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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호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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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Cristiano Ronaldo,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축구선수 Cristiano Ronaldo, 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출생1985년 2월 5일, 포르투갈신체187cm, 83kg소속팀유벤투스 FC공격수(FW)데뷔2002년 '스포르팅 CP' 입단경력2019.~ UEFA 네이션스리그 포르투갈 국가대표사이트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웨이보

사진제공Gettyimageskorea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두스산투스 아베이루(포르투갈어: 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 kɾiʃ'tjɐnu ʁuˈnaɫdu[*], 1985년 2월 5일 ~ )는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로,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다. 포지션은 공격수이며, 포르투갈의 주장을 맡고 있다. 2008년, 첫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 석권을 시작으로 2013년 2014년에도 FIFA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16년과 2017년에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며 6회 수상자인 리오넬 메시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를 5회 수상한 선수이다.

 

2020년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호날두는 2015년 포르투갈 축구 연맹 100주년 행사에서 에우제비우 루이스 피구 등을 제치고 포르투갈 역대 최고의 개인성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메시와 함께 네 차례 유러피언 골든슈를 차지한 유일무일한 선수이다. 스포츠 시장에서 시장성이 가장 뛰어난 선수들 중 하나로, 2016년에는 포브스지는 호날두를 최고의 수입을 기록한 선수로 올려놓았다. 2016년 6월, ESPN은 그를 최고의 명성을 지닌 선수로 명명했다.

 

호날두는 2002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첫 발을 내딛어 2003년에 18세의 나이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했다. 잉글랜드에서의 첫 시즌에 FA컵에서 첫 우승을 거둔 후, 그는 프리미어리그 3연패, UEFA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을 1회씩 우승했다. 23세가 되었을 때, 그는 발롱도르를 받고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2009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 이적할 당시 €94M ($132M) 을 기록해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스페인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3번, 라리가 코파 델 레이를 2번,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에서 2번 우승하였다. 호날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골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2013-14 시즌에 17골을 넣었다. 2014년, 호날두는 라리가에서 역대 최단 기간에 200골을 득점한 선수로 기록했는데, 이 기록을 기록할 당시 그는 178번째 라리가 경기를 출전했다. 그는 축구 역사상 6시즌 연속 50골 이상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2015년, 호날두는 커리어 통산 500골을 기록함과 동시에 UEFA 챔피언스리그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다 득점자에 등극했다. 그는 현역 라이벌 리오넬 메시의 뒤를 이어 라 리가 역대 득점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호날두는 2003년 8월, 18세의 나이로 포르투갈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현재 포르투갈의 역대 최다 출전 선수 130경기 넘게 출전했으며, 7번의 주요 대회에 출전했다:

 

4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2004년, 2008년, 2012년, 2016년) 와 4번의 FIFA 월드컵 (2006년, 2010년, 2014년 그리고 2018년). 그는 포르투갈 선수로는 50골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로, 포르투갈의 최다 득점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UEFA 유로 2004에서 첫 국가대항전 골을 기록해 조국의 결승행 주역이 되었다.

 

그는 2008년 7월부터 포르투갈 주장을 맡기 시작해 UEFA 유로 2012에서는 4강의 성적을 거두고 대회 공동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4년 11월, 호날두는 (예선전 포함) 23골로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UEFA 유로 2016에서는 대회 역대 최다 경기 출전 선수로 기록되었고, 4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로, 대회 역대 최다 득점 기록도 미셸 플라티니와 동률을 이루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은 결승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트로피를 획득했고, 그는 대회 득점 2위로 실버 부트도 받았다.날강두라는 별명이 있다,

 

유스팀 경력

호날두는 마데이라 제도 푼샬의 한 동네인 산투 안토니우 출신으로, 요리사인 마리아 돌로르스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와 시립 정원사 주제에 디니스 아베이루 사이에서 막내로 났다. 그의 중간 이름인 "호날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으며, 부친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는 형 한 명과 누나 두 명을 두고 있으며, 그들의 이름은 각각 우구, 엘마, 그리고 릴리아나 카티아이다. 그의 증조할머니 이사벨 다 비에다드는 카보베르데 출신이었다. 가족 모두 독실한 천주교도이다. 호날두는 유년을 가난에 허덕이며 보냈고, 형과 누나들과 방을 같이 썼다고 회고했다.

