 더 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경제 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정치세력과 권력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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