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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장관 물러나며 뚜껑 열렸었다..!? 이재명 등 내가 다 키워" 바지표, 이낙연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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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장관 물러나며 뚜껑 열렸었다..!? 이재명 등 내가 다 키워" 바지표, 이낙연쪽으로,

추미애 "이재명, 내가 키웠기에 누나로서 막아줘…!? 바지표, 이낙연쪽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법무부 장관직에서 사실상 경질된 직후 "막 열도 나고 열이 뻗쳐서 뚜껑이 열렸었다"라며 "그 다음에 재보궐 선거 참패를 조국 탓, 추미애 탓 하니까 하도 어처구니없었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2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지난해 장관직에서 물러나던 심경을 이처럼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갈등이 정권 차원의 부담이 되던 지난해 12월1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사의 표명 4시간 전만해도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던 탓에 사실상 경질된 것이란 말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왔었다.

추 전 장관은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와 대담집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민웅 교수하고 한 10여 차례 대화를 하면서 어느 정도 치유의 강을 건넜다.

말을 많이 하고 비우고 하니까 저 자신에 대한 점검이 좀 되더라"고 언급했다.

대선후보 경선 초반 이재명 경기도사에 우호적이었다는 평가에는 "특별히 엄호한 게 아니다.

이 지사나 누구나 다 제가 (당 대표 시절) 공천장을 드렸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전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7.19/뉴스1

다 키운 것"이라며 "경선의 금도를 넘는 인격 모독, 이런 표현들은 내가 있는데선 안 했으면 좋겠더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도가 빠지고 있고, 이 지사 역시 여권 내에서 이낙연 전 대표 등에게 추격을 허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 표들은 다 나한테 나중에 오게 돼 있다.

잠시 머무를 뿐이다.

이렇게 보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어준씨가 자신의 '단점'을 말해달라 요청하자 추 전 장관은 "단점이 없는 것이 단점"이라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개혁을 주저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니 뒤돌아보니까 아무도 없더라.

도와주는 의원도 없다"라며 "받쳐주는 힘이 없는 것, 좀 외롭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밝혔다.

 

추미애 "이재명, 내가 키웠기에 누나로서 막아줘…!? 바지표, 이낙연쪽으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는 20일, 토론 때 이재명 경기지사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출마 후보 모두 내가 키운 사람들"이라며 그들끼리 "인격모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합동 TV토론회에 앞서 이재명 후보가 추미애 후보와 대화를 나눈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 News1 국회사진취재단

추미애 "이재명 등 내가 키워…경선 과열되기에 내가 나서, 국민누나 돼"

추 후보는 이날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명추 연대(추미애-이재명)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지사를 엄호했다"는 지적을 받자 "특별히 엄호를 한 건 아니다"며 "이 지사나 누구나 다 제가 다 공천장을 드렸다,

다 키운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키웠다는) 그런 것에다가 당내 경선이 금도를 넘는 인격 모독, 이런 표현들은 제가 있는 앞에선 안 했으면 좋겠다 싶어 그래서 (이 지사를 엄호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며 "그랬더니 국민 누나가 됐다"고 자랑했다.

秋 "바지발언으로 여성표가 이낙연쪽에…!? 이재명, 사이다 기질 잃어 하락"

추 후보는 이낙연 후보 상승세, 이재명 지사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꿩(윤석열)이 추락하면서 빠지는 표들이 이낙연 후에 가는 것같고 바지(벌언) 때문에 여성 표가 이낙연 후보한테 가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지사 하락요인으로 "본인의 사이다 같은 기질이 좀 빛바랬다는 게 있는 것 같다"며 '바지발언'과 방어적인 자세를 보인 것 등을 들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지사측도 "바지를 한 번 더 벗어 보일까요"라는 발언이 실수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공격적인 태도로 토론에 임하겠다며 방향을 수정했다.

 

담임 폭력에 교실 박차고 나간 12살 소녀…!? 사진 속 추미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강성’이다.

추 전 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 『추미애의 깃발』에도 “내 자리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성격”이라고 썼다.

지난달 30일 출마선언 땐 “불공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

인권에 반하는 모든 행정행위·권력행사는 즉각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1958년 10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태어났다.

세탁소집 2남 2녀 중 둘째 딸이었다.

부침은 있었지만 유복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다.

대구 남산초등학교 시절의 추미애 전 장관(맨 왼쪽). 추 전 장관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었지만 부조리한 선생님에게는 반항하는 겁없는 학생이기도 했다. 추미애 캠프

대구 남산초등학교 6학년 때 촌지를 밝히는 담임 선생님이 친구를 사정없이 때리자 12살 추미애는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안 나가면 선생님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추 전 장관은 “(이 때부터) 부정부패에 맞서는 기자나 법조인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책에 적었다.

 추 전 장관은 대구 구남여중 시절을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사춘기 소녀”였다고 기억한다.

이모들의 19금 연애소설이나 『삼국지』등 가리지 않고 읽었다.