 

유년 시절, 호날두는 아마추어 구단인 안도리냐에서 축구를 시작했는데, 부친은 이 곳에서 장비 관리자로 근무했었고, 이후 2년동안 인근의 프로 구단 나시오날에서 보냈다. 1997년, 12세가 되었을 때, 그는 사흘간 스포르팅 리스본의 시험 훈련에 참가했고, 그는 £1,500에 계약했다. 그는 리스본 인근의 알코셰트로 이주해, 구단의 다른 유소년팀 선수들과 합류했다. 

 

14세 때에는 반 프로 무대에서 뛸 능력을 갖추었고, 어머니와 합의를 보아 학업을 중단하고 축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인기인이었지만, 그는 교사에게 의자를 던진 일로 퇴학당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교사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 후, 그는 빠른맥으로 진단되어 축구를 중단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수술을 받았는데, 집도의가 레이저로 심장의 문제가 있는 부위를 지졌다, 그는 수술 후 몇 시간만에 퇴원했고, 며칠 후에는 훈련에 복귀했다.

 

클럽 경력

스포르팅 리스본,

스포르팅 리스본 박물관의 호날두 전시물,

16세가 되자, 호날두는 당시 스포르팅의 1군 감독이자 그의 드리블 능력을 주시하던 라실로 뵐뢰니 감독의 부름을 받아 1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구단의 U-16, U-17, U-18, 리저브, 그리고 1군 경기를 단일 시즌에 뛴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1년 후인 2002년 10월 7일, 호날두는 모레이렌스와의 프리메이라리가 데뷔전에서 2골을 넣어 3-0 승리를 견인했다.

 

 2002-03 시즌동안, 구단 관계자는 그를 제라르 울리에 리버풀 감독과 조안 라포르타 바르셀로나 회장에 추천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도 이 측면 미드필더를 영입하는데 관심을 가져 그를 11월에 이적을 놓고 아스널 훈련 구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호날두는 2003년 8월 스포르팅 리스본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이스타디우 주제 알발라드 개장 경기에서 3-1로 이기는 것을 목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길을 끌었다. 그의 활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찬사를 얻었고, 퍼거슨으로 하여금 그를 맨체스터에 불러들이게 했다. 

 

퍼거슨은 이 18세 선수가 그동안 봐 왔던 선수들 중 "가장 흥미로운 신인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가 구단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2013년 4월, 스포르팅 리스본은 호날두를 100,000번째 회원으로 등록해 경의를 표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3–2006: 발전과 도약

호날두는 2003-04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입한 최초의 포르투갈 선수가 되었다. 그의 이적료는 £12.24M으로 책정 되어 당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청소년으로는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 그는 본래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사용하던 등번호 28번을 요청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거물들인 조지 베스트, 에리크 캉토나,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이 사용했던 등번호인 7번을 받았다. 

 

등번호 7번을 받은 것은 호날두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고, 그는 목표를 앞으로 3년 이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쪽으로 잡았다. 

 

잉글랜드에서 성장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그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었고, "그는 스포츠계의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이었고, 현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을 끼친 부분 중 하나였다." 라고 회고했다.

 

"몇 명의 선수들이 몇 년 동안 '차세대 조지 베스트'로 언급된 선수들이 있지만, 나를 충족시킨 선수는 그가 처음이었다."

