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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 휩쓸린 뒤 기적적 구조된 의암호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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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 휩쓸린 뒤 기적적 구조된 의암호 생존자"

[의암호 선박 전복 참사]

"의암댐 수문에 빨려들어간 순간.." 

본지,생존자 가족측과 인터뷰"
사고이후 4일째 후유증 심각"
“나혼자 살았다” 죄책감 충격"

 

춘천 의암호 실종자 공무원 구조 선박사고,수초섬 의암댐 생존자,

강원 춘천시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발생 엿새째인 2020년 8월 11일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이 재개됐답니다. 지난 6일 발생한 사고로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소방·경찰·장병·공무원 등 인력 2074명을 투입해 2명의 실종자 찾기에 나섰답니다. 대책본부는 지난 8일과 10일 실종자 3명이 발견된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지역을 중심으로 장화와 구명조끼를 착용한 수색대원을 100m당 2명씩 배치했답니다. 수색대원들은 현재 탐침봉으로 수풀 속을 확인해가며 실종자를 찾고 있답니다.

 

집중수색 지점인 서면 덕두원 지역에선 지난 10일 오전 7시50분쯤 춘천시청 공무원 A씨(32)가 발견됐답니다. A씨가 발견된 곳은 앞서 수색 사흘째인 지난 8일 오후 2시쯤 경찰관 B씨(55)와 민간업체 직원 C씨(47)가 발견된 지점과 20~30m 거리랍니다. 사고가 난 곳에선 2㎞가량 떨어진 지점이랍니다.

 

대책본부는 또 사고 지점부터 경강교까지 양방향 30㎞ 구간을 9곳으로 나눠 정밀 도보수색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수상수색엔 보트 32대가 투입됐답니다. 청평댐∼경강교까지 구간별로 강폭 전체에 대열을 이뤄 강변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답니다.

 

대책본부는 또 기상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헬기 11대와 드론 24대 등을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랍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부터는 소방·경찰 구조견 6마리가 수색에 투입된 상태입니다. 헬기는 경강교∼행주대교, 드론은 사고지점∼경강교까지 4개 구간으로 나눠 수색한답니다. 대책본부는 지난 11일부터 헬기를 저공비행시켜 바람을 활용해 와류를 발생시킨 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일대를 수색하고 있답니다.

 

아울러 군 당국의 제안으로 마네킹에 구명조끼를 입히고 GPS 장치를 붙여 사고 현장에서 떠내려 보는 방법으로 실종자 위치를 가늠해보는 실험도 진행했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미 실종자가 발견된 지역이지만 해당 지점을 또다시 수색하는 등 한 명이라고 더 찾으려고 노력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가족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답니다.

 

참고로 의암댐 선박 전복사고는 지난 6일 춘천시 서면 의암댐 상부 500m 지점에서 발생했답니다. 이 사고로 7명이 실종돼 이날 현재까지 1명이 구조되고 4명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2명은 실종된 상태입니다.

 

8월6일 발생한 의암호 참사는 춘천시민을 비롯한 모두에게 비극이고 아픔이다. 이 사고로 8명이 물에 빠져 2명이 구조됐고 5명이 사망했다. 1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이 상황에서도 수문이 열린 의암댐을 통과해 13㎞를 떠내려가고도 살아남은 기적적인 사례도 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곽원복(68)씨가 23일 강원도민일보사를 방문, 사건 당일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곽 씨가 사고 이후 언론에 입장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고 18일째다. 건강상태는???. “퇴원한 지 얼마 안됐다.겉으로는 괜찮은데 정신적인 충격이 아직 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은.? “작업선 후미에 타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물 밑에서 시커먼 것이 올라와 배가 뒤집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배가 뒤집어진 원인은 잘 모르겠다. 작업복은 기억이 난다. 사고 당일 아직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 A씨는 가슴까지 오는 비옷을 입었다.

 

마침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급하니까 빨리 나가야 합니다’라며 직원들이 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더라. 나는 일반 장화와 바지와 상의가 구분된 비옷을 입고 나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바지와 상의가 구분돼 상대적으로 물 속에서 견디기 쉬웠던 것 같다. 긴 우비를 입으면 물이 옷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거워져 가라앉을 수 있다.”

-의암댐 문을 통과했는데 그 당시가 생각나는지?.