대구 구남여중 시절 수학여행을 간 추미애 전 장관(맨 오른쪽). 공부를 잘했던 추 전 장관은 우월반에 속해 저녁에도 학교에 남아 특별수업도 들었다고 한다. 추 전 장관은 "학교는 쉴틈을 주지 않고 공부를 시켰다. 다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추미애 캠프

지역 명문 경북여고에 입학했을 때 선생님이 좌우명을 묻자 여고생 추미애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답했다.

대구 명문 경북여고 1학년 시절의 추미애 전 장관(아랫줄 오른쪽). 추 전 장관 부친은 당시 자녀들을 모아놓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과 독재 통치의 부당성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럴때면 어머니가 "정부 비판하다가 어디 잡혀가는거 아니냐"라고 걱정을 했다. 추미애 캠프

 1977년 장학금을 주는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동기동창 서성환 변호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연애는 2년 후부터 시작됐다.

추 전 장관이 고시 공부를 위해 경남 합천 해인사에 들어갔을 때 서 변호사가 자작시를 담은 편지를 보낸 게 계기였다.

추 전 장관은 “그의 깊은 눈매가 떠올라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고시는 한 차례 낙방 후 붙었다.

젊은 시절의 추미애 전 장관과 남편 서성환 변호사. 대학교 3학년이던 추 전 장관은 해인사에서 공부하던 중 서 변호사의 편지를 받고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추미애 캠프

 두 사람은 7년 연애 끝에 1985년 결혼했다.

호남(전북 정읍) 출신에 고교 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서 변호사를 부친은 인정하지 않았다.

“꼭 그런 사람과 살아야 하느냐”는 반대에도 추 전 장관은 결혼식을 강행했다.

훗날 두 사람 사이에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태어났다.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추미애 전 장관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고 김연준 한양대 이사장. 추 전 장관은 건국 이후 16번째 여성 합격자였다. 추미애 캠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추 전 장관은 판사를 택했다.

대학교 은사가 제자에게 “너는 왜 사람 죽이는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는 말을 얼핏 들은 게 영향을 줬다고 한다.

1985년 춘천지법에 부임하자마자 추미애는 공안당국과 각을 세웠다.

민주화 시위 도중 붙잡힌 대학생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를 족족 기각했다.

추 전 장관은 당시에 대해 “부끄러운 판사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장관이 첫째 딸을 안고 있는 모습. 육아와 일을 병행한 그는 당시에 대해 "번지점프에 올라선 것 처럼 위태로운 마음으로 일상의 조화를 저울질 해야했다"고 말했다. 추미애 캠프  
자녀들과 함께 있는 추미애 전 장관. 왼쪽부터 큰딸, 막내아들, 둘째딸. 추 전 장관은 워킹맘의 고충에 대해 "선택을 하라고 하면 가정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게된다. 거기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캠프

 1995년 야당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러브콜을 받고 10년 6개월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DJ는 당시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말을 하나둘씩 풀어내며 추 전 장관 내외를 설득했다.

노(老) 정치인(당시 71세)의 잔잔한 말에 36세 추미애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추 전 장관은 서울 광진을에서 처음 당선됐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의 등원 동기다.

1997년 15대 대선에선 ‘잔 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김 전 대통령을 도왔다.

‘추다르크’ 별명도 그때 생겼다.

정치권 입문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는 추미애 전 장관. 정치권 입문 동기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세균 전 국무총리(뒷줄 왼쪽부터)도 보인다. 추미애 캠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깊지 않았다. 

2002년 6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이 예고 없이 사무실을 찾아와 “추 최고(위원)! 나 좀 도와주소”라는 말에 이끌렸다고 한다.

소액모금 운동 ‘희망 돼지 저금통’으로 57억원을 모으며 추 전 장관에겐 ‘돼지엄마’라는 별명이 더해졌다.

1997년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추미애 전 장관은 고향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추다르크' 별명은 이때 붙었다. 추미애 캠프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떨어져나가 야당이 된 민주당에 남았던 그는 2004년 부득불 노 전 대통령 탄핵 대열에 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사죄의 의미로 그해 4월 광주도청에서 5·18 묘역까지 2박 3일 간 삼보일배를 했다.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오랜 기간 비주류로 머물렀다.

추 전 장관은 “탄핵 동조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실수였고 잘못”이라고 술회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2002년 대선에서 '후보흔들기'에 직면했던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반대파는 추 전 장관에 "건방진 것"이란 막말도 했다. 맨 왼쪽은 정동영 전 의원. 추미애 캠프.

 2016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문그룹의 지원을 받고 대표에 당선돼 재기했다.

그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조국 사태’ 여파 속에서 지난해 1월 문재인 정부 세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추·윤 갈등’ 끝에 올해 1월 물러났다.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에 찬성한 추 전 장관은 탄핵 역풍을 온몸으로 맞았다. 광주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사죄했지만 이 일은 오랫동안 그의 정치적 앞길을 막았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두번째 대선 도전을 선언한 추 전 장관은 연일 야권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총장을 때리며 “꿩 잡는 매”를 자처하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15일 전남 목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여권 빅3는 추미애·이재명·이낙연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12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출마선언에서 "촛불시민께 사회대개혁을 약속드렸다.

그 약속 잊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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