조지 베스트,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2003년에 18세였던 호날두를 언급하며

 

호날두는 2003년 8월 16일, 4-0으로 이긴 볼턴 원더러스와의 홈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니키 버트와 60분에 교체되어 들어갔고, 입장하면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의 활약상은 조지 베스트로 하여금 자신이 본 경기들 중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흥미로운 데뷔전"이라 칭찬하게 만들었다. 11월 1일, 호날두는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첫 골을 뽑아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0 승리를 도왔다. 그는 시즌 후반에 3골을 추가하였는데, 애스턴 빌라와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골도 기록했지만 처음으로 퇴장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호날두는 잉글랜드에서의 첫 시즌을 밀월과의 FA컵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3-0 승리를 돕고, 첫 우승 트로피를 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2006년 4월,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 를 상대하는 호날두

2005년 초, 호날두는 2004-05 시즌에 치른 최고의 두 경기를 펼쳤는데, 애스턴 빌라전에서 1골을 넣고, 1번 도왔으며, 경쟁 관계에 놓인 아스널을 상대로 2골을 추가했다. 

 

유나이티드가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4골을 기록했으나, 아스널과의 결승전에서 120분을 출전해, 득점 없이 비긴 경기에서 승부차기 주자로 나서 성공했지만, 패했다. 아직 다득점을 자주 하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호날두는 그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에 볼턴 원더러스전, 풀럼전, 그리고 포츠머스전 3경기 연속으로 두 골 이상을 기록했다. 10월 29일,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1000호골 주인공이 되었는데, 미들즈브러에게 1-4로 대패를 당했다. 시즌 중반인 11월, 그는 새 계약서에 서명해 2010년까지 구단에 남게 되었고, 당시 구단에서의 성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호날두는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두 번째 트로피를 차지했는데, 위건 애슬레틱과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나가는 골을 넣어 4-0 승리에 일조했다.

 

잉글랜드에서의 세 번째 시즌, 호날두는 몇 차례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는 벤피카 관중들에게 "한 손가락 욕"을 한 대가로 UEFA로부터 1경기 출장 징계를 받았고, 103으로 패한 맨체스터 시티와의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는 전 유나이티드 선수인 앤디 콜을 걷어찬 것으로 퇴장당했다. 호날두의 과시적인 플레이스타일을 지적한 팀 동료이자 공격수인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충돌하기도 했다. 

 

2006년 1월에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둘은 5월에 또다시 싸움을 벌였는데, 판 니스텔로이가 호날두에게 "네 아비에게나 가서 징징대라"라고 조롱했는데, 이는 호날두와 카를루스 케이로스 수석 코치 간의 관계를 겨냥하고 발언한 것이었다. 판 니스텔로이는 4-0으로 이긴 찰턴 애슬레틱과의 최종전에서 벤치로 밀려났고 이후 구단을 나갔는데, 호날두는 같은 경기에서 9번째 리그 골을 기록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에는, 팀 동료 웨인 루니의 퇴장 건에 연루되었는데, 호날두는 공개적으로 이적을 요청해, 사건에 연루되어 구단의 지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에 한탄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 측은 그가 구단을 떠날 가능성을 일축했다.

 

비록 루니와의 FIFA 월드컵 언쟁은 호날두가 2006-07 시즌동안 야유를 받게 만들었지만, 대 도약을 한 해로도 회자되며, 그는 20골 장벽을 깨고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이 성공을 거둔 원동력에는 레네 머윌렌스테인 수석 코치와의 1대1 훈련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조차 예측 못하게 훈련했고, 동료와의 연계, 공을 끌고가는 역량, 그리고 득점 기회를 기다리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름답게 예측할 수 있게 골을 넣게 하기 보다는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게 만들었다. 

 

그의 기량 급상승은 11월에 그로 하여금 블랙번 로버스 팬들이 그가 교체될 때 기립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그는 12월 말, 3경기 연속으로 2골씩 기록했는데, 애스턴 빌라전에서는 유나이티드를 리그 선두로 이끌었고, 위건 애슬레틱과 레딩의 골문을 차례대로 공략했다. 

 

호날두는 11월과 12월 두 달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는데, 두 달 연속으로 선정된 선수는 전에 두 번밖에 없었다.