“배가 전복되고 보니까 바로 제 옆에 실종된 A씨가 빨간 양동이를 들고 있길래 ‘그거 들고 있으면 죽어. 구명조끼부터 챙겨’라고 했다. 스티로폼이 떠내려오길래 그쪽으로 밀어줬다. 그 친구와 나는 12살차이 띠동갑이다.

 

당시 의암호 유속이 매우 빨랐다.스티로폼을 밀어주니 그 반동으로 순식간에 내가 의암댐 앞까지 와버렸다. 수문에 물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가면 죽는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육군 특수부대를 나왔는데 그 당시 훈련받은 대로 얼굴가리고 눈과 귀를 막았다. 마치 엄마 뱃 속에 태아가 감겨 있듯이 몸을 최대한 웅크리니 쑥 들어가면서 몸이 돌기 시작했다. 투닥투닥 부딪히는데 뭐가 뭔지 모른다. 하여간 ‘몸이 벌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해 내려갔다.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부터 25까지 세니까 물이 용솟음 쳤고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살았구나’ 싶었다.”

곽원복 의암댐 선박 전복 사고 생존자가 23일 언론을 찾아 사건 당일에 발생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고 직후 ‘누가 작업지시를 내렸느냐’가???.

“그게 관건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저희는 누가 나가자고 한 것도 못 듣고 강변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간제근로자이지만 주변 쓰레기는 우리가 치워야 한다는 목적이 있으니까 사명감으로 일한 것 밖에 없다.”

 

-수문에서 빠져나온 뒤의 상황은?.

“주변 동료들을 향해 ‘조끼 놓지 말아라’,‘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계속 외쳐댔다.자극을 받으라고 욕도 했다. 나는 중간에 내려오는 스티로폼을 잡아 가슴에 대고 있었다. 평소 교회에 다녀 그때부터 울면서 기도했다. ‘살려달라’,‘도와달라’고 반복했다. 강촌까지만 가면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근처에 갔더니 사람도 없고 차들도 없었다.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었는데 사람들이 보지 못했는지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날 보지는 못했다. 남이섬까지만 가면 된다고 판단해 강촌 펜션쪽을 지나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어떤 우산을 쓴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우산을 집어던지더니 휴대폰을 찾는 듯한 모습을 봤다. 다시한 번 ‘살았구나’했다.”

-결국 춘천에서 수상레저업체를 운영 중인 김현도 대표가 발견해 구조했다.

“갑자기 배가 보였다. 나도 손을 들어서 ‘살려달라’고 했다.배가 속력을 내는 소리가 났다. 물결이 하도 세 배가 나한테 가까이 오질 못했다. 주변을 돌면서 ‘정신있지요?’,‘수영할 줄 아나요’ 계속 말을 걸어줬다. 수영할 생각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뒤에서 확 잡아챘다. 간신히 보트를 잡고 올라서니 그때부터 저체온증이 너무 심해 무척 추웠다. 구해주신 선장님과 직원분들이 계속 마사지도 해주고 정신을 잃지 않게 도와주셨다. 선장님도 오랫동안 배를 운전했는데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구조되자 마자 ‘시청에 전화해 달라’했는데.

“‘기간제근로자다. 춘천시에,춘천시 환경과에 전화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달라고도 부탁했다. 가장 먼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생각났다. 전화드렸더니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 목사님이 우셨다. 저를 알아봐 준 우산을 쓴 아주머니도 보고 싶고 배를 타고 저를 구하러 와주신 선장님도 너무 감사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분들과 모두 합심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던 기간제근로자 분들은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아직 실종상태다.

“이 애석한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같이 일한지는 한 달 남짓 됐지만 다들 친하게 지냈다. 특히 실종된 친구가 최종 면접에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그 친구가 ‘자식이 셋 있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고 입사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밥을 먹으러 가도 서로 한 숟가락씩 더 주려고 했고 식사 후 계산할 때도 ‘내가 살테니 다음에 사라’는 식이었다. 가장 먼저 (심정지 상태로)발견된 B씨는 우리가 대장이라고 불렀다.”

-사고 후 여러가지 주장들이 많이 나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상 많이 받겠다’고 하는데 그런거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썩어가는 것이다. 숨진 공무원은 아내 친구 아들이다. 병원에 있을 때도 B씨 장례식장도 다녀왔고 (21일 발견된) C씨 한테도 가보려고 한다. 물에 빠지자마자 구조된 반장이 있는데 그분과도 연락했다.”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댐을 통과하고도 손등 조금 까진 것 외에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았다는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선 착하게 살아야 하고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 말자,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생활 신조다.이번 일을 계기로 종교적인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13km 휩쓸린 뒤 기적적 구조된 의암호 생존자"

의암호 선박 3척 전복 사고로 현재 1명이 구조되고,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습니다. 사고 발생 23일째, '인재'라는 지적 속 사고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못했고 수습되지 못한 1명의 실종자가 있습니다.