 

2007–2009: 개인과 소속 구단의 성공

2006-07 시즌의 호날두

로마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6-07 8강 경기에서 호날두는 대회 첫 골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어 7-1 대승에 공헌했다. 그는 밀란과의 준결승 1차전에서도 4분만에 선제골을 득점했는데, 경기는 3-2 승리로 끝났지만, 산 시로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견제에 고립되었고, 유나이티드는 0-3으로 완패했다. 그는 왓퍼드전에서 2-1로 앞서가는 골을 넣어 유나이티드가 FA컵 결승전에 진출하게 했지만, 첼시와의 결승전은 0-1 패배로 귀결되었다. 

 

2007년 5월 5일, 그는 맨체스터 더비에서 자신의 맨체스터 50호골이자 1-0 결승골을 기록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년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시즌 내내 보인 성과로 그 시즌의 개인상을 휩쓸었다. 그는 프로축구선수협회 선수 선정, 팬 선정, 올해의 신인 선수상을 받았고,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기도 해, PFA와 FWA가 주관한 4종류의 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주급은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5년 연장하면서 £120,000 (총 주급 £31M) 이상되었다,

 

호날두는 2007-08 시즌동안 총 42골을 뽑아냈고, 잉글랜드 무대에서의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첫 골은 친정 구단인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머리로 기록했다. 그는 시즌 초 포츠머스과의 경기에서 박치기를 해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이 경험으로 그는 상대가 자신을 도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입을 열었지만, 시즌 중반까지 리그에서 13골을 득점하는데 성공했다. 

 

2007년 말, 세계 최고의 선수들 중 한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지 4년 후, 호날두는 카카의 뒤를 이어 스포츠 기자단이 선정하는 발롱도르에서 2위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국가대표팀 감독들과 주장들에 의해 선정되는 FIFA 올해의 선수에서는 카카와 리오넬 메시에 이어 3위로 선정되었다.

 

"호날두는 유나이티드 역사상 위대했던 두 선수들인 조지 베스트나 데니스 로보다 나은 선수이다."

—2008년 4월, 네덜란드의 전설 요한 크라위프가 23세였던 호날두를 언급하며.

 

호날두는 2008년 1월 12일, 6-0으로 이긴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일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해트트릭을 기록해 유나이티드를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려다 놓았다. 두 달 후인 3월 19일, 그는 볼턴과의 홈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처음으로 받아 두 골을 넣어 2-0 승리를 견인했다. 

 

그의 경기 2번째 골은 시즌 33호골로 1967-68 시즌, 조지 베스트가 세운 32골 기록을 경신하고 미드필더가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을 경신했다. 

 

호날두는 5월 11일, 우승의 향방을 가로짓는 위건과의 경기에서 시즌 마지막 골을 페널티킥으로 넣었고, 유나이티드는 두 시즌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31호골로 프리미어리그 골든 슈[97] 유러피언 골든 슈를 획득했는데, 후자의 경우 측면 미드필더가 획득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셀틱 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경기에서   직접 프리킥 을 준비하는 호날두,

호날두는 리옹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선 토너먼트전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기록해 합계 2-1로 8강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왔고, 공격수로 기용된 로마와의 경기에서도 머리로 한 골을 추가해 합계 3-0 승리에 일조했다.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지만, 유나이티드는 결국 모스크바에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해 첼시와 마주쳤다. 그의 선제골은 동점골이 터지면서 의미가 퇴색되었고, 승부차기에서 주자로 나서 실축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렵게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으며,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로도 선정되고 그는 PFA 올해의 축구 선수와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도 2연속 선정되었다.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관심을 가졌다는 소문이 떠돌자,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가 자신의 선수를 집요하게 구단 내 선수를 노린다는 불만이 담긴 탄원서를 FIFA의 행정 부서에 제출했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선수가 구단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상황을 "현대판 노예제"에 빗대었다.

 

호날두는 공적으로 블라터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유나이티드에 1년 더 머물렀다. 2008-09 시즌을 앞둔 7월 7일, 그는 발목 수술을 받았고, 10주간 활동하지 못했다. 복귀 후인 11월 15일, 5-0으로 이긴 스토크 시티전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는데, 첫 골은 유나이티드 개인 통산 100호골이었고, 그 결과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19개 팀을 상대로 모두 득점을 기록했다. 닷새 후, 그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3번째 퇴장 조취가 내려졌다. 

 

2008년의 끝을 앞두고 호날두는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유나이티드의 우승을 도왔는데, 리가 데 키토와의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도와 실버 볼의 주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968년 조지 베스트 이래 유나이티드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고, 프리미어리그 선수로는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호날두 #FIFA 클럽 월드컵 #2008년의 끝을 앞두고 호날두는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유나이티드의 우승을 도왔는데, 리가 데 키토와의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도와 실버 볼의 주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968년 조지 베스트 이래 유나이티드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고, 프리미어리그 선수로는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시립 정원사 주제에 디니스 아베이루 사이에서 막내로 났다 #그의 중간 이름인 "호날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으며 부친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는 형 한 명과 누나 두 명을 두고 있으며 #그들의 이름은 각각 우구, 엘마 릴리아나 카티아이다 #그의 증조할머니 이사벨 다 비에다드는 카보베르데 출신이었다 #가족 모두 독실한 천주교도이다 #호날두는 유년을 가난에 허덕이며 보냈고 #형과 누나들과 방을 같이 썼다고 회고했다 #유년 시절 #호날두는 아마추어 구단인 안도리냐에서 축구를 시작 #부친은 이 곳에서 장비 관리자로 근무했었고 #이후 2년동안 인근의 프로 구단 나시오날에서 보냈다 #1997년 12세가 되었을 때 그는 사흘간 스포르팅 리스본의 시험 훈련에 참가했고 #그는 £1500에 계약했다 #그는 리스본 인근의 알코셰트로 이주 #구단의 다른 유소년팀 선수들과 합류했다 #14세 때에는 반 프로 무대에서 뛸 능력을 갖추었고 #어머니와 합의를 보아 학업을 중단하고 축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인기인이었지만 그는 교사에게 의자를 던진 일로 퇴학당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교사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빠른맥으로 진단되어 축구를 중단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집도의가 레이저로 심장의 문제가 있는 부위를 지졌다 #수술 후 몇 시간만에 퇴원했고 며칠 후에는 훈련에 복귀 #클럽 경력 #스포르팅 리스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3–2006: 발전과 도약 #호날두는 2003-04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입한 최초의 포르투갈 선수가 되었다 #그의 이적료는 £12점24M으로 책정 되어 당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청소년으로는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 #본래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사용하던 등번호 28번을 요청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거물들 #조지 베스트 #에리크 캉토나 #데이비드 베컴이 사용했던 등번호인 7번을 받았다 #호날두는 리옹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선 토너먼트전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기록해 합계 2-1로 8강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왔고 #공격수로 기용된 로마와의 경기에서도 머리로 한 골을 추가해 합계 3-0 승리에 일조했다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 #유나이티드는 결국 모스크바에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해 첼시와 마주쳤다 #그의 선제골은 동점골이 터지면서 의미가 퇴색되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렵게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으며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로도 선정되고 #PFA 올해의 축구 선수와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도 2연속 선정되었다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관심을 가졌다는 소문이 #유나이티드는 마드리드가 자신의 선수를 집요하게 구단 내 선수를 노린다는 불만이 담긴 탄원서를 FIFA의 행정 부서에 제출했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선수가 구단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상황을 "현대판 노예제"에 빗대었다 #호날두는 공적으로 블라터의 의견에 동의 #유나이티드에 1년 더 머물렀다 #32008-09 시즌을 앞둔 7월 7일 그는 발목 수술을 받았고 10주간 활동하지 못했다 #복귀 후 11월 15일 5-0으로 이긴 스토크 시티전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다 #첫 골은 유나이티드 개인 통산 100호골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19개 팀을 상대로 모두 득점을 기록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3번째 퇴장 조취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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