 

5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강원 춘천 의암호 전복 사고. 이 사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68살 곽원복 씨는 그는 믿을 수 없는 사고 당시 상황을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는 사고 후 한 시간 동안 13km를 휩쓸려 떠내려간 뒤 기적적으로 구조됐습니다.

 

기간제 근로자인 곽 씨는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폭우 속 인공 수초섬이 유실될 우려가 커지자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는 "작업선 제일 후미에 타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물 밑에서 시커먼 것들이 훅 올라오더니 배가 뒤집어진 것으로 기억한다"며 전복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곽 씨는 배가 전복된 뒤 의암댐 수문 쪽으로 순식간에 휩쓸려갔습니다. 당시 계속된 폭우로 의암댐에서는 '초당 1만 톤'의 물이 방류되고 있었습니다.

 

의암댐 수문으로 빨려들어간 곽 씨. 그는 "얼굴을 가리고 손을 최대한으로 꼭 막고 그 와중에서도 불과 몇 초 사이에서도 코에다 손을 대고, 귀와 눈을 꼭 막고, 동그랗게 그대로 갔다"며 "곧, 몸이 돌고 투닥투닥 무언가에 부딪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의암 다리 밑에서 부유물을 붙잡고 돌아봤는데, 수문에 물이 계속 빨려 들어갔다"며 "'저기 들어가면 난 죽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정신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곽 씨는 이후 휩쓸려가는 물 속에서 "몸이 벌어지면 죽는다, (구명) 조끼가 벗겨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바짝 오므리고 뭐가 때리는지 몰라도 그러고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몸이 추워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마주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사람은 '살려달라'는 소리만 듣고 두리번댔지만 자신을 보지 못하고 놓쳤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세 번째 아주머니가 '살려달라'는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는 걸 보고 '살았구나' 안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무려 13km를 휩쓸린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한 배를 마주쳤습니다. 수상레저업체 직원이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 구조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수영할 생각 하지 말고, 그 상태로 계속 조끼 입은 상태로 몸을 맡기라"며 그를 뒤에서 건져 올렸습니다.

 

탈진된 상태로 구조되는 순간에도 곽 씨는 다른 동료 구조 요청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배에 타면서 "구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제 뒤에 세 사람이 떠내려오는 거 같은데 그 사람들 마저 구해달라"며 "춘천시청에 전화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 나흘째인 9일 춘천 춘성대교 부근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의암호 참사 사건은 생존자,그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고통이다.생존자 가족 측은 9일 강원도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고 트라우마가 심한 상황”이라며 “같이 일하던 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존자 가족 측이 전한 생존자들의 상태는 여전히 위태롭다.사고 이후 4일째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기 일쑤다.가족 측은 “한 배에 타고 있던 분들이고 같이 일을 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며 “30분도 채 잠들지 못하고 있어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해 시청에 얘기했고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다시한 번 건드릴까 가족들도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알지 못하는 상태다. 실시간 사고 현장이 방송되는 뉴스도 시청 금지다.더욱이 이 가족 역시 민간 레저업체를 운영,사고 당시 지원을 나갔다.


이미 배는 뒤집힌 상태였고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러 나섰지만 옆에서 말리는 친구 때문에 더이상 다가가지 못했다.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변으로 나왔고 극적으로 살아나온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가족 측은 “따로 살기 때문에 사건 당일 출근하는 모습도 제대로 못 봤고 아버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볼 수 있어 그저 다행”이라고 했다.3명이 숨졌고 3명은 여전히 찾지 못하는 상황.‘살았다’는 생각은 곧 ‘나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가족 측은 “다른 사람들은 물 속에서 아직 찾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른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도 있다”며 “주변에서 혹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밝혔다.생존자 가족 측은 실종된 기간제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가족 측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솔선수범 일 해오신 분들”이라며 “경찰이나 시청 공무원분들에 비해 기간제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명이 많이 되지 않는 것 같다.그분들이 이번일로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춘천시청을 비롯한 주변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저의 새 삶의 신조"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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